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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사람의 특성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5. 5. 20:44

거듭난 사람의 특성

요한15:13-21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라고 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계기로 해서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에는 거듭남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는 이 말씀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불편함을 주었을 것입니다. 왜요.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기에,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의 지금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를 읽으면서 자신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죄 사함을 주시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거듭남이 무엇인지 몰랐던 니고데모와 같이, 풀 수 없는 의문, 풀리지 않는 의문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이 자신을 차별하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거듭남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 배워서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듣고 배워서 지식적으로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전해주고 예수님을 전해주는 성경 말씀은 사람의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경 말씀은 지식적으로 이해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 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그 영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그 영이 아직 죽어 있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으로 믿고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이 성경 기록자들을 감동하심으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그 영혼이 거듭난 사람들만이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던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전에 부모로부터 육체를 가진 존재로 태어났듯이,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부연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게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네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 3:5, 8)

 

이 말씀은 사람의 능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는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중생이 무엇입니까? 중생은 내가 이전보다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전에 육신에 속해 살던 사람이, 이제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옛사람은 지나가고, 성령 안에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17절 말씀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거듭남은 요한복음 3:8절의 말씀처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육신의 눈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렇다면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사람이 거듭난 사람인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또는 내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거듭났는지 거듭나지 못했는지 전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을 기록해서 전해준 사도 요한은 요한1에서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특성들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1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런 특성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가?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거듭난 사람인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인지, 또는 내가 거듭난 사람인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요한1서의 말씀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성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첫째,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한일서 5: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에 의해 그 영이 거듭난 사람들만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그 영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했습니까?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거듭났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신앙고백 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듣고 기뻐하시면 여러 축복의 말씀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베드로의 이 고백은 그 영이 거듭난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적인 가르침을 받아서 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요나 시몬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둘째,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한11:1-3절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학교에서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친구들과 한 반이 되어서 1년을 함께 공부하게 됩니다. 그렇게 1년 동안 같은 반에서 공부한다고 모두가 다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만나는 아이들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됩니다.

 

요한1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요한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되었다고 합니까? 요한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약속해 오신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들어왔는데, 그 생명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간 요한은 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면서,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그 말씀을 듣고, 함께 전도 여행을 하는 등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개인적인 사귐을 가지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또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영이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적인 사귐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과 예수님과 개인적이고도 영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거듭나게 됩니까?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 것도, 거듭나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3:14-15절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베드로전서 1:23절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3: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려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성도들과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일 등등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다가 보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게 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중요한 특성은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그 영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사귐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그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전도 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전도를 통해 그 상대방도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그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하려고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구원해 나가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그 영이 거듭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셋째, 거듭난 사람은 지속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한11:5절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빛이시라.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빛 자체라는 말씀은 아니고, 하나님은 어둠과 빛 중에서 빛과 같은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그래서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개인적인 사귐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이런 사람들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처럼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과 같이 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말씀이 6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러면서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까?

7절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빛의 자녀로 빛 가운데서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 영이 거듭났다고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 우리 육체 안에는 여전히 죄의 속성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거듭날 때 성령이 주시는 의의 속성들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다른 점이 있다면, 거듭나기 이전에 우리는 죄의 종으로 죄만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이후에는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속성들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거듭난 사람들은 전과 같이 죄를 지으면 살 수도 있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3: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거듭난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정말 예수 믿고 그 영이 거듭난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에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이 말씀은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를 짓되 지속적으로 짓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씨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그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요한일서 5:18절 말씀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그 영이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죄를 반복하여 짓는다는 것입니다. 죄를 반복하여 짓는 사람은 결코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죄악 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세상 죄와는 구별된 삶을 살고, 세상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넷째,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예수님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한일서 5: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여기서 낳으신 이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에게서 난 자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 일서 4: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거듭난 사람들은 그 자신을 낳아주신 하나님을 따라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들뿐이라고 합니다. 거듭난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을 말하나 사랑하는 삶은 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해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 현실을 보면 예수 믿지 않는 부모도 자녀를 사랑합니다. 심지어 자기 희생적인 사랑으로 그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런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 사랑은 눈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눈먼 부모가 눈먼 자녀와 함께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 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 눈이 뜨여 있는 부모라면 어떻게 합니까? 자녀가 그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도록 그냥 놓아둡니까? 아닙니다. 그 자녀를 붙잡고 다른 길로 가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눈먼 부모는 그 앞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자녀를 데리고 낭떠러지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는 마음으로는 자녀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자녀를 위한 사랑이 되지 못합니다. 그 사랑은 자녀를 함께 멸망으로 데리고 간 사랑이 됩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는 눈먼 사랑이라고 합니다.

 

오직 거듭난 사람들만 참된 사랑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들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고, 자기의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35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죄로 멸망당 할 사람들을 그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신 그런 사랑입니다. 이것이 참사랑 임을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눈이 멀어서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멸망으로 나아가는 사랑을 참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참 사랑을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에는 이 사랑에 대한 교훈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르치는 교훈의 말씀들을 읽다가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잘 알게 됩니다. 요한14:8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요한계시록 2:5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원리 중 하나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따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삶은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정 비례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성도들은 바울의 에베소 교회를 위해 한 기도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람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더 많이 알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다섯째, 거듭난 사람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한15:4절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거듭난 사람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기 세상을 이긴다.’라는 이 말씀은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그 영이 거듭난 사람이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것은, 그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삶에 근거하고 있습니다.(16:3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은, 예수님처럼 그 자신이 피를 흘리며 싸워서 이겨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승리를 확신하고 그 삶 속에 승리를 확증하고 성취해 나간다.’는 의미에서의 승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예수님의 승리에서 기인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수님이 죄와 싸워 이기셨듯이 나도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음과 싸워 이기셨듯이 나도 예수님의 부활안에서 죽음과 싸워 이겼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과 싸워 이기셨듯이 나도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선언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에 따라서 그 살아가는 삶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만약 창조주 하나님이 가지신 그 믿음을 가지고, 저 앞에 서 있는 불암산을 향해, 불암산아! 너는 들려 바다에 던져져라.’라는 명령을 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옆쪽에 있는 수락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명령한 사건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9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며 살던 사람,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 한 명령이 무엇입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하자, 그 사람이 베드로가 명령한 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하고 있을 때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면 어두워서 더 이상 전쟁을 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하늘에 있는 해와 달을 향해 그 자리에 멈추어 서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명령한 그대로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해와 달은 여호수아의 군대가 그 대적들을 다 멸하기까지 넘어가지 않고 하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여호수아가 가지고 살았던 이런 믿음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11:38절에서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또 거듭난 사람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여섯째, 거듭난 사람은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요한15:13절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 영이 거듭난 사람들은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요한15:14-15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 영이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 영의 아버지이시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또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둘째,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구원의 은혜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모든 사람들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지만 예외가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범죄 한 사단과 마귀와 그 졸개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15:16-17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경 말씀을 보면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 받지 못할 죄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3:28-29절 말씀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또 히브리서 11:4-6절 말씀에서는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예외를 제외하고서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이든지 관계하지 않고,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전도자들은 살인자, 흉악범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살인범 흉악범일지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또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셋째, 더 이상 범죄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요한15:18절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거듭난 사람들이 범죄 하지 않는다는 이 말씀은 거듭난 사람들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거룩한 영성을 가졌던 모세도, 다윗도 죄를 지었습니다. 죄악 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이 말씀은 죄를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어서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며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넷째,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에서, 악한 자들에게서 지켜 주신다고 합니다.

 

요한15:18절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다니엘을 어떻게 지켜 주셨습니까?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몇일 씩을 굶은 사자들은 다니엘을 삼키려고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자들이 입을 다물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괴로움 속에 울부짖었고 다니엘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게 지켜 주셨습니까?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한 용광로 속에서도 전혀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요한은 어떻게 지켜 주셨다고 하십니까?

펄펄 끓는 기름 가마 속에 요한을 넣었는데도 전혀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 주셨다고 합니다.

 

또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다섯째,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요한15:19-20절입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

 

또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섯째, 각종 우상 들을 멀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요한15:21절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우상이라고 하면 석상과 불상과 같은 것만 우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마음이 두고 있는 것은 다 우상이라고 합니다. 거듭난 사람들, 그래서 하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하늘나라에 가기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널려 있는 각종 우상 들을 멀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만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오직 하늘에만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첫 출발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며, 육에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며, 죄악을 즐기며 살던 사람에서 하나님의 의를 즐거워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사람,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사람,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게 합니다.

 

이런 은혜, 이런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도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경험한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지 않고,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이런 성도들 앞에 예비해 두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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