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예수님의 생애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9. 1. 14:40

예수님의 생애

마태복음 1:18-23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자존해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과 삼위일체를 이루고 계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서,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섭리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는 존재하는 방식도 살아가는 삶도 다릅니다.

이런 비교가 합당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인간과 미생물인 아메바는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살아가는 삶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아메바가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메바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듯이, 사람들도 그 존재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살아가시는 삶이 다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이 작은 공간도 채우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알고 있는 지식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모르시는 것이 단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면서, 그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신앙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지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실제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 차원으로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를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우리가 사용하며 살아가는 언어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알려 주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멘.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려 주신 기록들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알려 주신 것들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성경 말씀은 정말 귀한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신앙은 철저히 성경 중심의 신앙인 것입니다. 아멘.

 

성경이 다른 종교의 경전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 지금 내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지를 귀 기울여 들으며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1편에서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지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듣고, 경험해서 알게 된 이 세상의 지식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이 지식을 습득하며 살아갑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그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서, 천사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하늘의 지식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 지식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세상 지식에 더하여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지식을 함께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늘 지식의 중심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5: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하늘 지식의 중심적인 내용은, 바로 인류의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 알려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데 두 번 오신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죄에서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고난 받는 메시야로 오시고, 또 한번은 죄악 된 세상은 심판하시고 우리 구원을 완성해 주시기 위해 왕으로 심판의 주로 오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보내주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가 어떻게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지를 아주 소상하게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알려 주신 이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알려주고 있는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실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하실 일을 살펴보면서, 우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더욱 더 잘 알게 되고, 더욱 더 잘 믿게 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멘입니까?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전에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성육신해 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으로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이해로는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하나님이 어떻게 삼위로 계실 수 있으시고, 삼위로 계신 세분 하나님이 어떻게 한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지 이해가 불가합니다. 왜요. 삼위로 계신 하나님이 또 한 하나님이 되시는 이런 존재 방식은 인간의 삶과는 그 차원이 다른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중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신앙은 우리의 지식적인 이해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지식적으로 알아서 믿는 신앙이 아니고, 먼저 믿고 그 믿음 안에서 알게 되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영지주의자들과 구원파 이단들과 같이 지식에 그 근거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은 철저히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1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믿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알아서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우주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우주는 그렇게 큽니다. 그런데 이 우주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지 전혀 이해 불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만물들을 지금까지 섭리로 다스려 오신 것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다스리심 안에는 인간의 범죄와 그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대처 방법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 방법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죄가 전혀 없으신 성자 하나님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주셔서,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이 창세기 3:15 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그 메시야를 통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복음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대로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 성육신,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성육신을 다른 말로는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육신을 왜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두 번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는 초림이 있고, 또 한 번은 부활 체를 입으시고 세상 죄를 심판하시고, 성도들의 구원을 성취해 주시는 왕으로 심판 주로 오시는 재림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좀 더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약 2,000년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시어서 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날을 기념하여 지키고 있는데, 이날이 바로 1225일에 지키고 있는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이사야서 7:14절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이사야서 7:14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보내셨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임마누엘이 아닌 예수라는 이름으로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1:18-2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로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이름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영접하는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가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의 손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고, 자신들과 영원히 함께해 주실 임마누엘로 오시는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유대인들에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주시기 위해 오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이 믿고 기다린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시지 않으시고,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것입니까?

 

로마서에서는 그 이유를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자 배려하심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제 구원의 기회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지금까지 이방인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現夢)하여 알려 준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현몽은 꿈에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그 정혼한 마리아가 자기와 관계없이 임신한 것을 보고 고민 고민하게 됩니다. 요셉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신앙에도 유익하고, 마리아에게도 좋을지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 곧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당시 마리아는 처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남자와 성관계를 통해 예수님을 잉태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잉태하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9: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미가서 5:2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불리시는 분이시고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태어나신 이 아기는 누구라는 것입니까?

그 아기가 바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시는 메시야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메시야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자 하나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 이렇게 오셨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11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건져내 주시고,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자유 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율법에 속한 사람 율법 아래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4-5절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서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는 대속의 주로 오셨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0: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렇게 볼 때 성육신의 목적은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9절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렇게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십자가에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하신 순종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행위의 선행이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을 받으려면 행위의 온전함을 하나님께 보이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행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은 결국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단 한 가지 조건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 다른 것을 더하는 것을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만약 자신이나 천사들이나 그 누구라도,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즉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 1장에서는 다른 복음은 없다.’고 아주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1:7-8)

 

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둘째,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10: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12:2절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마가복음 16:19절입니다.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누가복음 22:69절입니다.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로마서 8: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골로새서 3:1절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베드로전서 3:22절입니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요한계시록 3:21절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해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성경에는 이런 말씀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왜 승천하셨습니까?

본래 성자 하나님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잠시 우리처럼 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후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승천하셔서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먼저는 막달라 마리아가 보았고, 베드로가 보았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보았고, 11제자가 함께 보았고, 120명의 성도들이 보았고, 500명의 성도들이 보았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사도 바울이 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시기 이전과 부활하신 이후의 몸은 서로 다른 몸입니다.

부활하시기 이전에는 우리와 같은 육체의 몸을 가지셨으나, 부활하신 이후에는 거룩한 영체 즉 부활 체를 입으셨습니다.

 

이 부활 체는 장차 우리들도 입게 될 신령한 몸입니다.

이 몸은 예수님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몸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몸입니다. 이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문이 잠겨 있어도 들어오시고, 또 음식을 함께 잡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 한 분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의 부활을 확증해 주는 첫 열매라고 합니다. 20절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의 부활은 종말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을 증명해 주고 있고 보증해 주고 있습니다.

이 부활 소망을 가졌던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이렇게 외치지 않았습니까? 사망아 너희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라고 하면서 이 죄와 사망을 이기에 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에게 권면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들도 이 부활의 소망을 굳게 잡고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믿음으로 행한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활의 소망을 굳게 잡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은 먼저 죽은 이후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본래 죽으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성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하 즉 낮아지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오신 목적을 다 마치신 후에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사 다시는 죽으실 수 없으신 하나님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셨는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잠시 사람이 되셨다가, 다시 그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귀 즉 높아지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수님이셨기에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곧 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시지 않으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이전에는 늘 제자들과 함께 동거동락 하면서 함께 다니시고, 함께 음식도 먹으시고, 또 함께 잠도 자셨습니다.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이후에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시고 필요할 때만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고 계시는지 아닌지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같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살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이 나의 삶에 함께하고 계시는지 아닌지를 의심합니다. 일이 잘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것 같이 생각하다가, 일이 잘 안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하나님이 함께해 주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삶에 함께해 주고 계신다면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실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아무리 잘되지 않고, 심지어 자기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 닥쳐와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비록 하나님을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 만지지는 못하지만,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시마다 때마다 필요한 은혜를 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활 체를 입으시고 40일을 더 세상에 계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만 확신해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 이 확신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더 계시면서 자신이 부활했다는 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보다 우리에게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우리보다 먼저 부활하시고 지금은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고 계신다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성부 하나님께 기도해 주고 계시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소망을 주고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지금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은 마치 우리 영혼 닻과 같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6:19절에서는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과 같아서...’라고 합니다.

 

닻은 배를 바다에 고정시킬 때 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늘에 들어가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고 계시는 그것이, 마치 우리 영혼을 하늘나라에 정박시켜 주는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우리 영혼을 하나님 나라라는 항구에 정박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들에게 나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앞으로 하실 일입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우리 구원을 완성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다시 한번 더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합니다.

그날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신랑으로 오시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죄를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다시 오시는 것을 우리는 재림이라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앞으로 머지않은 날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초림에 대한 예언보다 재림에 대한 예언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초림이 성경대로 이루어졌다면, 예수님의 재림 또한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에 초림의 주로 오실 때에는 혼자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실 오실 재림의 때는 수만의 거룩한 자들을 데리고 함께 오실 것입니다. 유다서 1:14절입니다. 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데살로니가 전서 4:14 절에서는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러면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올 수만의 거룩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올 지금 자고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사람들은 순교자들이라고 합니다. 순교자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서, 부활 승천하신 후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마태복음 24: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에스겔서 39:8-9절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볼지어다. 그날이 와서 이루어지리니 내가 말한 그날이 이날이라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주하는 자가 나가서 그들의 무기를 불태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화살과 몽둥이와 창을 가지고 일곱 해 동안 불태우리라.’

 

예수님의 재림은 마태복의 말씀과 같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된 후에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말씀과 같이 7년 동안의 큰 환난이 있은 후에, 그 환난의 끝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1:14-15)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와 같은 늙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몸, 신령 하지도 않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재림 주다.”라고 한다면 그 말을 믿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까? 그 말은 거짓말이며 미혹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재림하시는 예수님몸은 지금 우리와 같이 죽을 몸, 썩을 몸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 몸, 신령한 몸으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오는 사람들도 모두 다 순교하였다가 부활하여 신령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것 하나만 확실하게 알고 있어도, 우리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진 이만희가 내가 성령 하나님이다.’라고 유혹할 때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내가 재림하신 주님이다.’라고 미혹해도 그런 미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멘.

 

요한계시록 1:7절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는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9-11절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 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셨던 모습 그대로 하늘로 올려가신 그 모습 그대로 재림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절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초림의 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우리들과 같은 몸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에는 부활 체 즉 신령한 몸 영생하는 몸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16:19) 때가 되면 재림하실 것인데 그때에는 신령한 몸으로, 수만의 거룩한 성도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6:12절입니다.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는 부활하시기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 신령한 몸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런 신령한 모습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4:36-43절입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천사와 마귀와 귀신들은 영이므로 살과 뼈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살과 뼈가 있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였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못 자국이 있는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라고 하시면서, 음식까지 함께 먹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활하신 몸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 그런 몸 또한 아닙니다.

 

마태복음 22: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부활한 예수님이나 부활한 성도들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이 몸과 다른 몸을 가지게 됩니다. 그 몸은 성적인 구분이 없는 몸이며,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는 몸, 마치 천사들과 같은 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장가 가고 시집가서 자녀들을 많이 낳으신 분들이, 나는 재림주 예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 거짓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이며 거짓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사람들의 미혹에 넘어가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까?

둘째, 예수님은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고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 먼저 순교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 있는 성도들을 공중으로 휴거시키신 후에, 죄악 된 이 세상을 불태우는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 후에 죄가 제거된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예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메시야 왕국 천년왕국을 세우시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천년왕국은 어떤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합니까?

이사야 11:6-9, 이사야 65:17-25절 말씀을 보면, 그 땅에서는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나라가 될 것이며, 그때에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그런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천년왕국에 대한 말씀들은 거의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요한계시록 20장에 몇 절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는 천년왕국보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 믿음으로 살다가 죽으면 천국 간다는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살아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살 소망을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신약에서는 왜 천년왕국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습니까?

이 천년왕국은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있는 나라입니다.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천년왕국에 대해 알아야겠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천년왕국에 대해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천년왕국과 관계가 없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아 믿음으로 살다가 죽으면 천국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다릅니다.

이런 성도들은 이 세상 역사의 끝 날에 큰 환난의 날이 있다는 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 환난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아주 큰 환난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21-22절입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그때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리고 이 환난의 날 끝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번쩍임같이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오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먼저 죄악 된 세상을 불태오시는 심판을 행하시고, 그 후에 새롭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하신 땅에 메시야 왕국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직접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것입니다.(20:1-6)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메시야 왕국에 대한 소망을 꼭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소망이 성도들로 하여금 종말의 극한 환난의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멘.

 

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까?

셋째, 예수님은 장차 그 나라(메시야왕국)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것이라고 합니다.

 

천년왕국 시대가 끝나게 되면, 다시 무저갱에 갇혀 있던 마귀와 그 졸개들을 잠시 풀어놓게 됩니다. 그 이유는 천년왕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아직 마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도 아담과 하와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과 같이, 그 자신의 믿음으로 선악 간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어떤 일이 있을지 성경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천년왕국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때에 있게 될 일들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천년왕국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만 관계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게 될 것인지, 천년왕국에서의 삶은 어떠할 것인지를 알려 주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 일은 앞으로 천년왕국에서 태어날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미리 알려주시고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3:7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천년왕국이 끝나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별로 알려 주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중 어떤 사람이 천년왕국에 들어가 살게 되고, 나중에 예수님이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게 되시는 것까지 보게 된다면, 그때 예수님이 어떻게 그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시는지 잘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때 일어날 일들에 참여하지도 않을 우리들에게, 그때 일어날 일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 우리들에게, 그때 이런 일 저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알려 주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때에 일어날 일들을 우리에게는 알려 주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와 관계있는 중요한 일은 이런 일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젊은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설교는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확실한 이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살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서, 우리와 같이 늙고, 병들어, 죽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고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재림 주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미혹하는 사람들, 거짓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부활 체로 계시지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와 어떤 말로 미혹하더라도, 비록 이적과 기적을 행하면서 미혹하더라도 절대로 이런 사람들에게 미혹 당하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부활의 몸을 입고 하늘로 가신 그대로, 부활한 순교자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아멘.

 

말씀을 끝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앞으로 우리를 위해 해 주실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른 결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비록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고 사셨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은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신 성자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창조와 우리의 구속에 대한 모든 계획을 세우신 분이시며, 성육신을 통해 직접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내신 분이십니다. 이를 위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머지않은 날 재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3:13절에서는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6:13-14절에서는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라고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거짓된 사람들의 미혹을 이기고,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깨어 있는 믿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성도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오늘 이 설교 말씀이 작은 도움이 되고,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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