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터는 복을 주리라.’
학개서 2:15-19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면서, 시간을 따라 삶을 구분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구분합니까?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기준으로 어제와 내일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구분은 창세기 1:1절 말씀에도 나옵니다.
창세기 1:1절 말씀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기준으로 창조 이전과 창조 이후를 구분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학개서의 말씀을 보면 성전건축을 시작하고 있는데, 이 성전건축의 시작을 기준으로 성전건축 ‘이전’과 성전건축을 하고 있는 ‘오늘부터’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2:15절입니다.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였던 때를 기억하라.’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했던 당시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 살고 있던 때입니다.
바벨론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먼저는 살아갈 땅을 마련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위에 자신과 그 가족이 살아갈 집을 지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생활을 위해서 자기가 바벨론에서 하며 살았던 일을 하거나, 새롭게 마련한 땅에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고국 땅에 돌아 온지 오랜 시간이 흘러갔지만 하나님의 성전이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1. 성전을 건축하라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개 선지자를 보내셔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학개서 2:18, 19절입니다.
18절에서 ‘너희는 먼저 오늘 이전의 삶을 기억하라....’ 고 하십니다.
19절에서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전건축을 시작하고 있는 오늘을 기점으로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까?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는데, 성전을 건축하고 있는 오늘부터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전건축을 기준으로 복을 주시기도 하시고, 복을 주시지 않으시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성전건축 이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성전 없이 살았던 이전의 삶이 어떠했다고 하십니까?
19절입니다.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하면, 내년에 농사지으려고 창고에 남겨 놓았던 곡식의 종자까지 다 먹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삶이었다.’고 합니다.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들은 있었지만 수확하여 거두어들인 열매는 별로 없는 그런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하십니까? 학개서 1:3-6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성전은 70년 전에 파괴된 황폐한 그 모습 그대로 있는데, 너희가 살 집은 기둥을 세우고 판자로 장식한 그런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옳은 행위냐?’ 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너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고자 기대하느냐?’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노라.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행하며 살고 있는 너희 행실을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너희 행실이 이러하니까. ‘너희가 많이 뿌릴 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 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함으로 섬기는 삶을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하여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재산을 불려나가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소득을 얻고자 ‘씨앗을 많이 뿌려도 수확은 적었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실지라도 배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었어도 따뜻하게 입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하여 돈을 벌어도 마치 구멍 뚫린 지갑에 넣어두는 돈과 같이,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다 새어 나가서 남아 있는 것을 별로 없는 그런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2: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땀 흘리며 수고하고 노력하여 거두어들이는 농산물의 양이 평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에는 이십 고르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고르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고르를 길으러 이른즉 이십 고르뿐이었었느니라.’
이런 말씀들을 보면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아주 고단하고 힘든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과거 우리나라의 보리 고개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 때 사람들은 먹고 살 양식이 없어서, 산에 가서 송진을 벗겨 먹고, 들에서 풀을 뜯어 와서 풀죽을 써 먹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배고픈 시절이었는지 모릅니다.
학개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살았던 삶은 아주 힘든 삶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학개서는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자신만 위해서 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이 세상 만민 가운데 선택하고 구별해 내신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만 살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시는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려고 하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70년 전에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복도 받아 누리며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하니 그 삶이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지면 무슨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우매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시고,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하셨던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너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학개 선지자의 책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써 잘못 살아온 자신들의 삶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게 되고, 큰 각오와 결심을 하고 돌이켜 스룹바벨의 지도아래 스룹바벨 성전이라 불리는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바로 2:19절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다음에 살펴볼 것은 성전건축 이후의 삶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삶을 구분해 주는 분기점에 성전건축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에는,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을 그 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줄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전의 중요성입니다. 성전의 중요성은 곧 바로 교회의 중요성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드리게 될 제사는 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연결됩니다.
이렇게 볼 때 성전건축은 교회를 세우는 것과 연결되고, 성전의 제사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연결됩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교회의 중요성과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입니다.
우리 앞서 신앙생활을 했던 믿음의 선배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배의 성공과 실패에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이렇게 중요하기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6.25라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예배를 폐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6.25 당시 성도들은 ‘전쟁은 여호와께 달려 있다.’는 말씀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리면서, 우방 각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은 미국을 중심으로 조직된 유엔군을 통해 우리나라 공산화를 막아주도록 하셨습니다.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남한을 신탁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독립된 국가를 세울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물러가라” “미군은 물러가라” 라고 하며 연일 반미시위를 하였고, 파업과 방화와 폭력 등으로 사회혼란을 조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당신들이 우리를 그렇게 싫어한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떠나겠다고 하면서, 1950년 1월에는 애치슨 국방부 장관이 선언한 애치슨라인 즉 극동방위선에서 우리나라를 제외시키면서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 시켰습니다. 이 말은 미국이 더 이상 한국을 지켜주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군이 한국에서 떠나게 되자, 그해 6월에 북한은 소련제 탱크와 비행기를 앞세우고 남침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북한군의 남침의 소식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에게 곧 바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나 트루먼은 한국전쟁에 관한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보고하지 말라고 하고 휴가를 떠나 버렸습니다. 트루먼은 한국 사람의 문제는 한국사람 자신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하면서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평택인근에서는 한국에 남아 있던 소수의 미군까지 완전히 괴멸시켰습니다. 당시 한국에 있던 미 대사관 직원들은 이 긴박한 상황을 본국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트루먼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망하는 것은 이제 시간의 문제로 보였습니다.
당시 미국을 잘 알고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일본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망하면 다음은 일본입니다. 한국이 남아 있어야 일본이 무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미국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중에 전선은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이제 부산과 대구만 남게 되었습니다.
다급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트루먼에게 친필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 각하. 우리를 도와주세요? 당신이 일부 한국 사람들 때문에 한국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공산주의의 총부리 앞에, 순교할 수밖에 없는, 수십만 명이나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드리고자 합니다. 그러고서야 어떻게 주님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여름 휴양지에서 이 편지를 받은 트루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앙심이 돈독한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도움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한국에는 공산당의 총칼 앞에 순교할 수밖에 없는 수십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이글을 읽고 한국을 돕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트루먼은 곧 바로 행정부에 유엔 안보리 소집을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당시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에게는 출동대기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긴급히 유엔 안보리가 소집되었습니다.
당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는 소련이 있었습니다.
만약 소련이 유엔군 파송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미국이 아무리 원해도 유엔군을 한국에 파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미국 혼자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 북한을 돕는 소련과, 한국의 돕는 미군 간에 제 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어찌되었든지, 하나님께서는 신앙이 돈독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을 움직여서 유엔군이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하도록 그렇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또 당시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도 신앙이 아주 돈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투르만 대통령이 출동 준비를 하고 명령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기다리고 있다가 출동명령이 떨어진 후에 필리핀을 출발하면,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출동명령도 안 떨어졌는데 먼저 군대를 한국방향으로 출발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루먼이 맥아더에게 출동명령을 내렸을 때에는 이미 미국은 한국 가까이 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쟁을 역전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의 배후에 우리 하나님이 계셨고, 이런 하나님의 역사의 배후에는 바로 전쟁 중에도 교회를 세우고, 전쟁 중에도 예배드리고 기도했던 한국교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전쟁 중에도 교회를 세우고 예배하며 기도하였던 한국교회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아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와 기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시려고 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고 살 성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 그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학개서 2:8절 말씀에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소유이신 은과 금을 그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주시기도 하고, 또 빼앗으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이십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살 궁리만 하며 살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은과 금을 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삶을 돌이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일을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그 소유하고 계신 은과 금을 주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복은 그들의 수고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믿음과 헌신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게 되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 삶도 잘 되게 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거나 하나님을 떠난 살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저주와 고생이 그 삶에 작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려고 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예배하는 삶을 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 성전을 세우기 시작함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런 깨달음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성전을 세우기 시작했지만 성전이 완성될 때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짓기 시작하자 곧 바로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시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목적으로 추구하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삶으로 그 방향을 돌이키자 하나님은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시기 시작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온 삶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서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나오는 그 시간부터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교회를 찾아갔던 그 첫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기 전에 벌써 성경을 읽었고, 마음속으로는 이미 예수님 같은 분이 계시면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섬기며 살겠다고 작정하고 결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교회가 무엇 하는 곳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제가 아무 교회나 찾아가서 ‘나 이 교회 다녀보려고 왔어요.’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교회에 갈까 고민하다가, 전에 작은 집이 이사를 갈 때 보니 그 주인집이 교회 다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교회 갈 준비를 하고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렸습니다.
안에서 ‘누구세요’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층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친척인데, 선생님 가정이 교회 다니시는 것 같아서 찾아 왔다.’라고 하면서, ‘저도 교회 한번 가보고 싶은데 단 한 번만 저를 교회 데려가 주실 수 있으시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겠다.’라고 하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40분이 지나서 나왔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그 40분 동안 교회 갈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마 교회 갈 준비를 안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빨리 교회에 가려고 하니까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아침 시간에 교회에 가서, 그 날 종일 교회에 있다가, 저녁예배까지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깨달아지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군에 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늘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부터는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론 이후에도 가끔씩 심한 두통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교회 갔던 그 첫날의 경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두통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예배에 처음 참석한 제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저는 예배 당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처음 경험해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설교 시간이 되어서 그 하는 설교 말씀을 알아듣기 위하여 정신을 집중해서 들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루 종일 교회 있으면서 한 네 번의 예배를 참석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 나는 머리가 심하게 아프니 하나님이 내 두통을 치료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전혀 그런 기도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고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수능란한 예배 자가 되어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과 이해력과 행동을 보시기보다는, 우리 가지고 있는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와 요청에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기 보다는, 우리의 필요에 응답해 주시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심을 학개서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학개서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 짓고, 규모 있는 제사를 드리고, 정성이 담긴 예물을 드려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성전건축을 위해 첫 삽을 뜰 그때부터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복을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 믿음의 첫 걸음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찾아 나간 그 첫날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제가 교회에 대해서 알았겠습니까? 신앙에 대해서 알았겠습니까? 예배에 대해서 알았겠습니까? 당시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교회에 가려면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찬송가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작은 쪽 복음서 하나 뒷주머니에 넣고 교회로 갔던 사람입니다.
그간 성경은 많이 읽었지만,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내 삶의 최고의 방해 거리였던 두통을 사라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을 보십시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해방된 우리나라는 곧 바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는 공산주의 국가가 세워지고, 남쪽에는 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공산주의는 만물이 물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국가에 종교의 자유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북한에서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고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달랐습니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와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슨 종교를 가졌든지 관계없이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왕성한 교세를 자랑하던 북한교회가 남쪽으로 내려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교회가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미국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선교하는 국가가 되게 했습니다.
처음 남한과 북한이 갈라졌던 당시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3배나 더 잘 살았습니다.
당신 남한은 농사짓는 것이 주된 산업이었는데 반하여, 북한은 땅속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이 많았고 공장들도 거의 북한 지역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던 남한 땅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지금 남북의 개인소득의 차이는 약 20배 이상 차이가 나고, 남북의 경제력의 차이는 약 50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은 남한과 경제적으로 경쟁해 볼 수 있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을 섬겼던 남한에는 복을 주시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였던 북한에는 화를 주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북한은 미사일 핵무기를 개발해 놓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얼 믿고 안심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북한은 우리나라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들어 둔 많은 무기가 아무 소용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디에 달려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장래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교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사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결단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에 나 자신을 바치겠다는 각오와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각오와 결단을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즉시 우리와 우리의 삶 속에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코로나 19와 함께 살아온 2020년의 삶은 너나 할 것이 없이 모두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국제적으로도 미중의 패권대결이 격화되면서 특히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같은 국민이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현실의 문제도 어려운데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 비관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곧 초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게 될 것이며, 일본과 같이 장기적인 불황이 찾아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현재의 삶은, 마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이전의 그 삶이 어렵고 곤고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 모든 삶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돌이키는 그 첫 돌이킴을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목적하며 세상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우리의 삶을 돌이켜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나님을 향하고 성전을 지으며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들도 믿음을 새롭게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음으로 결단을 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복을, 오늘부터는 우리 모두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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