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명기 20:1-17절, 제목: 영적인 싸움
서론 : 인류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전쟁에 관한 규례와 기본 윤리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온 세상에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전쟁들은 오직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가 말했던 것처럼 ‘욕심의 충돌’ 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류가 치러 온 전쟁들의 배경에는 항상 사람들의 추악한 이기심과 병적인 욕심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전쟁만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로서의 일반 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그 전쟁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성전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 역시 성스러운 전쟁입니다. 성도들은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신앙생활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어두움의 권세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영적 전쟁은 사단과의 싸움이고, 죄악과의 싸움이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치러야 했던 가나안 전쟁의 특성을 살펴봄으로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영적인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1.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1-4절)
본문 1절 말씀에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말이나 병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이나 병거를 만나면 두려워하였습니다. ‘병거’는 현대 전쟁에서 탱크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무기입니다. 당시에 보병밖에 없는 이스라엘에게 기갑사단이 공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이 그의 인생 노년의 때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절).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믿으십니까? 성도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져내는 힘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애굽 땅에서 나오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을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반면에 두려움을 해결하는 길은 본문 2-4절의 말씀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주의 종들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종을 통하여 귀한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두려움을 떨쳐버리시길 바랍니다.
수 1:9절 말씀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가는 밤길을 혼자 걷고 있었는데 양쪽은 모두가 높은 절벽이었습니다. 그는 발을 잘못 딛는 실수로 떨어지던 순간에 나무뿌리를 잡고 메어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기적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그가 소리를 치며 구원해 달라고 했으나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손목과 팔의 힘은 점점 빠져갔고, 이제는 도저히 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떨어져서 죽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드디어 그는 악! 소리를 치며 나무뿌리를 놓쳤으나 이게 웬일인가? 수 십 미터의 낭떠러지인 줄로 알았던 것이 털썩! 하고 발이 땅에 닿는데 약 1미터의 높이였던 것입니다. 손만 놓으면 떨어져 죽는 줄 알고 겨우 1미터 높이의 곳에서 밤새도록 나무뿌리를 잡고 두려워서 떨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그것을 놓으면 죽기라도 하는 줄 알고 결사적으로 세상 것에 메어달려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2. 전심으로 싸워야 합니다.(5-8절)
본문 5-8절에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상의 말씀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개인적인 문제로 인하여 전쟁에 전념할 수 없는 자들은 전쟁에 참여시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전쟁에는 목숨을 내놓는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싸워야할 군인들이 마음이 나누어져 있으면 불평하게 되고, 불평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한편 부정적인 생각은 전념성이 강하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면 다른 사람도 영향을 받고, 더 나아가 군대의 사기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오늘날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온갖 염려로 인하여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하 17:6절 말씀에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딤전 4:15절 말씀에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찬송 : 350장)
3. 완전히 진멸해야 합니다.(10-17절)
본문 17절 말씀에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대로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명령입니다. 이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가나안 족속을 철저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시는가? 여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 어떤 식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요.
둘째 순수한 여호와의 신앙이 오염이 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가나안의 신정국가를 세우기로 작정한 곳이므로 그 어떤 죄악의 요소도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에 불손종하여 타협함으로서 가나안에 몇 성읍을 남겨둔 것이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증한 풍속을 뒤쫓아 타락하여 나라가 망하고 마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궁극적으로 사탄이요, 악이요, 죄요, 자기 정욕입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는 쳐서라도 복종시켜야 합니다. 내 속의 작은 죄라도 자리 잡고 있으면 그 죄가 자라서, 결국 나를 타락하게 합니다. 죄와 세속과 타협하지 말고 단호하게 진멸시켜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수 10:40절 말씀에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태국이 한국보다 약 400년 정도 먼저 기독교를 받아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가 대단히 약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워낙 불교가 강하기 때문에 처음 선교를 한 사람들이 타협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와라. 아침에는 교회에 오고 저녁에는 절에 가라’ 이런 식으로 전도하였기 때문에 결국 영적싸움에서 태국은 실패한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일사각오와 순교의 정신으로 우상을 불태우고, 제사를 거절 하였습니다. 또한 술은 보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금주가를 지어 부르면서 금주 금연을 못하는 사람은 세례도 안주고 직분도 안주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영적전쟁에서 승리하여 부흥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께서도 죄를 물리치고 영적싸움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에베소서 6:13-18절 말씀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렇게 하심으로서 우리 성도들께서는 항상 영적싸움에서 승리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19년 7월 28일 참빛교회 주일(오전)설교 김 천 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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