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요한복음 5:24-29
들어가는 말
기독교에서 중요시 하고 있는 두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탄절이고 하나는 부활절입니다. 성탄절은 아담의 범죄에 속하여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성자 하나님이 신성을 부인하고 사람의 형상을 입고 성육신 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활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삼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중심적인 내용도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상에 전해 주었던 가장 중심적인 내용도 바로 부활신앙이었습니다. 지금 교회가 세상을 향해 전해주고 있는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도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죽음의 해결"입니다. 죽음이라는 절망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죽음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불로장생의 약을 먹고 죽지 않는 것입니까? 아담의 범죄 이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의 문제는 오직 부활로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종교가 참된 종교라면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부활의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믿음과 부활의 소망을 주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종교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 종교들이 참 된 종교로 인정을 받으려면 부활의 믿음과 부활의 소망을 주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소망을 주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어떻습니까?
불교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80세에 숲 속에 살고 있는 대장장이 춘다의 집에 갔다가 그가 공양한 버섯나물을 먹고 식중독을 일으켜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석가모니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유교는 어떻습니까?
유교에도 부활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계로가 공자에게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살아생전의 일도 아직 잘 모르거늘 어찌 죽음에 대해 알 수 있겠느냐?"라는 아주 솔직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었던 공자도 결국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학문이라고 하는 철학에도 부활에 대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으면서 한 말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이웃집에서 닭 한 마리 꾼 것이 있는데 그것을 ‘내 대신 갚아 달라.’ 라는 유언의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 소크라테스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이슬람교에도 부활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에 가면 이슬람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무덤이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순례자들이 마호메트가 잠자고 있는 무덤을 보려고 순례를 옵니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은 이 세상 삶의 끝입니다. 그래서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하신 말씀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이후, 이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 복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식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고 합니다. 이 부활의 소식은 죽음이 지배하는 캄캄한 세상을 밝혀주는 한 줄기 광명한 빛이었습니다. 사망에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 주신 것입니다.
부활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에 전해주는 복음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매여 살고 있는 인류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죽음에서의 구원은 오직 누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부활의 삶에 대한 믿음도 희망도 없습니다. 아멘.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윤리적인 사람이 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과거에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 같이, 우리들도 결국에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될 것을 믿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신앙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바로 부활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소망 역시 부활의 소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죽음을 이긴 신앙, 부활을 확신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을 가질 때 이 부활신앙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긴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아멘.
부활의 순서
우리가 부활을 살필 때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3-24절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부활의 순서를 보면 부활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의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마지막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먼저는 예수님의 부활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의 부활이 있는데 사람들의 부활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이 세 단계의 부활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약 2,000년 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신령한 몸을 입은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셨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육체를 가지셨기 때문에 이런 벽들은 그냥 통과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장차 예수님이 가지신 이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서 영생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이 예수님의 부활은 약 2,000년 전에 유대 땅에서 일어났던 실재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본 목격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격자들이 기록해서 전해준 수많은 글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고린도전서 15:20절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이전에 이 세상은 죽음으로 끝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 끝나는 이 세상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자신들도 부활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 부활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장례식장에 가서도 이 부활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장래 식장까지도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장소로 삼습니다. 아멘,
부활의 생명을 경험한 사람들
사람들 중에는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 있는 장례식장에 가신 일이 있으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심으로 장례식장을 부활과 생명이 충만한 장소, 부활의 소망을 전해주는 장소로 만드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죽어 장사 지낸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열게 하고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의 처소였던 무덤을 부활의 생명을 얻는 장소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이렇게 부활의 역사들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두 사람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고 낙심하고 좌절하여서 그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두 제자에게 가셔서 함께 길을 가시면서, 구약성경에 예언되고 있었던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들을 자세히 풀어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두 제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때 그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그 뜨거워진 마음으로 깨닫게 된 것은 구약성경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예수님의 부활하심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두 사람은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되고, 부활의 생명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체험을 통해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고, 부활이 주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의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는 도로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부활과 부활의 생명을 체험하면서 확고한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이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은혜를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신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또한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죽어도 다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산다는 것입니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함으로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 중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육체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회복체를 입고 천사들에 의해 휴거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회복체라 함은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고 살던 그 육체가 아담의 무죄한 육체로 홀연히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회복된 육체를 가지고 천년 왕국의 백성이 되어 1,000년 동안 자녀를 낳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도 죽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곡과 마곡의 전쟁, 백보좌 심판 때를 지나면서 회복체를 벗고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천국에 들어갑니까?
그 이유는 천국은 혈과 육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죄가 없다고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무죄한 육체를 입고 사는 회복체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령한 육체인 부활체를 입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회복체를 부활체로 갈아입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음을 경험하고 난 후에 부활체를 입습니다.
예수님도, 순교자들도, 자기에게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죽은 사람들도 다 똑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로 살아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는 이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회복체로 휴거하여 천년왕국에 들어가고, 또 백보좌심판 이후에는 부활체로 변하여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를 알고 있습니까?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땅에 속하여 땅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물론 이 사람들도 그 육체로는 땅에 속하여 땅을 바라보며 살지만, 그 영으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이 계시는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의 희로애락에 매몰되지 않고,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늘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기도하며 범사를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런 삶이 바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모두는 부활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활의 권능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은 그 인격을 변화시키시고, 그 삶을 변화시켜서, 하늘 소망을 가진 성도로 살아가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부활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 개인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들이 살아가는 평생의 삶 속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둘째 사람들의 부활입니다.
고린도전서 15:21-24절입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부활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부활이 있으시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마지막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여기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유대인이라고도 하고, 예수 믿고 중생한 사람이라고도 하고, 환난 기간 중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 전해주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0:4-5절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말씀에서는 두부류의 서로 다른 순교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계시록 시대 이전에 순교한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계시록 시대에 순교한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부활하여서) 천년 왕국에 들어가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인데 이것이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 가운데 첫째 부활은 순교자들의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9-11절에서도 이 두 부류의 순교자들이 나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계시록 이전의 순교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의인 아벨로부터 계시록시대 이전에 죽은 순교자들로, 그 영이 재단 아래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장차 다섯 번째 인을 뗄 때 예수님을 향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요청을 하고 있는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 동안 더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계시록 시대 순교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시대에 순교할 사람들이 더 있으니 그들이 순교하여 순교자의 숫자가 찰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순교자들은 계시록 이전과 계시록 시대 순교자들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한 부류의 순교자들이 더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3-12절입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이 사람들은 우리가 두 증인으로 알고 있는 순교자들입니다.
이들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의 전쟁에서 순교한 후 3일 반 후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될 것이며 하늘로 올라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승천할 것이라고 합니다.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시온 산에 올라가서 오직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계시록 이전 시대 순교자들과 계시록 시대 순교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4:16-17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들도 부활하여 승천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도 항상 주와 함께 있으며, 주와 함께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고, 주와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0:4-6절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휴거한 성도들은 회복체를 입고 천년 왕국의 백성이 되어 천년 동안 자녀를 낳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그러면 그 나머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사람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천년왕국이 다 지나가기 까지) 살지 못하더라.(부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순교자들 외에 지상에서 살다가 수명이 다해서 죽은 그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이 때(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부활에 대한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5: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말씀을 보면 천년왕국이 지난 후에 백 보좌심판을 앞두고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영혼들이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살다가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들이 부활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때 두 부류의 서로 다른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둘째 부활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활입니다. 아멘.
부활은 이렇게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중 한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종말 시대 이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하여서 그 영혼이 재단 아래 있는 순교자가 되거나, 혹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때를 선하게 살다가 죽어서 장차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든가 해야 합니다.
둘째는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라면, 그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다가 순교하거나, 혹은 종말 시대 두 증인의 사명을 받아 그 받은 사명을 감당하다가 순교하는 성도가 되거나, 혹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때를 선하게 살다가 죽어서 장차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든가 해야 합니다.
셋째는 혹 우리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시대까지 살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예비 처에서 하나님의 보호 속에 믿음을 지키며 살다가 살아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물려받은 죄악 된 육신을 벗고 홀연히 죄가 전혀 없는 육체로 회복되어서 천사들에 의해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장차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될 참 복 있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세 부류의 성도들 중 한 부류에 속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처음이 있으면 끝도 있고, 오른 막 길이 있으면 내리 막 길도 있고, 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있고,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도 있습니다. 성경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이요 나중이며,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종말의 주님이시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다 죽습니다.
이 죽음은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올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인생이 끝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성경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로마서 2:6-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요한복음 5:28-29절입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니나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이 찾아오지만 살아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 이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선한 일을 행하며 산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지만, 아담의 죄에 속하여 죄악 가운데서 살면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악한 일을 행하며 산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부활하여 그 악행에 대한 심판의 장소인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으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장차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지 심판의 부활의 참여할지, 천국에 가서 살지 지옥에 가서 살지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결정합니다.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4:6절에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지금 이 시간이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주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를 때 구원을 받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시간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시인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서,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의 소망과 하늘의 기쁨을 날마다의 삶 속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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