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원천 (신명기 33 : 26-29절),
들어가는 말 :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최고의 상태를 행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행복은 모든 인간의 주요한 관심사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흔히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전에 sbs에서 방송한 ‘로또 벼락부자의 헛된 꿈’이라는 글입니다.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 주인공 황 씨는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어 19억에 세금을 제하고 14억 원을 받았으나 허랑방탕하여 특급 호텔에서 하룻밤에 200만 원짜리 잠자리를 하고 지인들과 술 마시고 도박에 탕진하고 가족들에게는 2억 원을 도와주고 나머지 12억 원을 2년 만에 돈을 물써듯하여 다 날려버리고 결국 먹는 것과 옷, 신발 목걸이 금은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털어 범죄가 18건으로 다시 철창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거액을 받은 사람 거의가 잘못되고 폐인이 되었다는 보고입니다. 또한 권세가 있으면 매사에 형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생의 비탄과 허무가 찾아들 수 있습니다. 실로 돈과 권세가 가져다주는 흡족함은 마치 성경이 말하는 대로 ‘악인의 큰 세력은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이 잠시잠깐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행복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는 백성을 향한 생의 마지막 축복을 통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행복자라고 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행복자라면 오늘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도 행복자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행복자이며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실 때 행복합니다(26절).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도다”
여기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대명사로 모세가 사용한 말입니다. 행복자인 첫 번째 이유는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위엄으로 나타나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후원을 덧입고 있었기에 행복 자였던 것입니다. 실로 세상의 온갖 괴로움과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불안을 느끼며 사는 우리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그러한 도움과 후원을 받고 있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것임에 분명합니다.
마치 아람 왕의 공격을 받고 공포에 떨던 엘리사의 종이 영의 눈을 뜬 후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수많은 천군을 보고 행복했듯이 말입니다.(왕하 6:17).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듯이 스데반이 죽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행 7:55,56). 그가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영광된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천지의 대 주세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행복 자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도우시고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에 찬 손길로 우리를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시12:1-2). 이제 우리 모두 이러한 행복에 항상 감사는 성도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찬송: 370장)
시편 115:9절 말씀에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오 너희의 방패 시로다”
에베소서 4:16절 말씀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2. 하나님께서 처소가 되어 주실 때 행복합니다(27절).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 도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이 행복 자 이었음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처소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실로 자신의 안식처, 자신의 처소가 흔들리는 사람은 항상 불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처소가 확실한 사람은 안정감을 누립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놀라게도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소가 되어주심에야, 결코 쇠하지 않는 전능하신 팔이 우리의 처소가 되어주심에야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진정 사도바울이 하늘의 처소를 사모한 이유도(고후5:2)에 그것이 행복의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지 나사로가 소유한 육신의 처소는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처소가 되어 주셨기에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눅16:23). 반면에 어리석은 부자가 소유한 육신의 처소는 호화로운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안계셨기에 영원히 행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행복 자였던 이유도, 또한 우리가 행복 할 수 있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처소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행복, 참 행복의 필수조건은 물질적인 것 보다는 진정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영적인 것이라 하겠습니다.
고후서 5:2절 말씀에 “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신명기 26:15절 말씀에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 소서 할지니라.”
순전한 행복 : 우리 몸속의 뇌는 질량으로 환산하면 2%에 불과하지만 공급되는 에너지의 20%이상을 사용합니다. 뇌는 끊임없이 영양을 공급받으면서 우리 몸을 움직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삶의 태도 역시 뇌를 통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어떤 영양분을 공급받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뿐 아니라 생활 방식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영양분은 건강뿐 아니라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도와주지만 해로운 음식은 영양의 불균형을 일으키고 뇌의 건강한 활동을 방해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하지만 푸른 나무는 그냥 푸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좋은 영양분을 공급받아 울창한 푸른빛을 냅니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지에 따라 푸르른 나무가 될 수도 앙상한 나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 그렇습니다. 내 삶이 어떤 영양분으로 채워지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순전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나누고 또 나누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맺는 열매는 한계가 없이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실 때 행복합니다(28절).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 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은혜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그 같은 이스라엘 형편을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 로다.”(28절)라고 묘사하고 평화롭고 넉넉한 가나안 땅에서의 행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늘이 이슬을 내린다. 는 말은 일차적으로 물질적 은혜를 언급한 것이지만 좀더 넓게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창 27:28). 그렇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물질적인 부와 더불어 행복자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상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만이 인간답고 행복하다는 진리는 실제 많은 신앙인들의 체험이고 고백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일시적인 시험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떨어졌던 욥은 실로 심각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 되자 상상할 수조차 없이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를 보면 그는 물질적 인 부로 인하여 행복한 앞날을 꿈꾸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의해 모든 행복이 좌절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계속적인 은혜를 부어 주실 때만 인간은 진정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녕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매일 맞고 있는 우리가 과연 진정한 행복 자가 아닐까요?
에베소서 2:8-9절 말씀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부를 바라고 명예, 권세를 열망하며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순간이지 영구적이 될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서 친히 도와주시고, 처소가 되어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실 때만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형편 처지는 각각 다르지만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 이라는 사실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시고 생활 하시기를 원합니다.
2023년 11월 26일 참빛교회 (주일) 오전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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