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가 받은 복
누가복음 8:1-3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미리암’을 헬라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누이 ‘미라암’의 이름도 ‘마리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리암’은 이집트어 ‘미르’와 ‘얌’의 합성어입니다.
‘미르’는 여인, 애인,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고, ‘얌’은 야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미리암’은 ‘야훼의 여인’, ‘야훼의 애인’ ‘야훼의 사랑받는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철수와 영희같이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본 예수님의 모친의 이름이 ‘마리아’였습니다. 두 번째는,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막달라 지방 출신인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다음에 살펴보려고 생각하는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리아’도 있습니다. 네 번째는, 마가복음을 쓴 요한 마가의 어머니도 ‘마리아’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글로바의 아내이며, 시므온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도 있습니다.(마27:56) 이 글로바는 예수님의 부친이었던 요셉의 형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시므온과 예수님은 사촌 형제 사이였습니다. 여섯 번째는, 로마교회의 성도로 있었던 ‘마리아’도 있습니다.(롬16:6) 오늘 우리는 그중에서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을 받게 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처녀의 때 일곱 귀신이 들렸던 아주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그 일곱 귀신에게서 놓여나게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 삶이 변하고, 인생이 변하고, 생애가 변했던 아주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막달라 마리아’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고, 복을 받으며 산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은혜받은 것을 감사하며, 공생애 사역 중이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막달라 마리아가 받았던 복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첫째 막달라 마리아는 만남의 복을 받았습니다.
8:2절입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 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쪽 지역에 있었던 막달라 지방 출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려 아주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일곱 귀신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후 자신에게 그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섬기고 수종 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무엇이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하고, 고통스럽고 저주스러운 삶을 살게 했던, 일곱 귀신 들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귀신이 들려 고통당하고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구원해 주기 위해 막달라 지방까지 직접 찾아가서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을 돌이켜 상고해 보십시오.
평안한 삶을 살아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만나기를 사모하다가 만났습니까? 물론 이런 사람들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 수의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다 수의 사람들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삶 속에서 예수 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막달라 마리아도 같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가서 만난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려 있을 때, 일곱 귀신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예수님이 친히 막달라 지방으로 찾아가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만나야 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다양한 만남들을 가지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같이 좋은 만남을 가지고, 그 만남을 통해 복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잘못된 만남을 가지고, 그 만남을 통해 일생 고통당하며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막달라 마리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만남의 복이 없어도 그녀같이 복 없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모도 잘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 부모를 잘 만났다면 그 부모는 귀신 들린 딸을 ‘나 몰라라’하며 내팽개쳐 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십시오.
이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기 위하여 지금의 시리아 지방에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간구하고 간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의 부모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보려고 하는 마음도 갖지 않았습니다.
설사 부모는 잘못 만났을지라도 그 형제라도 잘 만났더라면 그 형제가 부모를 대신하여 도와주고 보살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그녀를 도와주고 돌보아 줄 형제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보다 더 힘든 삶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삶 속에서 사람들은 절망하게 됩니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부모도 잘 만나지 못했지만, 그 형제도 잘 만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저주스러운 만남이었던 일곱 귀신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하며 살지 못하고, 귀신에게 사로잡혀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보다 더 기구한 운명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청년 때 귀신 들린 여인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가끔 기도의 동산인 삼각산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그날도 산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쭈뼛이 서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앉아 있었는데 한 10미터 앞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더니 움푹 파인 땅에 어떤 처녀가 드러누워서 손에 빵 같은 것을 잡고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인데도 얇은 여름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하고 오리털 파카까지 입고 가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 여자는 귀신이 들려서 그 추위 속에서 여름 옷을 입고 떨며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귀신 들린 그 여자가 어떻게 돌변할지 경계심도 들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면 기죽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도 기죽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하나님이 그 처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그쪽을 보니 그 여자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귀신이 들려서, 씻지도 않고, 추운 것도 모른 채, 삼각산에서 살고 있었던 그 젊은 여자의 모습이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보살펴 주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산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 처녀의 처지가 이해됩니까?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런 몰골을 하고 살지 않았겠습니까?
머리는 감았겠습니까? 옷은 빨아서 입었겠습니까?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는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그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게 했던 귀신에게서 해방이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만나야 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형제를 만나고, 좋은 친구를 만났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잠시 잠깐은 세상의 낙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함께 그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해결하지 못한 죄의 문제를 짊어지고, 지옥에서 영원토록 처절한 형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좋은 부모는 만나지 못하고, 좋은 형제도, 좋은 친구도 만나지 못해서, 비록 그 살아가는 삶이 어렵고, 힘들고, 고생스러울지라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잠시 잠깐의 힘든 인생길을 끝마치게 되면, 그 앞에 천국의 영원한 안식이기 예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누리며 살 수 있는 최고의 복된 삶보다 천배, 만 배 더 행복한 삶이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멘.
이렇게 볼 때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이 복되고 의미 있는 것이 되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좋고 복된 것도 참 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만남인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만남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후 예수님을 통해 좋은 만남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녀는 이후 열두 제자를 만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찾아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또 그 이후에는 초대교회의 일원이 되어 교회의 유명한 사람들을 계속 만나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좋은 만남의 복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좋은 목사님들도 만나게 되고, 좋은 교회도 만나게 되고, 좋은 성도님들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를 잘 믿으면 믿음 안에서 남자들은 좋은 아내도 만나고, 여자들은 좋은 남편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이런 만남 들을 통해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의 최고의 복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났듯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좋은 만남의 복을 계속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복은 바로 만남의 복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복, 인생을 살면서 좋은 기회들을 만나는 복보다 더 복 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이 만남의 복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계속될 뿐 아니라, 여러분 자녀들의 삶에까지 계속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런 만남의 복을 누리며 살되, 매일, 매 순간, 가장 귀한 만남인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을 만나며 사는 이런 복이, 오늘 이 예배에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삶 속에 늘 있어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둘째 막달라 마리아는 섬김의 복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8:2-3절입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 나간 자 막달라 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12 제자에게 과도한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 곁에는 제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무 어려움도 없이 공생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따라다니면서 도운 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의 말씀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 다른 여러 여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로 구성된 전도대를 섬겼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마치 담임목사인 제가 늘 교회를 지키고, 교회에서 기도하고, 또 설교를 하니, 제가 혼자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우리 교회도 다양한 섬김 들을 통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주일마다 정리 정돈을 하고 교회 청소를 해 두어야 합니다. 또 주일 식사를 위해 식재료를 구입하고, 다듬고, 조리해야 합니다. 요즘은 차량 운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전에는 차량으로 성도님들을 모셔 오는 섬김도 있었습니다. 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도로 헌금으로 섬기고 헌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섬김 들은 교회가 유지되어 나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섬김 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그 전도대를 얼마나 열성적으로 섬겼든지, 그 섬기는 모습을 보고 시샘하여 악의적인 소문까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소문입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내연의 여인이라느니,’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과 은밀히 결혼을 했다느니’라는 음해하는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거짓으로 음해한 사람들보다 더 악한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대표적인 사람이 뉴스 공장 유튜브 김어준씨가 아닙니까?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던 더탐사가 아닙니까? 생태탕 의혹을 제기했던 김대업씨가 아닙니까? 거짓으로 여론을 선동하여 선거에서 이기고자 했던 이 사람들이 장차 어떤 심판을 받겠습니까? 정치적으로는 이용 가치가 있는지 몰라도 신앙을 가진 우리가 볼 때 이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과는 전혀 질이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섬겼든지 남편이 시기할 정도로 섬겼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지요. 주일은 물론 수요일, 금요일에도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었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가는 것을 보고, 예수 믿지 않던 그 남편이 오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남편이 생각하기를, 이 여자가 하는 행동을 보니 아마 교회 숨겨 놓은 애인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몰래 저녁 예배드리려 가는 부인의 뒤를 따라가 보니, 그 다니는 교회는 개척교회라 그 교회 목사와 아내가 단둘이 찬송하고 예배드리더니, 예배가 끝난 후에는 기도한다고 하며 불을 끄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그 남편은 예배당으로 뛰어 들어가서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집으로 가서, 막 두들겨 패고 난 후 더 이상 교회 가려면 이혼 도장을 찍고 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후 이 부인은 남편이 있을 때는 교회 나가지 못하고, 남편이 없으면 교회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장기간 출장을 가게 되어서 이 여인은 마음 놓고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일정이 바뀌어서 빨리 돌아오게 되었고, 그날 직장 동료들과 늦게까지 술을 먹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인과 아이가 집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남편은 ‘이 미친년이 남편 없다고 이제 아이까지 업고 교회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곧장 교회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남편은 교회까지 가기는 갔으나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는지라, 술이 취해 인사불성이 된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그 교회 목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그 교회 목사와 아내는 단둘이 예배드리고 기도하였는데, 남편은 교회 밖에 앉아서 자기 아내의 기도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아내는 목사가 기도를 마치고 나간 후에도 오랫동안 혼자 남아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아내가 울면서 기도한 내용이 남편의 건강과 남편의 직장생활과 남편의 삶에 하나님이 은혜 내려 달라는 기도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 아내는 제 평생소원이 남편과 함께 예수 믿고 싶은 것이라고 기도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그런 기도를 들으면서 남편은 갑자기 술이 확 깨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 머리채를 잡고 집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먼저 집에 돌아가서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을 더듬거리고 있는데, 그 남편이 그 아내를 보며 ‘그렇게 교회가 좋으냐?’ ‘그러면 이제 교회 다녀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아내가 교회에 열심인 것은 교회 누가 있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내가 자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자들이 약한 것이 바로 여인의 눈물입니다. 아내가 울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지 다 해 주고 싶어지는 것이 남자의 마음입니다.
이후 이 남편은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믿고 그 교회의 충성된 일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내가 마음을 다해 섬겼던 그 섬김이, 그 남편을 변화시켜서 주의 일에 열심이 있는 성도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섬기는 이런 섬김은 참으로 귀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받은 복이 바로 이 복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 섬김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 복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예비해 놓으신 사람들이 받게 되는 복입니다.
마리아의 섬김의 원리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전도대를 섬긴 것을 보면 무작정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섬김에는 일정한 섬김의 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의 섬김의 원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이것은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 제목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막달라 마리아는 먼저 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지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받은 은혜를 감사함으로 섬기는 이런 지적인 섬김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막달라 마리아는 몸으로, 삶으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의지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라면, 우리들도 친히 그 몸으로, 기도로, 삶으로, 물질로 섬기고 충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막달라 마리아는 눈물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감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섬기는 삶을 살 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안타깝게 여기는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눈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는 이런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지적으로, 의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예수님을 섬겼던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섬김은 바로 전인격적인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넷째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과 교회를 섬겼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섬김은 예수님을 섬기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섬겼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전에 예수님을 섬겼던 그 섬김의 마음으로, 이제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막달라 마리아의 섬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교회의 구성원인 목회자와 성도들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랑은 결국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예수님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고,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의 섬김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우선순위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 바꾸었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하나님보다 자기 자녀들을 더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하였던 엘리 제사장을 폐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우선순위에 따라 질서 있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그녀는 만남의 복을 받았습니다. 섬김의 복을 받았습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셋째, 막달라 마리아는 증인의 복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6:9절 말씀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보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8장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증인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증거를 듣고도 믿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막달라 마리아는 인류 최초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인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첫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이전까지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만남의 복은 받았고, 또 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예수님의 전도대를 섬기는 섬김의 복을 받고 있었지만, 부활을 믿는 신앙을 가질 정도의 믿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베다니 살았던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습니다. 나사로의 동생이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사와 부활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에게는 부활을 믿는 믿음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오빠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통해 부활의 표적을 직접 목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확신하고 있었던 이 베다니 마리아가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지 않고, 부활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왜 부활의 증인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베다니 살았던 마리아였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하신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평안히 집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베다니의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너무 좋아서 부활하신 주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덤에 가지 않았을까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베다니 마리아는 무덤에 가지 않았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부활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당시에는 여자들의 증언은 법정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여자들은 아무리 사실을 증언해도 소용이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자인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가 이 복을 받았습니까?
그 이유는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 진실 된 마음,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따르기 시작한 후에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너무나도 귀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참 일군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별로 좋지도 않은 머리를 가지고 잔머리를 잘 굴립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전혀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습니다. 초지일관 일편단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섬겼습니다.
비록 그 믿고 따랐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 희망이 없게 된 상황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막달라 마리아를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증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막달라 마리아를 메시야의 부활을 증거하는 첫 증인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한 믿음이 있거나, 특별한 섬김이 있거나, 특별한 헌신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 앞에서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믿음과 섬김과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한결같이 주님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다가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강림의 은혜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예수님이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부활하신 예수님을 세상에 전해주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교회같이 개척교회일 때는 하나님의 복 받을 기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을 보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은혜와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전에 있던 교회의 어떤 장로님이 청년일 때에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아직 산업 화가 되지 않았던 시대라서, 고등학교를 나왔으나 할 일이 별로 없어 집에서 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건축한다는 말을 듣고 마치 건축현장의 노동자처럼 교회에 가서 벽돌을 날라주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돈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일을 해 주면서 교회에서 주는 밥만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그렇게 개척교회를 섬기면서 늘 ‘하나님 우리 교회는 물질이 많이 필요한데, 제게 직장을 주셔서 교회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교회를 재정적으로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이 이 청년에게 을지로 공구상가에 취직할 수 있게 해 주셨고, 거기서 일하면서 예쁜 아내도 만나고, 교회에서 십일조를 가장 많이 하는 성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월급 생활로는 교회에서 십일조를 제일 많이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청년은 ‘하나님 제가 교회에서 십일조를 제일 많이 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이 공구상가 점포를 인수할 기회를 주셔서 자기 사업을 하게 되었고, 다시 교회에서 십일조를 제일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개척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면 다릅니다. 부자들도 교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십일조를 제일 많이 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즈음에 교회 장로로 세움을 받아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함께 교회 생활을 하면서 보니, 장로가 된 후에는 교회 전도사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졸업을 축하하러 성도들이 학교를 찾아가는데 그 모든 성도들의 식사대접을 그 장로님이 다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부장으로 계시면서 교사들을 위해서는 계절에 따라 옷과 넥타이 등등의 선물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 제가 그 교회 헌신 예배를 인도하러 갔을 때는 은퇴 장로님이 되어 계시면서도, 예배 후에 저를 맞이해 주시고, 개인적으로 특별헌금까지 해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섬김을 보고 인정해 주셨던 하나님이, 이 장로님의 섬김도 보고 인정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진실된 섬김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존귀한 성도로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런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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