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서

복된 삶의 조건들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2. 9. 18. 15:43

복된 삶의 조건들

잠언 3:1-10

 

우리는 무엇을 보든지 나무도 보고 숲도 함께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부분에 얽매여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또 전체를 보느라 부분 부분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왜 정치가 불신을 받고 있습니까?

지도자가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국가지도자가 되고 보니 국가라는 전체 속에서 내가 우리 당이 해야 할 일을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과 자기 당의 유 불리함만을 따져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국민의 뜻까지 외곡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가 사람들에게 불신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고로 군자는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 더 나아가 산도 볼 줄 아는 안목과 혜안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쪼록 이런 혜안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지도자 그룹이 되는 그런 날이 빨리 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가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대가 이렇다고 믿음을 가진 우리들도 똑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겠습니까? 우리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에서 느껴지는 서로 다른 세밀한 멋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넓고 넉넉한 숲에서 풍겨 나오는 유장함 또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숲과 숲이 어우러져서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산세까지를 함께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나무와 숲을 함께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야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우리가 성경을 보면 나무에 대한 말씀도 있고 또 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의 삶이 한 그루의 나무라면 개개인들이 모여서 이루어가는 사회나 역사는 숲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라는 숲 속에 한 그루의 독특한 나무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조성하신 숲에 대한 말씀이 다니엘서에 나옵니다.

9:2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칠십 이레라는 숲을 조성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네 백성과 (다니엘의 백성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지요.)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이것은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내가 일흔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통해 조성하신 숲에 대한 말씀이 로마서에 나옵니다.

로마서 11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참 감람나무의 가지를 꺾으시고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꺾어내시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이셨다고 합니다. (즉 이방인들을 접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시대, 이방교회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장차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나면, 그래서 이방인의 때가 끝이 나면, 다시 인류역사의 숲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는 마지막 한 이레의 때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 이레 즉 7년이 지나고 나면 인류 역사는 끝이 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에는 이런 인류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개개인들에게 주신 말씀 즉 나무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시편1편을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사기 9장에 나오는 요담의 비유를 보면 사람들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로 비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잠언 3장의 말씀은 나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한 그루의 나무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안에는 우리가 복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표현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4절입니다. ‘...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6절입니다. ‘...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8절입니다. ‘...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10절입니다.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이 말씀들을 보면,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는 장수와 그 마음에 누리며 사는 평강과 하나님이 그 길을 지도해 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며 사는 삶과 그리고 육신은 건강하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역사라는 숲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각각의 나무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도 볼 수 있고, 우리 삶에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님이 우리 삶에 베풀어주시는 은혜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잠언 3장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려고 하면 일정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문장들을 보면 앞에서는 어떤 조건들을 제시하고 난 후에 뒤에서는 그리하면 이런 저런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 말씀하고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키면 이런 저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째, 장수와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해 주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언 3:1-2절입니다.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사람들의 가장 큰 바람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수의 복을 누리고 사시는 분들을 보고 복 받으신 어르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수할 뿐 아니라 그 마음의 평안까지 누리며 살게 된다면 이보다 더 복된 삶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복을 어떤 사람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그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장수의 복마음의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수하면서 마음의 평강을 누리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하나님의 법인 10계명을 잊지 말고 마음에 간직하고 그대로 준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요약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요한13:23절 말씀에서는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또한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이 요한1서의 말씀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같이 보신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함으로 예수님을 보내주신 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먼저는 예수님을 잘 믿고, 그 다음에는 믿음 안에서 서로서로를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장수의 복도 주시고 또 마음에 평강의 복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할 수 없으신 약속입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래 사시고 싶으시지요? 마음에 평강을 누리며 사시고 싶으시지요? 그러려면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복잡하지 않고 언제나 심플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 은혜, 은사, 장수 등등의 모든 복된 삶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 마음속에서는 평강의 샘물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생수의 근원을 가지는 방법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사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만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중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주신 말씀에는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수와 평강을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십자가 구속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을 입은 성도답게, 서로를 사랑하고, 연약한 자를 보듬어 안아주고, 긍휼을 베풀고,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 약속하신 장수의 복평강의 복을 늘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둘째,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며 사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언 3:3-4절입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은총은, 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를 말하는데, 이것은 또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받는 은혜를 말할 때에도 사용됩니다. 그런가 하면 귀중히 여김은 받는 다는 것은 명예롭게 되고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은총을 받으며, 명예로운 사람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습니까?

 

사람들은 명예롭게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감투를 하나 써서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감투가 사람에게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감투가 명예를 가져다준다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가장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에게서 보듯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면 명예롭게 되지도 못하고, 존중히 여김을 받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볼 때 명예롭게 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때입니다.

전북 전주에서는 20년 넘게 얼굴 없는 천사가 연말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주민 센터 인근에 돈이 든 상자를 놓아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지만, 그 선행을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될 때 명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로 보면 어떤 사람이 명예로운 사람 존중을 받는 사람이겠습니까?

성도들이 어떤 집사님이 우리 교회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존경 받는 사람이고 또 명예를 얻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도들이 제발 저 사람 다른 교회로 좀 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명예로운 사람도 아니고 존경을 받는 사람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총을 주시고, 명예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까? 3절 말씀을 보면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진리는 위선과 가증함과 반대 되는 말입니다. 진리란?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존중히 여김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위선적인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직접 대놓고 말을 하지 않지만, 이런 사람들은 은근히 자기 주변에서 떠나주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총을 주시고 명예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까?

3절 말씀을 보면 인자가 풍성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인자란 무엇입니까?

인자란? 잔인함과 사나움과 반대가 되는 말입니다. 인자란? 너그럽고, 부드럽고, 따스한 인격을 말합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이 나를 떠나지 않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내 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인자하고 자비로운 사람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또 사람들은 그 사람의 삶을 본받아 살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총을 받으며 명예로운 사람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까? 명예는 교활하고 약삭빠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명예는 따스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을 보살피는 사람, 그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우리는 인자와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받으며, 명예로운 사람으로 존중히 여김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통해 우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입니다. 아멘.

 

셋째, 그 앞날을 평탄하게 살게 되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언 3:5-6절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러분의 앞날은 어떠해 보입니까?

앞날이 든든해 보이고 아무 걱정도 없어 보입니까? 아니면 불안해 보입니까?

 

비록 지금은 내가 잘 살고 건강하다고 할지라도, 장래가 불안 하다면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오늘도 믿음 안에서 행복해야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장래도 믿음 안에서 든든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날마다의 삶이 평탄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된 삶입니다.

 

그 앞날의 삶을 평탄하게 사는 방법이 잠언 3:5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의 길을 지도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앞날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

우리는 단 5분 뒤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앞날은 누구에게 달려 있습니까? 우리의 앞날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시편 2편을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래 어디 좀 보자." ‘그래 어떻게 하는지 보자라고 하시며 웃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사야 45: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은 세상만사를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평안한 길을 주실 수도 있고, 모진 환난을 만나게 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의 앞날을 평안하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일이 조금 잘 되어갈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일이 조금 잘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고,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믿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 수 있습니까?

그 하는 일이 잘 되어서 형통한 삶을 살게 될 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덕이야, 나는 사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라고 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고, 혹 공부를 잘해서 1등을 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좋은 머리를 주셨기 때문에 나는 1등을 할 수 있었어.’라고 하며 하나님을 인정하고, 내가 하는 장사가 잘 되어서 돈을 많이 벌게 되었을 때도, 내가 하는 장사가 잘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사업장에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결과임을 인정하고, 내 외모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잘 났다고 할 때 그것도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인정하고, 자녀들이 착하고 똑똑하다고 다른 사람들이 칭찬을 할 때에도 그런 자녀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등등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는 삶입니다. 아멘.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이것은 정직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겸손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그 삶에 함께 하시면서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교만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자기 자신을 내 세우고, 자기 자신의 수고와 공로를 내 새우기 때문에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 앞에 놓여 있는 길은 멸망을 길이고 또 패망의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가 되셔서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나의 힘이요, 나의 구원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자랑으로 여기며, 그 하나님께서 나의 삶 전부를 주장하고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그 하나님께 늘 기도하고, 또 그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늘 감사하며, 앞으로 살아가야할 모든 미래를 온전히 맡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믿음의 삶입니다. 아멘.

 

넷째, 육신의 건강을 누리며 살게 해 주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언 3:7-8절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사람이 건강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질병일 것입니다. 오늘날은 의학기술이 많이 발달하여서 많은 질병들이 정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아직도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강력한 대적입니다. 병원을 가보면 온갖 질병과 각종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그 주어진 생애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 복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누리며 사는 가장 큰 복은 아마 건강의 복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건강한 몸건강한 마음 갖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은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건강을 약속하고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질병과 고통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아담의 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당하며 사는 근심, 불안, 질병 등등의 모든 고통들은 다 죄와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범죄자에게 고통을 주시고 그 지은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교만한 헤롯왕을 하나님이 치심으로 사람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로 인해 충이 먹어 죽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아직도 의학적으로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 에이즈라는 병은 동성연애라는 부끄러운 죄에 대한 형벌로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 부모가 도둑질 하고, 사기를 치고, 인신매매를 한 사람들의 자식들 치고 잘되는 사람들이 별로 없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그 마음에 증오심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신병이 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건강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병들어 고통하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건강한 사람으로 지으신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병이 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하나님은 지금도 의사들을 통해 사람들이 병을 치료받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는 마음에서 악을 버리고, 그 몸을 죄악 된 삶에서 돌이켜 경건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기적을 베푸셔서 그 병을 고쳐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삶을 살게 되면 병에 걸리지 않게 지켜 보호해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성도들은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사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치료와 보호 안에서 건강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다섯째,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게 되는 조건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언 3:9-10절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사람들의 삶을 보면 꼭 부자가 행복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이 불행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로 살면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게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 정도 가난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같이,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며칠씩 굶어야 한다면 이런 가난은 축복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부자여서 하나님도 사람도 무시할 만큼 교만해져서도 안 되겠지만, 너무 가난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까지도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면 이것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단지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 삶의 은혜를 감사하며, 갚을 수 없는 이런 은혜들을 조금이나마 보답하며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활도 안 된다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삶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고하고 애써 노력하나 그 거두어들이는 것이 변변치 않다면 그런 우리가 어떻게 주를 위해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땀 흘려 수고한대로 그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실 때 비로써 우리는 주를 위해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잠언서에서는 이런 은혜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 주신 재물로 여호와를 공경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 수고한대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은혜를 주신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면서 수고하고 애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인 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는 확실합니다.

그 주어진 일은 게을리 하면서 기도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할 수 있는 몸을 주신 분이시고, 또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하라고 명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는 일하지 않고 거두는 횡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한대로 거두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까? 성도들이 일은 하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일하지 않고 이자 놀이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불의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복권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거머쥔 사람들의 결말이 어떻습니까?

없던 재물을 갖게 되었으니 이전보다 더 잘 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 정 반대라고 합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 중에 그 나중의 삶이 이전의 삶 보다 더 잘 된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복권을 통해 얻게 되는 횡재는 재앙이지 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양의 첫 새끼, 곡식의 첫 열매, 첫 달 월급, 처음 낳은 자식 등등은 의례히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실천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인 축복은 받아서 미국경제의 1/2을 장악하고 있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유대인들이 은행에 맡긴 예금을 다 인출해 가면 그 문을 닫아야할 은행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중동의 아주 작은 땅에서(경상남북도 정도 되는 땅에서), 불과 수백 만 명이 모여 살고 있지만(서울의 인구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누구도 이 유대인들을 건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삶이 우리에게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은 그 모두가 다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신 말씀에도 진실하여서 일점일획까지도 거짓됨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복된 삶이라고 하는 은혜로운 삶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복 있는 삶을 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잠언서 3장을 통해 주신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고, 그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약속하고 계신 그 모든 복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누리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삶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잠언서 3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조건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조건들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법을 잊지 않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 인자와 진리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사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섯째, 그 주신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장수의 복과 평강의 복, 은총의 복과 귀중이 여김을 받으며 사는 복, 그 미래가 잘 되는 복과 몸이 건강하게 되는 복과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복들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런 복들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잠언서 3장에서 약속하고 계신 복된 삶들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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