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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9. 15. 13:43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히브리서 11:1-6

 

1. 믿음은 선물이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정의 믿음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는 믿음을 정의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고 있는 것들의 실재 상과 같은 것이며,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 물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믿음은 우리가 가지려고 소원하거나 수고하고 노력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을 가지려고 를 닦고, 고행을 하고, 수양을 해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날 종교라고 알려지고 있는 불교이고, 유교이고, 회교이고, 각종 신화들미신들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인간이 수고하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앞서 믿었던 믿음의 선배, 신앙의 선배들은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만나 주시고 은혜 주시고 믿음 주시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믿음을 하나님의 은사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선물이다.

 

믿음이 은사요 선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된 과정들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를 찾고 찾다가 찾아서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발견하고 깨달아서 믿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 세우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외에 다른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위해 세워주신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아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나는 지금부터 예수님을 믿어야지라고 한다고 믿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과정과 방법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어떻든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은혜로 불러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을 주실 때 믿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을 주시면 일어나는 변화들

 

이렇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면,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가 따라오게 됩니다.

그 중요한 증거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예수님을 믿은 이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이 달라집니다. 나 자신을 보는 나의 관점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들과 이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이 달라집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 사람의 영을 살려주실 때, 비로써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고린도전서 12:3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은 사람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그러면 그 살아난 영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에 영향력을 미쳐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관을 바꾸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을 통해 자신 안에 일어났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성령을 통해 자신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면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계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나는 여전히 전처럼 육체로 살고 있지만,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았는데 지금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라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면, 믿음을 가진 우리들의 삶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면, 우리에게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줍니까?

첫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 우리는 비로써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평생 예수님을 믿어왔고, 수석 장로까지 된 사람이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그 장로님에게 위로의 말씀을 해 주려고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장로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장로님은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간 나는 믿지도 않는 예수님을 섬기며 사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곧 쉴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하면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간 교회에서 충성하고 헌신한 장로님의 집에 위로 예배를 드리러 갔던 목사님과 성도들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평생을 불교 스님으로 살아서, 불교 인이라면 모두가 존경하고 인정해 주는 한용운이라는 스님이 있습니다. 이분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아주 유명한 분이지요. 그런데 이분이 돌아가실 때 어떻게 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이분은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잘못된 믿음,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자신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믿음은 그 살아온 삶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믿음은 사람들의 평판과도 무관합니다. 어느 누가 교회 수석 장로님이 믿음 없는 사람인 줄 알았겠습니까? 어느 누가 한용운 스님이 예수님을 믿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믿음 주시니 평생을 불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온 한용운 스님은 그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향해 믿음의 고백을 하며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평생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겨와서 성도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어느 교회 수석 장로님은 믿음을 부인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대비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믿음 주시지 않으시면 평생 교회를 섬겨도 믿음을 가질 수 없고,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평생 스님으로 살았어도 결국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종교와 학벌과 출신 지역을 불문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은 아마 김수환 추기경일 것입니다. 종교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장례식에 조문하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김수환 추기경은 어떤 믿음을 가졌던 사람입니까? 우리가 이단으로 정죄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신봉자였습니다. 이 종교다원주의는 종말에 나타날 거짓 선지자들과 적 그리스도와도 연결되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런가 하면 불교 인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철스님은 어떻습니까?

성철 스님은 진리를 깨닫고 도를 깨닫기 위하여 10년 이상을 누워서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살았던 절제된 삶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철 스님이 죽을 때 무엇이라고 유언했다고 합니까? 나는 중생을 속인 거짓말쟁이고 위선자다.’라도 하면서, ‘자신을 위해 지옥이 예비 되어 있고, 나는 마귀사단의 졸개이다.’라고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창조도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창조도, 하나님의 구원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3절 말씀에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이 우연히 생겨나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 되면서 이 진화론은 하나의 가설이고,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진화론이 사실인 양 믿고 있습니다.

 

창조는 인간의 이성이나, 논리나,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실 때 창조는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이 세상의 창조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인권위원장 후보로 나온 안창호 헌법 재판관 내정자는 교회 장로입니다.

그래서 창조론은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창조론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교과서에서 가르치나요? 라고 묻자.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고 한다면 진화론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아주 당당하게 자기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것을 보고 기독교 단체에서는 환영했고, 야당시민단체에서는 여기 목사가 되려고 왔느냐? 라고 하며 부적격 판정을 내렸고,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아주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하며 맹비난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안창호 헌법 재판관 내정자와 같이 가정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학교에서든지, 어디에서든지 당당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의 신앙을 말하고 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또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줍니까?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생기게 해 줍니다.

 

어떤 사람들이 효자가 됩니까?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알고, 그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효자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소유했던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은 강한 소원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말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자원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그 믿음은 두 가지 눈을 열어줍니다.

하나는 그의 마음눈이 밝아져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잘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부르시지 않고, 잘난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나를 부르셨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네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중에 무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디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디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무디에게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배운 것이 없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무디는 교회에 갈 때마다 내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까?’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기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일은 주일학교 아이들이 예배드리려고 들어가고 난 후에, 그 아이들이 벗어놓고 들어간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무디는 주일이 기다려졌습니다.

주일 날 자신도 교회에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무디에는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를 보조교사로 좀 써 달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네게 나눠줄 학생이 없다.’라고 하면서 네가 정말 교사가 되고 싶으면 네가 가르칠 학생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교사로 임명해서 그 아이들을 가르치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무디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에서는 무디를 교사로 쓰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한 것인데, 아이들을 그렇게 많이 데리고 왔으니 교사로 임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없었던 무디는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일에도 충성한다.’라고 하셨으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큰일을 맡기실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마음을 다해 충성하는 이 무디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 무디를 미국 최고의 부흥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무디가 가는 곳마다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며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아벨이 그랬습니다. 아벨이 믿음을 갖게 되자 믿음이 없었던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에녹이 그랬습니다. 에녹이 믿음을 갖게 되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게 했습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삶을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힘겨워하며 신앙생활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힘을 공급받아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믿음으로 봉사하고 섬기고 충성하는 삶을 살되,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서 사는 사람처럼 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 우리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내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는, 주일날 교회에 오는 노숙자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돌아갈 때는 교통비 2,000원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밥도 먹고, 교통비도 받으려고 교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저도 전에 그런 광경을 본 일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성도들이 다 돌아간 후에, 사람들이 손에 주보 한 장씩을 들고 교회의 구석진 곳으로 몰려갔습니다. 저 사람들이 왜 저쪽으로 가는가? 라는 생각이 들어 지켜보았더니, 어떤 분이 그곳에 서서 주보를 확인하고 돈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옵니까? 돈을 타기 위해서 옵니까?

하나님이 믿음 주신 사람들은 돈을 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예배하러 교회에 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보수를 주지 않아도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섬기고 봉사하게 됩니다. 이런 삶이 바로 은혜받은 성도 됨의 표식입니다.

 

시편 45:1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성도들의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좋은 말이 나오고, 감사하는 말이 나와서, 그 입을 열기만 하면,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받은 은혜를 전해주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4:7절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실 때 경험하게 되는 기쁨은 농부가 곡식과 새 포도주를 풍성하게 수확하였을 때 갖게 되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라고 합니다.

 

역대 상 16:34절 말씀과 시편의 여러 곳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런 말씀들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신 사람들이 보이게 되는 가장 큰 특징은, 늘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비록 그 살아가는 삶의 여건이 어려워지고 힘들어진다고 해도, 자신에게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을 그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귀하게 보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이전보다 더 큰 믿음, 더 큰 은혜를 주셔서, 늘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찬양하고 늘 예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줍니까?

셋째,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기쁘게 자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서로를 축복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축복할 때는 그냥 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을 볼 때, 이런 성도들에게 상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대신 축복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십일조 드릴 결심을 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교회에 가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먼저 집에서 그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봉투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 마음에는 나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을 가지고 교회로 가는 그 길은 다른 날 교회에 가는 길과는 달랐습니다. 교회에 도착하여 준비기도 하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배드리는 그 시간도 왠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날 하나님과 교회와 하나가 되었다는 강한 유대감 속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제가 드린 십일조는 적은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뿌듯함은 그 무엇보다 컸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도 응답이라는 상을 주시고,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을 상으로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약한 사람에게 이렇게 권하지 않습니까? 성도님 힘드시겠지만 몸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도님에게 건강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상은 아마 마음의 평강일 것입니다. 이 평강보다 우리에게 더 큰 힘이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가까운 곳에 있는 어느 교회 목사님은 당회를 하다가 장로님들이 반대하면, 그날 당회의 휴회를 선언하고 메가폰 하나 들고 교회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서 전도한다고 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장로들은 기도 한번 해 보지 않고 경비가 많이 들겠네요.’ ‘제가 볼 때 큰 효과가 없어 보이네요.’라고 하면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나 혼자라도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전도하러 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전도하며 지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장로님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이켜 놓으셨는지, 그 다음에 당회를 할 때에는 장로님들이 먼저 목사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일을 진행합시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그 일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은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던 노아에게 하나님은 어떤 상을 주셨습니까? 7절입니다. 노아는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더니 주신 상이 무엇입니까? 육신 적으로는 이미 죽은 자 같았던 자신과 사라를 통해 12절 말씀을 보면,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셨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되면, 내가 믿음으로 살고 헌신한 만큼 시간이 허비되고 물질적인 손해가 나는 것입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손해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드리게 되면, 그 드린 것이 축복의 씨앗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히브리서 11장 말씀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3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도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히브리서를 쓴 저자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가 상을 받고 복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 사람들에 대해 다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은 믿음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합당한 상으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또 믿음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줍니까?

넷째,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줍니다.

 

히브리서 11:35 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8절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런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좋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놀라운 상이 예배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라는 더 좋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보다 더 못한 이 세상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세상을 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이 세상 나라를 포기했던 사람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이 세 친구가 있습니다. 또 구약시대를 살았던 많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 살았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이 주실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성도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인지가 무엇을 통해 구분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당하며 사는 고난받는 삶을 통해 구분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고난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성도입니다. 고난 중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고난의 삶이 그의 가정에 찾아왔을 때 욥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욥기 1:20-22절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기 2:9-10절입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창세기 19:24-2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땅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믿음을 가지고 살았지만, 욥이 아내가 목적하며 산 곳은 어디입니까?

믿음을 가졌지만, 롯의 아내가 바라보고 산 곳은 어디였습니까?

 

히브리서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다 믿음으로 이 세상보다 더 나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 보고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당하는 고난까지도 믿음으로 기쁘게 감당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참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사는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가장 귀한 것까지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믿음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고, 기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고, 하루하루의 삶을 믿음으로 헌신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귀한 것들까지 기쁘게 드리고 기쁘게 버릴 수 있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신앙이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이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이고, 이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신앙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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