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환 목사

섬기려 오신 예수님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1. 28. 13:53

제목 : 섬기려 오신 예수님 (본문 : 10:35-45)

 

(들어가는 말)

 

지난 2022년도 3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5년간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4년도 410일에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데 비례 대표를 포함한 총 299명의 국회의원을 뽑게 됩니다. 이때 당선이 되면 4년간 국회의원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은 물론 후보자를 내세우고 최선을 다해 국가와 국민을 잘 섬긴다고 공약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거가 지나고 나면 잘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쟁기면서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불신을 안겨준 일도 비일비재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섬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을 섬긴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잘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 시간 봉독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섬기려고 오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을 놓고 함께 은혜받기로 하겠습니다.

 

(본론의 말씀)

하루는 세배 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의 12명의 제자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수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칠 때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던 때이든지, 변화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눌 때도 3명만은 꼭 데리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이들을 신뢰하고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 본심을 털어놓게 되었습니다(35).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높은 자리에 계실 텐데, 우리 두 형제를 예수님 주변에 배치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37), 라고 그들이 말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면 자기 형제를 좌의정 우의정을 시켜 달라는 부탁입니다. 이것은 미리부터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됩니다.

 

이런 장면을 상고해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야고보와 요한처럼, 높은 자리에 있기 좋아합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대우받는 위치에 있기 좋아합니다.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야고보와 요한도 12명의 제자 중에 자기들이 미리 높은 자리를 챙겨두려 했습니다. 그들은 끝없는 세상 욕심으로 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땐 실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도들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212)

4:10 절에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18 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심이 없이 순전하게 하나님을 믿고 살고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3년이란 세월을 함께 보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면 자기들의 이익을 충족시켜 보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마음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느끼지 않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있지만, 예수님이 임금이 되시면 한자리 차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며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곧 죽어야 하는 비장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제자와 예수님의 관점이 너무나 다른 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입장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오직 좋은 자리를 비롯한 좋은 것, 높은 것에만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예전의 텔레비전에 나오는 동물의 왕국에 보면 항상 약한 것은 강한 것에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높아지는 것을 좋아하지만, 섬길 줄을 잘 모르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섬기는 것은 하찮은 사람만 하는 그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에 죄인들을 친히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제자들처럼 확고한 한자리 치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많은 사람을 건져내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 43~4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코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강영우 박사 저서인 도전과 기회 3c 혁명이란 책에 보니까 섬기는 리더 십의 근본은 컴패션인데 이것을 통해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고통에 함께하는 마음인데 어려서부터 그런 착한 마음을 배우면 장차 섬기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유명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켬패션을 배우지 않고는 공부를 잘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섬기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강 박사님도 중학 학생 때 축구를 하다 눈을 다쳐서 시각 장애인이 되었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고, 백악관에서 차관보 지냄,

딤전 6:2 절에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전하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14 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과 같이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섬김으로 낮아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는 낮아지는 것이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이 자존심을 구기는 일리라고 여기고 이런 일을 회피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를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불행이 싹트는 것입니다. 섬겨야 하는데 자꾸 높은 자리에만 관심을 가질 때, 예수님께서 날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지신 사건을 잊어버리고 멀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3:12 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존심을 다 버리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죄인이 아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은 이기심 많은 사람을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지심으로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귀한 말씀인

 

2:5~8 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린 이 말씀을 통해 항상 예수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

 

우리는 흔히 복을 받는 것이라 여깁니다. 많이 받으면 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어 주기만 하는 사람은 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복 있는 사람은 주는 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도 마음을 채우지 못하면 나누지 못합니다. 주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넉넉히 채우고 남은 마음은 이미 이웃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마음은 특별합니다. 단순하지만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손해 볼 것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내어 주는 만큼 더 콘 믿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흐르지 않으면 썩게 마련입니다. 주는 사람은 복을 흐르게 하는 복의 유통자입니다. 신선하고 깨끗한 마음이 흐르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으면 평안을 얻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가 움켜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이웃의 미소 속에 있습니다.

 

시편 100:2 절에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2000년 전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낮아지는 방법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럴 때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을 잘 깨닫고 섬김의 삶을 사심으로 승리하는 2024년도 한 해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2024128(참 빛 교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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