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양선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3. 18. 15:17



양선

갈라디아서 5:22-24

 

1. 지난 주 복습

 

성령의 열매로 맺게 되는 자비는 친절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친절함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친절함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친절함이란? 상대방을 대하는 상냥한 마음, 호의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친절함이란?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마음을 말합니다. 이 마음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이 자비의 마음의 뿌리는 긍휼입니다.

그러면 긍휼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긍휼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와 긍휼의 관계를 정리해 보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있을 때, 이 긍휼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자비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며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36절입니다. 내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그러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 베푸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은 마치 그 자비를 베푼 사람에게 빚을 진 것 같이 여기신다고 합니다. 잠언 19:17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그래서 그 베푼 자비를 하나님이 대신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즐겁게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브라함에게 빚을 진 것으로 여기시고 그 삶 속에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

 

2.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난한 성도들과 유무상통하는 공동체를 이루므로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3.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교회 중요한 일군이었던 바나바와 바울을 복음을 전해들을 필요가 있었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파송함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 각자가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방법은 다 다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다 나름의 삶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자비에 대해서는 이 정도 복습해 보고 오늘은 성령의 또 다른 열매인 양선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첫째, 그러면 양선이란 무엇입니까?

 

양선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질고 착하다.’ 는 뜻입니다.

여기서 어질다는 말은 너그럽고 덕행이 높다.’ 는 뜻이며, 착하다는 말은 곱다. 모가 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양선이란? 선한 성품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피드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사람, 너그러운 사람, 착한 사람, 모가 나지 않는 사람,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아담의 범죄에 함께 속하여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 너그러운 사람,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양선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선한 기질은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열매로 맺게 해주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22절 말씀에서는 성령의 열매는...... 양선과라고 함으로, 양선은 성령이 열매로 맺게 해 주시는 품성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사람이 선한 기질을 선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 기질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기질이며 성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양선은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107:1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분이시라고 합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관계없이,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하게 되면, 그런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시고 선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본 자비는 선을 행하는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다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양선은 선을 행하게 하는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가지신 선한 마음에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삶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비로운 삶의 뿌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마음에 선함이 없이 행하게 되는 자비는 가식이고 흉내 냄이고 위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행을 하면 그 선한 행위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를 입힙니다.

사람들은 이런 선행을 통해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힘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선한 행위를 인정해 주고 높이 칭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하느냐 하지 않으냐 하는 것보다, 그 선한 행위가 그 사람의 변화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행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변화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은 인정해 주시지만, 변화된 마음에서 우리나오지 않은 선행은 인정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선행 뿐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도 같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희생적으로 하나님을 섬겨도 그 마음에서 우리나오는 섬김이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대해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 가지 외국어를 말하고 천사와 같이 설득력을 가진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합니다. 내게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을지라도, 또는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내어주는 순교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들은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순교를 아무나 하는 것입니까? 자신의 재산을 다 바쳐서 하는 구제를 아무나 하는 것입니까? 이런 헌신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놀라운 헌신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헌신을 할지라도 그 마음에서 우리나오는 사랑이 없이 한 것이라면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천국에 가면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꼭 천국에 와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은 와 있지 않고, 천국에 전혀 올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가치 평가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그 나타나는 삶의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마음 그 중심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보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평가하실 때에는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베들레헴에서 그 아버지 소유의 몇 마리의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이 최고의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인 사무엘이 볼 때에는 외모가 출중하였던 다윗의 형들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입니다.

 

셋째, 이 마음의 선함이 바로 천국백성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중요한 특징은 그 속사람의 변화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면, /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시는데, / 이 성령의 은혜 안에서 성도들의 속사람의 변화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계속 그 속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해 가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천국 백성의 중요한 특징이 무엇입니까?

아담 안에서 가지게 된 못된 본성, 모난 성품들은 점점 깨어지고 부셔지며, 성령이 가져다주신 선한 성품 착한 마음으로 그 마음과 성품과 기질의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 가면 못된 성품 모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눈을 비비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품의 변화 마음의 변화 기질의 변화가 어디서 온다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변화들을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 나타나는 말의 열매를 통해서, 그 나타나는 삶의 열매를 통해서 그 마음 성품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첫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악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4-35절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님은 이 사람들의 성품과 기질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이 사람들은 마치 독사의 자녀와 같은 성품과 기질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이며, 여전히 범죄 한 아담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둘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9:13절입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당시 성경의 대가들, 성경을 아는 것에는 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 박사였던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호세아서 6:6절의 말씀 즉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하신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게 되면,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것이 제사의식이 아니고, 너희 존재의 변화에서 나오는 사랑이고 긍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은 믿음을 가졌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볼 때에는 아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가복음 12:28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서기관에게 신명기 6:4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이 가장 첫째 계명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 다른 이가 없다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제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 서기관은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이 사람은 믿음 안에서 그 존재가 변한 사람이며, 그 변화된 존재에서 나오는 변화된 삶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경의 증거는 명확합니다.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이 주신 성령을 통해서 그 마음속에 성령의 아홉 가지의 열매를 이미 맺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그 속사람의 혁명적인 변화가 이미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만 참 성도들이고, 참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그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선하심으로 그 피조물인 사람들을 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죄인이 된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친절하시고, 자비하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 자비하심, 친절하심을 나타내시고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볼 때 무슨 선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선함으로 대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치 않을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자신들도 삶 속에서도 이 선함을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2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너희들도 그 삶 속에서 선한 삶을 살라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삶을 살되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사시는 것처럼 너희들도 사람들을 구분하지 말고 선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에베소서 5:8-9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믿음으로 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성경 속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며 산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성령의 은혜 안에서 이런 선한 삶을 산 요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그 형들에 의해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냥 두면 요셉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요셉이 그 형들의 손에 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기 42:21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이 말씀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다가 종으로 팔 때, 요셉이 그 형들에게 나를 용서해주고 나를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음을 보게 됩니다. 요셉의 애걸하는 소리를 듣고도 동생을 팔면서 그 형들의 마음이 괴로웠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 기억이 얼마나 강했든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으며, 22절에서는 자신들이 괴로움을 당하게 된 이 일이 그 때의 핏 값을 치루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형들 때문에 산 13년의 고난을 지나오면서, 그 마음 안에 형들에 대한 증오심, 복수심, 적개심, 원한이 그 마음에 가득 차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그런 형들에게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창세기 45:8절 말씀에서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내가 아버지와 당신들을 봉양하겠습니다.’ 라고 그 보호자가 되기를 자청한 것입니다.

 

창세기 49:23-24절 말씀을 보면, 요셉의 형들에 대해서는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요셉에 대해서는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형들은 요셉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활을 쏘았으나, 총리가 딘 요셉에게는 그 팔에 힘이 있었지만 그 형들에게 활을 쏘아서 복수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수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런 선한 삶에 대해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20절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 말씀은 잠언 25:21절 이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선한 삶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선한 삶은 심지어 불씨를 꺼뜨린 원수에게 그 귀한 불씨를 나눠주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선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참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선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에베소서 2: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디도서 2: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불법에서 속량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이유가 바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15-16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고 구원해 주셨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빛이신 하나님처럼 빛의 열매 즉 착한 삶, 선한 삶, 긍휼과 자비가 있는 삶, 너그럽고 관용한 삶 등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이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강퍅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분노해도도 안됩니다. 냉철하거나, 혈기를 부리거나, 무례히 행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가진 성품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마귀에게 속한 이 세상의 기질과 성향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담 안에서 가진 죄악 된 원래의 성품과 기질들은 죽이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 목회를 할 때에도 참고 선을 쫒으며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참고 선을 쫒으며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 가정생활 속에서도 참고 선을 쫒아서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불러주신 선하신 하나님을 따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선한 삶을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면 더 이상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문제는 우리의 삶은 언제 끝이 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람이 되고 또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나는 선하신 하나님 안에서, 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자. 이런 각오와 결단을 날마다 있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선한 삶의 결단이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있어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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