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가져다주는 변화
히브리서 11:3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히브리서 11:3절 말씀은 창조신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시작을 설명해 주는 두 가지 대표적인 이론은 창조론과 진화론입니다. 창조론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며, 진화론은 이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져서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 점점 변화 되어왔다는 이론입니다.
이 두 이론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진화론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진화론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과학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이 세상의 시작을 설명하는 수많은 가설 중에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과학이 발달 되면서 진화론은 맞지 않는 이론이라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창조론을 믿습니다.
창조론은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이 창조론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창조론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창조를 믿는 우리의 믿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도 믿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성경이 많이 보급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없는 가정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창조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들은 모두 매우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구별하시고, 특별히 택해 주셔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변화들은 모두 믿음이 가져다 주는 변화입니다.
오늘은 이 믿음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 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육신에 속하여,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목적 삼고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성공도, 명예도, 사회적 지위도, 부도, 다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육신으로는 살아있으나 그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나 존경, 미움이나 분노 같은 정신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없는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게 됩니까?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정신적인 것들까지도 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알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표출되는 말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마음을 짐작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가 내게 귀한 선물을 주고, 관심을 가지고 좋은 말을 해 주면, 우리는 ‘아! 이 사람은 나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짐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무시하고 나의 험담을 하고 다니면 ‘이 사람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에 속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난 것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생기고, 잘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속으로는 ‘내가 반드시 너를 파멸시키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존경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면, 사람들은 그 속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위선적인 행동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이기도 하고, 또 잘 속아 넘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들이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영의 눈이 열리고, 믿음의 눈이 열려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설명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아담 안에서 죽어 있던 우리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육신의 눈과 함께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그 영이 살아난 사람들만 영적인 세계를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영이 살아난 사람들만 ‘영이요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보고 믿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믿고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창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창조를 믿지 못해 합니다. 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또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조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영이 거듭나서, 영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를 보고 듣고 믿을 수 있는 영의 눈이, 마음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가 마음으로 믿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11:3절 말씀에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믿음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또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죽어주신 구세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또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기적이 일어나고, 또 장래 이루어질 부활과 영생, 천국의 소망까지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눈으로 보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도 믿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까지 믿음의 눈으로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어느 나라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까?
우리 말, 우리 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한글을 아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이 성경의 내용들을 다 알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한글로 기록 되어 있는 성경 말씀을 보면서도, 믿음이 없어서,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성경은 “영이요 생명인 말씀이기” 때문에 그 영이 살아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영이 살아 있는 성도,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성도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또 예수를 믿을 때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는
둘째, 믿음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해 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곳이 어딘지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살아오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까?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부르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자신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가 초장과 물을 놓고 다툴 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업으로 주신 ‘그 땅의 선택권을 먼저 조카 롯에게 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어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자,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어주실 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자녀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칠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우리 믿음의 조상답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생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지고 살았던 믿음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믿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본 꿈이나 환상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과 그 주신 약속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신실한 신앙과 잘못된 신앙으로 구분해 주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믿음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왜 범죄 했습니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의 기초를 두었다면 범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믿음이 흔들리자 유혹을 받아 범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벨은 어떻게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까?
하나님이 창세기 3:15 절에서 약속하신 그 말씀에 믿음의 기초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열 납 하시는 더 나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가인은 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와 그 재물을 열 납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었기 때문에, 눈에는 아무 증거도 보이지 않고, 손에는 무엇하나 잡히는 것이 없었지만, 믿음으로 인내하며 산 위에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세상에 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
노아 때와 달리 이 세상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천년만년 계속될 것으로 믿기 때문에, 저축하고, 적금 들고, 땅을 사고, 집을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결국에는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주신 능력과 지혜와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하여 번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않고,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모두 다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구원의 믿음도, 천국에 대한 소망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도,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믿음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기초를 둔 믿음을 가질 때, 환난이 오고,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박해가 와도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에 기초를 둔 믿음에 대해 이런 비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집을 지었는데,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지었고, 또 다른 사람은 모래 위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 집의 모양도 크기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자, 이 두 집의 처지는 달라졌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져서 그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믿음이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믿음이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이나 환경만을 보지 않고, 지금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지만,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바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도 믿습니다.
구원해 주심도 믿습니다. 성령의 가르치심, 인도하심, 역사하심도 믿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말씀들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들도 해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라 너희에게 줄 것이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너희는 보화를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라.’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우리들은 적은 소득이지만 믿음으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교회의 필요를 위해 정성껏 헌금도 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일에도 마음을 닫지 않습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기에, 우리는 자녀를 위해 얼마의 돈을 저축해 놓는 것보다, 우리가 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자녀들에게 복이 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기에, 주의 종들을 귀히 여기고, 주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였고, 또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런 가정들에는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들이 복을 받게 하시는 것을 보고 듣지 않았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그 부모님들의 신앙 때문에 복을 받은 자녀들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가정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에도 적용되는 약속입니다. 자원도 빈약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그 어려운 경쟁 사회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이 큰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IMF를 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 6대 무역 대국이 되어 있습니다. 노벨상 예비 후보에 여러 사람이 오르내리더니 결국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타지 않았습니까?
전에 삼성이 개발한 와이브로 기술이 차세대 통신의 세계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수십조에 이르는 큰 시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DVD(디지털 다기능 디스크) 암호화에서도 세계 유수의 기업을 따돌리고 세계 표준도 따냈습니다. 여기에 자극받아 세계 표준이 되고자 여러 분야에서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입니다.
요즘 방위산업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가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가 이런 복을 받아 누리고 삽니까?
지금은 비록 탄핵정국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 이상 우리나라는 곧 안정되어 갈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믿음 위에 견고히 서 있는 한 우리나라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이 아무리 핵무기와 미사일로 위협해도 하나님이 도우시면 우리 대한민국을 이기고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은, 우리들 앞서 신앙으로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며, 오늘날 인구 대비 세계 1위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게 한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과 헌신에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주를 위해서라면, 주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헌신도 기쁘게 감당해 왔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적금을 들고, 결혼자금을 내어놓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자신과 그 가족이 살아야 하는 집까지 내어놓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았습니까?
아벨의 믿음의 예배를 받으시고 응답하셨던 하나님, 에녹의 믿음을 보고 그 삶에 동행해 주셨던 하나님, 노아의 믿음을 보고 의의 후사가 되게 해 주셨던 하나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 후손과 땅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믿음으로 헌신한 우리 앞서 살았던 성도들의 헌신을 보고 그냥 놓아두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그래서 믿음으로 산 당사자와 그 후손 된 우리들이 오늘날과 같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살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우리는 세상이 믿을 수 없어 하는 하나님을 믿고 있고, 우리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라 너희에게 줄 것이니 누르고 흔들어서 안겨 주리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상을 향하여 사랑을 베풀어 주고, 불신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고, 까다로운 사람들에게도 긍휼을 베풀고,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되다.”라고 하셨으니 주면서도 기뻐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면서도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서,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시느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뿐 아니라, 우리들의 후손들까지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예수를 믿을 때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변화는
셋째, 믿음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며 살게 해 줍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적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서 경수가 끊어지고 자녀를 낳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사라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늙어서 자녀를 낳을 수 없었던 사라의 몸이 회복하더니 결국 이삭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은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힘과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가는 앞길을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시로 장막을 치고 머물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중 무장을 한 애굽 병사들이 질풍노도처럼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 좌우에는 높은 산맥들이 가로막혀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망갈 곳이 없었습니다. 홍해 바다에 빠져 죽든지, 애굽 병사들의 칼에 맞아 죽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었습니다.
이 위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그러나 믿음의 사람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도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네 지팡이를 홍해로 내밀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로 홍해의 물을 가리키자, 홍해 바다가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갈라진 홍해 바다의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으며, 그 뒤를 따라 홍해 바다로 들어온 애굽 병사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요단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야 할 요단강은 당시 모맥(밀과 보리) 거두는 시기여서 강물이 언덕까지 차고 넘쳤다고 합니다. 모세 때는 믿음으로 지팡이를 내밀므로 홍해를 갈랐지만, 여호수아 때는 하나님의 법궤를 맨 제사장이 그 발로 요단강을 밟을 때 강이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요단강 바닥을 밟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으로 부딪힌 문제는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지나지 않고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은 워낙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6일 동안은 하루에 성을 한 바퀴씩 돌고, 7일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돈 후, 성을 향해 함성을 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철옹성 같았던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아멘.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장애물이 그 앞에 놓여 있고, 태산 같은 문제가 다가올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뿌리를 내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이것이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육신을 이기게 하고, 죄를 이기게 하고, 세상과 악한 마귀의 역사를 이길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기분이나 내 느낌, 환경이나 세상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는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갖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믿고 바라봄”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그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다는 이 믿음을 갖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로 살아가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첫째,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둘째, 이 세상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믿게 되고, 또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들이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혜로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믿음을 가지고 금 년 한 해를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보시고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능력, 역사하심과 기적 베푸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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