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역사서

하나님의 구원역사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6. 2. 14:37

하나님의 구원역사

사도행전 16:31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사도행전 16:31절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혹은 예수를 처음 믿게 되는 사람들에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권면의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그 권면해 주는 중심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만약 당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당신 한 사람뿐 아니라 당신 집의 식구들 즉 부모 형제자매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때에는 내가 이 큰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통해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구원은 철저히 개인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우리가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면 너뿐 아니라 네 집도 구원을 받게 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바울은 가장 먼저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믿음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믿음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이 세상의 가장 귀한 물질인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진 믿음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받게 됩니다. 또 믿음으로 기적을 경험하기도 하고, 병 고침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또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도 있게 됩니다. 또 믿음으로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수도 있게 됩니다. 이 모든 은혜 들이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역사를 우리에게로 가져오는 통로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모든 은혜 들은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모든 기적과 능력과 역사는 모두 다 이 믿음을 통해 일어나게 됩니다.

 

믿음을 통해 이런 하나님의 은혜들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는 믿음으로 받게 되는 은혜, 믿음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록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말씀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언제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끝부분에서, ‘믿음으로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여러분의 인생을 세우고 살아갑니까?

우리 모두는 믿음 위에 우리 신앙을 세우고, 또 믿음 위에 우리 하루하루의 삶을 세우고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하다면 우리는 늘 내가 가진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 내가 지금 믿음 있는 자답게 살고 있는지도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보는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들을 거울로 삼아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기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살았던 잘못된 신앙잘못된 삶을 지적해 주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잘못된 신앙과 삶을 회개하고 바른 신앙과 삶으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과 삶은 온전합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과 중심을 어디에 두고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목적 삼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오늘 24시간을 주로 무엇하는 일에 쓰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가장 큰 기쁨을 느끼며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을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우리들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서, 신앙의 선배들이 누리며 살았던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역사들을 우리 모두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평생 이 복된 믿음을 전해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에게 이 믿음을 전해 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빌립보 간수에게 가장 먼저 무엇을 요구하였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 예수를 믿는 이 믿음이 우리 신앙의 가장 기초일 뿐 아니라, 주 예수를 믿는 이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해 주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이 믿음 위에 우리 신앙을 굳게 세우고, 이 믿음이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와 구원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살펴본 것은 믿음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이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이 믿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은 철저히 개인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개개인이 그 가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 부모의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그 자녀가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심지어 한 몸을 이루고 살아가는 부부 일지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이면서 사사였던 엘리를 보십시오.

엘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인도하는 사사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은 어떠했다고 합니까? 그 아들들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멸이 여겼고, 또 그 사생활까지 문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엘리는 믿음이 좋았지만, 그 아들들은 믿음이 없어서 결국 그 가문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무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사무엘은 얼마나 믿음이 좋았던 사람입니까? 그런데 이 사무엘의 자녀들은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사무엘은 누구입니까? 엘리가 그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지 못해서, 자녀들이 아버지 엘리의 신앙적인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온 가족과 그 후손들까지 불행하게 되는 것을 친히 목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무엘이지만 그 자신도 자녀들의 신앙교육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어떤 요구를 했습니까? 우리는 당신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당신의 아들들을 섬기며 살기 싫다고 하면서, 차라리 우리에게 이방인들과 같이 왕을 세워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말씀 들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그 자녀의 믿음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부모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신앙을 가진 부모들은 그 자녀가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출세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는 믿음을 가지게 되길 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가진 믿음에 따라서 그 자녀들의 장래가 달라지고, 그 자녀들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들의 신앙을 부모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늘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또 자녀들의 신앙심을 키워주려고 애쓰고 힘쓰지만, 자녀들의 신앙은 자녀들의 신앙 결단과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주시는 은혜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이었던 엘리 가정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엘리는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은 엘리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엘리 자녀들도 그 부모를 공경하고 그 부모가 가진 신앙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은 부모가 가진 믿음을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한 엘리 자녀들은 결국 망나니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믿음의 가정이었던 사무엘의 가정의 문제는무엇입니까?

사무엘은 엘리와 달리 그 자녀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사무엘은 그 자녀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물려주지 못했습니까? 사무엘의 잘못은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사느라고 자기 자녀들의 신앙은 잘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자녀들은 신앙을 가지기는 가졌으나 사무엘이 기대하는 신앙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교훈합니까?

부족해도 안 되지만 지나쳐도 안 된다고 합니다.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지나친 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 균형 잡힌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신앙의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의 증거는 분명합니다.

구원은 개인 구원이며, 어떤 사람이라도 그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에스겔서 14:20절입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를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노아나 다니엘이나 욥과 같이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이라도, 그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은 구원할 수 있지만, 자기 자녀들은 구원해 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 구원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12절 말씀도 이것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철저히 개인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몸이라고 말씀하신 부부 사이에서도 같습니다.

구원은 각자가 가진 믿음으로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자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게 될 것이고 또 한 사람은 버려둠을 받게 될 것이며, 두 사람이 밭을 갈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각 개인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또 각 개인이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부모가 아무리 유명한 목사님 즉 조용기 목사님이라도 그 자녀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 부모가 아무리 술주정 꾼이고 노름꾼이고 개망나니 같은 사람이라도 그 자녀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런 증거들을 통해 우리는 구원은 철저히 개인 구원이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빌립보 간수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아브라함이삭의 자녀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자녀들이 있었지만, 오직 이삭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는 약 200-300 만 명이나 되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갈렙뿐이었다고 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이 구원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특권이며,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의 구원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는 것은 우리가 가진 믿음에 근거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 때 받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전도하였습니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전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 살펴본 것은 우리 믿음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두 번째 살펴본 것은 믿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은 철저히 개인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주 예수를 믿으면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는 이 말씀의 의미입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 구원이기 때문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더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게 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구원이 개인 구원이기도 하고, 집 단위의 구원인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네 집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야 합니다.

원어 성경을 보면 이 에는 오이코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오이코스는 우리말로는 , 영어로는 하우스에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집은 문자 그대로의 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물인 집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을 그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으로 해석하여서, 그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 본인과 그 사람의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된다.’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삶 속에서도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사실 이 간수와 같이 저희 가족들 중에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저희 할머니가 믿게 되시고, 저희 어머니가 그 다음에는 아버지가 믿게 되시고, 나중에는 형제 중에서도 믿는 가정들이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이 이런 의미를 가졌다는 차라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그 구원의 대상이 네 가족이 아니라 네 집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집가족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집 자체나, 건물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건물인 집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는 이 집과 하나님의 구원과의 연관성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집과 하나님의 구원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말씀을 찾아보니 여호수아서 2장에 그런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2장을 보면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간 두 청년이 자신들을 구해준 라합에게 네가 우리를 선대한 것 같이 우리도 여리고 성이 멸망 당하게 될 때 너를 선대하여 구원해 줄 것이다.’라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 조건을 제시하는데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어 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네 집에 모아 놓으라. 그러면 네 집 안에 머물러 있는 그 사람들은 다 구원해 줄 것이라는 약속을 해 줍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약속을 어떻게 지키게 됩니까?

여호수아서 6:23절입니다.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영 밖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합의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라합의 집에 피신해 있었던 사람은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라합의 집에 와서 함께 기거하고 있었던 짐승들까지도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실제로 라합의 집에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을 10장을 보면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고넬료도 그 집에 가족과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은 고넬료의 집에 임한 구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단을 한 라합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결단을 한 고넬료가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그 집에 모여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라합과 고넬료의 같은 믿음으로 이들의 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 속에서 주 예수를 믿으면 ....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라합의 집에 고넬료의 집에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지켰던 첫 유월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베푸실 때, 그 마지막 재앙이 바로 장자가 죽게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유월절 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그 집 안방과 물설 주에 그 피를 발라두고 그 집 안에서 먹고 마시며 지낸 사람들은 모두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밤에 죽음이 사자가 애굽 땅에 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행할 때, 어린양의 피가 그 문 안방과 문설주에 발라져 있는 집에서는 이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가 넘어갔다는 의미를 가진 유월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만 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10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경험한 중다한 잡족들이, 이 마지막 재앙을 알려주시고 경고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으로 피신하여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도 장자가 죽게 되는 재앙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유월절의 은혜를 경험한 이방 사람들이 그다음 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을 하였고, 이 사람들도 그 믿음의 결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 중에 갈렙이 있는데 그는 이방 그나스 족속이었으나, 하나님이 주신 경고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 들어가 있다가 장자가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갈렙은 그다음 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 하였고, 나중에는 그 믿음이 인정을 받아서 이방인이면서도 유다 지파의 족장까지 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라합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유월절 밤에 양의 피가 그 문에 발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다 장자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라고 한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었습니까?

빌립보 간수의 집에 함께 사는 가족들뿐 아니라, 장차 이 간수의 집에 세워지게 될 교회에 함께 하게 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이렇게 의역할 수도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고, 또 앞으로 너와 동일한 믿음으로 네 집에 모이는 그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석하고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그 받은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던 사명과 동일합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조상이 되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전도자의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 살펴볼 것은, 사명에로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구원해 주시지만,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빌립보 간수의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 간수에게 믿음을 주시고 구원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간수의 집안사람들뿐 아니라, 앞으로 빌립보 간수를 통해 예수를 믿고 그 집에 모이게 될 사람들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간수를 먼저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기생 라합고넬료의 경우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구원해 주신 이유는, 우리를 통해 우리 이웃을 구원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우리는 늘 우리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의 구원을 염두에 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늘 어떻게 하면 내 자녀와 내 가족과 내 친척과 내 친구와 내 이웃에 사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해 낼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라합과 고넬료와 빌립보 간수가 했던 그런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면 항상 두 가지 서로 다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전해 주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동조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전해 주는 복음의 말씀을 싫어하여서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어느 곳에서 항상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는 제사 문제 때문에 가족들과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저를 따라 교회에 나가시더니, 어느 할아버지 기일 날에 자녀들을 저희 집으로 다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 뿐 아니라 손자 손녀들까지 왔습니다.

 

그날같이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드리고 음식까지 다 나눠 먹은 후에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집안은 5대 조상까지 제사를 드리고 있고, 그래서 문중과 함께 드리는 제사도 여러 번이 있다. 이런 때에 참석 안 하면 호로자식이라는 욕을 먹을 테니, 혹 대표로 한 사람씩 참석하든지, 안되면 제사에 쓰일 제물이라도 보내도록 하되, 우리 집에서 드리는 제사는 오늘 이후에는 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집 장손자는 교회에 열심이고, 나도 그런 장손자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를 더 살겠느냐? 내가 믿음을 가져서 무슨 호강을 하겠다고 교회에 나갔겠느냐? 할미로서 하나님께서 장손자의 앞길에 좋은 일 많이 주시기를 바라고 교회에 나간 것이다.

 

오늘도 장손자는 신앙 때문에 제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계속 지내면 앞으로 이 제사가 가족 사이에 갈등과 불화의 원인이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제사는 더 이상 드리지 말고 제삿날만 기억하고, 음식은 장만하여서 함께 먹으며, 형제간에 우애롭게 지냈으면 한다. 이것이 내가 살았을 때나 죽은 후에도 너희들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이다.

 

물론 할머니 이 말에 이견이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제사를 폐하기로 하고 음식만 장만해 놓고 먹기로 결정 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이 결정에 불만이 있는 삼촌은 각종 핑계를 대며 기일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곧 바로 반기를 들고 자기 집에 형제들을 모아서 다시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를 믿는 저희 집과 예수를 믿지 않는 작은 집의 관계가 소원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열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와 함께 하고, 우리 집에 모이는 사람들은 믿고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 집에 모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느 집에 함께 하는냐? 에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느냐? 입지 못하느냐?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아서,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떤 일이 있든지 믿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형제들의 집에 함께 하고, 믿는 형제와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렇게 복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듣게 되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예수를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믿음으로 우리 자신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철저히 개인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은 구원은 우리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면 그 구원은 반드시 우리를 통해, 우리가 만나고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전해 주며 살라고 복의 근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영적 장자로 삼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듯이, 우리들을 영적 장자로 삼으셔서 이 세상을 구원해 가시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까? 이 설교를 전하고 또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고 계시는 음성을 듣고, 세상을 구원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라합과 같이, 고넬료와 같이, 빌립보 간수와 같이 쓰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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