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중요성(고전서13:1-7절)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은 고린도전서 13:1-7절까지 말씀으로 “사랑의 중요성”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요즘은 일기가 고르지 못한 날씨에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이럴 때 코로나도 주의 하시면서 신앙생활도 잘 하여 은혜로운 삶이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분문의 배경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성격을 잘 묘사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본문에서 역설하고 있는 사랑은 인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이기적인 사랑과는 구분이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이타적인 아가페 사랑으로써 이 사랑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속성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님을 내어주심으로써 무조건 적인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정의는 상대방을 구하고 살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랑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오래참고 서로 사랑하시므로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랑의 공통체적인 삶을 이루어 가시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본문의 말씀을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 방향을 따라 가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하십니다.
본문 고전서 13:2-3절 말씀에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사랑하기를 원하고 또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끝없이 사회가 다원화되고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 속에서 사람의 이러한 기본적 욕구는 끊임없이 차단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사랑함으로써 자기 존재 의미를 찾는 사람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랑의 욕구를 묵살당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느끼며 늘 소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당시의 고린도교회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정직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는 아무리 좋은 은사와 능력을 행할 수 있어도 그것이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큰 능력과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그 속을 채우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교만으로 변질될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우리자신이 또는 주위에 있는 다른 성도들이 그 마음속에 사랑이 없이 선행을 행하거나 교회에 봉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중요한 것이 빠져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전서 16:14절 말씀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그리스도인 작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랑은 부러진 뼈를 다시 붙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아픔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부러진 뼈가 다시 붙으려면 심한 고통이 따릅니다. 또한 많은 시간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런 고통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고통까지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통이 두려워 사랑하기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사랑하기를 포기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요일서 4:7-8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하십니다.
본문 고전서 13:4,7절 말씀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사랑에 대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훈하면서 제일 먼저 오래참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필요성은 첫 구절이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오래 참는 일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오래 참는 인내와 노력의 행위가 아니고서는 사랑을 이룰 길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사랑의 은혜가 있었기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렇게 거듭난 성도로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한그루의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사랑의 보살핌이 있어야 하듯이 하물며 나무가 아닌 사람을 향한 사랑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듯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 역시 오래 참는 사랑의 연습을 거듭 해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22:50-51절 말씀에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로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어느 선교사가 파인애플 밭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다가, 결국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실 것입니다. 선교사에게 적대적이었던 원주민들이 변하게 된 것은, 선교사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준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진리를 의심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골로새서 3:12-14절 말씀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온유와 오래 참음을 곳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284장)
셋째로,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다 하십니다.
본문 고전서 13:5-6절 말씀에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란 말씀의 뜻은 이기주의를 버리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오래 참는 사랑은 온전히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함 받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전적으로 희생하신 사랑이었기에 오늘의 성도들이 거듭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처럼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인류는 사랑이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진정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는 자문자답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사랑이요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고전서 10:33절 말씀에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세 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하십니다.
둘째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하십니다.
셋째로,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다 하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인이십니다. 그리하여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9-11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할렐루야
2022년 11월 27일 (참빛교회)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