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예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5. 2. 9. 13:34

예수님이 하신 일

요한복음 17:6-8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됩니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구원해 주시는 일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7:2절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6:39절입니다.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두 가지 일을 행하셨다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시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6절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라는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이시다. 야훼이시다. 아도니아이시다. 라고 알려 주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 야훼 아도니아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불리시는 하나님을 안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으로 불리시는 하나님을 내가 만났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으로 불리시는 하나님을 내가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족장들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믿고 섬기며 살았던 하나님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서 새롭게 알게 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이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사시대 기드온이 만났던 하나님은 여호와 샬롬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 사람들이 만나고, 믿고, 섬기며 살았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 주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주어서,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주었더니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까?

7절입니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예수님이 전해 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 성도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해 주고 있는 그 모든 말씀들이 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 합니다.

 

우리 신앙에서는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서는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멸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도 모르는 것이 바로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 큰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 큰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전해 주신 그 모든 말씀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안다고 할 때, 기본적으로 지식적으로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상계 5동 주민 센터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을 때, 우리는 상계 5동 주민 센터는 이 길을 따라 한 300미터 가면 횡단보도가 나오게 되는데, 그 회단보도 좌측에는 계상 초등학교가 있고, 우측에는 상계 5동 주민 센터가 있습니다. 라고 알려 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적인 앎입니다. 상계 5동 주민 센터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우리는 길을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나는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앎이 너희에게 없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차이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험하고 체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어디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까?

우리 신앙은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운 지식에서 시작되지만, 이 지식적인 신앙에서 결국에는 내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내가 하나님을 체험하여서 아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하나님을 내가 경험하고 내가 체험하여서 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아는 앎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예수 나의 기쁨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제가 청년 때 청년들이 모이면 즐겁게 불렀던 찬양 중의 하나입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예수 나의 기쁨 아---. ---. ---. 아멘. 아멘.

 

이 찬양은 그 가사에서 기쁨 대신에 사랑, 승리, 신랑, 생명 등등 자기 고백을 담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청년들이 모여서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면 별 희한한 신앙고백들이 다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시간이 날 때 이 찬양을 부르면서 여러분의 고백을 담은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이 노래를 불렀더라면 뭐라고 고백했겠습니까?

예수 나의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나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만나고 경험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정리해 보면, 바른 믿음은 지식에 근거를 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되겠지만, 결국에는 내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내가 예수님을 체험해서 알게 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가진 믿음은 어떤 믿음이 되어야 합니까?

내가 지식적으로 알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체험하여서 알게 된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여서 아는 신앙이 우리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신앙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또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둘째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 주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8절입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병을 고쳐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죽은 아들을 살려 주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보지 못하는 눈을 떠서 다시 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것들 중 가장 큰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했다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이 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주어집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7절에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전해 주신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이 전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로마서 1:17절 말씀 즉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을 깨닫고, 평생 이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았으며, 이 말씀을 의지하고 종교개혁에까지 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복음의 말씀을 주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평생 그 주신 복음을 전하며 사는 증인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로마서 13:11-14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받고 구원의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 안에서 그는 삶의 방황을 끝내고, 초대교회를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나가는 교부가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물질과 같은 이 세상 것들을 주시고, 또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될 하나님의 말씀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주전 1,500년경 모세를 통해 모세 오경을 기록해 주신이래, 주 후 100년경 사도 요한을 통해 요한계시록을 주시기까지 무려 1,6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들을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성경 말씀은 너무나도 귀한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흘러넘치고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방송이나 인터넷이나 유튜브 어디든지 열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차고 넘칩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을 다 가지고 있어서, 성경 말씀을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고, 또 듣고 싶을 때는 언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전해지고 있지만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매 주일 교회에서 전해지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특화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역사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도, 구원도, 복음도, 약속들도, 인도하심도 다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을 통해 역사해 가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그 받은 말씀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그러면 예수님은 이 두 가지 일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복음의 약속친히 그 몸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이루어 주셨습니까?

 

첫째, 약속하신 메시야로 성육신하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세상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약속들은 많이 하지만 그 한 약속들은 잘 잊어버리고,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입이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서도 결정되지 않은 것, 지키지도 않을 약속 들을 많이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들일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표를 많이 얻어 당선되기 위하여, 많은 약속들을 하지만 잘 지키지는 않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고 있는 그 많은 약속 들 중에 단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믿음의 근거가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지 관계없이 끝까지 성실하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 들 중에 가장 중요한 약속은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주셨습니까?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과 같이 우리들도 약속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멘입니까?

 

둘째,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죄의 문제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죄가 인류의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저주 아래 살게 했습니다. 이 죄는 인간과 인간의 사이를 파괴하였을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파괴하여 자연도 더 이상 인간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자연은 지진, 태풍, 허리케인, 쓰나미, 이상기후를 통해 인간에게 혹독한 시련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문화를 발전시켜서, 소득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여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함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또 종교와 철학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갔습니다.

범죄는 점점 더 지능화되고 조직화 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제어하고 선을 고양하려고 세운 국가라는 조직에 의해 세계 1, 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희망을 버리게 했습니다.

죄의 종이 된 인간이 이 땅에 유토피아를 이루려고 하는 것 자체가 헛된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요. 사람들은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지능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결국 교육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가 진행되어 갈수록 인간성은 더 타락해 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릴 때보다 오늘날은 물질적으로는 부요해졌고 지식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간성 부분에서는 더욱더 타락하고 악해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이혼이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동성연애자가 서울대의 총학 회장이 되고, 심지어 목회자까지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다 처리해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멘.

 

셋째, 용서의 사랑을 베풀어 주심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어떻게 사랑합니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내게 사랑을 받을 만한 조건과 자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사랑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요한복음 3:16 절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될 사람, 제외될 민족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모두 다 구원을 받습니다.

 

이 사랑의 대상에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던 가룟 유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까지도 사랑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24절입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정죄했던 세리와 죄인들은 물론, 유대인들이 멸시했던 이방인들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인간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인간 차원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그 본체가 사랑 자체 이신 하나님 차원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 하나님 차원의 사랑으로 죄의 저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 가장 어려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돈은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해서 내 시간은 내어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에 내가 가진 지혜와 지식도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크기가 내가 내 생명을 사랑하는 사랑의 크기보다 더 크지 않으면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은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우리 자신은 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주어도 여전히 우리 자신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사업적인 마인드와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도 여전히 우리 자신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은 다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생명을 내어주고 나면 내게는 남은 것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을 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이 우주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치와는 전혀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그 고귀한 생명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내어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경제적인 가치로 따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가치 기준으로 이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수백 번 수천 번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은 인간 차원의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 차원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해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니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분은 하나님이실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귀하신 분이시지만, 우리가 관계론적으로 보면 내가 없으면 그런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내게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그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 자신이 죽고 없어지면 그 모든 소유, 그 모든 업적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고 난 후에야 온 천하를 얻은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중요성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웃 사랑을 가르칠 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먼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을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으로 자기를 사랑할 뿐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시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 주는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복음의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까?

첫째, 약속하신 메시야로 성육신하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셋째, 용서의 사랑을 베풀어 주심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이런 우리는 남은 일생 동안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고, 고민도 하셔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을 경건한 성도,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입 교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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