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태복음 5:8
들어가는 말
우리는 팔복에서 말씀하고 있는 여덟 가지 마음을 살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팔복에 있는 마음들을 살피면서 가장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말씀하고 계신 이 팔복의 마음은 우리에게는 없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본래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마음인데,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신 이 팔복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마음이 팔복의 마음으로 다 변화되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팔복의 마음은 생명을 가진, 씨의 형태로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가진 씨는 반드시 싹을 내고, 가지를 내고, 잎을 내고, 자라서 열매를 맺어가듯이, 이 팔복의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서 싹을 내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어가도록 해야 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농부들이 봄에 씨를 뿌리고, 뜨거운 여름 동안 수고하고 노력한 후에, 결실의 계절 가을에 그 열매를 수확하게 됩니다. 가을에 수확하는 그 열매는 한 해의 긴긴 시간 동안, 애쓰고, 땀 흘려 노력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팔복의 마음도 같습니다.
이 복된 마음이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어가게 하려면, 우리들도 농부와 같이 수고하고 땀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땀 흘려 노력한 만큼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과정 속에서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성장성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믿음이 성장하는 사람들, 믿음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 안에서 성과를 내고 업적은 내려고는 하고 있지만, 믿음 안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열매든지 그 열매는 저절로 맺혀지지가 않습니다.
좋은 열매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수고하고 애쓰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팔복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 열매 맺도록 하려면 우리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될 때, 그 마음이 바뀌고 그 마음이 변화되는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복은 믿음 안에서 그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복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이 바뀌고, 우리 마음이 고쳐지는 것이 참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우리 마음이 바뀌는 복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마음 안에는 본래 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우리들의 마음 안에 팔복의 마음을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 안에서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죄악 된 마음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은혜로 주신 이 팔복의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무엇을 해도 남보다 뛰어나게 해 나갑니다. 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 마음이 무엇인가로 꽉 차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대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든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하는 말과 그 살아가는 삶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능력도 있고, 그 나름대로의 자랑거리도 있고, 그 됨됨이가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가지고 태어난 본래의 마음을 고치지 못한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학문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공을 이룬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미가엘 찬송 826장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후렴의 가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게도 주소서. 내가 복을 받기 원하네. 오 내 주여. 주소서’ 이 복음송의 가사에서는 무엇 주시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구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팔복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청결한 마음’ 등등을 주시기를 간절하게 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이나 이 복음 송은 ‘우리 마음을 바꾸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을 해서 자랑할 것이 있는 것이 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서 그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이 바뀌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도 그 성공을 통해 마음이 바뀌면 복 있는 사람이 되고, 실패한 사람들도 그 실패를 통해 마음이 바뀌면 복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우리의 마음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복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 이유는, 우리 마음이 팔복에서 말씀하고 있는 마음들과 같이 바뀌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이 팔복의 말씀을 살펴나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팔복에서 말씀하고 있는 마음들로 바뀌어 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마음이 바뀌는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이 팔 복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마음은 잘 바뀌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이 주신 팔복의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가지고 사는 마음에 대해 서로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네가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너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없다.’라고 하시기도 하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깝다.’라고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사는 마음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 나라에서 먼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지고 사는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이렇게 삶의 결과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마음이 바뀌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 마음을 바꾸고 삶을 바꾸려면,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디에 쓰며 사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죄짓는 곳에 쓰게 되면 나는 죄인이 됩니다. 우리 속담에 ‘여자 셋이 모이면 꼭 남편을 비판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이 모여서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악담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면, 그 입술이 경건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데 오늘 얼마의 시간을 사용했습니까?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데 오늘 얼마의 시간을 사용했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데 오늘 얼마의 시간을 사용했습니까? 내 욕심을 비우고 죄를 애통해하는 일에 오늘 얼마의 시간을 사용했습니까?
우리는 오늘 내가 사용하며 산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도 시간을 쓰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오늘 사용한 시간의 질에 따라, 내일의 나, 모래의 내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은 공부하는데 시간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런데도 늘 놀고, 웹툰이나 하고, 유듀브만 보면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의 거의 없게 됩니다.
우리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서 내 마음을 아름답게 하고 내 마음을 바꾸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삶을 바꾸려면, 하는 일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좀 고생스럽더라도, 그 얻게 되는 소득이 좀 적을지라도, 경건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돈이 많이 벌린다고 부동산 사기를 치는 회사에 들어가서 직원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소득을 보장하고 있다고 불의와 불법을 일삼는 직장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여자가 시집가기 싫다는 것과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은 공인된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존경을 받았던 어떤 랍비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 중에는 천국 간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였답니다. 이 말은 그만큼 장사하는 사람이 진실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하며 살아가는 세상일을 믿음으로 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사업가는 어떻게 그 하는 사업을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까? 사업가가 사업을 해서 이익 남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사업을 한다면 믿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업가가 사업을 해서 남긴 그 이익금으로 내 가족을 위해 쓰고, 수고한 종업원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쓰고, 또 국가에 정당한 세금을 내므로 국가를 위해서도 쓰고,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그 수익금으로 좋은 일에 쓰고, 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쓰고자 한다면 이런 사람은 믿음으로 사업한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면 종업원들이라면 어떻습니까?
종업들이라면 내가 일은 적게 하고 봉급은 많이 받으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받고 있는 월급 이상으로 일을 해 주어서, 기업주도 이익을 얻게 하고, 또 기업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믿음을 일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 생애 목적이, 남보다 더 많은 부를 얻고, 더 큰 성공을 이루는 것에 있지 않고, 우리들이나 우리의 삶이 좀 더 거룩해져 가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도 거룩함을 이루는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결혼을 하는 이유도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거룩함을 이루어 가고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삶을 절제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되고 싶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꾸 안 믿는 친구들과 만나고, 그런 친구들의 소리를 듣고, 그런 친구들과 교제하게 되면 거룩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거룩하게 되고 싶으면 그 삶이 거룩한 사람을 만나 친구로 삼고 교제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거룩함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은, 늘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주시는 은혜 받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을 바꾸고 내 마음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바꾸고 싶으면 먼저 내가 하는 일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무엇을 할 때 자꾸 시간을 끌고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태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재단을 쌓을 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재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도 아침 일찍이 준비하고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거룩한 일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유혹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셋째, 마음을 바꾸고 삶을 바꾸려면,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그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몇 번이나 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환경이 자녀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시장에서 살면 배우는 것이 장사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도서관 옆에서 살면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자주 출입하게 되면, 그 아이는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나의 마음을 바꾸고 나의 삶을 바꾸려면, 먼저 내 삶의 환경을 바꾸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시험에 들 자리,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자리는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리, 거룩하고 경건함을 요구하는 그런 자리를 즐겨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평생을 살면서도 기도원 한 번 가보지 않고, 또 자기와 가족과 이웃을 위해 기도도 별로 해보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하늘 일에 늘 분주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 삶의 결과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점검하고, 내게 주어진 가정과 직장과 교회의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늘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다가 보면 결국에는 우리 마음도 바뀌고 우리 삶도 바뀌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마음을 바꾸고 삶을 바꾸려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똑같이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하루 동안 해 낼 수 있는 일이 열(10)가지 정도라고 합시다. 그런데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일은 열다섯(15)가지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속에 살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열다섯(15)가지 일을 다 하며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열다섯(15)가지의 일을 수평적으로 생각하여서, 내게 먼저 주어지는 일부터 닥치는 대로 해 나갑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 삶에 질서도 없고, 항상 바쁘고, 늘 일에 쫓기어서, 시간 약속은 밥 먹듯이 어기고, 언제나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나는 너무 바빠서 주를 위해 살 시간도 없다.’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정돈되지 않은 삶이고, 질서를 잃은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48시간이 주어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는 낼 시간은 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열다섯(15)가지의 일을 그 가치의 경중에 따라 수직선상으로 놓고 삽니다. 그래서 그중에서 중요한 일부터 우선 적으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치에 따라 일을 하다가 보니 그날 해야 될 열다섯(15)가지 일을 다 할 수는 없지만, 그날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다 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그 삶에 질서가 있고, 삶의 여유가 있고, 약속한 시간은 반드시 지키게 되고,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주를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도 열심이면서, 내게 주어진 일들은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사는 경건한 삶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마음의 청결’입니다.
마태복음 5:8절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우리가 팔복의 마음은 상호연관성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연관성이 있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연관성이 있고, 애통하는 마음은 청결한 마음과 연관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청결한 마음은 애통하는 마음과 연관성이 있는 마음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연관성에서 보면 마음의 청결은 애통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애통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애통하는 마음은 죄를 애통해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어떤 죄를 애통해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 내 마음 안에 아직도 죄악이 가득함을 깨닫고 애통해하고, 다른 사람들이 범하며 살아가는 심각한 죄를 보면서도 애통해하고, 민족이 국가가 범하는 죄를 보고서도 애통해할 뿐 아니라, 철없는 청소년들이 죄와 악으로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애통해하고, 가정들이 깨어지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애통해하며, 이기적인 탐욕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사람들을 보고서도 애통해하고, 삶의 의미를 잃고 도박을 하고, 술을 의지하며 살고, 마약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애통해하고, 세상 부귀영화를 쫓아가다가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적인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 바로 마음의 청결입니다. 우리 마음은 내가 깨끗해지고 싶어 한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아파하고 죄를 애통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마음이 청결해 진 사람들은, 그 마음이 더욱더 청결해지기 위해서 또 애통해하며 울게 되는 것입니다. 왜요. 우리 마음은 아무리 애통을 해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처럼 청결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청결은 우리가 주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계속 이루어 나가야 하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죄를 많이 회개하는 사람들이 그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고, 죄를 별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러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가지길 원하는 사람은, 늘 애통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늘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은 마치 목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욕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불결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욕을 한 달에 한 번 정도나, 아니면 일 년에 몇 번만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면 깨끗한 마음,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일 년에 몇 번 회개하거나, 별로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지저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회개를 목욕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를 믿고 회개한 자는 목욕한 자이기 때문에, 이제 날마다 지으며 산 죄를 회개함으로 그 더러워진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삶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 가족의 죄, 이웃의 죄를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애통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마다 애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범하는 그 즉시, 그 일이 죄인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즉시, 우리는 죄의 아픔을 느끼고, 그 죄를 애통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른 믿음과 잘못된 믿음이 어떻게 구분됩니까?
바른 믿음의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 앞에 자신을 세우며 살고, 또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늘 그 죄를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들은 다르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아니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섬기며 사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아비 사단을 따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의와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몸을 씻지 않고 진한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그 향수가 진리라도 되는 양 그 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 삶에 회개가 없고, 말씀을 읽어도 찔림이 없고, 하나님 앞에 서서도 별 잘못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심각하게 병든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는 사람, 그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그친 사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가족과 이웃과 사람들을 향한 감사와 긍휼이 메마른 사람들은, 이미 그 신앙에 위기가 오고 있고, 그 심령은 심각한 병이 든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보다 그 심령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성령이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 가지길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받기를 열망하며, 그 마음이 청결해질 때까지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영상은 바로 잔잔한 호수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잔잔한 호수에 내 얼굴을 비취면, 내 얼굴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죄를 회개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깨끗해진 마음에 하나님이 그렇게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 바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게 되는 복입니다.
마음이 더러워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의 더러움이 하나님을 보는 눈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단의 유혹과 어둠이 그 눈을 가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천지 이단이 그 성도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교회에 있는 성도들 미혹해 내기 위해서, 가짜 성도로 위장하고 교회에 잠입해라,’ ‘참된 믿음으로 헌신하는 성도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유혹해 내라.’라고 교육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우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신천지 이단들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으시며, 하나님은 죄는 그 모양이라도 용납하지 못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만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보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이 청결해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더해 가면 갈수록 그 마음이 점점 더 거룩해지고 점점 더 청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점점 그 마음이 청결해지다가 결국에는 죽어 천국을 가게 되면 우리 주님이 어떠하심과 같이 그렇게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을 입은 영화로운 몸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다릅니다.
그 마음에 죄악이 가득하기 때문에 죄의 열매만 맺으면 삽니다. 그리고 그 지은 죄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게 되는데, 죄를 가지고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죄와 악의 화신인 그 아비 마귀가 거처로 삼고 있는 지옥으로 따라 들어가서 영원한 형벌을 함께 받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을 보며 살게 되는 것은 이 땅에서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생애를 다 마친 후에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대면하여 보며 영원토록 그 주시는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복된 삶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만 만나주십니다.
마태복음 5:8절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그 마음이 청결할 때 하나님의 은혜, 긍휼, 사랑, 자비 등등을 느끼게 되고 알 수 있게 된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아온 그 마음이 청결한 사람들은 또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보며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떻습니까?
혹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죄악이 느껴지고 깨달아집니까? 그렇다면 그 죄를 애통하고 회개함으로 마음의 청결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혹시 하나님이 주신 청결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마음으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지내셨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게 청결한 마음 주셨음을 인하여 감사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청결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매일 매일 죄를 회개하여 버리고, 청결한 마음 유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청결한 마음을 소유한 성도들을 만나주시고, 그 삶에 함께 해 주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을 보고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보고 그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산상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의 복 (0) | 2024.08.18 |
---|---|
화평케 하는 자의 복 (0) | 2024.07.21 |
온유한 자의 복 (1) | 2024.02.04 |
애통하는 자의 복 (1) | 2023.12.17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1) | 202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