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예언서

흰 옷 입은 무리들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1. 3. 14. 14:21

흰옷 입은 무리들

요한계시록 7:9-17

 

1. 지난 주 복습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이 누구인가? 두 증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144,000두 증인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특정한 시대, 특별한 사명을 받아 사역하게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활동하게 되는 시대는 언제입니까?

요한계시록으로 말하면 나팔 재앙이 이 세상에 떨어지는 시대입니다. 다니엘서로 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해 주신 70이래 중에 마지막 한 이래의 기간입니다. 종말 시대로 말하면 7년 대 환난기간 중에 전 3년 반에 해당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미리 말씀해 오신 종말시대가 도래했음을 세상에 알리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맞이할 성도들을 준비시키고, 예비하는 일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4-5절 말씀을 보면, 아주 엄격한 자격 조건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교회시대인 지금은 하나님이 그 오른 손에 주의 종들을 붙잡고 사역하는 시대입니다.(1:20)

지금 주의 종들에게는 이렇게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나아오는 사람들 중에서 택하시고 부르셔서 사역해 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심지어 맹세하며 저주까지 한 베드로도 주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도 바울도 주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말 시대가 오면 다릅니다.

그때는 더 이상 지금의 목회자들을 통해 사역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때는 전에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도 했듯이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교회가 배도하는 시대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목회자들이나 지금의 교회 시스템은 쓸모없게 됩니다.

 

코로나 정국이 강타하고 있는 지금도 벌써 교회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 시대로 들어가는 인 재앙이 떨어져서, 미혹이 일상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계의 이상이 생기고 기근과 경제적인 공항 상태가 되고 지금의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전염병, 인류 1/4을 죽일 정도의 전파성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가 되면 지금의 목회자들과 교회 시스템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 시대는 끝이 나고 인류 역사에 남은 마지막 한 이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다시 예언하는 사역을 할 사람들이 바로 144,000입니다. 전에 12제자를 부르셔서 사명을 주시고 증인으로 삼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종말 시대에도 하나님의 종 144,000명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셔서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두 증인들입니다.

 

물론 지금의 목회자들 중에서도 이 증인의 사명을 받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회자가 되었든지 평신도가 되었든지 시대가 특별하기 때문에 특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엄격한 자격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자격 기준에 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 중에서는 그때가 오면 이렇게 하나님의 선택받아 일할 사람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들이 나가서 사역하는 모습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이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이것은 지난주의 복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나왔는데 이 흰옷을 입고 나온 큰 무리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 흰옷 입은 큰 무리

 

여기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어 왔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흰 옷 입은 무리를 바로 앞에 나오는 144,000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성경을 모두 다 상징적으로 해석하여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둘째는, 앞에 나오는 144,000명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이 사람들은 구원받은 유대인들로 보고, 흰옷 입은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종말시대 환난 가운데서 구원을 받아 나온 이방인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 사람들은 앞에 나오는 144,000은 유대인의 구원 받은 총 숫자이고, 뒤에 나오는 흰옷 입은 큰 무리는 전 세계에서 흩어져 있는 신약 교회의 구원 받은 성도들의 총수라고 보았습니다.

 

셋째는, 흰옷 입은 무리들을 환난의 때 등장하게 되는 적그리스도 곧 짐승에 의해 순교 당한 사람들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흰옷 입은 큰 무리는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데, 이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 가서야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후의 연관성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이 흰옷 입은 무리들을 두 증인의 증거 사역의 열매로 형성되어 나오는 성도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로 보는 견해입니다.

 

다섯째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공중으로 휴거된 성도들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견해가 맞는 것입니까? 본문을 살펴보면서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9-10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 말씀을 보면 첫째, 이 사람들이 어디서 나왔다고 합니까?

9절입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나왔다고 합니다. 그 뜻은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백성, 모든 방언 온 세상’ ‘전 세계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5:9, 13:6-8, 17:15)

 

이렇게 보면 이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9절입니다. ‘...흰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옷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옷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입었던 옷은 대략 네 종류가 있었습니다.

 

히마티온입니다.

이 옷은 담요 같은 두꺼운 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옷입니다. 이 옷은 겉옷입니다. 우리가 지난 달 마지막 주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라는 말씀을 살필 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가서 가지고 오라고 했던 겉옷이 바로 이 옷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겉옷을 낮에는 옷으로 입고 밤에는 이불로 사용하였습니다.

 

키톤입니다.

이 옷은 겉옷 안에 입었던 속옷을 말합니다. 하마티온과 키톤 이 두 가지 옷은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입었던 평상복들입니다.

 

클라미스입니다.

이 옷은 짧은 외투 혹은 망토라고 할 수 있는 옷입니다. 이 옷은 군대의 장군, 높은 지위에 있는 행정장관, 왕들이 걸쳐 입었던 외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옷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며 희롱할 때 입혔던 바로 그 옷입니다. 이 옷은 오늘날도 입고 있는데요. 로마카톨릭의 교황이나 추기경들이 모일 때 짧은 조끼를 입고 나오는데 바로 그 조끼가 이 옷입니다.

 

스톨레입니다.

이 옷은 상류층의 사람들이 가문의 행사 때와 그 같이 아주 특별한 날에 입었던 독특한 예복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주 비싼 옷으로서 가문의 명예를 상징하기 위해 입었던 옷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그 둘째 아들을 맞이하면서 그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라고 할 때 아버지가 말한 그 제일 좋은 옷이 바로 이 스톨레입니다.

 

아버지는 가문의 중대 행사가 있을 때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서 입었던 그 옷을 거지꼴로 돌아온 아들에게 입히라고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아버지는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 아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7장에서 나오는 이 흰옷은 바로 스톨레입니다.

흰옷은 차라리 흰 예복으로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예복을 입고 나왔다.고 합니다.

 

예복은 아무 때나 입는 옷이 아닙니다.

평상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옷은 가문의 경사나 축제가 있을 때만 입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도 입지 않는 해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7장에서 이 흰 예복을 입고 나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여기 입다.’ 라는 단어 페리발로는 현재 완료형입니다. 그 뜻은 이 사람들은 이 흰 예복을 지금 입고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 이 옷을 입었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이 흰 예복을 입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흰 예복을 언제부터 입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이 예복에 대한 말씀이 신약성경에 아홉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2, 누가복음에 2,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5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38-40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상시에 그 가문의 문양과 가문의 독특한 장식을 단 긴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다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경고하셨습니다. 여기 바리새인들이 입고 다녔던 옷이 바로 스톨레입니다.

 

마가복음 16:5절에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무덤 안에 천사가 있었는데 이 천사가 입고 있었던 옷이 바로 스톨레입니다. 천사는 그 입고 있는 이 거룩한 예복을 통해서 자신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천상의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었습니다.

 

또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입혀 준 옷이 바로 스톨레입니다.

 

이 동일한 옷이 요한계시록 6장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9-11절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6:11절에 나오는 흰 두루마기가 바로 스톨레입니다.

하나님이 순교자들에게 주신 특별한 옷이 바로 스톨레였습니다.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에 있으면서 이 예복을 받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요한계시록 7:9절 말씀을 보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즉 전 세계에서 그 수효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예복을 입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두 말씀 즉 요한계시록 6장과 7장의 말씀을 연결시켜 보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순교한 순교자들이 6장에서 예복을 받아 입어서, 7장에서는 그 예복을 입고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 사람들은 누구라는 것입니까? 아벨 때부터 종말시대까지 믿음 때문에 순교한 순교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문맥의 흐름 상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까?

예복은 모든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예복은 하나님이 특별히 순교자들에게 주셨고, 그러므로 순교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예복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흰옷을 입고 나온 사람들을 두 증인의 증거를 듣고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회개하고 나온 종말시대 성도들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사람들이 종말의 환난의 시대 자신들에게 믿음을 주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10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흰옷을 입고 나온 큰 무리는 종말시대 초기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종말시대 중기에 적 그리스도가 그 본색을 드러내는 때에 성도들은 예비 처로 도망해야 합니다. 이때 성도들의 모습을 12장에서는 해를 옷 입은 교회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시편 84:1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 입은 교회는 하나님으로 옷 입은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종말 중기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처소에서, 하나님으로 옷 입고, 하나님의 보호와 양육을 받게 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장에서는 흰 세마포 옷을 입고 나온 성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입니다.

그에게 빛나고 흰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였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이 말씀을 보면 환난 후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은 흰 세마포 옷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흰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옷이 이 흰 세마포 옷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입어야 하는 옷은 두 가지입니다.

이사야서 61:10절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옷은 속옷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입는 옷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의의 겉옷은 우리가 거룩한 삶의 행실을 통해 계속 입고 있어야 하는 흰 세마포 옷을 말합니다. 이렇게 이사야서는 속옷은 구원의 옷이고, 겉옷은 행위의 옷이라고 구분해 주고 있습니다.

 

옷과 관련된 우리의 삶을 보면

 

모든 성도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구원의 흰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의 흰옷을 입는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와 수치를 가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옷은 성도들도 입어야 하고, 주의 종들도 입어야 하고, 두증인들도 입어야 하는 옷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몸을 숨겼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짐승을 죽이시고, 그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이때 죽은 짐승은 우리 주 예수님을 예표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당시 아담과 하와가 입었던 옷은 하나님이 보내 주실 메시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믿음으로 입었던 흰옷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흰옷을 입음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의 문설주에 발려지는 것입니다. 이 피 흘림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게 되고, 우리의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것을 중생이라고도 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함을 받음이라고도 합니다. 이 은혜를 입은 사람들만 거리낌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아멘

 

그리고 이후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삶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3:14절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행함으로 그 믿음을 보이며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그 다음에 입게 되는 옷이 바로 빛나고 흰 세마포 옷입니다.

요한계시록 19:8절입니다. 그에게 빛나고 흰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였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그러면 옷이 희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성경은 옳고 의로운 그 행실을 흰옷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옷은 예복이며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입혀 주는 옷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빛나고 흰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게 하는 우리의 행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만 강조하지 않고 언제나 믿음의 행위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야고보 사도는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이 믿음을 온전케 한다.’라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해 주시고 빛나고 깨끗한 흰 세마포 옷 즉 혼인 잔치에 입을 예복을 입혀 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이 신부된 성도로서 혼인 예식을 치룬 아내 된 성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옷을 더럽힌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사데교회 성도들은 몇 명을 빼놓고는 모두가 다 옷을 더렵혔다. 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4-5절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그러면 옷을 어떻게 더럽히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우리들의 행위가 온전하지 못하게 되면 그 입은 옷이 더럽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옷이 더럽혀졌으면 다시 빨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14절에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죄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여야 하고, 지은 죄를 회개하는데 얼마나 민첩하여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지은 죄를 회개하며 두루마리를 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지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그 죄를 먹고 마시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차 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갑니까? 그 죄를 회개한 죄인들이 가게 됩니다.

장차 어떤 사람들이 지옥갑니까? 그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사는 죄인들이 갑니다. 차이는 이것뿐입니다. 그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았느냐?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살았느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죄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은 죄를 회개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보다 죄에 대해 예민하며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늘 회개하는 삶을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사느냐?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사느냐?의 차이가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예 을 벗어 버린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17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면 옷을 벗어버렸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옷을 다시 사서 입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18절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벗은 옷을 다시 사서 입을 수 있습니까?

이사야서 55:1절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은 돈으로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옷을 벗어 버렸으면 다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옷을 다시 사서 입어야 합니다. 한번 믿음에서 떨어진 것을 회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울지라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다시 나아가는 길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19-22절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사야서 55: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이사야서 55:6-7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런 말씀들을 붙들고 은혜를 구하는 방법 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옷을 벗어 버렸으면, 그래서 다시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의의 옷을 입으려면 회개하고 믿음으로 돌이키는 방법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혼인 잔치

 

요한계시록 19:7-8절의 말씀을 보면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가까웠고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음으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러면서 9절 말씀에서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혼인 잔치를 보면, 어린 양이 있고, 어린 양과 혼인하는 신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혼인 잔치에 초청(invited)을 받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11-14절입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장차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하늘에서 열릴 것입니다.

이때 신부된 성도, 아내로 준비된 성도들이 입고 참여해야 할 예복이 바로 요한계시록 7:9-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스델라곧 예복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렇게 볼 때 요한계시록 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도들은 종말 초기의 성도들이고, 1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해 입은 성도들은 종말 중기의 성도들이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성도들은 종말시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성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성도들이 예복을 입고 천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아내될 성도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이 이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고, 천사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들도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5절입니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이렇게 볼 때 종말 시대를 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인 즉 사명의 인을 받고 증인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이 되든지, 둘째는 종말 시대를 믿음으로 이기고 나오는 흰옷 입은 성도들이 되든지 해야 합니다.

 

3. 이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왔습니까?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그 숫자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왔다고 합니까?

 

첫째,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부채 살처럼 곧게 뻗어 있는 종려나무 잎은 찬란한 빛을 상징하며 승리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또 종려나무는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풍요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종려나무 70주가 있는 오아시스에서 안식과 쉼을 주셨습니다. 또 종려나무는 찬양하는 나무입니다. 종려나무 가지가 하늘로 곧게 뻗은 것처럼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영광을 찬양함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찬양하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 앞에 서서 찬양하였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믿음으로 나온 성도들로서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을 향하여 이런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이 구절을 기초해서 만들어진 복음송이 비전입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 받았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사랑 강 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 받고 주 경배 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셋째, 24 장로와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24장로가 요한에게 질문합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요한이 대답합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그러자 24장로가 이 흰 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해 설명하여 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이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이렇게 볼 때 흰 옷 입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첫째는, 이 흰옷 입은 사람들을 제단 아래 있었던 순교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6장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흰 예복을 받아 입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그렇게 해서 입게 된 흰 예복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에 서서 구원해 주심이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고 찬양하였습니다.

 

둘째는, 종말시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았던 종말교회 성도들이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의 모습을 요한계시록에서는 흰옷을 입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으로, 해를 덧입고 있는 교회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흰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신 성도들의 모습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4. 결론적 질문

 

이상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흰옷을 입고 나온 이 사람들이 누구하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두 가지로 해석해 왔습니다.

하나는 믿음 때문에 순교한 순교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종말시대 하나님을 믿었던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이 사람들은 종말시대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역한 144,000, 혹은 두 증인의 사역의 결과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즉 전 세계에서 나온 종말교회 성도들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 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그 백성으로 삼아 인류를 구원해 오시던 시대가 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패하시고 교회를 세우셔서 역사해 오신 이방교회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이방교회의 시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가 더 이상 그 받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 다른 말로 하면 이방인의 구원 받은 숫자가 차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종말시대 예언사역을 감당할 새로운 사명자로 144,000명을 세우셔서, 둘씩 둘씩 전 세계로 보내셔서 두 증인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들의 증인 사역을 통해 종말 시대에 세워지는 교회가 바로 장차 흰 옷을 입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했던 종말교회입니다. 이 종말 교회에서는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종말시대 이전에 살았던 성도들과 불신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모든 사람들은 육과 영이 분리되는 죽음을 통해 성도들의 영은 낙원으로 들어가고, 불신자들의 영은 음부로 들어가서,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리게 될 그때까지 낙원과 음부에 있다가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부활하게 됩니다.

 

이때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여, 생명이 부활에 참여한 성도들은 백보좌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고, 심판의 부활에 참여한 불신자들은 백보좌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불타는 지옥으로 가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류 역사는 끝이 나게 됩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편에 서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섬기며 사는 신실한 성도들이 다 되어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종말 시대를 믿음으로 이겨서, 하나님이 이긴 성도들을 위해 예비해 주신 그 하늘나라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