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교회
마태복음 16:18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인상 깊은 감명을 받았던 장면을 말해 달라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한국 땅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관문인 김포공황에 내릴 때 보게 되는 그 많은 십자가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이렇게 많은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5만 교회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중 저희 교단의 교회만 해도 1만교회가 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상계동 지역만 봐도 골목골목 마다 교회가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교회들을 과연 누가 세우셨습니까?
1. 교회는 누가 세우셨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교회는 사람들이 세웁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또 주의 일에 소명을 느낀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는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세우려고 기도하고 교회를 세우게 되지만,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주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에 처음 교회라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는 곳은 마태복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8절에서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난 후,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비록 소명감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면서 세우게 되지만, 그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들은, 교회를 누구누구 목사의 교회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교회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에 기초해서 교회를 세우십니까?
첫째, 교회는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 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베드로”와 “반석”은 같은 말입니다. 히브리어 “베드로”는 헬라어로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므로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반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 “반석”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천주교과 기독교가 나뉘어지게 했습니다.
- 천주교에서는 이 “반석”을 문자 그대로 “베드로”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12제자 중 수석제자였던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으로 이해하고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실 때 “베드로”에게 모든 권세를 위임하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후 베드로는 예수님께 받은 권한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였고, 베드로가 순교하여 세상을 떠났을 때는, 베드로에게 그 권한을 위임 받은 교황에게 그 권한이 위임되었고, 교황은 또 그 다음 교황에게 이 권세를 위임하여,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우리가 한글 성경만 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을 알려면 원래의 언어인 헬라어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앞의 “베드로”라는 단어에는 ‘남성 명사’가 사용되고 있고, 뒤의 “반석”이라는 단어에는 ‘여성명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반석”은 “베드로”가 아닌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반석”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 우리 기독교에서는 이 “반석”을 예수님으로 봅니다. 왜 그렇게 봅니까?
- 바로 앞에 나오는 16절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반석”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반석”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말하고 있다기보다는 우리의 영원한 신앙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 삼아서 그 위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우리의 반석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불완전한 사람 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입니까? 복음서를 보면 베드로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보면 금방 신앙고백을 잘하여 칭찬받았던 베드로, 그래서 그의 신앙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리라” 라고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자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고 하며 예수님을 만류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금방 칭찬을 받았다가 또 금방 책망을 받는 불완전한 베드로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참 “반석” 되시는 예수님 자신 위에 세우시고, 또 예수님에 대해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이 두 가지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반석 되시는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 대해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이며 이런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또 무엇에 근거를 두고 세워집니까?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반석 되시는 예수님과 예수님께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둘째, 교회는 신구약 성경위에 세워집니다.
에베소서 2:20절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에서 말씀하시는 “사도들의 터”는 사도들이 남겨 준 신약성경을, “선지자들의 터”는 선지자들이 남겨 준 구약성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는 신구약 성경 위에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늘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모두 가르쳐야 합니다. “터” 가 되는 성경 말씀 이외에 다른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만약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이단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선명이 세운 ‘통일교회’는 비록 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교회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통일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원리강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들을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합니다.
또 ‘말일 성도 그리스도 교회’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그 명칭에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붙이고는 있지만 교회가 아닙니다. 이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몰몬경’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가르치고 있는 터인 ‘원리강론’ 이나 ‘몰몬경’은 견고한 터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터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경만을 인정하십니다. 성경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그 어떤 역사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까지 왔습니다.
요즘은 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다치고 또 삶의 터전을 읽고 슬픔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너진 폐허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터가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견고하고 튼튼하면 어느 정도의 지진이 나도 그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터, 신앙의 기초를 어디 두느냐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견고한 반석 되시는 예수님과 예수님께 대한 바른 신앙고백에 두어야 할 뿐 아니라, 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신구약성경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오직 성경말씀만 천지는 없어져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견고한 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또 무엇에 근거하여 세워집니까?
셋째, 교회는 신실한 목양자들의 섬김을 통해 세워집니다.
사도행전 20:28절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주의 일에 사명을 받고, 목양에 전념하는 주의 종들의 사역과 섬김 속에 세워집니다. 우리가 주의 종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종들의 사역에 함께 헌신하고 협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의 사역과 섬김을 통해 주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
목회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임 맡아서 사역한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목회자로 세우시고 예수님께서 피로 값을 주시고 사신 교회를 목양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이 목양해야 할 성도들은 자신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유명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 아들이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그에게 목회자의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강단에 설 때는 사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강단에서 내려와서는 양이 되십시오. 영혼을 한 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그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때는 한없이 가혹하십시오.
목회자들도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연세가 많으신 분은 부모님 대하듯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도리이다) 어린 사람들은 자녀 대하듯 해야 합니다. 이런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과 관심이 목회자에게는 늘 있어야 합니다. 또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이 되는 삶을 살지 못할 때에는, 그가 전하는 설교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이야 자기 신앙만 잘 지키면서 신앙생활하면 되지만 목회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과 함께 성도들의 신앙을 함께 염려하고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늘 출석하는 사람이 믿음이 없어서 나중에 지옥 가게 되면 그의 목회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얼마나 가슴 아픔을 느끼겠습니까? 그래서 목회자는 잘 믿는 성도들을 보면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성도들을 보면 염려되고 걱정되고 근심이 됩니다. 이것이 목회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마음입니다.
성도들
그러면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여 늘 하나님을 찾고 찾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 찾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늘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어떤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 목회자들의 기쁨으로 주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돕는 성도들이 바른 성도입니다. - 성도사이에 사랑의 교제가 있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교회는 고아원이 아니라 가정과 같은 곳이라고 하였듯이 영적 가족의 사랑을 나누며 사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또 성도는 늘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만 신앙이 성장하고 인격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늘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늘 주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주를 위한 헌신의 정도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우리교회에도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는 누가 세우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피로 값을 주고 사셔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세워져 있습니까?
우리의 영원한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면 바른 교회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첫째, 바른 신앙고백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둘째, 신구약 성경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셋째, 신실한 목회자들의 섬김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람직한 교회는 목자와 양, 목회자와 성도 사이에 사랑과 섬김이 있는 교회가 바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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