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

율법의 기능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2. 6. 5. 16:40

율법의 기능

마태복음 5:17-20

 

1. 하나님이 주신 율법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며, 그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본래적인 삶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16-1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이 율법은 어떤 기능과 역할을 했겠습니까?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했던 기능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이 율법이 했던 기능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첫째, 율법은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계심을 알려주고 또 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혜를 알려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율법이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이런 기능을 우리는 거울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거울의 기능을 하여서 사람들에게 첫째는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만유의 주권자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그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모님으로부터 대기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업총수가 되어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한가한 시간이 있어서 자기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보게 됩니다.

 

이 사람이 그 아버지의 사진을 볼 때에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지금 내가 누리며 살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대기업을 자신에게 물려주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아버지가 자신을 믿고 물려주신 그 기업을 더 잘 관리하고 경영해야겠다는 생각과 각오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 앞에 설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그 율법을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천지 만물들을 창조하셔서 자신들에게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크고 풍성하신 은혜를 생각하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그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범죄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많은 것이 달라지게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율법의 기능이 달라지게 했습니까? 그러면 아담의 범죄는 율법의 기능이 어떻게 달라지게 했습니까?

둘째,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은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자, 그 죄는 곧 바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벌거벗은 자신들의 수치를 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벗은 몸을 가려보려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곧 마르고 시들어 버리는 무화과나무 잎으로는 죄를 가릴 수도 없었고, 그 지은 죄가 가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죄는 또 이들로 하여금 서늘한 아침저녁 시간이면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나무 숲 사이에 숨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그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이런 율법의 기능의 변화에 대해 로마서 3:2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이렇게 율법의 기능을 변화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신들이 지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율법은 지금도 이 기능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2. 마태복음 5장의 말씀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율법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세 가지 서로 다른 이해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이해는 마태복음 5:21, 3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옛 사람 옛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말씀해 주신 율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3절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그 두 번째 이해는 마태복음 5:21, 27, 33, 43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에게 듣고 배워온 율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7절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3절입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3절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그 세 번째 이해는 마태복음 5:22, 28, 32, 34, 44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롭게 가르쳐 주신 율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8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32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34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44절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세 가지 율법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을 살펴보면, 이 율법 안에는 율법을 지켜 행하는 행위 뿐 아니라, 율법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가진 믿음과 마음까지를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십계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십계명 중 앞에 기록되어 있는 네 계명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며’,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하는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여섯 계명을 보면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등등의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십계명을 통해 요구하셨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행위와 함께,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함께 포함하고 있었던 계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 율법을 살펴보면, 당시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때 윫법을 행위의 법으로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행하며 살아가는 백성들이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믿음의 문제 마음의 문제는 다루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백성들이 율법의 계명을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십계명 주변에 613가지나 되는 규정들을 만들어 놓고 이것들을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기지 않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율법을 행위의 법으로 바꾸어 놓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율법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행위법으로 바꾸어 놓은 그 율법을 본래의 율법 즉 율법의 행위와 율법의 정신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율법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신 것이 바로 마태복음 23:23절입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율법을 행위로만 지키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참 율법의 준수는 율법의 행위와 함께 율법의 정신까지를 소유하고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의 한 예가 바로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오신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서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자청년을 사랑하셔서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라는 이웃 사랑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그런 계명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추가로 요구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왜 이런 요구를 하셨겠습니까?

부자 청년이 가지고 살았던 잘못된 율법 관을 고쳐주시려고 이런 요구를 하신 것입니다. 당시 부자 청년은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에게 율법을 행위의 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런 부자청년이었기에 나는 어려서부터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고, 도둑질 하지 않는 삶 즉 율법을 다 지켜 행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청년에게 두 번째 요구 즉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는 요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요구를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예수님 이 요구를 통해 네가 참으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살았다면, 네가 아끼는 재물을 그 사람들을 위해서 쓸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요. 그 제물이 있는 곳에 그 사람의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청년은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행동을 통해 부자청년은 그 이웃을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부자청년은 그 행위로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는 삶을 살았지만, 율법의 참 정신인 이웃 사랑의 마음은 갖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어렵고,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 주는 일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에서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부자청년과 비슷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25절입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때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라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율법교사는 대답하기를 저는 율법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읽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27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교사는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율법교사는 율법의 행위 뿐 아니라 율법의 정신까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사람의 한계가 무엇이었습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 질문을 했을 정도로 율법에 대한 지식적인 올바른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그 이해하고 있는 대로 살고 있지는 않았던 사람 같아 보입니다. 왜 그렇게 봅니까? 2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예수님은 그 율법교사가 율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인정해 주시면서, 네게 이를 행하고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36-37절입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라고 거듭 거듭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2을 보면 율법의 이해에 대한 또 다른 대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되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 서기관은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라고 대답하며 깊은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서기관의 율법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을 보시고 그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율법사들과 서기관들은 거의 모두가 다 율법을 행위의 법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가르칠 때도 율법의 행위를 강조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나아왔던 이 서기관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율법을 지켜 행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율법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서기관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인정해 주시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율법에 대한 가르침들이 성경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율법에 대한 가르침에 집중하고 계시는가?’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우리 신앙에서 너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면 반드시 그 뒤를 따라 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주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되면 그 뒤를 따라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잘못 이해하여서 행위법으로 이해하게 되면, 아무리 율법을 많이 읽고 심지어 율법을 다 외우고 있어도 이런 사람들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 신앙에 열성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사도 바울처럼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죄에서의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부자청년과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같이 거짓된 자기 의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약속해 주신 구원을 사모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런데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게 되면, 이런 사람들에게 율법은 거울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율법의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의 죄악 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악 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자신을 죄에서 구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보다 율법에 올바른 가르침에 집중해 오셨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율법의 거울 앞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그 큰 죄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율법에는 어떤 기능들이 있었습니까?

첫째, 율법에는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계심을 알려주고 또 그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혜를 알려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둘째,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지은 죄를 깨닫게 해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또 율법에는 어떤 기능이 있습니까?

셋째, 율법은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의 기능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아,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았던 유대인들이 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행위법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가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으면율법을 다 지켜 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처럼 죄에서 구원을 받으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또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메시야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관점은 사실 믿음이 없는 이 세상의 관점입니다.

이 세상의 법을 보십시오. 이 세상의 법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생각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내가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이 세상의 법은 이런 생각이나 마음을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의 법은 오직 행위로 나타난 죄만 정죄합니다.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마치 믿음이 없는 이방사람들과 똑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1-22절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7-28절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아직 행위로 드러나지 않은 그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죄를 지적하시고 드러내시고 정죄하고 계신 것입니다.

 

율법을 행위의 법으로 이해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행위법으로 지켜 행하며 살았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살았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와서 세례를 줄 때 자신들은 이방 죄인들이 아니기 때문에 죄를 씻는 의식이었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습니까?

마태복음 3:7-10절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요한의 눈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독사의 자식 같이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처럼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 사도 바울은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는 그 생각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율법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죄악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 주랴?’라고 탄식하기도 했습니다. 또 나중에는 나는 죄인 중에 아주 괴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율법은 이렇게 죄인 된 사람들의 본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의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또 율법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원으로 인도해 주는 초등교사와 같은 기능을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3:24절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이 기능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결국, 그 죄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실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이신칭의의 신앙’,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수를 믿게 되고 또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 주심을 감사하며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율법에는 어떤 기능이 있습니까?

넷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어주신 기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해 주시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어주셨다고 합니다.

로마서 10:4절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는 은혜시대이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은 더 이상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라고 하면서 마치 율법이 폐지된 것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라는 이 말씀은 구약시대는 율법의 시대이지만 신약시대에는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제 율법시대는 끝이 났다.’ 고 하는 율법 폐기론을 주장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로마서 3:31절 말씀을 보면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아주 분명하게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말씀을 통해 율법의 마침이, 율법의 폐지가 아님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은 사도바울이 믿음을 가진 이후에도 여전히 율법을 지키며 산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5:8절입니다.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사도행전 28:17절입니다.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바 되었으니..’

 

그러면 율법의 마침이란?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주셨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주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율법의 요구를 다 준행하시는 삶을 사시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둘째, 그리고 나중에는 죄가 전혀 없으신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적인 죽으심을 죽어주심으로 죄인들을 향한 율법의 요구 즉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요구를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죄를 다 도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이 율법의 정죄 속에 살지 않아도 되도록 율법의 정죄의 마침이 되어 주셨습니다. 아멘.

 

이 은혜를 입고 살았던 사도바울은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로마서 8: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 속에서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대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율법을 유리창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율법을 거울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을 유리창으로 보는 사람들은 율법이라는 유리창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합니다. 그런가 하면 율법을 거울로 보는 사람들은 율법의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죄를 깨닫고 아파하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우리는 율법을 유리로 보고 율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거울로 보고 율법의 거울에 늘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살아가는 깨어 있는 성도, 거룩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성도의 삶에 대해 갈라디아서 6: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 까 두려워하라.’ 이 말씀을 보면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게 될 때 그것을 거울로 삼아서 혹 자기 자신에게는 그런 죄가 없는지를 돌아보고 점검해 보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는 이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갈 때 먼저는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점을 가진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바른 율법의 거울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고 살아가는 경건한 성도,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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