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요한 계시록 1:3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마태복음 19:14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까? 어린아이들과 어린아이와 같이 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천국은 이런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지혜로운 사람이 들어간다.’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들어간다.’ 라고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높은 권세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간다.’ 라고도 말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천국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상태와는 무관하게, 어린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고, 어린아이와 같이 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이 가진 그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고, 또 그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된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계신 것입니까?
어린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가에는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어여뻐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맘 착해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이 찬양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천국 가게 된다고 합니까?
천국은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 가는 나라이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가는 나라라고 합니다. 성경의 증거도 이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3: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마태복음 19:14 절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그 어린아이들과 같이 된 성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같이 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하니 우리는 성인들과 어린아이들을 구별시켜 주는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성인들과 어린아이들의 가장 구별되는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성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그 어떤 것을 어린아이들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을 천국에 가게도 하고 지옥에 가게도 한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보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까?
먼저 살펴볼 것은 성인들의 특징입니다.
성인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과정속에서 정립해 온 뚜렷한 자기 주관과 자기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나와 다른 견해와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권면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을 보십시오.
여당에 있는 사람들이 야당이 하고 있을 행위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하고, 야당에 있는 사람들은 여당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하지 않습니까? 성인들은 자기 주관이 아주 뚜렷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전해주신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다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자기 견해나 자기 주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면, 그 가르쳐 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면서 성장해 갑니다. 어린아이들의 중요한 특징은 부모나 선생님의 가르침에 토를 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른들과 어린아이의 가장 다른 차이점일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어린이들의 마음 상태는 마치 백지와 같다고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백지와 같은 마음에 무슨 그림을 그려주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가 가지는 가치관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백지와 같은 그 아이의 마음에 무슨 그림을 그려주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장래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지식을 배우고,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마태복음 19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천국이 어떤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십니까?
어린아이들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린이와 같이 자기주장과 자기 견해를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 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이런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럴지라도 자기주장 자기 견해가 분명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기 어렵고, 거듭날 가능성이 적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심히 어렵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아집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사람, 옳은 말이라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즉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들어가기 쉽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쯤 정리하고 이 마태복음 19장의 말씀을 요한 계시록 1:3절 말씀에 적용해 보면, 어떤 사람들이 말세에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요한 계시록 1:3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려면
첫째, 어린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고 쓰지 못했습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은 특권층에 속하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경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와 같이 개개인이 성경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인쇄술이 발달해서 싼값에 대량으로 책들을 찍어냅니다.
그래서 책값이 싸지고, 성경도 비싸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쇄술이 발달 되기 이전에는 잘 가공한 가죽에 성경 말씀을 필사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을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과 경비가 들었습니다.
구약시대 근동 지방의 강대국이었던 이집트가 국책사업으로 우리가 70인 역이라고 부르는 구약성경을 번역 필사하도록 한 일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종이가 없었기 때문에 짐승의 가죽을 가공하여 종이 대신 썼습니다. 그 가공한 가죽 조각을 연결하여 두루마리를 만들고, 이 두루마리에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두루마리, 출애굽기 두루마리, 레위기 두루마리와 같은 형태로 성경을 기록해 보관했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필사하려면 얼마나 많은 짐승의 가죽이 필요했겠습니까?
양질의 많은 가죽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짐승을 잡아야 했겠습니까? 또 유대인 공동체의 요청을 받고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는데, 여기에 들어간 경비와 인건비가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대국이었던 이집트도 국가적인 사업으로 이 70인을 70-80권 번역하는데 그쳤습니다.
성경 한 권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만든 성경을 개인이 소장할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은 국가적인 도서관이나 성전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였던 회당에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인들은 성경을 만져보는 것조차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성경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까?
성전이나 회당에 보관되어 있는 성경을, 백성들이 모일 때 제사장이나 회당 장들이 낭독해 읽어주었고, 백성들은 제사장들이나 회당 장들이 낭독해 주는 성경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성경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모든 국가가 국민들에게 의무교육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인쇄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여서, 성경을 대량 생산하게 되므로 그 값이 비싸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성경을 사서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경을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환경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성경 말씀을 한 권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성경을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얼마나 즐겨 읽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알아보려면 그 사람이 성경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됩니다.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예언된 말씀대로 사셨으며, 또 그 예고하신 말씀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셨고, 지금은 부활 승천하여 하늘나라에 가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신앙은 철저히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능력과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라 하면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성경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늘 성경을 가까이 두고, 성경을 즐겨 읽으며, 성경 말씀을 통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날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낭독이 있습니다. 낭독은 소리 내어서 읽는 방법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소리 내어서 어떤 글을 읽을 때, 그 의미를 잘 이해하게 되고, 또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조상들은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고 배울 때 소리 내어서 읽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둘째, 묵독이 있습니다. 묵독은 소리를 내지 않고 눈으로 읽는 방법입니다. 눈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가는 것입니다. 요즘은 책을 읽는데 이 묵독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셋째, 정독이 있습니다. 정독은 묵독과 같이 소리를 내지 않고 읽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정독은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가면서 그 내용과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읽은 것입니다.
넷째, 속독도 있습니다. 속독은 많은 양의 책을 빠른 시간에 읽을 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속독 때에는 한 글자 한 글자를 다 읽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단어나 중요한 문장을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다섯째, 손독도 있습니다. 손독은 손으로 줄을 치면서 또는 중요한 부분에 표시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손독을 하면 한번 읽고 난 후에 그 글을 다시 볼 때, 그 읽었던 글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섯째, 필독도 있습니다. 필독은 성경을 손으로 기록하면서 읽어나가는 방법입니다. 저도 청년의 때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을 한번 필독하면서 읽었습니다. 필독은 많은 시간이 소요 되지만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지지 않고 읽어보고 싶을 때 사용하면 좋은 방법입니다.
일곱째, 묵상도 있습니다. 묵상은 눈으로 글을 보며 읽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글을 마음으로 되새김질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다양한 방법 들중 어떤 방법으로 성경을 읽든지 최소한 성경 말씀 전체를 적어도 한 번 이상씩은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성경의 중요한 말씀들을 암송하고 마음으로 묵상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마음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장점이 많습니다.
성경이 없어도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환경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24시간 내내 성경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암송하여 마음으로 읽을 때 주어지는 유익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깊은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본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의 경험들을 다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셔서 이 깊은 은혜의 체험들을 해 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성경을 읽든지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읽게 해 주려고 시도된 방법이 바로 QT입니다. QT는 매일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한 30분 정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루 중 어느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나만의 은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QT를 하면서 성경을 읽어도 괜찮습니다.
묵상으로 성경을 읽어도 괜찮습니다. 그 방법이야 어떻든지 관계없이 매일 성경 읽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세에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보면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이마에 붙이고, 손목에 매어 두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늘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삶,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경책 여러 권을 사서 안방에도 두고, 거실에도 두고, 부엌에도 두고, 심지어 화장실에도 성경을 비치해 두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성경을 늘 가까이하며 시간 나는 대로 성경을 읽기 위해서겠지요.
우리가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성경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는 삶이 바로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성경을 가까이하면서 읽는 삶이 바로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삶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되 어린아이가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듯이, 그렇게 겸손한 마음, 집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듯이 그렇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듯이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말씀이 없이 사는 삶과 늘 말씀과 함께 사는 삶 중에 어떤 삶이 더 복된 삶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성경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만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려면
둘째, 어린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과거에는 성경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개인이 소유할 수도 없었고, 자기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은 어떻게 성경 말씀을 접하였습니까? 유대인들은 회당 장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했고, 성도들은 교회 목사님들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성경을 읽어주는 사람들은 교회 목회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들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목회자들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을 들을 때 어린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라는 이 말씀은, 단순히 ’귀로 듣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라는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우리가 말씀을 귀로 듣고, 그 들은 말씀의 내용은 정신적으로 이해하여서, 하나님이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수용하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수용하는 것이 말씀을 듣는다는 참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의 제사’를 연속적으로 드렸습니다.
이 제사를 드리는데 몇 날 몇일이 걸렸는지 모습니다. 지극정성이 담긴 솔로몬의 이 섬김에 하나님이 감동하셨는지 그 밤에 하나님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습니까?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 우리가 사용하던 성경에서는 ‘지혜’를 구했다고 번역하였고, 새로 번역한 성경에서는 ‘듣는 마음’을 구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런 솔로몬의 행동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솔로몬의 마음,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하는 솔로몬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그 소원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인생의 참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복입니다. 이것보다 더 복된 삶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물론 저와 같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사람들도 복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읽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게 될 가능성이 아주 많아집니다.
목회자들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사는 복이 아니겠습니까? 성도들의 복은 무엇입니까? 담임 목회자를 통해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마음’을 구했던 솔로몬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지혜로운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개미를 보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것으로 사람들을 교훈하기 위해서 쓴 것의 일부가 바로, 잠언서와 전도서와 아가 서입니다.
우리가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와 역대 서를 읽어보면, 솔로몬이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을 보든지, 자연을 보든지, 동물들을 보든지, 식물들을 보든지, 세상 역사를 보든지, 어떤 일, 어떤 사건들을 보든지, 하나님이 주신 듣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이 듣는 마음으로 지혜로운 재판을 했고, 지혜로운 가르침을 베풀었고, 그 지혜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이 솔로몬의 명성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결과 에티오피아의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그 먼 곳에서 신하들을 이끌고, 많은 보물을 예물로 준비하여 솔로몬을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신명기 6장의 쉐마의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그 듣고 깨달은 말씀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이런 듣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듣는 마음을 주신 사람들이 하며 살았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그 받은 듣는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판단력을 배우고,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으며 살았기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늘 들으므로 나의 명철함이 스승보다 나으며, 노인보다 승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알아듣는 것입니다.
이 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다가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사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려면
셋째, 어린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 가운데 어떤 아이가 장래성이 있는 아이입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아이입니까? 아니면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아이입니까?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아이가 장래성이 있는 아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꾸어서 어떤 성도가 장래성이 있는 성도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성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성도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성도가 장래성이 있는 성도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언제 나타나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타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할 때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 주신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보십시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실 때 빛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있으라.’ 말씀하실 때 하늘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땅이 드러나라.’ 하시자 바다와 땅이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나 그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일정하게 오는 이유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그 경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름에는 장마가 오고 태풍이 오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언제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실 때 어떻게 나았습니까? 예수님이 ‘네 자리를 들고 일어가라.’ ‘실로암 못에 가서씻으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병 고침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참 신앙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분해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참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참 신앙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말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 계획의 지배를 받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분을 받은 목회자들도 그 전한 말씀대로 살아야 복이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전해주는 말씀을 들으며 살아가는 성도들도 그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어떤 직분을 받고, 그 어떤 능력을 받았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법 또는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 법을 지키고 살면 평안합니까? 세상 법을 어기고 살면 편안합니까? 세상 법을 지키며 살 때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법을 어겨서 범법자가 되면, 법의 제재를 받고, 법에 따라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비록 대통령이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받고 재판받고 있는 것이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어기면 행복도 평안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인이 되어, 죄의 심판과 형벌의 두려움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간음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삶을 살면, 우리 개인도 행복하고, 부부 사이에도 금실이 좋아지고, 자녀는 그런 부모 아래서 평안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간음하고 바람을 피우게 되면, 먼저 자신의 영혼도 피폐해지게 되고, 부부 사이는 깨어지고, 그렇게 관계가 깨어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자녀들이 같이 불행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보면 예수님이 긴 설교의 말씀을 하고 난 후에, “그러므로”라고 결론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시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도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세운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집을 어디에 세우시겠습니까?
모래 위에 세우시겠습니까? 반석 위에 세우시겠습니까? 어떤 시편 기자는 “나로 하여금 주의 법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여 전심으로 지키리이다”라는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은 말씀을 전심으로 지켜 행하고자 했던 이 시편 기자의 기도가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며 살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는 그 깨달은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야, 그 말씀이 우리를 주관할 수 있게 되고, 우리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들을 구분할 때, 그 사람이 부자냐? 가난한 자냐? 많이 배운 자냐? 배우지 못한 자냐? 권세가 있는 자냐? 아무 권세도 없는 자냐? 등등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사는 자냐? 는 것으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요한 계시록 1:3절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말세에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그 깨달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이 누리며 사는 복은 어떤 복입니까?
이 복은 세상 적인 복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며 사는 차원 낮은 복이 아닙니다. 이 복은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에 참여하여, 영원토록 누리며 살아가는 복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복이고 영생의 복입니다.
이 복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복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이 복을 그 말씀을 읽는 사람, 듣는 사람, 그 주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듣고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을 모두 다 받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 우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그 깨달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켜 행하며 살아갈 때, 이렇게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복을 주십니다.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복을 주십니다.
우리 모두 이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그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복,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복,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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