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의 하나님
누가복음 1:1-4
1. 일상생활의 중요성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요즘은 새벽 기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새벽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보통 새벽기도를 4시 30분이나, 5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이 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매일 이렇게 새벽시간에 일어나는 일이 쉽겠습니까?
늘 새벽기도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이 사람들을 새벽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새벽 첫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믿음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면 집에 가서 씻고 식사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직장인들은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주부들은 가사 일을 돌보면서 낮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이 끝나면 때때로 특별한 일정을 갖기도 하지만, 보통은 귀가하여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의 일상생활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일상생활 속에 함께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 삶에 은혜로 역사해 주시기도 하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함께 하시면서 어떤 은혜를 주시고, 또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시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 ‘누가’는 어떤 사람인가?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누가는 어떤 사람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 때 드로아에서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입니다. 누가는 이후 바울의 전도 팀의 일원이 되어서 평생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됩니다.
이후 누가가 바울과 함께 처음 복음을 전했던 곳은 빌립보였습니다. 이 빌립보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바울은, 또 다른 곳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빌립보를 떠나면서 누가를 그곳에 남겨 두고 떠났습니다. 이후 누가는 약 7년 동안 빌립보에 머물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이런 누가와 바울이 다시 만난 장소는 가이사랴입니다.
누가는 그의 신앙의 멘토와 같았던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바울을 돕기 위해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이후 누가는 바울의 건강을 돌보아 주는 주치의사로 평생 바울의 곁에 함께 있게 됩니다.
2. 하나님 말씀의 기록
이런 누가는 일생동안 두 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그러면 이방인이었던 누가가, 예수님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누가가, 어떻게 복음서를 기록하고 사도행전을 기록하게 되었습니까?
오늘 우리가 본문 삼고 있는 누가복음 1:1-4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➀ 누가는 자신이 알고 있던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신앙적인 도움을 주려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정리하여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➁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누가의 마음을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말씀들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록된 것이 바로 누가복음이 되고 사도행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누가복음이 기록되었던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누가는 수리아 안디옥에 사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의 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데오빌로는 누가의 총명함을 보고 그에게 의학공부를 시켜주어서 누가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데오빌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가는 바울을 만나기 이전에 이미 예수를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누가였기에 드로아에서 바울을 만나자 마자 바울선교 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누가는 바울과 함께 빌립보 전도 사역에 동참하였고, 바울이 빌립보를 떠난 이후에는 이 빌립보 교회를 맡아서 7년 동안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누가에게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누구보다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었던 누가는, 또 바울이 여러 가지 지병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누가는, 자신이 가진 의학 지식을 가지고 바울의 건강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바울이 갇혀 있는 가이사랴로 간 것입니다.
누가에게 일련의 이런 결정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가가 바울이 있는 가이사랴로 가려면 먼저는 빌립보 교회 담임 목사직을 사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누가는 가이샤라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하여 빌립보 교회를 사임하였습니다.
이것은 누가의 일상적인 삶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누가의 결정을 사용하셔서, 사도바울이 2년간의 감옥생활 중에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바울이 로마에서 감옥생활을 할 때에도, 누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사용하셔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일컫고 있는 비유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심하게 두들겨 맞아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장사를 하기 위해 그 길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그의 상처를 싸매어 주고, 옷을 입혀 주고, 나귀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밤새도록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막을 떠나가면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더 주면서, 이 돈을 받고 내 대신 이 사람을 잘 돌보아 주라고 합니다. 만약 경비가 더 들면 내가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갚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만난 사람을 구한 것은 그의 일상의 삶 속에서였습니다.
이 사람은 여행 중에 만나게 된 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사람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올바른 삶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가의 일상생활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셨듯이, 사마리아인을 사용하셔서 강도만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또 예를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또 다른 성경 기록자인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그 많은 성경을 기록하게 되었습니까? 바울도 ‘나는 이제부터 성경을 기록해야겠다.’ 는 생각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들을 교훈하고,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또는 자신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 때 즐겨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써 보낸 편지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써 보낸 그 모든 편지들이 모두 다 성경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보낸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해 주신 편지만 성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생활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잘못 생각하여서, 매일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일상생활을 지루해 하고 무의미하게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무슨 특별한 일을 할 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삶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시는지 주의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전도에 은사가 있어서 열심히 전도를 하였는데, 그 전도하는 모습을 본 어떤 집사님의 마음속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먼저는 요즘 교회들은 전도를 잘 하지 않는데 저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것이 감사하였고, 그 다음은 저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저 목사님을 내가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사님은 그 개척교회에 등록을 하고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일상생활 속에서 전도를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이 집사님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강남에는 집값이 아주 비싸니까? 집세도 비싸고 상가의 세도 아주 비쌉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서 강남에서 있는 상가에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세를 얻고, 인테리어 하고 나니, 남은 돈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달 두 달 보내다 보니 남은 돈은 자꾸 줄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들처럼 ‘나도 이렇게 하다가 결국 교회가 문을 닫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교회에 한 번 나오시더니, 새벽기도는 물론 모든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기도하고 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가보니, 이 할머니가 새벽 기도하다가 그 자리에서 실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은 성전 안을 물로 청소하고, 냄새가 나가게 환기를 시키면서 힘든 하루를 보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번만으로 끝나지 않았고 나중에는 주일 낮 예배를 드리다가도 실례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몇 명 나오기 시작한 성도들이 그 할머니 곁에 가지 않으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마음속으로 저 할머니 권사님은 잠도 없나, 공 예배만 나오시지 왜 모든 모임에 나오셔서 자꾸 사고를 치는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할머니 권사님이 주일 예배를 마친 후 그 목사님을 불러서 ‘목사님 이제 나는 너무 늙고 기력이 떨어져서 동기들이 있는 시골에 가서 살려고 한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은 그 마음속으로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나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권사님이 우리교회 처음 신자인데 아쉽다.’라고 하면서 ‘시골에 가서 잘 지내시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할머니 권사님은 목사님에게 ‘그간 감사했습니다.’라고 하면서 꽤 두툼한 봉투 하나를 주더라는 것입니다. 이 권사님은 매주 주정헌금으로 5,000원을 하고, 감사한 일이 있으면 20,000원 정도 헌금하던 분인지라, ‘아마 1,000원 짜리로 넣어서 두툼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 받은 봉투를 속주머니에 넣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날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그 권사님 이야기를 하다가 봉투를 받은 것이 생각나서 꺼내 보았는데 그 안에는 수 천 만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돈 10만원도 아쉬운 개척교회 목사가 수 천 만원의 헌금으로 받았으니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즉시 그 권사님 집을 찾아갔더니 벌써 이사 가고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말이 그 할머니 충청도에 있는 00교회로 내려간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그 다음 날, 교회 차를 몰고 그 할머니 권사님이 간다고 한 그 교회를 찾아갔더니, 그 교회는 그 지방에서 가장 큰 교회더라는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그 교회는 그 할머니 권사님이 세워준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 목사님의 말씀하기를, 그 권사님은 교회를 세 개 짖고 가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한 분이신데, 당신이 살고 있는 집 밑에 교회가 개척되는 것을 보고 이 교회가 내가 예배당을 세워 주고 가야 할 교회인지 알아보려고 늘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점점 기력도 떨어지고 해서 시골로 내려 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할머니 권사님은 교회 담임목사님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후에 이 목사님은 자주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굴러들어온 복도 차버린 목사입니다.’ 이 일을 경험한 이후 이 목사님은 목회하는 자세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하루의 생활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나 아주 획기적인 무엇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둘째,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가가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자, 하나님을 위해 사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구체적인 방법이 깨달아졌습니다.
이런 누가였기에 옥중에서 고난 당하고 있는 바울을 돕기 위해서 빌립보 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바울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이 일 외에 하나님을 위해서 또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런 누가의 마음속에 자신이 전에 노예로 있을 때 큰 은혜를 입게 되었던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내가 데오빌로 각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도와주고 있듯이, 자신도 자신이 알게 된 예수님에 대한 내용들을 편지로 써서 보내줌으로, 데오빌로 각하의 믿음과 신앙생활을 도와주고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누가가 예수님과 그 행적을 모아 기록하여 보낸 것이 바로 누가복음서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진 초대교회의 확장 사를 기록하여 보낸 것이 사도행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누가의 일상의 삶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가복음을 기록할 때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누가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 목회자에게 이런 마음이 있으면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을 성도들이 먼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성도들 속에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목회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목회자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그런 목회자와 함께 하고 싶은 성도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일군들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 이것은 목회자 뿐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같습니다.
➀ 주부들의 경우도 그 마음속에 남편을 위하고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을 누가 가장 먼저 알겠습니까? 남편이 가장 먼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하지 않아도 그 남편의 마음속에는 늘 아내에 대한 감사가 있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➁ 그런데 주부들이 그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내리 사랑이라고 오직 자식들에게만 마음을 두고 있다면 이런 마음 또한 그 남편이 가장 잘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남편은 그런 아내를 둔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얹잖아 하는 것입니다. 자식과 결혼한 것도 아닌데 자식만 감싸고 있는 모습은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도 같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우리가 만나 교제하는 사람들도 다 알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은 우리의 말과 행위와 삶을 통해 드러나고 나타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어떤 일을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까?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마음이 우리 삶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우리는 이왕 하나님을 섬기고, 이왕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려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해 섬기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동차에는 그 엔진이 동력을 제공해 주는 장치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우리 마음이 우리 삶에 동력을 제공해줍니다.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으면 우리의 신앙과 삶은 저절로 활기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환경을 바꾸고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이렇게 새롭게 한 우리 마음속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어려운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고, 힘든 고난의 날도 기쁘게 인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은혜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와 그 특권주심에 감사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과 온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다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살게 되었던 이 두 사람이 그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유혹하는 사단의 말을 듣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불행해졌고, 그 후손된 모든 인류를 불행으로 물아 넣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사용하셔서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과 소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가시고 또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비밀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시고, 내가 사용하며 살 수 있는 물질도 공급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도 보여주시고, 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의 사역과 삶 속에 나타나게도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사용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늘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남다른 은혜를 경험하고 받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셋째,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마 이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살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나 또는 설교를 듣는 중에 보여주시고 또 깨닫게 해 주시는 것들이 있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그 역사를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성경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셔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주셔서 인도하실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원대로 순종하여 살면 됩니다.
달란트 비유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것 아닙니까?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이 어떤 사람을 칭찬하였습니까? 주인이 자신을 믿고 큰돈을 맡겨주신 것을 감사하며 그 맡겨 주신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곧 바로 나가서 장사를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책망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인이 맡겨주신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그것을 땅에 묻어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을 믿고 순종하느냐? 믿지 않고 사장하느냐? 에 따라서 하나님의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소원으로 인도하실 때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랍니다.
과거의 바울의 동역 자 누가가 그랬습니다.
누가는 빌립보 교회 담임 목회자로 있을 때,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의사인 네가 가서 몸이 약한 바울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소리가 그 마음 안에서 들려왔습니다. 누가는 이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곧 바로 빌립보 교회를 사임하고 바울을 도우러 가이사랴로 달려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누가는 감옥에서 생활하는 바울을 뒷바라지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울을 돕는 삶을 살고 있는 누가의 마음속에 전에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었던 데오빌로 각하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그 데오빌로 각하를 신앙적으로 돕기 위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님의 일생의 사역과 초대교회의 확장 사를 자세히 써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누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을 도우며 2년 동안 가이사랴에 있는 기간 동안 예수님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쓴 글이 우리가 애용하는 누가복음이 된 것입니다.
누가가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누가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성경 기록자가 되지 못하고 누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처음 계획대로 끝까지 그 일을 해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인정해 주십니까? 어떤 일이든지 시작하면 마음을 다해 성실하게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이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소원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소원을 주시고 깨달음을 주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소원과 깨달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 분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큰 소원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성경입니까? 명예입니까? 공부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입니까?
누가를 보십시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의사는 과거도 현재도 아주 대우받는 직업입니다. 의사인 누가는 어느 곳에 가야 편안하고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돈이 많은 사람이나 권력자의 개인 주치의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지금 누구 곁에 있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곁에 있습니다. 그는 보수도 한 푼 받지 않고 바울의 건강을 챙겨주는 주치의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잘못된 판단 같아 보이고 잘못된 삶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믿음으로 결단하고 그렇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누가의 삶을 귀하게 보시고 이런 누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나중에는 바울처럼 그 믿고 헌신했던 복음을 위해 순교자할 수 있는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저는 이 순교자의 영광보다 더 영광스러운 삶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든 교회를 성장시키는데에 최대의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외형적으로 성장시키면 능력 있고 성공한 목회자라고 하고,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무능하고 실패한 목회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참된 목회자라면 그 최대 관심이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교회 성도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하여서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데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관심이 여기에 있지 않고 교회 성장에 가 있다는 것은 벌써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제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은 제게도 남모르는 고민이 있습니다.
내게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설득하여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하고 예수님을 위해 그 생애를 바쳐 헌신하게 할 힘도 능력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아픈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만이라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목회자 되게 해 주세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만이라도 복음을 알고 믿고 복음 안에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목회자 되게 해 주세요. 우리 교회 성도님들만이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준비된 신부로 예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기도를 합니까?
하나님께서 제게 맡겨 주신 일이 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잘 가르치고 잘 인도하여 바른 신앙 가운데 세워 나가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속에서의 하나님만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교회 속에도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또 우리 가정과 우리의 직장과 우리의 생활 전 영역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깨달아서 그 깨달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신앙의 삶이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삼고 보살펴 드리는 것’을 사명으로 받았습니다. 요한은 그 후 평생 동안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고 돌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복음을 전하고 또 복음을 위해 순교할 때에도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돌보아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저마다 받은 사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적은데 다른 큰 교회와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하고 성실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사도요한이 예수님의 모친을 돌보며 산 삶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고난 받을 때 그런 바울을 도우며 살았던 누가의 삶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하면 우리들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죽은 이후에, 12사도가 다 순교한 이후에도 홀로 남아서 복음을 전하다가 당국자에게 잡혔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넣어지게 되었는데 그 끓는 기름 가마도 요한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오직 바위로 이루어진 밧모 섬으로 유배 되어 갔습니다. 요한은 이 섬에서 이 세상 종말의 날에 있게 될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이 때 받은 계시가 바로 우리가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살펴보고 있는 요한계시록입니다.
누가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가는 옥중에서 고난당하던 바울을 섬기며 살다가 바울이 순교하고 난 후에까지 살아남아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런 삶을 살았던 요한과 누가와 바울을 인정해 주셨습니까?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주신 사명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무엇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의 일상생활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주신 사명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삶을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일상생활인 가정생활과 교회생활과 사회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서 그 깨달은 사명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인정해 주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던 것 같이, 우리들의 삶 속에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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