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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건강한 성도가 되자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6. 23. 18:26

영혼이 건강한 성도가 되자

요한32-4

 

1. 사도 요한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도 요한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자매 사이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한과 예수님은 이종사촌 사이가 됩니다.

 

오늘날은 핵가족 시대이기 때문에 이종사촌이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때에는 이종사촌이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이종사촌은 마치 한 가족같이 지내던 그런 사이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요한과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서로가 아주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는 30세쯤 되셨을 때 유대 땅으로 가셔서 세례요한을 만나 세례를 받으시고, 그 후 유대 광야로 들어가셔서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후에, 다시 유대인의 땅으로 돌아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요한은 10대의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년이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 그룹에 포함되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전후 관계 속에서 볼 때 요한은 하루아침에 믿음을 가지게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그런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마치 한 가족같이 지내면서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면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요한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경험한 일들과 그 남편 요셉이 경험한 일들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 베들레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동들과, 동방 박사들이 방문하였던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시므온과 안나 등등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고백했던 그 믿음의 고백들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요한이었기에 요한은 어릴 때부터 예수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늘 가까이서 지켜보며 살아왔던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던 요한은 믿음의 결단을 하고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 그룹에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요한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예수님의 눈에는 이 요한이 아주 사랑스러운 동생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왜요. 당시에는 예수님의 친동생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이종사촌 동생인 요한이 한결같이 자신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어느 제자보다 이 요한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요한을 설명할 때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다 순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100세 가까이 살면서, 우리가 즐겨 읽는 요한복음, 요한 1.2.3, 요한계시록을 기록해서 남겨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삼고 있는 이 요한3서를 기록할 당시에 요한의 나이는 9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요한만 순교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그 마지막 시간들을 예수님과 함께 한 유일한 제자가 바로 이 요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잡혀가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을 때에도 요한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할 그때에도 요한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후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려고 빌라도의 관정에 갔다가 헤롯 궁으로 가고, 또 헤롯 궁에서 빌라도의 관정으로 오고 갈 때에도 요한은 함께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이 빌라도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골고다로 끌려가시는 그 길도 요한은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형벌 받으시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본 제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그 어머니 마리아를 네 어머니 같이 돌보아 드리라는 유언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요한은 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치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같이 모시고 당국자들을 피해 은밀하게 숨어서 지내며 살게 됩니다.

 

당시 다른 제자들은 그 전해 받은 복음을 전하러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당국자들과 마찰을 일으켜서 결국에는 모두가 다 순교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섬기면서 은밀히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당국자들에게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드러나지 않았고, 그 결과 순교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2. 가이오를 축복한 말씀

 

성경을 보면 이렇게 은둔하며 지낸 요한이 믿음 안에서 낳은 영적인 자녀들이 아주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요한3서의 수신자 가이오였습니다. 요한은 그의 신실한 제자 가이오를 인하여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가이오를 축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요한의 마음이 요한 1서 서두에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요한이 가이오를 축복한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표현대로 바꾸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이오야 나는 네 영혼이 잘 된 것을 보니 너무나도 감사하다. 나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 육신도 건강하기를 바란다. 네 삶도 범사에 형통하기를 바란다."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이 축복 속에는 우리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 주는 모든 조건들이 다 들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요한과 같이, 모든 부모들도 자기 자녀를 축복해 주길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부모는 더더욱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녀를 축복해 주기를 원합니다. 자녀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자녀를 축복해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가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자녀를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자녀의 행동들을 보면 축복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향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는 달라지고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그 자녀들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이삭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삭은 그 장남 에서를 사랑해 주고 축복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볼 때, 에서에게서는 좋은 신앙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신앙이 부족한 에서였지만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서를 불러 놓고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에서야! 너는 활을 메고 사냥을 나가서 네가 사냥한 그 고기로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오너라.’ 내가 그 별미를 먹고 흡족한 마음으로 너를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신앙적으로는 축복해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라도 그 아들 에서를 축복해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이삭의 축복을 누가 받도록 하셨습니까? 믿음의 사람이었던 에서의 동생 야곱이 받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의 마음에도 믿음이 신실한 가이오를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이 가이오는 마음에 꼭 드는 믿음의 자녀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그에게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축복의 말씀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주영이가 교회에서 금년에는 마지막 예배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이제 다음 주 화요일인 25일에는 입대를 하여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18개월 동안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훈련을 받는 곳이 강원도인 것으로 보아 강원도에 배치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강원도는 위치적으로 보면 전방입니다. 전방은 후방과 달라서 부대 안에 교회 시설이 없는 곳이 많고, 주일에 교회 갈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곳도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꼭 하며 보내는 18개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군대 생활 중에 하는 신앙생활은 인생에서 너무나 중요한 기간이 됩니다. 이때는 부모는 멀리 있기 때문에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보내야 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 있을 때에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 않았으나, 군에 가서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다가 나중에는 부대 군종병으로 발령을 받아서 군종병으로 근무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부대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게 되면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마치 사도 요한이 가이오를 축복했던 것 같이, 이삭이 그 아들 야곱을 축복했던 것 같이, 그렇게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주영이뿐 아니라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시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축복해 주는 복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요한이 가이오를 축복하고 싶어서 보냈던 이 편지의 내용들은, 사실 하나님께서 가이오 뿐 아니라 가이오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고 싶으셔서, 요한에게 성령으로 영감을 주셔서 기록하여 보내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 하나님이 나의 영혼이 이렇게 잘되길 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내 육신이 이렇게 강건해지길 원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삶이 형통하기를 원하시는구나!'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이렇게 볼 때 이 말씀은 가이오를 향한 사도 요한의 축복의 말씀도 되지만, 또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 건강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도 건강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을 누리며 살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요한3서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이 큰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복된 말씀을 읽을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은 '네 영혼이 잘됨같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혼이 잘되어 있는 건강한 성도들이, 육신도 건강하기를 바라고, 범사가 형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 영혼이 잘 된 사람들이 건강하고 범사가 잘 되는 삶을 살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복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가장 먼저 우선 적으로 우리 영혼이 잘되도록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잘되길 위해서 힘쓰고 애쓰며 수고하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각오와 결단이 오늘 이 말씀을 전하고 듣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러면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창세기 2: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먼저 흙으로 그 몸을 빚어서 만드시고, 그 후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생령살아 있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사람들은 몸과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창조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을 닮은 자로 만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각 사람들이 가진 그 영혼이, 영이신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28절에서는 영혼과 육신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또 사람들이 우리의 몸은 죽일 수 있으나 우리의 영혼은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을 지옥에 보내시고 천국에 보내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라고 합니다.

 

또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40일 금식한 후 주리실 때 마귀가 나아와서 네가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라고 시험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몸은 떡을 먹고 살지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내면의 자아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과 대비되는 우리의 속사람입니다. 우리 영혼은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만 만족하고 충만할 수 있는 우리 내면의 실체입니다. 영혼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갈망하게 하게 합니다. 또 이 영혼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하는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지성소입니다.

 

시편 42:1절 말씀을 보면 이러한 영혼의 갈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을 찾고 찾아 갈망하는 우리 내면의 자아 그것이 바로 우리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은 어떤 때는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로 하여금 의를 사모하는 고통과 갈증으로 몸부림치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바로 다 이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영혼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오직 육신에 있습니다.

세상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그 모든 관심은 육신의 건강과 세상에서 누리며 사는 행복성공에 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몸에 관심을 쏟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의 건강에 쏟는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세상에서 내가 하며 살아가는 일에 쏟는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우리 영혼에 관심을 쏟는다면 이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그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영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아니겠습니까? 이 부자는 하는 일이 잘 되어서 재산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그 지은 농사가 풍년이 들어서 곡식을 쌓아 둘 창고가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곡식이 가득가득 쌓여 있는 창고를 둘러보는 것이 이 부자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영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먹고 마시고 즐기면 그 영혼도 저절로 잘될 것으로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를 향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겠느냐?" 이 말씀은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영혼을 무시하고 살면 나중에 어리석은 종말을 맞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본래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내면의 처소이지만, 죄로 인해서 영혼이 병들고 부패해져서 우리들은 영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보고 의롭다 칭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의 망가진 영혼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때부터 우리 영혼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영혼의 상태에 우리의 모든 삶이 달려 있고,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게 됩니다.

 

4. 우리 영혼의 건강 문제

 

우리 영혼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영혼이 건강한 성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항상 건강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노라면 우리 영혼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이 건강한지 아닌지를 어떻게 진단해 볼 수 있습니까?

 

우리 영혼의 건강 상태는

첫째로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즐거워하고 무엇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있고, 또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 영혼은 건강한 영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 영혼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이들에게 가장 기쁜 시간 가장 즐거운 시간은 서늘할 때 동산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소리만 들리면 유치원에 가 있던 어린아이가, 자신을 데리려고 온 부모님을 반가워하면서 달려가 그 품에 안기듯이, 그렇게 동산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 그 품에 안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인이 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듣게 되자 두려움을 느끼고 나무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면 우리에게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지고 하나님이 싫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는 이 시간을 기뻐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거나 전해 듣게 될 때 그 마음에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까? 영혼이 건강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사모합니다.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는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를 기뻐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를 가리지 않고 늘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날 예수 믿고 있는 성도들 중에는 이런 기쁨, 이런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나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 풍조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비꼬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혼자 계시는 방에 집어넣고 한 30분 정도 지나게 하면 아마 기절할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이 겁이 난다면 그것은 그 영혼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행복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렇게 늘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 영혼이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을 귀찮아하고, 할 수 없어서 시간을 떼우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이런 사람들은 그 영혼이 심각한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영혼의 건강 상태는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내 영혼의 건강 상태는

둘째, 세상일들이 잘 되어갈 때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몸은 건강하고, 삶은 형통하여서,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게 되었을 때, 또 그런 나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며 부러워할 때, 우리는 내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병들고 가난할 때는 예수님을 잘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라고 고백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몸이 건강해지고, 그 삶이 형통해지고, 그래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고,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솔솔 느껴지게 되면 이때가 오히려 위기입니다.

 

이때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기울어져 갑니다.

이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형식적으로 시간을 때우는 관계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주어진 시간과 재물들을,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일에 투자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영혼에 이상이 생긴 사람들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영혼은 고난보다 형통함에 아주 약합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고난당할 때에는 그 영혼이 살아 있었는데, 삶이 형통하게 되면 그때부터 영혼은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형통할 때가 내 영혼에는 위기임을 알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아주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도 이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디모데전서 6:9-1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돈을 많이 벌고,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은 벌면 벌수록 더 벌고 싶고, 돈은 모으면 모을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을 갖게 합니다.

이렇게 돈을 바라보고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면, 결국에는 믿음의 길에서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보다 재물에 더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내가 건강하고 출세하고 재물을 많아질수록 더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건강할 때, 출세하고, 많은 돈을 모으게 될수록, 내 마음이 하나님에게 가 있는지 세상 부귀영화에 가 있는지, 내 마음이 하나님에게로 기울어져 있는지 세상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살핌을 통해서 비록 부자가 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면 내 영혼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내 영혼의 건강 상태는

셋째,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내가 보이게 되는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예외가 없습니다. 평생 아무 어려움도 없이 산 사람들은 아주 극 수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번씩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위기란?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을 말합니다.

이런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영혼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5m 이상의 쓰나미가 밀려왔습니다. 당시 배들이 마치 나뭇잎처럼 그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것을 우리는 TV를 통해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을 보니 대서양에서는 그 높이가 19미터나 되는 파도가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전에는 그 높이가 29미터나 되는 파도가 목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파도가 몰아치면 배가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이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으려고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풍랑을 만났습니다. 지중해에서는 겨울이 되면 북동풍이 불어오는데, 이 바람이 그레타 섬에 있는 높이 2,100미터나 되는 이다 산맥 사이 계곡을 지나면서 광풍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 광풍을 유라굴라라고 합니다.

 

겨울에 이 광풍을 만나게 되면 배는 그 방향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냥 바람에 떠밀려 가다가 암초에 부딪혀 파손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중해에서는 이 광풍이 부는 겨울에는 배를 띄우지 않고, 봄이 되길 기다렸다가 항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씨도 좋고 겨울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배를 띄웠다가 이 광풍을 만났습니다.

 

선장은 한편으로는 줄을 가지고 배를 이리 저리 묶어서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배에 있는 물건들을 다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함으로 배가 침몰 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선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습니다. 이제 바람에 배의 운명을 맡기고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광풍은 몇 주 동안 계속 불어서, 배는 지중해 동쪽에서 광풍을 만나 이태리 남쪽에 있는 멜리데라는 섬에까지 밀려가서 그 해안가에 있는 암초에 부딪혀서 부서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광풍을 만나게 될 때, 그 영혼이 강건하지 못한 사람들은 낙담하고 좌절하고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건강한 사람들은 이런 위기 속에 그 가진 믿음의 진가를 드러내게 됩니다.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불어오자, 지중해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선장과 선주도 살 소망을 잃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광풍이 얼마나 무서운 풍랑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건강하였던 바울 사도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받고 이렇게 담대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았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니라. 내가 속한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또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욥은 하나님이 누구를 만나든지 자랑하고 싶은 그런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땅을 두로 돌아다니던 사단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사단에게 이 욥의 신앙을 자랑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그러자 사단이 뭐라고 참소합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복을 주시니 하나님을 경외하지 만약 하나님이 손을 들어 그 주신 것들을 쳐 보소서 그 즉시 하나님을 대면하여 욕할 것입니다.’라고 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의 신앙을 시험해 보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욥은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그 많던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10명의 자녀들은 한날 한시에 태풍으로 무너져 내린 집에 깔려 죽었습니다. 욥의 온몸에는 피부병이 들어서 짓물러 가고 있었습니다. 동방의 제일 부자였던 욥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으며, 죽을병까지 들린 병자가 되었습니다.

 

욥은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였을 때 어떤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가 나는 당신의 추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니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라고 할 때 그런 아내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고난도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

 

성경은 이 욥의 신앙에 대해 이렇게 증거합니다.

욥은 고난의 날을 맞이하였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욥은 그 고난의 날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면 찬양하고 경배했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을 고백하며 살았던 욥은 그 영혼이 건강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을 알게 됩니다.

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다. 그것은 우리는 육신의 건강보다 영혼의 건강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내 영혼의 문제를 이 세상의 형통보다도 더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생의 위기를 만나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건강하지 않으면 인생의 위기를 믿음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건강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십니까? 아무리 세상일들이 잘 되어도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삶의 위기를 만나게 되어도 그 어려움 속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에 굳게 서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영혼의 건강 문제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영혼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힘쓰고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건강은 언제 없어질지 모릅니다. 평안한 가정과 소유하고 있는 재산도 언제 없어질지 모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건강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5. 영혼을 건강케 하는 방법

 

그러면 우리 영혼이 건강해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요인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이 세 가지를 꼭 실천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영혼이 건강해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3:9절입니다. "마음은 은혜로서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여기에서 마음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우리 영혼은 잘 먹고 잘 입고 내 몸을 잘 관리한다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건강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영혼의 영양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내 영혼의 근육과 같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붙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내 영혼에 근육이 붙고 힘이 생겨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요한 3서를 받았던 가이오는 사도 요한으로부터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도요한이 왜 네 영혼이 잘 되었다.’라고 하면서 이 가이오를 칭찬했을까요? 그 이유는 가이오가 진리의 말씀 안에서 그 말씀에 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떠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순회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순회 전도자들이 찾아오면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힘들고 귀찮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사는 집에 한 달에 한두 번씩 순회 전도자들 몇 명이 와서 기거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아간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많은 제한을 받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가이오는 복음을 전하고 다니는 이 순회 전도자들의 뒷바라지를 잘해 주었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고 섬겼습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우리 영혼은 강건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순종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그 영혼이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둘째,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통해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서 기도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영혼이 건강해지려면 우리 속사람이 강건해야 하는데, 우리 속사람은 성령의 은혜를 받을 때 강건하여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를 사모하고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 영혼이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깨어 있는 믿음으로 굳게 서서 세상과 죄와 마귀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늘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힘을 빼고, 우리로 하여금 실패하도록, 사탄은 수시로 우리를 시험하고 공격합니다. 우리는 이 사단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8-9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우리는 유혹받을 때마다 넘어지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유혹과 맞서서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 영혼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도둑이 우리 집에 침입해 들어와서 도둑질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려면 늘 깨어 있는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세상과 죄와 마귀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깨어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영혼이 건강한 성도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우리 영혼의 건강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 영혼이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영혼이 건강해지는 방법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영혼이 건강해지려면 첫째,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 깨어 있는 믿음에 굳게 서서 세상과 죄와 마귀를 대적하고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영혼이 건강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강건해진 우리 영혼을 보고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남은 2024년 한 해 동안, 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우리 모두도 들으며 살아가는, 복된 한 해를 만들어 가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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