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역사서

부활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3. 31. 17:24

부활 신앙

사도행전 1:1-8

 

1.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을 고난 주간으로 보내고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부활의 은혜,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아니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죄가 가져다준 죽음을 이기고 극복할 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 전해진 가장 기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소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그 죄를 사함 받게 되고,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우리들이 들은 가장 기쁜 소식도 죽음을 이긴 부활의 소식이며,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있는 가장 기쁜 소식 또한 부활을 믿는 이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활을 믿는 이 믿음 위에 우리 신앙을 견고히 세워 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전도를 해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종교는 어떤 종교이든지 다 같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 기독교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어떻고, 불교를 믿는 신앙을 가지면 어떠냐고 반문합니다. 종교는 다 좋은 말을 해 주고, 다 잘 되고 잘 살라고 하지 않느냐? 라고 하면서, 어떤 종교를 가지든지 종교를 가지는 것이 그 삶에 도움이 되고, 자기 수양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든 종교가 다 같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모든 종교가 다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완전히 다른 종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른 종교입니까? 다른 종교들은 모두 다 사람들에 의해 시작된 종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시작이 다르기 때문에 기독교가 전해 주는 메시지는, 다른 종교가 전해 주는 메시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다른 종교들은 다 사람에 의해 시작된 종교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와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된 종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구원을 강조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종교들은 인간의 행위와 행실을 강조하는 종교라면, 기독교는 구원 신앙을 강조하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또 사람에 의해 시작된 다른 종교에는 죄의 문제의 해결이나, 죽음을 이긴 부활 신앙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의 해결과 죽음을 이긴 이 부활 신앙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의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 외 다른 종교에서는 그 창시자가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우리 대신 죽어 주셨다는 십자가 신앙이 없으며, 우리를 의롭다 해 주시기 위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부활 신앙이 없습니다.

 

불교를 보십시오.

석가모니의 무덤이 지금까지도 잘 보전되고 있습니다. 아주 잘 꾸며져서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유교를 보십시오. 공자의 무덤은 공산주의 국가 안에서도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회교를 보십시오. 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무덤이 아주 중요한 성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빈 무덤만 남아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 신앙을 전해 주시면서 어떤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죽음을 이긴 신앙, 부활을 믿는 확고한 이 믿음이 너에게 있느냐? 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 우리들이 고백하며 살아가는 믿음이 이 부활 신앙이시길 바랍니다.

 

2.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듯이, 우리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이 부활의 생명을 함께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다시 물으면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과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나면 죽게 됩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죽습니다.

 

사람들이 죽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의 영혼과 육신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은 육신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창조하신 그 영혼은 죽지 않고,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 가지게 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유무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혼은 낙원으로 들어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영은 음부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두 부류의 영혼들은 영혼의 처소인 낙원과 음부에 있다가 백 보좌 심판을 앞두고 이제 일어나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하게 됩니다.

 

이때 이뤄질 부활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그 때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우리는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잘 믿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영혼이 가 있는 낙원에 가 있다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시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참여하게 되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난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는데,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음 이후에 가게 되는 낙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고, 낙원에 있는 기간을 다 지낸 후에는 생명의 부활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믿음과 부활의 소망이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이 되고 소망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우리와 같이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았던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세요.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5-57) 아멘, 할렐루야!

 

부활 신앙을 가졌던 사도바울만 이런 승리의 고백을 하며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도 모두 다 바울과 같은 승리의 고백을 외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던 그 부활의 생명이, 바울이 가지고 산 생명이었고, 또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생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멘

 

3.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신앙

 

누가 기독교 신앙을 한마디로 말해 달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해주시겠습니까?

시간을 다투며 죽어가고 있는 중환자에게 여러분은 무슨 말을 꼭 전해 주고 싶습니까? 저는 망설임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예수를 믿는 믿음이 가져다주게 될 부활 신앙에 대해 전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어둠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복된 소식은 바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부활의 소망일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속죄의 신앙부활 신앙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로 죄의 종이 되고,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가져다준 사망과 저주 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해진 복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속죄 신앙부활 신앙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진정한 힘과 능력은 바로 이 속죄 신앙부활 신앙에서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사람들에게는 어찌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힘과 능력은 이런 사람들의 힘과 능력과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다른 말로 하면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이 세상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38 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느니라.’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믿음으로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벨에서 시작하여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등등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과 그 가지고 산 신앙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산 신앙에 대해 13-16절에서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여기 하나님이 예비하신 한 성은 천국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살았던 신앙은 부활 신앙이었으며, 그 모든 사람들이 장차 부활해서 천국에 가서 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라고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이 부활 신앙임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35절 말씀을 보면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판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이런 모든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았기에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부활 신앙을 가진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부활 신앙이 우리들이 가지고 살아가야 할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 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신앙, 확고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4. 부활을 부정하는 견해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견해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 첫 번째 견해가 도적설입니다. 마태복음 27:62-66, 28:11-15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 즉 내가 죽은 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 내고, 빌라도에게 가서 3일 동안 무덤을 굳게 지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간 후에,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살아났다고 하고 다니면,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보다 더 큰 혼란이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덤은 굳게 인봉 되었고, 무장한 군병들이 그 무덤을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염려군병들의 지킴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지킴과 상관없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현장에서 목격한 군병들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군병들의 보고를 들은 대제사장들은 모여서 이 문제를 의논한 후,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잘 때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거짓말이 사실인 양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적 설이 널리 유포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본 군병들과 이 군병들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꾸며낸 거짓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가려 보려고 하였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마치 손을 눈앞에 갖다 대고서는 하늘이 없다.’ ‘하늘은 없다.’라고 소리치는 사람들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하늘이 없다.’라고 말한다고 진짜 하늘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한다고 해서 부활하신 주님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 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당시 종교지도 자들이었습니다.

종교지도 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해 들어서 알게 되었을 그때라도 회개하고 돌이켰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으며, 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며 살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인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지은 죄를 인정하고 늘 그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고 해서 우리 죄가 없어지거나 가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지은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그 지은 죄를 회개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회개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나라입니다.

 

그 두 번째 견해가 무덤 오인설입니다.

 

무덤 오인 설은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어두울 때 무덤을 찾아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을 잘못 찾아갔다는 주장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이 아닌 다른 빈 무덤을 보고 울고 있다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무덤지기를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오인했다는 설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된 억측입니다.

마가복음 16:2절 말씀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던 때는 이미 해 돋을 때였다고 증거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신 것과 아리마데 요셉에 의해 무덤에 장사 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이런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오인하였다는 것은 억지로 지어낸 가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세 번째 견해가 기절설입니다.

 

기절설은 그 기력이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하고 계셨고, 또 상처에서 흘러나온 출혈로 인해 빈혈이 일어나서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절한 예수님께서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절하신 예수님께서는 서늘한 무덤 속, 또 장래를 위해 발라 놓은 향냄새를 맡으시며 몇 시간을 쉬신 후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깨어나게 되셔서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9:33-3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서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는데, 어찌 이때도 기절한 상태로 있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기절설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네 번째 견해가 꾸며낸 이야기전설이라는 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고,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나 전설이라는 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 기사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 꾸며낸 이야기를 증거 하기 위해서, 12제자 중에서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목숨을 버리고 순교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신들이 꾸며낸 이야기를 위해 한 사람도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설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다섯 번째 견해가 환상설입니다.

 

이 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여인들이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환상을 보았다는 설입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집착하다가 보면 일종의 자기 체면이나 정신착란 현상으로 환상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이 그렇게 예수님께 너무 집착하고 있었기에 정신착란 현상이 일어나 환상을 보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설 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두 사람도 아니고 고린도전서를 보면, 예수님의 부활 하신 것을 500 여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500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동일한 환상을 체험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견해들이 역사상 많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닐뿐더러 또한 설득력도 없습니다.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조작해 낸 거짓 증거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5. 예수님의 부활을 지지하는 증거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해 주는 확실한 증거는 있습니까?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것들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도행전 1: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40일 동안” “저희즉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활하신 사실을 알리셨다고 말씀합니다. 4절을 보면 사도들과 특별히 함께 계시면서 다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자신의 부활을 알려주신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첫째, ‘빈 무덤입니다. (24:1-3)

 

무덤에 장사 되신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둘째, ‘천사들의 증거입니다. (28:5-6)

 

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는데 지진이 나고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그 돌 위에 앉아서,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 누우셨던 것을 보라라고 하면서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셋째,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입니다. (고전 15:3-8)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 장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본 증인으로 게바” “12 제자” “500여 형제들그중 절반은 죽고 아직 반 정도 살아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을 육신의 형제 야고보도 보았고, 그 마지막에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합니다.

 

부활의 목격자는 이 사람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다수의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가 기록될 그때까지 이 사람들 중에 아직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있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넷째, ‘사도들의 증거입니다. (2:32, 3:15, 4:20)

 

사도들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도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증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무엇을 증거 하는 증인이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부활을 증거 하는 증인이었습니다.

 

다섯째, ‘사도들이 변화된 삶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슬픔에 잠겨(20:19)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약하던 제자들이 갑자기 돌변하여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의 도를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믿게 되고,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순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예수님이 이들에게 부활의 영이신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여섯째, 오늘까지 우리들이 지켜오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매주 지키는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 대신에,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주님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오늘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이지만, 우리는 사실 매 주일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주일을 지킴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고, 또 우리가 주일을 지킴으로 우리가 가진 부활 신앙을 세상에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째, 부활을 믿고 고백하고 있는 우리들이 바로 부활의 증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 신앙 위에 서 있습니다.

이 부활 신앙은 다른 종교에서는 볼 수 없는 신앙이며, 기독교에만 있는 아주 톡특한 신앙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다른 종교는 생명의 종교가 아니지만, 그러나 기독교는 참 생명의 종교라는 말이 됩니다. 부활 신앙이 바로 우리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임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신앙을 가진 로마카톨릭과 불교에서는 성탄절과 석가탄신일에 서로 축하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교에서는 기독교 최대명절인 부활절은 애써 모르는 척 외면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는 죽어서 지금까지 무덤에 누워있는데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게 되면 불교는 참 종교, 생명의 종교가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활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있는 이 부활절은 기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종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기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종교 참 종교라는 것을 온 세상에 널리 선언하고 알려주는 날인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가 가진 부활 신앙을 파괴하려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악의적인 노력은 결코 성공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활이 없었다고 주장들은 거짓으로 지어낸 가설이기 때문에 그 근거가 매우 미약합니다. 믿을 만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 주고 있는 확실한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빈 무덤이 그렇습니다. 수 많은 목격자들이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를 만나고 삶이 완전히 변화된 사도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또 우리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서도 부활 신앙이 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읽어 나갈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한 목격자들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이런 말씀 들은,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듯이,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듯이, 아주 분명하게 있었던 일, 아주 분명하게 경험한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은 우리에게 죽음 너머에 있는 영생의 소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더 이상 죽음의 지배 아래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이 부활 신앙 위에 우리 신앙을 굳게 세우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부활도 확신하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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