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된 구원의 길 (요 3:1-15절)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갈망하는 돈, 명예, 건강일까요? 아니면 많은 교육을 받는 것이나 노년의 편안함이나 안정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현세를 보 다 안락하고 풍요하게 지내게 하는 데에는 매우 유용한 것이긴 하지만 잠깐 후면 없어지고 말기 때문에 인생의 궁극적 가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는 자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 반드시 직면해야 할 삶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생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길고 중요한 사후의 생입니다. 사람들이 가게 될 내생은 신자들을 위한 천국과 불신자들을 위한 지옥이 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자연 상태 즉 일반적으로 태어난 상태로는 지옥에 갈 뿐이며,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준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참 구원을 얻는 길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선한 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에는 들어설 수 없음을 확증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을 통하여 말씀을 상고해 보면서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 자연적인 선으로는 불가합니다.
지난날에 우리가 종종 복음을 전하다 보면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즉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이때에는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선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참으로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정말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죄악 된 이 세상에는 많아져야 합니다. 또한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대두되며, 갈수록 약육강식의 논리가 팽배하는 이 세상에는 자신이 가진 재물을 가지고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치하는 정치가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업을 하는 자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리 선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에는 들어설 수 없음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이 가진 선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훨씬 윤리적, 도덕적으로 낫다고 해도 그의 선이 하나님의 표준에는 결코 이르지 못합니다. 천국 백성이 자격은 선행에 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엡2:8-9절 말씀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서의 기적)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쉽게 실수하고 상처받습니다. 때로는 이기적이고 불친절하며 배려할 줄 모르는 존재입니다. 불안한 시선이 타인에게 향하면 다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함을 인정하면 누구든지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시선의 변화가 불러오는 놀라운 반전입니다. 용서는 기적입니다. 용서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합니다. 분노가 기쁨으로, 갈등이 화해로 미움이 사랑으로 변화합니다. 누구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기적이라 말하지만, 용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2. 율법적인 노력으로도 불가합니다.
예루살렘에 니고데모라는 한 바리새인이 살았는데, 그는 유대 의회 원이었습니다. 그는 당대에 가장 훌륭 하다고 평가받는 사람 중의 속하였습니다. 그는 구약 율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율법을 최선을 다해 지켰습니다. 그는 종교적인 지식의 면이나 엄격하고 종교적인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아주 높은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산해드 린’이라고 하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의 일원이었습니다.
이 집단은 최고의 신분을 가진 70명으로 구성된 권위 있는 종교 재판소였습니다. 따라서 산헤드린의 의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했으며, 율법에 따른 철저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니고데모의 마음 구석에 자리 잡은 공허감을 메워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사실 이러한 공허감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자기 내면의 본질적 결핍을 인정한 정직한 마음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구속 역사를 전개해 오는 과정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여 소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며, 이들에게 율법을 주사 선택받는 자들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자구 대로 실행하고 지킨다. 하여 영원한 삶을 보장받게끔 허용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란 죄에 대해 몽매한 인간의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 구속의 은혜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의 역할을 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3:24), 오늘날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직하고 깨끗한 생활을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교회까지 나가며 가치 있는 일에 쓰도록 헌금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천국 시민권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70장)
롬7:7절 말씀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아나 이다.”(3:2)라는 니고데모의 그 모든 찬사를 지나쳐 버립니다. 오직 주님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거기에 영적인 기갈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구약(율법)의 한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 뱀한테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의 명대로 장대 위에 매달아 놓은 놋 뱀을 본 자들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민21:4-9), 이 사건은 구약에 능통해 있던 니고데모도 너무나 잘 아는 사건이었습니다. 놋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을 상처에 바르지 않았습니다. 뱀과 싸운 것도 아닙니다. 장대 위의 놋 뱀에게 재물을 바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쳐다본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믿음으로 그 놋 뱀과 그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을 들어서 내가 높이 들릴 것이다.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당시에 구원의 한 방법입니다. 참 구원의 길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시에 구원받는 길은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행4:12절에도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4: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고후서 5:17 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건이 되었도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선행으로 된 것이 아니며, 또한 율법적인 노력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와 죄악 된 본성 외에는 우리와 주님 사이를 세상 어느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만을 가지고 주께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도 죄인을 사랑하시는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님께서 참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며, 새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24년 3월 24일 (참 빛 교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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