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날의 교회와 하나님의 예비 처
요한계시록 12:13-17(6)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이 땅 위에서는 무서운 환난의 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예언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핀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그 환난 날을 통과하게 되는 종말교회가 마지막 사명을 감당할 종들을 배출하기 위해 진통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11:2절입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이렇게 종말 교회가 낳은 아이는 바로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두 증인입니다.
이 두 증인들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한 이래의 전반부인 전 3년 반 동안 그 받은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의 받아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1:6절입니다.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하는 날 동안 비자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이들이 사명을 감당하는 3년 반 동안에는 그 누구도 이 사람들을 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11:5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이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왜 이렇게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권세를 가지고 사역하게 될 이 두 증인들을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 두 증인들이 사역하는 기간이 3년 반으로 짧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9: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을 아이라고 표현한 이유 또한 그 공생애 사역하는 기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전 3년 반이 지나면 이 두 증인들이 받은 사명이 끝나게 됩니다.
그 후에 본격적인 환난의 시대인 후 3년 반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후 3년 반 동안 환난이 얼마나 극심한지, 하나님께서 그 환난의 날을 감하지 아니하셨으면 육체를 가지고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13:20절입니다.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만약 이 환난의 날이 10년이나 20년 동안 계속되게 되면 육체를 가지고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을 3년 반으로 감하여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환난의 날에는 도망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3장의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그리고 마가복음 13:4-5절 말씀을 보면 그 날에는 얼마나 급박하게 도망을 가야 하는가 하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고’ 도망하라고 합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고’ 도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6절 말씀을 보면 종말 시대의 이방 교회는 ‘광야로 도망’하라고 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하나님이 예비한 곳이 있더라.’라는 이 말씀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예비 처’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예비 처
요한계시록 12장은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환난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3년 반으로 감하지 않으셨으면 육체로 살아남을 사람들이 없게 되는 그런 극한 환난의 날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요한계시록 12장이 사실은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장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때 세상 사람들에게는 환난의 날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그 크신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양육해 주실 예비 된 장소가 있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애굽에 10재앙을 내려 멸하실 때 유대인들이 있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재앙이 미치지 못하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다가오는 환난의 날에도 믿음으로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보호처가 있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 안에서 위로를 받고 또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예비 처는 언제 시작되는 것입니까?
5-6절입니다. “여자가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갔다고 하는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 11:11-12절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11장에서는 전 3년 반 동안 사역하던 두 증인들이 순교한 후에 부활하여 승천하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종말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예비 처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예비 처에 대한 오해
이렇게 볼 때 예비 처는 언제 나타나는 것입니까?
7년 대 환난 기간 가운데 후 3년 반의 기간에 가시화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에는 이 예비 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지금은 예비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한계시록에서 받으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짐승의 표가 아직 짐승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듯이 예비 처 또한 아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가 예비 처다. 저기가 예비 처다.’라고 하는 말은 모두가 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예비 처에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독수리 두 날개로 업어 가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를 들면 과천 주암동에 위치하고 있는 ‘은혜로 교회’의 신옥주 목사는 이 예비처가 피지라고 하면 성도 400명을 데리고 피지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취재한 결과에 의하면, 결국 그 교회를 바탕으로 해서 신옥주는 그 아들을 피지 정계에 진출시켜서, 피지에 자기들의 지상왕국을 건설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지요.
이 사람들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가 예비 처라고 하면서 교인들을 데리고 떠났고, 어떤 사람은 남미 오지가 예비 처라고 하며 교인들과 함께 떠났고, 어떤 사람들은 필리핀이라고 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떠났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강원도의 오지나, 무인도가 예비 처라고 하며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만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로 해석하여 자신 뿐 아니라 그 따르는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예비 처는 사람들이 예비해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비 처가 필요한 시대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제 세계를 하나의 통일 국가로 지배하는 그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며, 이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매매를 못하게 하며, 이 표를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 성도들을 그냥 놓아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든지, 아니면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절함으로 순교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때입니다. 성도들을 그냥 놓아두면 신앙을 지키며 살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예비하신 장소에 성도들을 모아 보호하시고 양육하시는 곳이 바로 예비 처입니다.
이런 극한 시대로 가기 전에 이미 이 땅에서는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계도기간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표를 받으면 얼마나 편리한지 홍보할 것입니다. 표를 받으면 얻게 되는 유익을 홍보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은행을 이용하지 못한다든가 여행을 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각종 불이익이 따르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에서 경고하는 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그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만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짐승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이 표는 곧 바로 짐승의 표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는 이 표를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성도들이 짐승을 경배하지 않고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제시해 주시고 계신 것이 바로 예비 처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극한 박해를 피하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예비 해 두신 곳이 바로 예비 처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비 처는 사람이 예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떻게 예비 처를 예비할 수 있겠습니다.
예비 처에 대한 오해가 역사상 계속 있어 왔습니다.
전도관의 박태선은 자기들의 집단 처소인 신앙촌이 천년 성으로 마지막 날 인류의 피난처라고 했습니다. 새일 기도원의 원장 모씨는 계룡산의 새일 기도원을 마지막 환난 날의 예비 처로 말해 왔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드러나지 않게 도처에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소 생소한 예비 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 예비 처는 사람이 만들거나 사람이 예비한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예비 처는 하나님이 친히 예비해 두신 곳이라는 것입니다. 1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깨달아서 거짓된 사람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이 예비 처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우리를 그곳으로 옮겨 주신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4절입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큰 독수리의 날개로 그 예비한 곳으로 옮기셔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그 날도 모릅니다. 그 장소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그 날이 오면 우리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성도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곳으로 데려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있게 될 때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24:40절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자지 않고 깨어 있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 알아듣고 순종하여 움직이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예비 처에 대해 요한계시록 12:6절이나 14절에서는 광야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광야란 옛날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그곳을 연상시켜 주는 장소입니다. 광야란 농사를 짓거나 어떤 생업의 조건이 전혀 없는 그런 들판을 말해 줍니다. 이곳은 오직 하나님의 권능만으로서 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호하심을 받을 하나님의 예비 처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아니했어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서 받으며 살게 될 혜택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7:15절 이하의 말씀에는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비 처에서 성도들이 혜택에 대하여 7:16절에서는 “그들이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 처에 가 있는 성도들은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난의 날에 이 땅위에는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온 인류는 말할 수 없는 기근과 기갈에 허덕이게 될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예비 처에서 보호를 받는 성도들은 이 모든 주림과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 이상기온으로 해가 뜨거워져서 사람들이 괴로움을 당할 때 예비 처에는 이 같은 재앙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역사상 이미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애굽을 10가지 재앙으로 치실 때 고센 땅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재앙의 해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극한 고난의 날에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양육하시기 위해 구별해 두신 장소가 바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였던 고센 땅과 같은 예비 처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얼마 있다가 이 세상 종말이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되어 지는 일들을 보면 인류 역사는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 갑부들은 수백억의 돈을 들여서 인류를 멸망시킬 핵전쟁에서도 살아남기 위하여 그들만을 위한 안전한 벙커를 사막 한 가운데 혹은 뉴질랜드와 기타 곳곳에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하나님의 정하신 종말의 날이 우리 앞에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려운 요한 계시록 말씀의 연구를 통하여 이런 시대적 징조를 바라보고 보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가까웠음을 인식하고, 깨어나는 신앙을 가지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하나님이 종말 교회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해를 옷 입은 교회, 달을 밟고 서 있는 교회,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는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서 양육하고 보호 받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휴거되어 올라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것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주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이 땅이 불사름을 당하고 세상 사람들이 다 멸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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