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 다윗
시편 5:1-3
1. 기도의 사람 다윗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윗과 사울왕의 삶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 왕이 기도했다고 하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침에도 기도하였고, 저녁에도 기도하였고, 낮에도 기도하였으며, 그 삶의 모든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시편 5편의 말씀도 사실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보면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억울한 일을 고소하듯이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슈미트’는 이 다윗의 기도를 ‘피고소인의 기도’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셨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 다윗은 그 삶 속에서 악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그 악한 원수들을 친히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 세상을 섭리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원수를 맡기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시므이가 다윗에 대한 악한 감정을 품고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과 손자를 죽인 것을 뒤에서 시킨 사람이 다윗이라고 거짓말을 할 때에도, 또 그 압살롬이 반역을 도모했을 때 이것은 다윗이 전에 사울 집과 전쟁을 할 때 흘린 그 피 값을 하나님께서 물으시는 것이라고 거짓예언을 할 때에도, 다윗은 이런 사람들을 직접 대적하지 않고 기도로 이 사람들의 무고를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다윗의 기도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마치 재판장과 같으신 분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삶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사람, 죄악을 행하는 사람, 오만 한 사람, 거짓말로 참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공평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2:14-21절입니다. “너희는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게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다윗은 구약시대를 산 사람이었지만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런 말씀들을 이미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다윗이 우리 인생의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아온 것에 있습니다.
2. 시편 5편의기도분석
그러면 다윗은 왜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첫째, 다윗이 기도했던 이유입니다. - 왜 기도하는가?
1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우리가 시편 5편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지금 그 대적에게 쫓기는 심각한 어려움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은 혼자 쫓기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쫓기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다급한 위기상황 속에 있었지만 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자신의 형편이 괜찮다는 자만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자만심이 기도생활을 막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교회를 강하게 책망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인 부요함이 가져다주는 자만심에 빠져서 자신의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는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왜 자기 자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살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세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 보니 자기가 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복음서에 나오는 세리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세우며 살았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괜찮은 신자라는 자만심에 빠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디에 세우고 있습니까? 사람 앞에 세우고 삽니까? 하나님 앞에 세우고 삽니까?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고 사는 사람들은 기도하며 살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사는 성도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를 세우면 나의 죄와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죄를 아파하며 겸손히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으로 하여금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 우리도 늘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 뿐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에 함께 해 주시면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윗과 같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늘 기도하면서 공부하고, 일하고, 남은 생애를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윗이 기도했던 대상입니다. - 다윗은 누구에게 기도했는가?
2절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다윗이 늘 기도하며 살았던 대상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은 그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무엘하 1장을 보면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야 합니까? 전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 왕의 후임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입니다. 이제 다윗은 유다로 가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다윗은 하나님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라고 기도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라가라”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또 다시 “어디로 올라갈까요?”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헤브론으로 올라가라.”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가족과 추종자들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올라갔고, 헤브론 사람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형편을 다 아시고 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 나아가서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 이라 고백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다윗은 어린 시절 아버지 양을 치는 목동으로 있을 때에도 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곰과 사자가 그 아버지 양을 해하려고 할 때 늘 믿고 기도로 섬겨오던 하나님을 믿고 곰과 사자와 싸웠습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을 쳐 들어왔던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믿고 기도해 오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웠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나의 왕이 되시고 나의 삶에 주인이 되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역사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역사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여기에 대해 히브리서 11:6절 말씀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되시고 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기도한 것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셋째, 다윗이 기도했던 방법입니다. - 어떻게 기도했는가?
2절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느긋하게 책상 다리를 하고 기도하거나 몸을 적당히 앞뒤 좌우로 흔들며 기도하였겠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분초를 다투는 화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재촉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항상 부르짖는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묵상하듯 조용히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두 손을 들고 감사 찬양하면서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하는 모양은 달라도 그 모든 기도에는 간절함과 적극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기도할 때 적극적으로 기도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달려 나온 사람들에게는 모두 마음에 간절함이 있었고 또 적극적인 행동까지 있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소경 바디매오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억울한 일을 당한 한 과부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이 과부는 자신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받기 위하여 아침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결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dle을 모두가 적극적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에서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순간 순간 드리는 간단한 기도나 일상생활 속에서 하게 되는 기도는 이렇게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가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때때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서 29:12-13절에서 이렇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기도할 때 가져야 할 자세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응답을 반드시 받겠다는 자세로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해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기도를 하든지 기도할 때는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비록 어려도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필요들을 구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그 어린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는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여유가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기도를 하더라도 다윗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다윗이 기도했던 시간입니다. - 언제 기도했는가?
3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침에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여기 사용되고 있는 “아침”은 동트기 전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윗이 새벽에 기도했던 새벽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발견하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은 언제나 새벽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시간이 새벽이었습니다.
- 홍해가 갈라진 사건도 새벽이었습니다.(출14:21)
-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도 새벽이었습니다.(출19:16)
- 광야에 만나가 내린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출16:13)
- 여리고성이 무너진 시간도 새벽이었습니다.(수6:1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새벽의 사람이 되게 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새벽에 그 은혜를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새벽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다 새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그가 가진 새벽 신앙에 대해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내가 매일 새벽 두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는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너무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매일 세 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으면 결코 이 일을 지탱해 나갈 수 없노라.”
-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새벽신앙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성도는 첫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그러면서 그는 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2-3시간을 기도했습니다. 웨슬리는 60년간 새벽기도를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새벽보다 심야를 더 선호합니다.
속담에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하였듯이 세상 사람들은 다 심야를 좋아하고 또 심야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새벽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남다른 은혜를 받고 남다른 능력을 받게 되는 시간은 새벽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새벽 추위를 이기고 또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육체의 한계를 이겨야만 가능합니다.
새벽 기도는 믿음을 가진 우리가 한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새벽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성도들의 신앙훈련을 새벽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훈련도 새벽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던 다윗은 새벽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는 다 같은 것이지 새벽 기도에 무슨 능력이 있느냐’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새벽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되고 또 날마다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새벽의 성도가 되는 훈련부터 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기간을 정하고 찬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찬송하고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새벽 기도하기 전과 새벽 기도한 이후에 달라진 자신의 신앙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텔레비전 꺼야 합니다. 저녁 늦게 까지 텔레비전을 보고서는 새벽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꺼야 합니다. 컴퓨터에 빠지면 모든 생활이 엉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요즘에 문제가 되는 것은 핸드폰입니다. 핸드폰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를 하려고 하면 일찍 자는 습관을 드려야 합니다. 일찍 자면 새벽에 일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아직 작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새벽에 기도하는 교회가 될 때 우리 개인의 신앙이 살아나고 가정들이 살아나고 자녀들이 살아나고 결국에는 우리 때문에 우리나라와 민족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자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새벽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새벽에 기도하는 다윗과 같이 새벽을 깨우는 새벽 형 성도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다윗이 기도한 내용입니다. - 무엇을 기도했나
다윗은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시편 5:4-6절 말씀을 보면 ‘죄악을 행하는 자, 오만한 자, 거짓말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그 대적들을 구체적으로 고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도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그 기도가 응답받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무엇을 기도하는지 아시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 응답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은 일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기도 응답으로 되었는지 우연히 되었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도응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사건을 우리가 직시하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증언부언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가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 또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나의 전 삶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려면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뜻을 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다윗이 마치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 고소하듯 기도했듯이 우리들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참 재판장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재판장으로 우리 앞에 임하셔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마음을 정한 기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한편으로는 소리치고 부르짖는 기도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기도할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한 내 마음과 내 뜻을 정하고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다윗은 늘 그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구체적인 기도를 해보면 우리들도 우리의 구체적인 기도에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다윗이 기도한 결과입니다. - 기도응답을 확신함
다윗이 이렇게 기도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기도한 것에 대한 확실한 기도응답입니다. 11-12절입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은 어떻게 옵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도 다양하게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기도하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기뻐 받으시고 계시다는 사인입니다.
이것은 기도에서 뿐 아닙니다.
저는 설교자이기 때문에 설교 중에서도 이런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이런 기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장 확실한 표징은 바로 기쁨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주는 기쁨도 있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상을 타오거나, 계획하던 일이 잘 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기쁨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입니다. /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이런 세상이 주는 기쁨과 전혀 다릅니다. 이 기쁨은 받아 누려 보면 세상이 주는 기쁨과 어떻게 다른지 곧 바로 알게 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기쁨을 주시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받으셨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다윗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 시편 5편의 말씀 속에서 듣게 되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행하려고 하지 말고 또 기도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성도들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그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기도 없이도 이루는 성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룬 성공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목적이 세상 쾌락이라면 우리는 기도 없이도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세상 쾌락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된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런 은혜와 복은 오직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잠깐 기도하는 것을 가지고, 나는 기도생활 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의 헌신은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능력 있는 삶을 사셨던 비결은 바로 꾸준한 기도생활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승리가 있었기 때문에 골고다 십자가에서도 승리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재판장과 같으신 분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될 때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또 원수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직접 그 사람을 맞서려고 하지 않고 인생의 모든 일을 판단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맡겼습니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다윗과 같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때 우리도 오늘 우리 삶에 함께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기도가 우리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에 함께 하시면서 그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도가 그 하는 일에서 실패하는 것은 기도생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의 기도생활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벌써 2018년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몇 일이 지나게 되면 2019년이 새롭게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게 되는 이 중요한 때에 우리 모두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기도생활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승리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과 같이 우리들도 다가오는 2019년도에는 늘 기도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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