김천환 목사

예수님과 동행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2. 6. 27. 13:20

예수님과 동행 (9:57-62)

 

들어가는 말: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동행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동행이란 단어를 우리말 사전에 보면 일정한곳으로 길을 같이 가거나 오거나 함, 또한 일정한 곳으로 같은 길을 함께 가거나 오거나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주님과 함께 동행 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행은 함께 걷는 것입니다.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그 가운데 기뻐하기도 하고 함께 아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의식적으로 하루에 세 번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동행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그럼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과 동행할 때는 포기할 것도 있습니다.

 

본문 눅 9:57절 말씀에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본문 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누가복음 9장에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일, 그리고 변화 산에서 변화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찾아온 이 사람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길은 네가 생각하듯이 당장에 그렇게 영광스럽고, 당장에 인기가 있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포기할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하시기 전의 십자가도 바라보아야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고, 포기하는 것을 통해 생명 길에 이르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6:24절 말씀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38절 말씀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란의 코리텐붐 여사는 나치 수용소에서 생지옥 같은 삶을 사는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체험을 하고 해방 후 주님을 따라 지구를 돌며 전도하는 분이셨습니다. 그가 성경을 두 트렁크에 가득 담아 가지고 러시아에 입국하는데, 세관에서 발견되면 물론 몰수되는 것을 알면서도 세관원들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통관 수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맨 뒷줄에서 기도만 하고 있는데 드디어 자기 차례가 왔습니다.

 

바로 이때에 트렁크의 주위가 갑자기 눈이 부시게 빛이 나더니 세관원이 이것이 할머니 짐이요 매우 무겁군요! 내가 좀 들어다 드리지요하고는 가방을 열어 보지도 않고 택시까지 들어다 주었는데, 이것은 천사가 그 짐을 통관시켰던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간증거리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과의 동행은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입니다.

 

본문 눅 9:59절 말씀에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60절에 보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장래를 당한 사람을 부르시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실까요? 지금 제일 정신없이 바쁠 때 너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들에게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바쁜 가운데 네 삶의 목적이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믿음중심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 길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가는 인생의 길은 되돌아오지 못하는 길입니다. 꼭 한번 밖에 갈수 없는 일방통행의 길입니다. 이 삶의 길은 유일한 생명의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성인들과 교주들은 하나의 구도자였고 길의 안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가출하여 10년간을 방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33절 말씀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하는 힘:

 

가깝게 지내던 고등학생의 아버지께서 갯벌에 빠진 사람을 구하시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학생은 슬픔을 비우기도 전에 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하루는 배달이 늦어 주문하신 분에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같은 일을 하는 형들에게 하소연을 풀었습니다. 형들은 뜨거운 위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네가 잘못한건 없다. 밥 사줄게 여기로 와 라는 말로 어린 동생의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형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는 어린 친구의 따뜻한 고백을 들었습니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내 편은 아주 작은 상처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같은 편이 없는 외로운 이웃이 있습니다. 홀로 남겨진 이웃이 보이면 같은 편이 되어 주세요. 아주 작은 위로와 나눔일 지라도 함께 할 때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찬송:430)

 

 

셋째로 예수님과의 동행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눅 9:61절 말씀에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62절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예전에 시골에 살 때에 논과 밭을 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논과 밭을 가는 사람이 소와 함께 천천히 가는 것이 낭만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농부가 쟁기질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소와 거리를 잘 맞추어 가면서 쟁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잡아주어야 논과 밭을 깊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쟁기를 잡은 사람은 딴 곳에 정신을 팔거나 뒤를 돌아보면 논밭을 곧게 갈지 못하고 고랑이 고불고불하게 갈리게 됩니다. 당시에만 해도 농기구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를 키우는 집이 많이 있었습니다. 소는 힘이 있는 짐승이기 때문에 짐을 실고 나르기도 하고, 논과 밭을 갈고 농사를 짓는데, 꼭 필요한 짐승이었습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존 길모어 목사는 어느 날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방용품을 팔고 있는 어느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 그럭저럭 잘 됩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지요 그래요? 그게 뭔데요? 그건 나를 구원해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지 구원받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 속에서 천국 생활을 미리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들이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포기할 것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부귀영화와 멀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할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 성도들께서는 하늘나라에 갈 때 까지 예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삶을 이루어 가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2022626(참빛교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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