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대비하는 성도
누가복음 16:1-8
1. 청지기 직분
다사다난했던 2024년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 주만 더 지나면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이 뜻깊은 시간에, 우리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한 청지기의 삶을 통해, 지나온 한해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한 해에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청지기 직은 아주 묘한 직책입니다.
청지기는 주인 대신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그 주인에게는 종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다른 종들에게는 주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전권을 위임받아서 주인의 재산뿐 아니라, 주인의 종들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들도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청지기라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복종하고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자율 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물질도, 건강도, 지식도, 재능도, 내 임의대로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청지기 직을 끝마치는 날이 이르게 되면, 우리가 행하며 산 일들에 대한 주인의 판단과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왕이 아닙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해 준 권한을 법이 허락하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법을 어겨 위법한 일을 하게 되면 대통령이라도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권한 중에는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습니다. 법으로 그 권한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엄 상황을 해석하는 대통령의 시각과 국민의 시각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야당의 의회 폭주로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구국의 마음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통치는 힘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루어가야 합니다.
정치적인 견해가 극명하게 달라서 대화와 타협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가 다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그 판단의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이제 차분히 그 결과를 기다리면 됩니다.
한 사람의 국민인 제 바람은, 지금이라도 야당은 상식적이지 않는 각종 입법 폭주, 특검 폭주를 멈추고, 총리는 사리에 맞게 국정을 관리하여서 더 이상의 혼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끝날 수 있도록 여야가 협조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빨리 이 비정상적인 대립과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념에 따라 탄핵을 외치고, 탄핵 반대를 외칩니다.
저는 TV 화면으로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 중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자기가 옳다고 소리치고 있는 저 사람들 중에 구원받아 천국 갈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 시대의 불행은 시대의 분위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땅의 소리만 듣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조류 때문에 성도들도 하늘의 소리보다는 땅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들과 같이 사람의 소리를 듣고 땅의 일에 매여 살지 말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 같이 믿음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해 주실 일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살아온 청지기가 청지기 직을 마치는 날이 이르면 그 행한 일에 대한 주인의 판단과 평가를 받게 되듯이, 종말의 날이 오면 모든 사람들은 그 행하며 살아온 일에 대한 상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심판의 날을 기억하고, 사건만 있으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각종 음모론을 양산하는 음로론자 김어준과 같은 삶을 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은 이용 가치가 있어 보이는 그 괴담 유포자를 지지하고 인정해 주지만, 하늘에 속하여 살고 있는 우리들이 볼 때에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거짓된 괴담을 양산하는 그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보입니다.
2. 불의한 청지기
이 청지기도 처음에는 성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청지기 일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면서, 그 주인이 맡겨준 돈을 안정적인 곳에 투자하기보다는, 위험하지만 이익을 많이 남길 곳에 투자하여 더 벌어들인 여분의 돈을 자기 비자금으로 썼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출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나중에는 주인의 돈까지 손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청지기가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자 나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저 청지기는 돈이 얼마나 많길래 저렇게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나? 혹시 그 주인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이 소문은 결국 그 주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청지기를 불러서 “네게 대하여 이상한 소문이 들리니 어찌 된 일이냐?”라고 물으면서, “네가 청지기 사무 본 것을 샘해 볼 것이니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엄한 질책을 받고 이 청지기는 자기 장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해결책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불러서 그들의 빚을 감해주었습니다. 기름 백 말을 빚진 사람에게는 “오십”이라고 쓰라고 하고, 밀 백석을 빚진 사람에게는 “칠십”이라고 쓰도록 하였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아직 자신이 청지기로 있을 때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놓으면, 청지기 직을 그만둔 후에 그 사람들이 고마워하며 자신을 영접해 줄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청지기는 요새 말로 하면, 공문서를 위조해서 막대한 재물을 횡령한 것이 됩니다. 이 청지기는 공문서 위조죄와 횡령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3. 칭찬받은 청지기
그런데 이상한 것은 16:8절 말씀을 보면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다고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음으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까?
전에는 자기를 위해 비자금을 만들고, 그 주인의 소유물을 허비하던 이 청지기가, 이제는 공문서까지 위조하며 주인에게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청지기의 이런 행동이 과연 칭찬받을 만한 행위입니까?
이 사건을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보면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윤리. 도덕의 문제로 보면 이 청지기는 정직하지도 않았고, 성실하지도 않았고, 진실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요즘 검찰이 경찰이 수사를 하듯이 그렇게 이 청지기가 한 일을 조사해 보면 이 청지기의 잘못은 곧바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청지기는 더 이상 청지기 사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이 청지기는 청지기 사무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를 미리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지혜롭게 대비하였던 이 청지기의 행동을 주인도 예수님도 칭찬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에서 우리가 알에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자신의 미래를 대비해 나갔던 그 삶을 칭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미래를 지혜롭게 대비한 것이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청지기의 삶은 어떻게 지혜로웠다는 것입니까?
첫째, 청지기 사무 본 것을 셈할 주인이 있음을 기억하고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에게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주인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습니다. 청지기에게 모든 일을 맡겨 놓고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청지기는 주인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 양 자기 멋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주인이 와서 ‘네 청지기 본 일을 계산해 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 청지기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고, 진짜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에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참 주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재물이, 재능이, 건강이, 시간이,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사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 중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소유이며 우리는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시간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다 쓰고 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육체는 땅에 두고 영혼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의 참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서 잠시 내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단 1원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놓아두고 가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 내 건강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인생을 끝마치게 될 때 갑자기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대 다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참 주인이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마치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독교 가치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벌되 제물을 모으기 위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번 제물을 보람 있는 곳에 쓰기 위해서 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가치관입니다.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서구적인 가치관을 낯설어합니다.
강철왕이라고 불렸던 ‘록펠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러분은 이 말이 잘 이해가 됩니까? 록펠러는 우리와는 문화가 다른 사회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 그는 ‘사람이 자기 지혜를 다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부자가 되는 것은 흠이 될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그럴지라도 ‘그 인생의 마지막을 부자로 죽어가는 것은 부끄러움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부자가 되어서 살다가 부자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 삶의 목적을 돈에 두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청지기 직을 셈하실 주인이 계신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알았더라면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이 쌓아두고 간 그 돈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 혹은 공직을 맡을 때 재산을 공개하는 것을 보면 부자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평생 정치만 해 온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심각한 착각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까지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심지어 우리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나의 주인, 나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십니까?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이해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기도할 때 ‘주님’! 이라고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인정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하지만, 그 실제 살아가는 삶을 보면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자기 멋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주인의 눈치를 보며 사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 나오는 그 불의한 청지기는, 그 자신의 직무를 셈할 주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자신의 장래를 위해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2024년도 한 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듯이 우리의 삶이 다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살아온 삶을 셈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공부한 것을 기말에 시험으로 평가하듯이 그렇게 우리가 살아온 삶을 평가하고 심판하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한 해 동안 잘못 살아온 삶이 있다면 회개하여 돌이키고, 새롭게 우리에게 주어진 2025년도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판단하고 심판하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루, 한 달, 한 해를 믿음으로 보내겠다는 선한 결단을 하게 되는 복된 연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아멘.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 청지기의 삶은 또 어떻게 지혜로웠다는 것입니까?
둘째, 청지기로 남아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미래를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는 아직 자신이 주인의 소유를 관할 하고 있을 때, 주인의 재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므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이 자기 수중에 있을 때, 그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은 것을 찾으시고, 적게 맡은 자에게는 적은 것을 찾으신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제물을 많이 모았느냐? 얼마나 능력 있는 삶을 살았느냐? 얼마나 높은 권력을 가졌었느냐? 얼마나 큰 교회를 세웠느냐?’라는 것을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성공시키는 삶을 살았느냐?’라는 것을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처럼, ‘주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제가 이렇게 남기는 삶을 살았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청지기는 ‘남아 있는 시간, 남아 있는 기회, 남아 있는 권한’을 사용하여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이 청지기와 같이 우리들에게도 남아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적은 시간이 남아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까?
자신이 과거에 이룬 영광을 자랑하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지금 누리며 살고 있는 권세를 자랑하는 사람입니까? 자신이 장차 이루어갈 위대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가장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중에 이보다 더 멋진 삶은 없습니다.
전에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한 교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성균관대 법대 교수인 이기용 교수입니다. 이 교수님은 10월 어느날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직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곧바로 수술하자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내가 맡은 학교 수업에 차질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이번 학기 수업을 마치고 수술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대학 강의는 보통 12월 초에 끝납니다.
이 교수님은 12월에 마지막 강의를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실 직장암 환자인데 항암치료를 받느라고 힘이 들어서 열정적으로 강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이제 한 학기도 무사히 끝났으니, 방학을 이용하여 수술을 받고, 다음 학기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올 테니, 여러분들도 건강을 잘 챙기라고 하며 강의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3시간 후에 그의 연구실에서 쓰러져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서 그 사인을 밝혀보니 극심한 체력 소진과 심근경색이었다고 합니다.
지난 2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그 맡은 세 과목의 강의에 집중하다가, 그 남아 있는 체력을 다 소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많은 교수들이 얼마나 쉽게 살려고 합니까? 사람들은 교수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회 의원에 출마하고, 공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그 분야의 새로운 교수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의 강의를 듣지 못하는 학생들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말기 암 환자이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써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까지 바친 것입니다. 이런 자기희생적인 삶은 2024년 한 해를 지나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는 이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여러분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그러나 지나간 한해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나간 한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오고 있는 2025년도입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날들은 다 잊어버리고,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2025년도에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하면 됩니다. 이런 각오와 결단보다 더 아름다운 결단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남아 있는 시간은 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사형선고를 이미 받아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겠습니까?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이 담겨 있고 그 사람의 삶의 철학이 담겨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 청지기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자신의 미래를 지혜롭게 대비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실패는 잊어버리고, 앞으로 주어지는 시간 들을 유용하게 사용하여서, 이 세상에서도 목적하는 바를 이루어가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장차 우리 삶의 심판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그날을 지혜롭게 준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 청지기의 삶은 또 어떻게 지혜로웠다는 것입니까?
셋째, 청지기 직을 샘하실 그 주인의 마음을 알고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성공입니까?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부자는 풍년이 들어 그 소출이 많아지자, 아주 지혜롭게 통풍이 잘되는 큰 창고를 지어서 곡식을 보관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곡식을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 때 이 부자의 행동은 아주 지혜로운 행동으로 보입니다.
전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던 요셉도 장차 올 7년 흉년을 대비하여 통풍이 잘되는 큰 창고를 많이 지어서 7년 풍년 동안 먹고 남은 곡물을 보관하지 않았습니까?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던 이 부자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왜 요셉의 행동은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칭찬을 받고, 이 부자의 행동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책망을 받은 것입니까? 요셉은 앞으로 올 7년 기근에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창고를 지어 대비했다면, 이 부자는 자기를 위해서 창고를 지어서 미래를 대비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얼마나 재물을 많이 모았느냐? 내가 얼마나 명예를 얻었느냐? 아니면 내가 얼마나 권력을 누리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까? 진짜 성공은 ‘내가 무엇을 얻고 내가 무엇을 성취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얻은 것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선호하는 직업은 의사입니다.
의사만 되면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과대학에 들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업이 전처럼 발달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산업체로 가지 않고 의사를 지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좋은 머리, 그 좋은 직업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려보겠다.’고 지원한 의사들이, 의료파업을 하면서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막 나가는 것은, 이미 깡패 집단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치인들에게는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고 있는 의사,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의사들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의사들까지 이기적으로 나간다면 국가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공문서를 위조하면서, 그 주인의 재산을 횡령한 이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했습니까? 그 이유는 이 청지기는 그 주인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청지기는 그 주인이 청지기 사무를 회계하면, 자기는 더 이상 청지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주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이 청지기는, 청지기 사무를 그만둘 때를 미리 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을 셈하고 회계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날을 내다보며 지혜롭게 준비하고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청지기로 삼아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 지식, 은사, 능력, 힘 등등을 가지고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것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믿음을 전해주고 나누어 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알게 해 주셨습니까? 그러면 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은사를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자신과 이웃과 민족과 국가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 주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장차 하나님 앞에서 샘할 날을 대비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로 살아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너희에게 줄 것이니 내가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은혜로 준 재물, 지혜, 권력, 명예를 가지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나누어주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나누어 주며 사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 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삶을 살게 될 때, 세상 적으로 보면 손해나는 것 같고 허비하고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여러분은 혹시 쌀을 대로 되어 보셨습니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들어갑니까? 위에서 누를 때 많이 들어가고, 좌우로 흔들 때 많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 주시겠다.’는 이 말씀은, ‘그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복을, 흘러서 넘쳐나는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나누어주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습니까?
또 다른 곳에서는 ‘만약 너희가 내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나는 그것을 내게 꿔준 빚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그 진 빚을 갚아 줄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제가 지난주 어느 여자 집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교회로 쌀을 보내드리고 싶은데 주소를 알려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감사한 일이 있나 생각하고, ‘혹시 어느 부서에게 보내시는 것이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받으시고 기도만 해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이 교회는 전에도 우리 교회에 여러 번 쌀과 보리쌀을 보내준 교회입니다.
그 교회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매년 여러 교회들을 선정하여 매년 쌀과 보리쌀을 보내주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이런 선행을 하는 데는 특별한 소원과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쌀을 보내주시는 교회도 목사님도 성도들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보내주시는 쌀을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여겨 주시고, 하나님이 그 사랑의 빚을 졌다고 여기시고,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저를 대신하여 반드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갚아 주세요.’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도 이런 삶을 살았었습니다.
부자 성도들이 자기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나누어주고, 또 자기의 집을 개방하고 자기 소유를 함께 사용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두려워하여, 주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했다.’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은 신앙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삶입니다.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청지기 삼으셔서,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맡겨주실 때에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같이 더 많은 이익을 내라고 맡기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명예와 권력을 주신’ 이유는 이것으로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삶을 살고, 유익을 끼쳐주는 삶을 살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주신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또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 받은 은사를 어떻게 사용했다고 합니까?
은사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로 ‘내가 받은 은사가 더 크다.’고 하면서 다투고 분쟁했다고 합니다.
이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도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는 삶, 사랑하며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이며, 가장 좋은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우리를 판단하신다는 말씀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가진 소유의 다소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소유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간이 곧 돈입니다. 시간이 곧 경쟁력입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바쁘게 살다가 보니, 지금 내가 바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나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바쁘다고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지 않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아가다가 보면, 우리는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고 삶의 목적도 잃어버리고, 그저 매일 하던 대로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2024년도는 다 지나가고 2025년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때라도 우리는 지나온 2024년도를 되돌아보고, 2025년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워, 하나님의 일을 맡아 행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청지기같이,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살아온 삶을 셈하시는 그날이 올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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