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인 성경(聖經)
누가복음 1:1-4
1. 다양한 성경 관
이 세상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습니다.
성경도 그 많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성경을 성서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판권을 가진 곳을 사람들은 성서공회라고 합니다.
제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성경도 한 권의 책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안에서는 ‘성경을 어떻게 사람들이 기록한 책과 같이 볼 수 있느냐?’ 라고 비판하면서 신학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신학논쟁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 신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그 모든 책들과 성경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그 모든 책들은 그 책을 집필한 사람의 지적인 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은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기록을 모아 놓은 것이지만, 성경은 그 사람들의 지적인 산물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성경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기록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해 디모데후서 3:1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베드로후서 1:20-21절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교회는 이 성경을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기록하게 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중요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지적인 산물이 아닙니다. 비록 약 40명이나 되는 다양한 사람들, 그 살았던 시대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직업이 달랐던 사람들의 글을 모아 놓은 것이지만, 성경전체의 내용에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성경의 통일성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바로 성경의 영감설성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기록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기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저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주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우리는 성경관이라고 합니다. 성경관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가진 성경관이 그 사람의 믿음을 좌우하고 신앙관을 좌우하고 인생관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보수주의 성경관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영감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비록 성경 속에는 사탄의 말도 있고, 거짓 예언자의 말도 있고, 우상숭배자들의 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그 모든 말들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영감으로 주신 말씀들이며, 하나님이 그 뜻과 목적을 나타내시는 도구로 사용하신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성경전체를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영감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둘째, 자유주의 성경 관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될만한 보편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이라든가, 자유라든가, 평등과 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하여 이 사람들은 성경 속에는 또 유대교가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 속에 있었던 인간의 저급한 도덕과 윤리, 종교적 독선과 편견도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은 비록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제거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막 난도질하며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구분해 내는 작업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습니다.
셋째, 진보주의 성경 관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는 하나, 성경은 역사책이나 과학책은 아니기 때문에, 성경 속에 있는 역사적 기록이나 과학적인 기록들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기록이나 과학적 사실에서는 오류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봅니다.
넷째, 신정통주의 성경 관입니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은 그 자체로는 고대인들이 기록한 문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씀들을 통해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게 되면 그 때 비로써 성경은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체험을 하기 이전에는 단순한 역사적인 기록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정통주의자들은 개개인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는 경험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급진주의 성경 관입니다.
급진주의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책과 같은 역사적인 참고서라고 봅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이 과거에 실패한 인류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나는 그렇게 실패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지’ 라고 하는 깨달음과 교훈을 주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삶 속에서 불의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실천적인 삶이 바로 텍스트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실천적인 삶의 현장 속에 있을 때 비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어디서 듣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독재와 싸우고 정권과 싸우는 그런 투쟁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민중신학의 서남동, 안병무와 같은 사람들이 있고, 과거에 북한에 가서 남한정부를 비방하고 북한 정권을 찬양했던 한상렬 목사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급진주의자들입니다.
여섯째, 이단과 다른 종교의 성경 관입니다.
이단이란 무엇입니까? 이단은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성경을 그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단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파와 같은 이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경과 함께 성경 이외의 자신들의 경전을 가진 이단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와 같은 이단들입니다.
그러면 다른 종교란 무엇입니까?
다른 종교는 그 종교의 시조가 전해 준 경전, 즉 성경이 아닌 다른 경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 불교, 흰두교와 같은 종파들입니다.
이외에도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다양한 미신적인 신앙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종교가 이렇게 많은 것은 사람들이 그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종교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 안에 종교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무신론자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을 대하는 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사실 그 양이 엄청납니다.
성경의 전체 장수는 1,189장으로 구약 929장, 신약 260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 전체 절수는 31,102절이나 됩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하루 3장씩 읽고, 주일날은 5장 읽으면 1년에 1독을 할 수 있는 양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그 분량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해 왔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는 몇 번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성경을 읽고 들을 뿐 아니라, 성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믿고 있지만, 실재 삶은 성경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주일 날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 외의 날들에는 성경과 무관한 삶을 살아갑니다. 또 성경에 아주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 습관과 자기 이성적인 판단대로 살아갑니다. 그런가하면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뜨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특징은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대단한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면 그런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중에서 어떤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실 때에 우리들은, 가정에 있든지, 학교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그 어느 곳에 있든지 관계없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런 열심을 우리 모두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어떤 사람에게 말씀하실까요?
성경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실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을 가지고, 늘 성경을 읽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실까요?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면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대로 지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복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 속에서 성공하고, 명예를 얻고, 부를 얻고, 권세를 얻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 있다고 하신 그런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3. 성경을 읽는 올바른 자세
구약시대 성도
구약시대에는 성경이 아주 귀했습니다.
당시는 성경 한 권을 만드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세상의 부요한 국가 중 하나였던 이집트가 알렉산드리아에 건축한 도서관에 보관하려고 구약성경을 제작할 때 70권 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성경 한 권을 만드는데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개인이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안식일 날 회당에 가서야 비로써 회당장이 읽어주는 성경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회당장이나 서기관들이 읽어주는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회당장이 성경말씀을 읽어줄 때 얼마나 주의 깊게 들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다는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별한 믿음의 복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태도로 말씀을 읽고 듣는다면,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그런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이런 진지함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도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신약시대 성도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정말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단돈 몇 만원만 주면 성경을 구입해서 소장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만 내면 언제라도 성경을 읽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이렇게 흔해진 결과 구약시대 성도들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하려면 어떤 자세로 성경을 읽도록 권면해야 합니까?
첫째, 성경을 읽을 때, 성경 기록자를 생각하며 읽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 후원 비를 지원받으면 선교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 지원으로는 선교비가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친히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자비량 선교를 했습니다. 또 이 때 만난 사람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로마 군대에 군용천막을 납품했던 업자였습니다. 이들도 천막을 납품해서 번 돈을 바울의 선교 후원비로 많이 내어 놓았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바울을 초청하여 그 집에서 빌립보 교회를 시작하였던 자주장수 루디아 또한 바울의 든든한 선교 후원자였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바울이 곳곳에 세웠던 교회들도 바울에게 부정기적으로 선교 비를 후원했습니다.
이렇게 든든한 후원자가 많은데도 바울의 선교 비는 늘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성도들을 심방 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천막을 만들 때 무릎 위에 깔고 썼던 앞치마에 기도하고, 그 앞치마를 자기 대신 성도들의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에게는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를 기록한 성경 기록자였습니다. 당시 성경 한권을 기록하는 데는 아주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시는 오늘날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종이가 아직 없었습니다.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와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가 있었습니다. 성경 기록자들은 성경을 오래 보관해야 했기 때문에 아주 가격이 비쌌던 양피지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단돈 몇 만원을 주고 산 일반서적 읽듯이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 기록자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하며, 이 말씀들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었는지 알고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성경을 읽는 것과 모르고 성경을 읽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우리가 성경저자들이 치룬 값진 희생을 생각하면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읽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멘.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는 성경을 어떻게 기록하였다고 합니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쓰려고 붓을 든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누가도 그 일을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자신이 알고 있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좋을 줄 알고, 큰 재정적인 희생을 각오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 기록자들의 수고와 희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성경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첫째는 성경 기록자를 생각하며 성경을 읽게 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을 읽을 때, 성경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읽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와 상호연관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면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대면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약속도 그 약속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약속을 받을 때에는 최소한 그 기관의 최고 책임자의 약속을 듣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약속이 신빙성이 있고, 또 약속대로 지켜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수많은 약속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성경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면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신앙과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단 한 마디 말씀만 붙잡고도, 평생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습니다. 아멘.
아담과 그 후손들이 붙들고 살았던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3:1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이며, 그 메시야를 통해서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셔서 구원해 주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노아와 그 후손들은 무슨 말씀을 붙들고 평생을 믿음으로 살았겠습니까?
홍수전에는 물로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과, ‘너는 특별히 방주를 만들어서 그 심판에서 구원받도록 하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방주를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홍수 이후에는 무슨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까? 창세기 9장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들입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약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2장에 나오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내 말에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줄 것이며,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해 줄 것이며, 너는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마음이며, 중심이며,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단 한 마디 약속의 말씀만 있어도 족합니다. 그 한 말씀을 붙들고 평생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까? 또 왜 사람들이 구원을 확신하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구원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하고 있는 구원도 확신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십대 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서 악세살이 공장을 해 보려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초반부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일에서 실패함으로 저는 실패자라는 부끄럼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실패한 삶의 현실은 늘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성경 속에서 발견한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롬10:11, 벧전 2:6)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실패의 부끄러움 속에서 살았던 당시 제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지요.
‘하나님 여기 약속하고 있는 말씀처럼 저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 저의 삶을 되돌아보니까. 제가 예수를 믿으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귀한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속에 내가 가진 이 귀한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이 믿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을 위해, 형제를 위해, 이웃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내다보니 ‘나는 인생을 실패한 사람’이라는 부끄러운 마음은 간곳이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내가 실패 속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하나님이 실패한 삶을 통해 나를 믿음으로 부르셨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렇게 부끄럽던 지난날의 실패까지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이후에는 돈이 없어도, 사회적 지위가 없어도, 학벌이 별 것 없어도, 이런 것들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로 살았든지, 명예로운 사람으로 살았든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든지 관계없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예수를 믿지 않은 것 때문에 한 없이 한 없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이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비록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있어도 이 일 때문에 부끄럼을 당치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제가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랑할 학벌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는 사회적인 지위는 없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부끄럼 당치 않게 해 주세요.’
정말 저는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부끄러운 목회자들은 교회 규모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재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뜻과 다른 설교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일 것입니다.
요즘 아파트를 분양 받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며, 땅과 집을 사 놓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땅을 바라보고 살며, 이 땅에서 얻게 되는 소득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서 집을 사고 땅을 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가나안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줄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며,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처럼 살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까?
먼저는 이스라엘 민족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애굽을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가는 앞길을 막고 있는 홍해를 가르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기적적으로 먹이시고 마시우고 입히셔야 합니다. 그런 후에 약속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애굽 왕 바로가 힘을 다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을 가로막아도, 홍해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가는 앞길을 막고 있어도, 광야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양식이 떨어져서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도 그 가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그 약속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 삶에 어려움을 만나면 되면 곧 바로 모세에게 원망하고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모세 때문에 바로가 자신들을 더 힘들게 한다고 원망하였습니다. 홍해 바다가 가로 막고 있는 그 길로 인도하여 자신을 광야에서 죽이려 한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광야에서는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양식이 떨어졌다고 원망하고, 고기를 먹지 못해 힘이 없다고 원망하는 등등 수도 없이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또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족장들의 보고를 듣고서는, 10명의 정탐 군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하며, ‘우리 이제 모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왜 이렇게 했습니까?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올라가서 취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며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 있는 대적들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고백을 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라고 여러 가지 말씀을 붙들고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단 한 마디 약속의 말씀만 붙잡아도, 우리는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믿음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내게 약속하고 계신 단 한 마디 말씀이라도 굳게 붙잡고, 요동치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4.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증거는 다양성 속에 있는 통일성에 있습니다.
첫 번째 성경의 다양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하나님이 주실 말씀을 기록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들이 약 39명이나 됩니다. 이 사람들을 보면 그 직업이 다 달랐고, 또 기록한 장소도 다양했으며, 또 그 기록한 시기도 서로 달라서 약 1,600년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1600년에 걸쳐 기록한 그들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는 다양한 언어, 문화, 시대상, 사회적 지위 등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다양성은 성경 기록자들의 서로 다른 인간적인 요인, 문화적인 요인, 시대적인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두 번째 성경의 통일성입니다.
성경의 통일성이 중요한 이유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어떤 책들은 한 사람이 수 십 년에 걸쳐 쓴 작품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을 쓸 초장기의 저자의 관점과 책을 거의 마치게 될 수 십 년 후의 저자의 관점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작품을 써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상이 발전하고 관점이 변하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16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기록한 성경 안에는 통일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성경은 그것을 기록한 인간의 작품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배후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성경의 저자로 보지 않고는 성경의 통일성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중심적인 내용
요한복음 5: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중심 내용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하되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신앙이, 우리 신앙의 양대 축이라는 것입니다.
또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기초를 둔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그 나머지 증거들은 다 여기에 따라오는 부속되는 증거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사람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사, 우리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죽어주신 초림의 주를 믿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 구원의 완성해 주시기 위해, 장차 왕권을 가지고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위에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려고 오시는 재림의 주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 해 주고 있는 중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시대입니까?
세상 끝에 오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꼭 가지고 살아야 하는 신앙은 바로 재림신앙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재림신앙 위에 우리가 가진 믿음을 굳게 세워 나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가져야 할 바른 성경관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영감 된 말씀이며, 그 중심 내용은 고난 받는 메시야로 오신 우리 주 예수님과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실 영광의 메시야로 오실 우리 주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지금까지 살펴온 이런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종말이 임박한 시대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서, 주님이 도적 같이 맞이하지 않는 성도가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성경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있어질 수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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