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힘(四力)을 갖자
시편 18:1-2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누가나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지식을, 기술을, 재능과 은사와 리더십’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시편 18편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그 힘으로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1-2절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의지하며 살아온 힘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힘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힘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떤 힘이 꼭 필요할까요?
첫째는, 체력(體力)입니다.
체력의 중요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전에 제가 장애인 교회를 섬길 때 보니 장애를 가진 사람 중에는 선천적인 장애인도 있었고 후천적인 장애인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 두 부류의 장애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더 많겠습니까? 선천적인 장애인이 많겠습니까? 후천적인 장애인이 많겠습니까?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후천적인 장애인이 더 많습니다.
후천적인 장애인은 불의의 사고나 혹은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장애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 기능에는 일부 장애가 있었으나 그 육체는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장애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청년인데도 앉아 있는 것조차도 힘들어하였고, 어떤 청년은 성가대에 서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들의 삶에 더 가까이 들어가 보면 아픔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그 건강 상태가 아주 나빠서, 교회에 나올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되지 않아서, 또는 교회가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장애인 교회에는 두 가지 정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교회형편이 되지 않아서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도와주지 못하는 어려움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교회에 참석하면서 이런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는 일에 했습니다. 당시 청년들의 숫자가 꽤 되었기 때문에, 먼저는 교사 두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고, 이 두 명의 교사와 함께 청년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가르치다가 보니 나중에는 청량리에 있는 정화여자 상업고등학교 내의 기독교 서클을 지도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저희 모임을 방문하였고, 그 중 여러 명의 여고생들이 저희 성경공부 모임에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애인 교회에는 여러 연령층,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장애인 교회를 섬기면서 들었던 생각은 사람이 건강을 잃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신앙생활조차도 힘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건강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가 건강할 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하기도 하고 또 건강관리를 잘 하지 않아서 건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건강을 잃고 난 후에서야 비로써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한 번 잃어버린 건강을 다시 되찾는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건강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관리를 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없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또 우리에게는 어떤 힘이 필요합니까?
둘째는, 지력(知力) 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에는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이건희 회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온 분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건희 회장으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했겠습니까? 바로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력(知力) 곧 지식의 힘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장남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삼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왜 고 이병철 회장은 장남과 차남에게 삼성을 물려주지 않고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주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건희 회장은 돈 많은 집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같이 골프치고 사치하면서 놀지 않고, 스물일곱 살에 유학을 가서 정말 지독하게 공부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희처럼 지독하게 공부하라.’는 유행어가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 청년 이건희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든지 하루 20시간씩 공부를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청년 이건희는 본래 기업경영자로는 어울리지 않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한 지독한 공부는 청년 이건희의 체질과 기호와 성격까지를 기업가 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볼 때 능력 있는 기업경영자가 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공부에 목숨을 걸고 있었던 그 셋째 아들이 어느 아들보다 믿음직스러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남이었던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면 나보다도 더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성 그룹을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끌어 온 삼성그룹은 과거의 삼성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삼성은 외국기업의 하청기업이었고, 3류 기업이었습니다. 외국 기업이 자사 제품을 팔면서 삼성이 만든 것들을 경품으로 끼워주었던 그런 정도의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은 이런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삼성의 제2대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후 처음에는 그룹의 경영상태 파악에 주력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삼성 그룹의 경영 상태를 파악한 후인 1993년 6월 7일 삼성 그룹 전 임직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모이게 한 후 ‘신 경영선언’을 하면서, 바꿀 수 없는 ‘아내와 자식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라’고 주문했습니다. 당시 이것은 아주 획기적인 주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삼성은 변화를 거듭해 온 결과, 14년 후인 2007년에는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삼성이 잘나가고 있던 2008년도에, 이건희 회장은 다시 기업문제를 전문적으로 컨설팅 해 주는 외국회사와 계약을 맺고, 많은 시간과 비싼 경비를 지불하면서 다시 삼성이라는 기업을 진단하게 했습니다. 그 때 나온 진단결과는 이랬습니다. 지금 삼성은 잘 해나가고 있지만 조직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대로 나가면 앞으로 10년 안에 다시 2류, 3류 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하면서, 계속 일류 기업으로 남으려면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전체적인 조직의 물갈이를 하라. 라고 조언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업진단을 바탕으로 2008년도에 삼성그룹에서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인사태풍이 불었습니다. 삼성은 당시 잘나가던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이기태 대외협력 담당 부회장, 그리고 황의 법칙을 주창한 황창규 반도체 기술총괄 사장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이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은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주역중의 주역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까지 퇴직시켰으니 그 인사가 얼마나 파격적인 인사였겠습니까?
이뿐 아닙니다.
삼성본사에 근무하던 인원 1400명 가운데, 200명만 남기고 모두 현장으로 전진배치 하였으며, 또 820명에 달하던 임원중에, 연구, 개발, 법무, 등 특수직 일부를 제외한 약 70%를 퇴직시키거나 보직을 바꾸어 재배치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며 새롭게 강조한 것이 바로 ‘스피드경영’입니다.
실무 담당자가 현장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마치는 ‘현장 완결 형 조직’으로 삼성의 조직을 바꾼 것입니다. 이런 획기적인 조직 개편으로 삼성은 한 때 휘청거리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 때 삼성은 사상 처음으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닥친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조직 개편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의 경쟁사들은 경제위기 속에서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오직 삼성만 2조원이상의 매출이익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삼성은 반도체 분야의 세계 유일 강자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또 삼성은 과거 IMF 위기 때, 2009년 세계 금융위기의 때, ‘퀸텀 점프(quantum jump)‘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여왔습니다. 삼성은 이렇게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급성장해 온 회사입니다.
삼성의 또 다른 위기는 에플 사의 스마트 폰 개발로 찾아왔습니다.
스마트폰의 출시로 그간 삼성의 효자상품이던 휴대폰 시장이 무너질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이 위기를 또 기회로 삼아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이 오히려 삼성의 효자 상품이 되고 있습니다.
삼성이 지금과 같이 반도체, 휴대폰, 컴퓨터, 건축 등에서 선두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업을 경영하는 최고 경영자의 지식의 힘 때문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가진 지식의 힘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게 하였고, 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위기를 대처할 수 있게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미래를 예측하는 눈을 갖게 한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지식의 힘을 오늘날 삼성을 일구어 오도록 했습니다.
지식의 힘은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요인입니다.
여러분도 지식의 힘을 키우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공은 보장됩니다.
그러면 지식의 힘을 어떻게 키울 수 있습니까?
요즘에는 인터넷도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서점들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도서관들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목적하는 공부에 집중하며 인터넷과 도서관과 서점을 많이 이용하면서 지식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후임 목회자 청빙
지식의 중요성은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하는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법 안정된 교회, 이름 있는 교회에서 후임목회자를 청빙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목회 관, 경력, 그리고 설교를 봅니다. 이것들은 다 그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임목회자 청빙의 1순위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신학공부를 한 후에, 외국에 가서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목회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청빙 1순위가 되었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그 가진 지식의 힘이 남다르다고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할 때 2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신대원이 동네에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때에는 정말 공부 외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그 때 2년 동안 한 공부가 오늘날 제 신학적인 기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따려면 적어도 10년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면서, 그 분야 전문서적 100권 이상 읽으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분들이 목회자 청빙에서 1순위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힘은 큰 재산
지식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큰 재산입니다.
지식을 가진 사람과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을 비유하면, 맨 발로 뛰어가는 사람과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빠르겠습니까? 지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빨리 가고, 더 크게 성취하도록 하는 힘이 됩니다.
지식이 이렇게 큰 힘이 되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 지식이라는 유용한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사교육 열풍을 일으키고, 또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학교가 그 자녀의 장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부모들은 그 자녀에게 어떤 특정 학교를 강요하기 보다는, 자녀가 지식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의 자녀의 장래에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가 자녀에게 지식의 힘을 키워주면, 자녀는 그 지식의 힘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지식은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커다란 힘이 됩니다. 여러분도 지식을 힘을 키우는데 힘과 시간을 쏟으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우리에게는 어떤 힘이 필요합니까?
셋째는, 심력(心力)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하셨을 때, 예수님과 당시 종교지도자들 간에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이나,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식적인 행위와 함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길 때도 장로들의 유전이나 종교의식을 통해서만 섬기지 말고, 마음으로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은 행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마음 즉 중심을 강조합니다. 또 믿음이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업적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룬 업적 보다는 그런 업적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꿈과 비전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가 이룬 업적이나 사역보다, 우리의 중심과 우리의 마음을 더 우선적으로 보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마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 중에 솔로몬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 다윗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솔로몬은 왕이 되었지만, 아버지 다윗 왕의 후임으로 왕의 지위를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여 부흥시킨 교회의 후임목사로 가는 것이 참 어렵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꾸 성도들이 후임으로 온 목사님과 그 전임 목사님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솔로몬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백성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까지도 인정해 주셨을 정도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이런 아버지 다윗 왕의 영향력은 솔로몬에게 장점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것은 또한 큰 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번제’는 어떤 제사입니까? 먼저 ‘번제’를 드리는 사람이 흠 없는 제물을 선택하여, 회막 앞 제사장에게 끌고 가서, 그 제물이 제사 드리기에 합당하고 흠이 없는 제물임을 확인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 제물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직접 잡아서 드렸던 제사입니다.
요즘 도축장에서 보통 소 한 마리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8분에서 10분이라고 합니다.
이런 속도로 소 일천 마리를 잡으려면 약 일만(10,000)분이 걸립니다. 이 일만(10,000)분을 시간으로 환산하면,(10,000 ÷ 60분 하면) 약 167시간이 됩니다. 167시간을 날짜로 계산하면(167 ÷ 24 시간 하면) 약 7일이 나옵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다 드리는 데는 오늘날 도축장을 기준으로 따져보아도 7일은 족히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천 번제를 드리는 것은 젊은 솔로몬에게도 참 힘겨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솔로몬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짐승의 피로 범벅이 되었을 것이고, 그 피 비린내는 진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곤함은 어떠했겠습니까?
얼마나 힘들고 피곤하였으면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리고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꿀잠을 자고 있던 솔로몬의 꿈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습니까?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그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구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얻고 싶어 한 것은 ‘마음의 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구한 ‘마음의 힘’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마음의 힘’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사건’입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하면서 솔로몬에게 이 아기가 누구의 아들인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를 듣고 솔로몬이 무엇이라고 명령합니까?
‘나는 누가 진짜 이 아기의 엄마인지 알지 못하겠으니, 칼을 가지고 그 아기를 두 동강 내어서 공평하게 나누어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솔로몬 왕의 말을 듣고 아기의 친 엄마는 아이를 향한 사랑이 불일 듯 일어나서, ‘왕이여 그 아이가 자기 아이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어도 좋으니, 제발 그 아이를 둘로 나누지만 말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가짜 엄마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현명하신 왕의 말씀대로 이 아이를 공평하게 둘로 나누어서 누구의 아이도 되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지혜롭게 재판한 솔로몬 왕을 보면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마음의 힘’을 은사로 받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꽤뚫어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그 마음의 힘으로, 후에 ‘잠언서, 전도서, 아가서, 시편’ 등 수많은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또 성경에는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연구서들을 아주 여러 편 썼습니다. 또 솔로몬은 자기 백성들을 그 지혜로 다스렸고 또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를 성공적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솔로몬 왕의 명성은 당시 전 문명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학자들과 현인들이 솔로몬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고, 심지어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그 신하들을 이끌고 많은 보물을 예물로 준비하여 직접 찾아오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마음의 힘’은 설교자에게 꼭 필요한 은사입니다.
대부분의 부흥사들을 보면 ‘큰마음의 힘’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힘을 소유한 부흥사들은 단순한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도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콱콱 박히는 설교를 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시급하게 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도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께 ‘듣는 마음’ 즉 ‘마음의 힘’을 구해야 합니다. 왜요. 이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하고, 또 마음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와 닫게 하는 의사전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마음의 힘’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왜 ‘마음의 힘’ 꼭 가져야 합니까?
그 이유는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마음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힘’은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큰 힘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마음을 힘을 받아 성공적인 인생,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우리에게는 어떤 힘이 필요합니까?
넷째는, 영력(靈力)입니다.
인간은 본래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신 영적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영적인 분별력과 판단력을 사용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게 된 후, 그 즉시 아담의 ‘영은 죽었고’,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영적인 힘과 권세’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힘과 권세’를 다시 회복된 성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남다른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 중에 다윗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고 불렸던 사람입니다. 이런 다윗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같은 소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를 보고, 세상을 보고,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이 영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힘과 권세를 가졌던 베드로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위선적인 죄를 간파하였습니다. 또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라고 명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엘리 제사장이 영적 권세로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자녀 주시기를 축복하자, 엘리 제사장이 축복한 대로 한나는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 세우심을 받았던 사무엘은 그 영적 권세로 한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역사해 주셨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영적인 힘과 권세는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시편 18:1절 말씀을 보면 탁월한 영적 힘을 소유하였던 다윗은 어떤 고백을 하였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적인 힘의 근원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6:10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씀함으로, 예수님이 성도들의 영적인 힘의 근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3:16절 말씀을 보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라고 말씀하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영적인 힘의 원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의 영적인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힘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로, 은사로, 선물로 주시는 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 17:9절 말씀을 보면 “손이 깨끗한 자가 점점 힘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고, 디모데후서 2:2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거룩하고 주인의 쓰기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은,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세를 ‘손이 깨끗한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
어떤 성도들은 영성이나 영적인 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무당푸닥거리 하듯이’, 마치 ‘점쟁이가 점을 치듯이’ 하는 것을 영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독교의 영성을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영이요 생명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이 깊은 사람, 영적인 큰 힘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반계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힘을 가졌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또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가족을 보고, 이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영적인 열매들이 그 삶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에서 보듯이 그 인격 안에서 나타나는 열매들이 있고, 또 성령의 은사에서 보듯이 그 사역을 통해 능력으로 역사로 나타나는 열매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힘이 나타나는 모양은 다양하나 다 한 성령으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은사가 있습니까? 마치 무당과 같이 예언하는 은사가 있습니까? 이런 것들은 아주 잘못된 영적인 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분쟁을 일으키고 갈등을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됩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된 영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영적 은사를 많이 받으며 많이 받을수록 좋습니다. 이것은 힘이 있는 교회가 큰일을 하듯이, 더 큰 영적인 힘이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혹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도들의 영적인 능력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단계인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으로 받고, 그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곧 바로 생명으로 받아 들여서, 그 받은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라.’고 하면, 자기 입장 자기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곧 바로 순종하여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말씀하시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곧 바로 따라 나서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마태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12제자는 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곧 바로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중간 단계인 두 번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머리로 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들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분별하고, 그래도 확신이 안서면 기도하여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머리로 듣는 사람들이 특징입니다.
가장 낮은 단계인 첫 번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고, 교리와 신학 같은 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선하게 살려고 하는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조건 믿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단계에 속해 있는 성도입니까?
가능하면 가장 높은 세 번째 단계에 속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들으며, 믿음 안에서 민첩하게 순종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예비해 두신 놀라운 은혜와 복들을 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힘에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첫째, 육체의 힘이 있습니다. 둘째, 지식의 힘이 있습니다. 셋째, 마음의 힘이 있습니다. 넷째,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이런 힘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 안에서 이 네 가지 힘을 가진 성도들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믿음 안에서는 늘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참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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