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신 성령
사도행전 1:1-5.
오늘은 우리 교회력으로는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령 강림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 날 성령 보내주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강림 주일을 기념하며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오순절에 보내주신 성령으로 충만함을 주셔서,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성도로 삶아갈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거의 모두가 다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대부분 “너희가 이렇게 이렇게 하면”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해 주리라”라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엇입니까?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구제하는 삶에 대해서는 ‘주라. 너희에게 줄 것이니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삶에 대해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런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약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에 신실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맺은 약속에 신실하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히6:17-18) 하나님은 단 한 번도 그 하신 약속을 어기시거나 마음대로 변경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아멘.
오늘 우리가 본문 삼고 있는 사도행전 1장의 말씀도 보면,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신 날이 바로 오늘 이 성령 강림절입니다.
오늘이 바로 예수님이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 주셨던 오순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약속해 주신 성령을 받으려면 제자들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을 주신다는 이 약속을 받았던 사람의 숫자는 약 500명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500명의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주시기를 기다린 사람의 숫자는 12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120명이 성도들만 오순절 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들도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들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믿음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성령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고, 성령 주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도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2024년도 성령 강림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성령, 또 약속하신 대로 보내주신 성령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보면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께서 어디에서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까?
이사야서 44: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나의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성령을 네 자손에게 부어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7:37-39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바로 이사야서 44:3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마치 물과 같이, 시내와 같이 그 후손들에게 흘려보내실 것인데, 그렇게 흘려보내신 성령을 통해 그 사람들의 ‘배에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려면 선행되는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그 조건에 대해 성경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구약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에게 오실 수 있도록, 메시야가 오셔서 사람들의 죄의 문제가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거룩하신 성령께서는 죄인들에게는 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기도해도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죄인들 속에 들어가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지 못하시고 사람들의 밖에서 역사하시고, 또 사람들의 위에서 역사하시고, 사람들과 함께 역사하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령이 이 시므온에게 ‘너는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몬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경건한 시므온에게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였다고 합니까?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때는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성령이 이 시므온의 마음 안에 들어가서 역사하시지는 못하시고, 이 ‘시므온의 위에서 역사 하고 계셨다.’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시는 인류의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아직 십자가대속을 통해 우리의 죄를 처리해 주시기 이전이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죄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시므온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시지 못하시고, 시므온 위에서 역사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다릅니다. 사단은 죄인인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역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려면, 그보다 먼저 메시야의 구속사역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 때부터 한결같이,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첫 약속이 창세기 3:15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여자의 후손으로, 다른 말로 하면 여자가 낳은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성령을 보내주시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보내주신 메시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메시야는 어떤 분이십니까?
메시야는 ‘그리스도’라고도 하고 또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one)’라고도 합니다.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 세 가지 단어는 사실 동일한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기름을 붓는 의식을 통해 세우게 되는 세 가지 직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세기 3:15절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는 어떤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메시야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한 몸에 지닌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보내주실 메시야는,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시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백성을 가르치는 선지자이시기도 하며, 또한 자기 백성의 죄를 해결해 주는 제사장이시기도 한 그런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부었던 기름은 바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야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첫째, 메시야는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61:1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임하신 것’과 ‘기름 부으심을 받은 것’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사야서 11:1-2절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이새의 아들은 다윗이고, 이 다윗의 자손에서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임하신 성령은 어떤 영이라고 합니까?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42:1절 말씀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여기서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이라는 이 말씀도 역시, ‘하나님이 붙드시는 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신 예수님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들의 증거와 같이 예수님과 성령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셨다. 고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려고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성령의 능력을 마치 물 붓듯이, 기름을 붓듯이 부어주셔서 예수님은 온 갈릴리 땅을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행하셨다고 전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성령으로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성령이 함께 하셨다는 이런 증거는 성경에 너무 많아서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성령이 함께 일하신 공생애 사역을 보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제자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난 후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직분이 목사이든지, 장로이든지, 권사이든지, 집사이든지, 교사이든지 그 가진 직분에 관계 없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서 부여해 준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교사의 영적인 권위는, 교회에서 부여해 준 그 직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받은 성령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서를 보면 고린도 교회의 일부 사람들이 사도 바울에게 “너는 12사도 중의 한 사람도 아닌데 왜 자꾸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며 돌아다니느냐?”라고 하며 바울의 사도 권을 의심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4-5절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사도 적 권위를 이렇게 변증하였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렇게 바울은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과 자신의 사도 적 권위를 연계해서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행전 1:8절에서 그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 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먼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령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지만, 성령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늘 성령의 은혜 주심을 사모하며, 늘 성령 충만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또 메시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둘째, 메시야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3:15 절에서는 ‘여자의 자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4:4절의 말씀을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약속하신 대로) 그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메시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의 자손으로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절의 증거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미가서 5:2절 말씀을 통해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런 메시야 예언들은 성경 속에 너무나도 많아서 다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보면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스스로 메시야가 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메시야 사명을 위임받고 보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7:28절입니다.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8:42절 말씀에서도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습니까?
메시야가 여자의 자손으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사람들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볼 때 또 메시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셋째, 메시야는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는 제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롬3:23).
하나님은 죄인 된 사람들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세상 죄를 대신 지고 가는 화목제물로 메시야를 보내주셨습니다.(히10:5,10)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가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는 제물 되심을 5대 제사와 7대 절기를 통해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신약성경 요한복음 6장에서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6:51) 마태복음 26:28절 말씀에서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육신의 살이 찢어지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산 떡이 되셨고, 그 언약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아담의 죄와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구주가 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창세기 3:15 절에서 말씀하신 여자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 되심으로 우리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람들은 그 영이 거듭나는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런 사역에 대해 로마서 1:3-4 절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 아멘.
그래서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죄 사함을 받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이르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그 첫 번째 조건은 회개입니다.
성경에서는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든지 관계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회개하면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자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으라.”라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 분이셔도 회개하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를 가지고 있으면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구원에 이르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그 두 번째 조건은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16:31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갇혀있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전했습니다. 로마서 10:9절 말씀에서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 믿음은 첫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둘째,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 위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만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체험했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영적 은혜와 은사들을 경험했다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 즉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 약속을 믿는 믿음 위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믿음의 두 단계에 대해 로마서 1:17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떻게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그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두 번째 단계에서는 약속을 믿는 이 믿음 위에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말씀을 보고, 읽고, 들어서 가지게 된 믿음 위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에 계신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우리 믿음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관의 제한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볼때에는 우리 믿음은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과거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현재를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장차 우리 믿음이 완성될 그 날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믿음은 이렇게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진행형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그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전에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도 아니고, 장차 완성될 구원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까?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주장하여도 지금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삶이 없다면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은 그 삶아가는 삶의 행위를 보고 행위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이르려면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게 됩니다.
구원에 이르는 그 세 번째 조건은 바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이 성도가 되도록 이미 예정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을 때에 맞게 불러주시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셔서 의롭다 해 주시고, 의롭다 해 주신 그들을 결국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이런 구원의 과정에 대해 로마서 8:30절에서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이 예정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함께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던 ‘이삭과 이스마엘’을 통해, 같은 아버지 야곱에게서 태어났던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통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기로 예정해 주신 사람들만 받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니까요?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복음을 들으며, 그 전해 들은 복음이 없는데 어떻게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구원의 역사에 대해 로마서 10:14절 말씀에서는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먼저 복음을 전해 받은 우리들에게는 사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명은 바로 우리가 받은 복음을 우리들도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하는 사명입니다. 우리들은 이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 주라고 먼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내게 무엇인가 잘난 점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로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때를 따라 불러주시고,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멘.
이제 네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심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떠나가셔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16:13)
그러면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육신을 가지셨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시면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해 주시고 또 도움을 주실 수가 있으십니다.
성령은 우리 밖에서도 우리를 도우실 수도 있으시고, 또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늘 함께 해 주시면서 도와주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신 지금 우리들은 언제, 어느 때든지,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이 그 가르치심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요16:13). 성령을 통해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그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현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약속대로 오순절 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성령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 오신 바로 그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그러면 약 2,000년 전 오순절 날에 성령은 어떻게 강림하셨습니까?
첫째, 바람 같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바람과 같이 임하심을 통해 보여주시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죽었던 영을 다시 살리는 일을 하실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104:30절 말씀을 보면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기서 ‘주의 영’은 ‘주의 숨’ ‘주의 바람’을 뜻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숨을 내쉬시거나, 하나님이 바람을 불게 하시면, 그 바람을 인해 이 땅 위에서는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바람을 불어 넣으시자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주실 때 살아 있는 사람이 되고, 그 코에서 숨을 거두시면 죽게 되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불어 넣으신 숨에, 생기에, 바람에,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바람 같이 오셨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사도행전 2:2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하나님께서 바람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마치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바람을 불어 넣으셔서 새 생명을 주신 것처럼, 오순절 날 급하고 강한 바람을 불게 하신 것은, 이 성령의 바람을 통해 우리 영혼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멘.
둘째, 불과 같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불과 같이 임하심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죄를 불태워서 깨끗하게 하시고 정화하는 일을 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3절입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이 불은 소멸하는 불입니다. 하나님은 이 불로 죄를 심판을 행하시고, 그 죄를 깨끗이 정화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친히 뵈옵고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뵈면 죽음밖에 없습니다.
그때 천사가 불타는 숯불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을 지집니다.
이를 통해 이사야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태워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은 우리의 죄악 된 요소들을 태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태워버리는 성령의 불이 왜 중요합니까?
만약 죄를 이기게 하시는 성령의 불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면, 이런 사람들은 나가서 성령을 받기 이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처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그 처리하지 못한 죄로 인하여 넘어지고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처리하지 못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전보다 더 큰 손해를 끼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바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과 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죄악을 태워버리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점점 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여 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잡고 있을 때, 우리는 비로써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우리 주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 강림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영인 성령께서는 죄인들에게는 오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해주실 메시야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셨던 분이시며,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셨던 분이시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대속의 제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제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성령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준비된 제자들에게 오순절 곧 성령 강림 주일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불로 그 죄를 태워 소멸하시고, 성령의 바람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성령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주신 분,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의 대속적인 구속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설뿐 아니라, 또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보내주신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주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성령충만한 성도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