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가 당부한 말
(부재 : 종말의 날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앙)
요한계시록 14:6-13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말씀에는 세 천사가 당부하고 있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종말의 날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신앙에 대한 당부의 말씀입니다.
종말에는 세 가지 종말이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의 종말입니다.
이 개인의 종말은 개개인의 죽음을 말합니다. 이때는 개인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히브리서 9:27절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때는 개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역사의 종말입니다.
역사의 종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지는 종말입니다(요한계시록 19장). 이때는 죄악 된 이 세상나라에 대한 불 심판이 있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3:7절입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셋째는 우주의 종말입니다.
이때는 지상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 즉 선인과 악인들의 부활이 있고 그 모든 사람들은 그 살았던 선악간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심판을 흰 보좌 심판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0:11-12절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천사가 당부하고 있는 이 말은 두 번째 심판인 역사의 종말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한 당부의 말입니다.
세 천사의 당부의 말
첫째 천사가 당부한 말
6-7절입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첫째 천사는 모든 민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는 날이 이르렀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 어떻게 영원한 복음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전해 주신 복음은 언제나 두 가지 서로 다른 결과 즉 구원과 심판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결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 질 때 그 복음의 말씀을 전해 듣고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그 복음의 말씀을 전해 듣고서도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의 말씀에 반응하는 각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구원과 심판으로 그 운명이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첫 번째 천사가 이 당부의 말을 하고 있는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창세기 3:15절에서부터 전해 오신 그 복음의 말씀이 성취될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곧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누누이 말씀해 오신 복음에 대한 반응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라는 판결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에 의해 선언된 구원과 심판은 이제 영원히 지속되어지는 구원이고 영원히 지속되는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영원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복음이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신앙은 어떤 신앙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가지고 있는 신앙을 보고 성경에 누누이 약속해 오신 구원과 멸망을 가르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천사는 이제 사람들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게 될 영원한 복음으로 사람들을 심판할 날이 이르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당부한 말
8절입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둘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이 큰 성 바벨론은 이 세상 나라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말씀이 바로 큰 성 바벨론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문명을 세워오고 문화를 발달시켜 오던 이 세상 나라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워 보입니까?
이 세상 권력이 얼마나 힘이 있어 보입니까?
이 세상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경이로워 보입니까?
이 세상의 의학의 발달이 얼마나 진보를 이루고 있습니까?
오늘날 개발된 항암제는 전처럼 부작용이 많은 독한 약물이 아닙니다.
면역 세포를 혈관 속에 주입하여서 그 면역 세포가 스스로 암을 찾아가서 파괴시켜 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다 해석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병이 발생하기 쉬운 유전자 고리를 가지고 있으면, 가위질을 통해 그 유전자를 오려 내어서 특정한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오늘날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더 완전한 유전형질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한 예가 바로 동물들의 복제일 것입니다.
오늘날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을 복제해 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요즘은 컴퓨터의 발달로 무엇을 직접 해보지 않고서도 그 시작과 과정과 결과까지 예측해 내는 시대입니다. 요즘은 전쟁을 직접 하지 않고서도 그 전쟁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와 피해 상황을 예측해 냅니다. 그래서 미국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하게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해 내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많이 일어나고 있는 지진도 그 규모에 따라 당하게 될 피해 상황을 곧 바로 예측해 냅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무역전쟁에서 승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미국이 승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미국은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중국과 무역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을 예측하고 그것을 토대로 무역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이룩해 가려고 하는 문화와 문명은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날은 하늘에서는 비행기, 바다에서는 배, 땅에서는 자동차의 이동이 정교하게 예측되고 통제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을 추적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레이다, 위치 추적 시스템, CCTV 등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자와 물류의 이동이 시의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 경제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룩한 이 경이로운 문명 세상인 바벨론 제국을 하나님이 심판하심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고 합니다. 무너지고 파괴되고 그래서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파도가 칠 때 일어났다가 곧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이, 아침에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는 아침 안개와 같이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파괴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 천사가 이 말씀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장차 무너지게 될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소망을 둘 곳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이 땅이 아닌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것을 아는 성도들은 이 땅이 아닌 하늘 즉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전기기술자로 살수도 있고,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자로 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전기 기술자로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이 땅에 세상에 물질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고 사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목회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땅에 소망을 두고 목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 하며 살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며 살든지 간에 그 사람이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의 말씀은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한 산에서 마태복음 5-7장까지의 산상설교의 말씀을 하신 후에 7:24절에서 이렇게 정리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라고 하시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는 날이 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는 날’은 어떤 날입니까?
이 날은 바로 죄악 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는 이 심판의 날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합니까? 무너질 바벨론 성과 같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결코 무너지지 않을 도성,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 그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마태복음 7:24절에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한 자’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의 산상에서 설교하신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 는 어떤 사람입니까? 땅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태복음 7장의 예수님의 말씀의 주 강조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그 약속하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삶에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삶의 행위에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행위에 강조점을 두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주된 강조점은 믿음 안에서 그 사람이 소망하며 사는 곳이 어디냐 하는 것에 참 강조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아멘. 이것이 둘째 천사가 당부한 말씀의 내용입니다.
셋째 천사가 당부한 말
9-12절입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서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세 번째 천사의 말을 요약하면 ‘짐승에게 경배하지 말라.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 믿는 자이든지 믿지 않는 자이든지 –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그 사람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과 유황으로 불타고 있는 지옥에서 밤 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짐승을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어떤 환난을 당한다고 합니까?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죽인다고 합니다. 13:15절입니다.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13:17절입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그렇다고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이 표를 받으면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짐승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짐승의 표도 받지 않으면 죽이고 매매를 못하게 합니다.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렇게 해도 살지 못하고 저렇게 해도 살지 못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가 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짐승에게 잡혀서 죽거나 굶어 죽겠습니까? 아니면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고 잠시 잠깐 살다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으시겠습니까?
이 선택은 각자가 해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살라고 가르친다고 누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교훈을 한다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12절 말씀을 보면 ‘성도들의 인내’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이 때 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라면 믿음으로 인내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믿음의 인내에 대한 말씀이 로마서 5:3절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되는 이 환난의 시대에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보여주어야 할 신앙은 인내하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에서는 환난은 인내로 이겨 나가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인내하는 믿음으로 환난을 이겨나가면서 받게 되는 것이 연단이라고 합니다. 마치 용광로에서 금을 연단해 내듯이, 철을 연단해 내듯이 그렇게 순수한 신앙을 연단해 내야 하는 때가 바로 이 환난의 때라고 합니다. 이렇게 연단을 받아 순수한 신앙을 연단해 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하늘 소망이라고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바로 그 소속을 하늘에 두고 살아가는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속한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종말 시대 복 있는 성도들
그리고 이어지는 13절 말씀에서는 종말 시대 복 있는 성도들에 대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은 종말 시대 복 있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에 살펴본 바 있는 요한 계시록 1:3절이 바로 그 첫 번째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리고 그 두 번째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록 14:13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이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그러면 이 말씀이 전해 주고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대 이후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셋째 천사가 한 말을 보면 이 시대는 우리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살펴본 두 짐승 즉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등장한 시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 거짓 선지자는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 때 적그리스도는 세계 통합 정부의 수장이 되어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 백성이 된 표시로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을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이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다 죽이고, 거절하는 사람들은 매매를 하며 살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런 시대에 교회는 어떻게 지상에 존재하고 생존하게 된다고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예비 처로 도망을 가고 피난을 가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으로 생존하게 되는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13절 말씀과 같이 주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첫째는 예비 처에 도망을 가서 믿음으로 살다가 자연적으로 죽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미처 예비 처로 도망을 가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발각되었지만 순교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미처 예비 처로 도망을 가지 못하고 숨어 살다가 양식이 떨어졌으나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13절 말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지키다가 죽는 성도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반대로 이런 시대에 복 없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부인하게 되는 배도자입니다. 아마 살기 위하여서 현실과 타협하거나, 신앙을 버리는 복 없는 성도들이 많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런 시대 하나님이 예비 해 두신 예비 처로 피난하여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며 믿음으로 살아남아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를 가지고 휴거하여 올라가는 신부된 성도들이 되든지, 아니면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다가 순교하든지 해야 합니다.
이 때 예비 처로 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아남아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휴거 하게 되지만, 예비 처로 가지 못하고 이 세상 속에 남아 있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는 방법은 오직 순교 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에는 타협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남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믿음을 지키며 순교하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 한 이레 중에 후 삼년 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준 세 천사의 당부의 말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천사는 이 때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를 경배하는 신앙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둘째 천사는 이 때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신앙은 무너지게 될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성도가 되라고 합니다. 셋째, 천사는 이 때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인내하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다가, 주 안에서 죽는 성도들이 참 복 있는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때까지 살아 있게 된다면 예비 처로 도망을 가서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남게 되는 성도, 혹 예비 처로 미처 가지 못해서 잡혀 죽게 된다면 주 안에서 죽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과 삶이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과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 예언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옷 입은 무리들 (0) | 2021.03.14 |
---|---|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 (3) | 2021.03.07 |
땅에서 나온 짐승 (0) | 2018.09.22 |
바다에서 나온 짐승 (0) | 2018.09.20 |
환난 날의 교회와 하나님의 예비 처 (0) | 2018.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