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12. 10. 14:05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마태복음 5:3-10

 

1. 산상설교의 구조

 

산상설교는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3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3장으로 되어 있는 산상설교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세 가지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5장에서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7장에서는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관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뗄래야 뗄 수 없는 필수적인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첫 번째 말씀해 주신 것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세 가지 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 적으로 정립하고 있어야 하는 관계가 바로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여기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또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을 주고 있는 산상설교 5장의 말씀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1-16절까지는 우리 자신의 내면적인 영성과 인격과 자질에 관한 말씀을 주고 있다면, 5:17-48절까지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우리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마태복음 5:3절의 말씀은 우리의 영성과 인격에 관해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서론에서 살펴본 말씀의 복습

 

먼저 산상설교 서론에서 살펴본 말씀의 복습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설교의 말씀을 살피면서 우리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이 팔복의 마음은, 자연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자연인이 가질 수 있는 마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이 팔복의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2,000년 역사를 보면 이 팔복에 대한 해석이 시대마다 다르고, 그 입장과 처지마다 다르게 해석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이 팔복의 마음은 우리 주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마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믿는 성도들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마음입니다. 그래서 오직 이 마음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3. 팔복의 마음을 소유하는 방법

 

산상설교를 살피기 전에 먼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팔복의 마음들은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이 팔복의 마음이 예수를 믿을 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죄악 된 마음이 한순간에 다 없어지고, 우리 마음이 예수님이 주시는 팔복의 마음으로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팔복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이 팔복의 마음을 소유하고 살고자 하느냐? 살고자 하지 않느냐? 하는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를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사건을 통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을 이루시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요셉 때문에 애굽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받으며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를 일으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의호식하며 살던 그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가게 하시고, 애굽 사람들에게 각종 괴롭힘을 당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왜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애굽에서 호의호식하며 살도록 해 주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에서 고난당하는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줄 지도자 모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의 왕자로 40년 준비시키시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훈련 시키신 후에, 80세가 된 모세를 애굽에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를 받으며 애굽을 나와서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됩니다. 이 광야에서 모세는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후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내가 너희 조상들과 너희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한 땅이라도 그 땅을 저절로 너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가지고 정복하며, 또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그 땅만 너희의 땅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산상설교에서 약속하고 계신 팔복의 경우도 같습니다.

팔복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마음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구체적으로 밟고 정복할 때 자신들의 땅이 되었듯이, 팔복의 마음도 예수님이 내게 주신 마음임을 믿고, 한 마음 한 마음 취해 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팔복의 말씀을 살피는 우리들은 이 팔복에서 말씀하고 있는 마음들을 하나하나 나의 소유로 취하여 나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4. 심령이 가난한 마음

 

이제 구체적으로 팔복의 첫 번째 마음인 심령이 가난한 마음을 살펴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우리에게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마음을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난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심령의 가난함은 쉽게 설명될 수 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은 육신의 가난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은 그 주머니가 비어 있고, 그 양식을 보관해 두는 곡간이 비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머니가 비어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듯이, 마음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연인에게는 이 가난한 마음이 없습니다.

자연인은 그 마음에는 욕심탐욕이 가득차 있고, 온갖 더러운 것들을 가득 채워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에,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인의 마음입니다.

 

우리나라 재벌 그룹쯤 되면 상당히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재벌 그룹의 형제들이 종종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을 두고 법정 다툼을 자주 합니다. 이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부모님에게서 자기 몫의 유산을 물려받고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그러다가 유산으로 물려받지 않은 재물, 그 부모님이 은밀하게 마련해 두신 거액의 비자금이 새롭게 발견되면, 그 돈은 형제간 유산을 분배할 때 나누지 않은 재물이라고 하면서 그 돈을 서로 가지겠다고 법정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어떻습니까?

재벌 그룹의 자녀들 정도 되면 돈은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새롭게 발견된 돈 정도는 서로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미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새롭게 발견된 돈을 자기도 나누어 갖겠다고 법정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재물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과 탐욕은 무엇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하게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보면서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 마음속을 죄와 탐욕과 같은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채워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괜찮은 존재야.’ ‘내 속에는 꽤 괜찮은 것이 있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사업적인 지혜가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돈 버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사실 피폐한 영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그 아버지를 미워해서 성장한 후에 평생 동안 한번도 그 아버지를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그는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마음 안에서 상처받은 열등감죄와 탐욕과 온갖 종류의 악들이 가득 차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잡스는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잡스는 스스로 내게는 남다른 지혜와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능력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아이티 산업을 선도할 것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아이폰이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런 그는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내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다.’라고 하며 일해왔고, 그런 일을 해낸 자기 자신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가난한 심령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그릇에 무엇이 가득 들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그릇에 담으려면 먼저 그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담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죄와 탐욕이 가득 차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인가를 넣으려고 하면 먼저 우리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여기에 가난한 마음이 복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그 마음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등감도 사실은 탐욕에서 나온 마음입니다.

 

열등감은 내 마음속에 물질을 갖고 싶은 탐욕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물질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마음입니다. 열등감은 상대방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의 비교에서 나오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삶이 가난하다고 그 마음속에 탐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가질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있을 뿐이지 탐욕은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5.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방법

 

팔복의 마음들은 예수님이 가지신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가난한 마음을 / 가지고 계시지만  1. 욕심과 탐욕으로 / 그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죄를 애통하는 마음을                    2. 죄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온유한 마음을                                3. 교만한 마음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4. 자기 의를 내 세우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5. 비판하고 정죄하는 마음으로

청결한 마음을                                6. 추악한 마음으로

화평케 하는 마음을                        7. 투기와 불화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박해도 감내하는 마음을   8.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바로 지금 세상이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본래 우리에게는 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을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주시고, 또 팔복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복된 마음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우리 마음 안에는 이전부터 아담 안에서 가지고 살아왔던 죄악 된 마음과 함께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팔복의 마음을 함께 가진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두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 안에서 물려받은 죄악 된 마음과 예수님이 은혜로 주신 팔복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믿을 때 우리에게서 일어난 이런 변화는 우리의 심령 안에서 일어난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은 우리 심령 안에서 일어난 이런 변화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혀 모른다는 말은 또한 아닙니다. 바람이 부는 것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나뭇잎이 흔들리고 우리 얼굴에 바람이 느껴지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신령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심령 안에서 일어난 이런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게 된 이후에 우리 마음 안에서는 아담의 죄 아래 속한 옛 마음과 예수님이 주신 이 팔복의 마음 사이에 전쟁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처럼 죄를 짓고 죄를 즐기며 사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죄를 지으면 예수님이 주신 이 팔복의 마음이 책망을 하게 되고, 의롭게 살려고 하면 죄악된 마음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삶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행복할 수가 없지요. 그 마음이 처절한 전쟁터인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보면 어떻게 전합니까?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해지고,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고, 무슨 병에 걸렸든지 다 낫게 된다고 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전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먼저 찾아오는 것을 영육 간에 갈등이고 괴로움입니다.

먼저는 가족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또 그 심령의 갈등이 있게 됩니다. 예수 믿고 이런 괴로운 시기를 보냈던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습니까? 또 로마서 7장에서는 그 심령의 갈등에 대해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하며 탄식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예수를 믿게 되면 이런 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전에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달게 느껴지고, 전에는 별 감동을 주지 못하던 찬송이 그렇게 좋아지고, 갑자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겨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새삼스럽게 아름답게 보이고, 전에는 미워하던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고, 또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서 생겨나는 등등의 변화가 우리에게 있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주어지는 마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음과 동시에, 또한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피터 지는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영적 싸움은 사람마다 그 강도도 다르고, 길이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루터와 같이 내적인 강한 싸움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고, 칼빈과 같이 큰 내적인 싸움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바울과 칼빈과 같이 그 육체까지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고, 육체적으로는 별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기간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삭과 같이 모리아 산에서 한 번의 고난으로 끝나는 사람들도 있고, 야곱과 같이 평생을 고난 중에 험악한 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영적 싸움 중에 있을 때는 신앙의 기복이 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때로는 구원을 확신하다가도 때로는 구원을 의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은혜에 감격하다가 또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이런 영적인 싸움을 경험했을 것이고, 저 또한 이런 싸움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런 영적 싸움을 경험하게 합니까? 그 이유는 이 영적 싸움을 통해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는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내려놓고 우리 마음을 비워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하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 마음 안에 추악한 오물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누가 깨닫게 해 줍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신 그 새로운 마음이 우리에게 이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때 또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내 안에 죄와 악이 가득한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와 악을 나 자신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심령 안에 아무 쓸데 없는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는데도, 그 죄와 악을 어찌할 수 없어서 절망하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그 죄악 된 마음을 비워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이 죄와 악은 오직 예수님이 비워주실 때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악을 비워주실 때, 비로써 우리는 가난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심령의 가난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령의 가난은 하나님의 은혜로, 은사로,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마태복음 5:3절 말씀을 보면, 우리 심령을 가난하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고 아픔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통해서 빨리 가난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지만, 이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하면서도 쉽게 가난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바울과 같이 질병을 주셔서라도, 때로는 사업의 실패를 주셔서라도, 가정이 파괴되는 아픔을 주셔서라도, 심지어는 죄에 빠지게 되는 절망을 주셔서라도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의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시작하셨으면, 그 고통스러운 영적 전쟁의 와중에 있는 우리들에게 자꾸자꾸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들이 은혜의 자리로 은혜의 자리로 계속 나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며 사모하게 하시고, 때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사모하게 하셔서, 우리가 갈급한 마음으로 은혜의 자리를 찾고 찾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것, 또는 우리가 이런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해 주어야 하는 말, 하나님은 한 번 구원하시기로 한 사람들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면서 배우듯이, 그렇게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은혜를 배워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삭의 생애를 보면 별다른 고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모리아 산에서 자신이 제물이 되어 죽어가야 할 때, 그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완전히 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더 이상 고난당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야곱은 평생 고난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그 생애를 되돌아보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 야곱은 자아가 깨어지고 가난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가난한 심령에 대해 살피고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 그 어떤 아픔이 오고, 고난이 오고, 고통이 오고,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이 세상 탐욕과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그래서 내가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하셔서, 결국 가난한 마음을 가진 내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하늘의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67절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니이다. 119:71절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3절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그 죄악 된 마음을 비우고, 그 마음이 가난하게 된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가난하게 된 사람들의 마음 안에 비로써 천국이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마음 안에 천국이 임한 사람들은 어떻게 복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의 마음인 팔복의 마음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이미 천국이 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이미 이 땅의 백성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있다는 자기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마다 그 영적 수준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영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장성한 사람과 같은 영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임한 천국의 경우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신의 죄악된 마음과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마음이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 안에서 육신의 소욕이 많이 절제되고 거룩한 신의 품성을 나타내 보여주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완전한 해방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도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하는 승리자의 믿음 고백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우리의 삶의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마음입니다.

주변 상황이 아무리 좋아도 그 마음에 고민, 고통, , 탐욕, 절망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가하면 그 마음 안에 팔복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이미 그 마음 안에 임한 영적인 천국을 누리며 살고 또 그 삶을 통해서는 천국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은혜와 복을 우리 모두 누리며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복 없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 없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려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등등 복 있는 삶에 대해 가르쳐 주시기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들을 보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마음 즉 심령이 바뀌는 것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는 바로 그 마음에 있으며, 우리 마음이 바뀌는 것이 바로 은혜라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 계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희 마음이 팔복의 마음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마음이 천국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의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천국을 심어주시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팔복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수술하시고자 하십니다. 죄를 사모하는 마음을 의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탐욕의 마음을 자기희생과 헌신의 마음으로, 교만한 마음을 겸손한 마음으로, 추악한 마음을 청결한 마음으로, 불화하고 싸우는 마음을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팔복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해 나가는 과정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이 복된 마음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뿐 아니라, 이제까지는 우리가 은혜의 얕은 물가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 팔복을 공부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더 깊은 은혜의 강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변화들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도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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