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15가지 특성
고린도전서 13:4-7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온 것은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언변도, 능력도, 희생도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하는, 바울의 자기 고백적인 말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나누면서 마음에 가지게 된 생각이 무엇이었습니까?
①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 신앙생활에서 사랑이 참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보고 평가할 때 그 행한 일과 업적으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그 행한 일의 업적과 성과를 보고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가지고 있는 사랑으로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태복음 7:22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즉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② 또 다른 한 생각은 그러면 우리 신앙생활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리 해 보려고 할 때, 사랑이라는 개념 정리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단어가 아니고 추상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견해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그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랑을 친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좋아하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책임감이나 배려심 혹은 희생과 헌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기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면 모두가 다 부담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나름대로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삶이 있는데 사랑을 이야기 하면 지금까지 사랑하며 살아온 삶보다 더 큰 사랑을 하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들은 긍정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긍정적인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회와 가정이 용납하지 않는 불륜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② 또 어떤 경우에는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심하게 학대하는 경우가 종종 방송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왜 자녀에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보면 자녀를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③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출구가 없는 분쟁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왜 사람들 죽이는 테러를 하느냐고 물으면 자기 동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하느냐고 물으면 동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④ 우리나라도 전에 세월 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를 죽게 한 잘못된 사회시스템과 위기 상황에 잘못 대처함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게 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사람들과 사회를 자기들이 심판해야겠다고 하면서 수사권과 기소 권을 줄 것을 요구한 것은 도를 넘어선 요구 같아 보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인 유민아빠라는 사람은 희생당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단식까지 하였고 건강이 회복되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한국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지금도 이런 사람들에게 볼모로 잡혀 끌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보면 긍정적인 사랑이든지 부정적인 사랑이든지 자기 나름대로 사랑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랑들이 참 사랑일까요. 성경에는 사랑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성경이 사랑에 대해 말씀할 때 이런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고 있는 서로 다른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반드시 사랑이라는 말씀 앞에는 언제나 ‘헤’ 라고 하는 정관사를 붙여 ‘헤 아가페’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서로가 가진 다른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는 단 하나의 사랑인 ‘그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이라고 아주 구체적인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개념과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서로 다른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랑’이라고 지목해 주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이 사랑에 대해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1서 4: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그 사랑’은 바로 ‘십자가에서 나타난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① 하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사람마다 각자 이해를 달리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② 다른 하나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맺게 해주시는 ‘그 사랑’ 곧 ‘십자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이 사랑을 은혜로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랑은 달콤한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춘 남녀가 사랑의 고백을 들으면 심장이 막 뛰고 그 사랑의 언어에 자신이 허물어지기고 하고 그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드리기도 하고 그 달콤한 사랑의 고백을 들으면서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과 방패 막을 걷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먼저 자기 자신의 죽음을 경험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사랑을 이해할 수도 없고 또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도 사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사랑’ ‘십자가 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갈라디아서 5:22절 말씀에서는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우리가 성령의 열매로 주시는 이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죽는 길 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나의 죄악된 자아가 완전히 죽고 그렇게 죽은 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부어주신 사랑이 바로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의 열매로서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랑’은 자아가 죽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자아가 살아 있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관계없이 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 죽고, 성령으로 그 영이 거듭났다고 저절로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7절 말씀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신의 죄악된 옛 자아를 죽이고 성령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또 날마다 예수님을 죽인 그 십자가를 그 몸으로 짊어지고 또 예수님을 본받는 삶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간다고도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에서는 그 육체뿐 아니라 정욕과 탐심까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여기 사용된 ‘정욕’은 열정을 말합니다.
여기 사용된 ‘탐심’은 고정된 마음을 말합니다.
내 안에 세상을 향한 뜨거운 마음 나에게는 세상을 향한 열정이 있는 것 이것이 정욕입니다.
내 안에 세상을 향한 고정된 마음이 있다면 이런 나는 세상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탐심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세상 ‘정욕과 탐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1.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속에 있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입니다. 이것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2. 우리 마음속에 ‘그 사랑,’ ‘십자가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능력 밖의 일이며 나의 소관 밖의 일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심어주시는 사랑입니다.
3.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 사랑을 심어주십니까? 성령이 그 마음에 이 사랑을 심어주실 수 있도록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물로 그 정욕과 탐심까지 십자가에 못 밖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준비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주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랑’을 가꾸고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십니다.
4.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마음에 심어주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시면 그 때부터 우리 마음 안에서는 내적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 싸움은 우리의 존재의 변화와 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 변화는 크고 빠릅니다. 이런 내적 싸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따뜻한 감정을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상냥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위로해 주고 도움을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사랑을 행하게 되는 그 사람이 먼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아난 경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믿음 안에서 그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날 때 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사랑 받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는 ‘그 사랑,’ ‘십자가 사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옛 자아가 죽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사랑을 하며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옛 자아가 죽지 않은 사람들도 성령이 주시는 ‘그 사랑’을 가진 것처럼 연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열매는 연기한다고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흉내를 낸다고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하게 되는 사랑은 그냥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악 된 내가 단독자로 서서 내 옛 자아가 완전히 죽게 되는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소유하고 살기를 원하시는 사랑은 바로 이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사랑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그 사랑’ ‘십자가 사랑’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3:4-7절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사랑’은 15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 ‘십자가 사랑’과,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특성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신 ‘그 사랑’은 바로 ‘십자가 사랑’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분해하고 분석하고 해부하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15가지 사랑의 특성들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설명되고 있는 이 15가지 사랑의 특성들을 하나로 합치고 뭉치면 바로 ‘십자가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관계를 쉽게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빛은 색깔이 없는 무색으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빛으로 프리즘을 통과하게 하면 빨, 주, 노, 초, 파, 남, 보라, 라는 일곱 색깔로 구분되어 보입니다. 사실은 일곱 색깔이 아니고 훨씬 더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그냥 우리 눈으로 볼 때 이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곱 색깔은 사실 하나의 빛 안에 포함되어 있는 색깔들인 것입니다.
사랑도 이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랑’은 ‘십자가의 사랑’인데, 이 ‘십자가의 사랑’을 사랑의 프리즘을 통과해서 보게 되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15가지 특성으로 구분되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15가지 사랑의 특성들이 바로 십자가 사랑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사랑’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랑의 프리즘을 통과시켜서 15가지 특성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13:4-7절 말씀입니다.
이 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15가지 특성들 중 몇 가지가 그 삶 속에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랑’을 가졌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는 십계명 중에 9가지를 지키고 1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모두 다 범한 사람으로 봅니다. 이것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15가지 특성 중에서 14가지를 가지고 있어도 1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 ‘그 사랑’은 ‘십자가 사랑’이고, 이 ‘십자가 사랑’은 15가지 특성으로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고린도전서 13: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런 사랑의 공식이 성립됩니다.
①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는데, 만약 오래 참지 못하는 사랑을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② 사랑은 온유하다고 하는데, 만약 온유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③ 시기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약 시기하며 사랑한다고 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④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약 자랑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랑에 대한 15가지 특성들이 나오고 있는데,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사랑에는 이런 15가지 특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특성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말씀을 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도와주고, 구제하고, 그 사람과 입장을 같이 해주고, 그 사람이 당하고 있는 슬픔을 함께 해 주는 일들을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자신이 행한 신앙적인 행위들 즉 구제, 기도, 금식 들을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한 사람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라고 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자랑합니까?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가진 장점에 대해 얼마나 많이 자랑합니까? 교회로 치면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좋은 점 우수한 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자랑합니까? 그런데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감추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지금 그 사람이 상대방을 사랑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교회가 상대방이 다니는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라는 것을 자랑하는 행위를 통해, 상대방을 사랑으로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랑’은 자아가 죽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자아가 살아 있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관계없이 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 사랑’을 소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이유
그러면 성경이 이렇게 ‘그 사랑’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알고 구분할 수 있게 되며, 그래서 거짓된 사랑을 사랑으로 알고 속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소상하게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① 우리가 ‘그 사랑’ ‘십자가 사랑’을 모르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속아 넘어 갈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안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다름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내 안에 사랑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② 또 우리가 ‘그 사랑’ ‘십자가 사랑’을 모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속아 넘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 참 사랑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그 사랑’에 비추어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 기준이 바로 ‘그 사랑’입니다.
③ 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진 사랑을 알아보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가진 사랑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짓된 사랑에 속지 않기 위해서, 또는 거짓된 사랑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사랑’ ‘십자가 사랑’을 모르면
누가 내게 따뜻한 말을 해 주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 나의 입장과 처지에 함께 서서 위로의 말을 해 주면, 그것을 사랑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게 관심이 있어 하면서 귀한 선물까지 주면, 그것을 사랑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보이는 열정이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봅시다.
1. 누가 내게 따뜻한 말을 해 주면 그것이 사랑일까요? 유혹하기 위해 따뜻한 말을 해 주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2. 누가 나의 입장과 처지에 함께 서서 위로의 말을 해 주면 그것을 사랑일까요?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잘 보고 있듯이 정파적 이해득실을 따져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3. 누가 내게 관심이 있어 하면서 귀한 선물을 주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일까요? 우리의 현실에서 잘 보고 있듯이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각하며 뇌물로 주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4.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보이는 열정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한 제스츄어인 경우는 없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거짓된 사랑으로 사람들은 속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는 없는데 마치 있는 것 같이 행동하는 것을 외식이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는 사랑을 가진 성도가 되는 일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고 사랑의 15가지 특성’을 살피기 전에 서론 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해 주고 있는 ‘그 사랑’은 무엇인가? 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사랑’은 우리들에게 사랑이 무엇이고, 사랑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가짐으로, 내가 가진 사랑을 확인해 보고 스스로에게 속지 말고, 다른 사람이 가진 사랑을 확인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도 속지 말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고 계신 사랑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될 수 있게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살피는 동안, 사랑에 대한 바른 기준을 가지게 되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함께 말씀 앞에 서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