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인내하는 신앙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4. 7. 05:40



인내하는 신앙

히브리서 10:36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인 인내하는 신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인내하는 신앙에 대해 히브리서 10:3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면서 사는 등등의 좋은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어려움도 만나고 고비도 만나고 각종 시험들도 만나게 됩니다.

 

또 신앙생활이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고 평생 해야 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하는 신앙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골에서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름의 가뭄과 뜨거운 태양빛을 인내해 내야 합니다. 여름을 인내해 내지 못한 사람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 둘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때로는 시험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덕목이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그 신앙의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인내하는 것은 신앙에서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서도 필요합니다.

- 인내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 인내하면서 꾸준한 연습을 하는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 인내하는 사업가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물을 파려면 한 우물을 파라고 합니다. 그래야 무슨 결과를 보아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내는 무엇입니까? 인내를 한 마디로 말하면 참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내하며 참을 수 있습니까? 우리를 분노케 하는 환경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저 분을 눌러서 꾹꾹 참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분을 참고 화를 참아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분을 참고 화를 참는 대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얼마간은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참은 것이 우리 건강에 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이 참고 참은 것이 폭발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단순히 참는 것은 참 인내가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인내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인내 하는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꼭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사람은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보면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려고 할 때 가지고 있어야 하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오래 참는 사랑, 참고 견디는 사랑, 믿어주는 사랑, 용납해주는 사랑 등등입니다. 이런 사랑들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랑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입니까?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하는데 사랑으로 한 결혼에서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첫 눈에 반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하는 감정에 끌려 결혼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한 집에 함께 살다가 보면 이때부터 그 상대방의 약점도 보이고 허물도 보이고 부족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약점들을 보고 실망하여서 결국 해어지게 되고 또 이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인내는 우리 삶 속에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사람에 대해 참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대방의 약점을 보고 허물을 보게 될 때, 그 약점과 허물을 보고 실망한 나머지 상대방과 맺은 관계를 다 끊고 포기합니까? 사랑은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게 합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고 견디게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게 합니다.

비록 상대방이 미숙한 사람이고 모난 사람이고 여러 면에서 부족한 사람이라도 사랑은 그런 상대방에게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 주게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의 모습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극악한 범죄를 행하여서 세상 사람들이 다 비난하고 죄를 정죄하여도 그 죄를 지은 사람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부모님들입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이 비록 노름을 해서 재산을 다 날리고 집을 다 날려서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고 자식들도 아버지로 생각하기를 포기하여도 그런 못난 자식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집의 문을 열고 그런 못난 아들까지라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인내는 사랑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이런 모습은 범죄한 인류를 참아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공의의 심판을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아들 독생자를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는 메시야로 보내 주시겠다는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서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사랑으로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직 이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눈에 뭐 씌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받을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묵묵히 참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눈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씌어서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를 알게 될 때 우리들도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인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인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사랑으로 인내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10:36절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우리가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구원과 천국의 상급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내하는 신앙의 모델이 되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 12:3절에서는 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예수님의 이 세상의 삶은 바로 사랑으로 인내하는 삶이었고 이 인내하는 삶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을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끄러운 십자가를 참으셨듯이 우리도 늘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는 신앙의 삶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화가 우리 머리끝까지 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눈을 감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십시오, 또는 화를 나게 하는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까지 인내하신 예수님을 생각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쉽게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바뀌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식들이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매를 사용하고 꾸중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매나 꾸중은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또 그 효과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인내해 주는 부모님의 행동에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은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길을 가는데 바람과 해님이 내기를 했습니다. 누가 그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바람이 아주 센 바람으로 옷을 벗겨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세어지면 세어질수록 그 나그네는 바람이 몸속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옷을 더욱 세게 몸을 감싸게 했습니다. 다음은 해님이 할 차례입니다. 햇님이 뜨거운 햇볕을 내리 쬐자 그 나그네는 더워서 옷을 하나 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해님이 이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인내함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는, 환경에 대해 참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환경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환경이 아닙니다.

그 처음 환경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보시기에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저주받은 환경이고 파괴되고 외곡 된 환경입니다. 그래서 땅은 전과 같이 각종 실과와 채소를 풍성하게 우리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가시와 엉겅퀴를 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얼굴의 땀을 흘리는 수고와 고생을 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잘 참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태풍이 불어서 농작물이 피해를 입으면 참지 못해하고 비가 많이 와서 수해를 입게 되어도 참지 못해하고 앞에 가는 차가 사고가 나서 도로가 지체되면 참지 못해하고 아내나 남편이 자기 일을 좀 간섭하면 참지 못해합니다.

 

또 이 세상에는 그 주어진 삶의 환경이 큼 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 또 어떤 사람들은 육신에 병이 들어서 그 병이 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인 고통이 짐이 될 때도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자녀가 혹은 그 살아갈 집이 고통을 주는 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환경 이런 조건 이런 형편들이 모두 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라는 이해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일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삶 속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떠나 있는 사건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환경은 다 우리의 삶에 유익이 되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익되지 않는 환경을 우리에게 주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우리보다도 더 잘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적당한 여건과 환경으로 우리들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 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로마서 8:28절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우리,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모든 환경들은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 주신 환경들이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들은 사실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약속으로 주신 한 말씀을 붙잡고도 순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험에 들어 넘어지는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그 어떠한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고 그 환경을 통해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려고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운 환경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참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이왕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면 우리는 뒤로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신앙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운동선수는 한 목표만 보고 달려야 합니다. 달리기에 출전한 운동선수가 앞으로 달려가다가 뒤로 물러나고 또 앞으로 달려가다가 옆으로 달려가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그 경기에서 우승할 수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달리기를 하다가 때로는 넘어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금방 일어나서 다시 달려가는 것입니다.

전에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을 하가가 넘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이 경기는 졌다.’ 라고 하면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마치 전혀 넘어지지 않은 것 같이 마치 오뚜기가 다시 일어나듯이 그렇게 일어나서 나머지 연기를 다 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점수를 얻고 세계 최고의 피겨 여왕이 된 것입니다. 만약 나는 한번 넘어졌으니 이제 졌다라고 생각하고 그 경기를 포기했더라면 김연아 선수는 우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밭을 가는 농부가 받을 갈려고 쟁기를 잡았으면 앞을 보고 쟁기를 가지고 밭을 갈아야지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그 밭을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나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어서 살겠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으면 그 일에 매진하여야지 자꾸 전에 세상에서 살던 때를 뒤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살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2절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히브리서의 말씀도 우리 주 예수님을 본 받아서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는 신앙 참고 인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참빛교회에서 함께 주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참빛교회를 통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끝까지 뒤로 물러서지 않고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바른 신앙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인내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까?

첫째, 사람에 대해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환경에 대해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셋째, 뒤로 물러서지 않고 인내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갈 때 이런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고 사랑으로 인내해 나감으로, 참고 인내하는 신앙을 인정해 주시고 그런 성도들에게 은혜로 역사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지난주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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