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하나님은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2. 5. 14:25

하나님은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요한복음 20:30-3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성경은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이 39권이고 신약이 27권입니다. 그러나 성경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책들이 이것뿐인 것이 아닙니다. 이 이외에도 약 250여 권이나 되는 책들이 성경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66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이것들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영감해 주신 말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그 나머지 책들은 외경 혹은 위경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만을 영감 된 말씀이라고 보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통일성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1,600년이라는 아주 긴 세월 동안,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았던 약 4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만약 이런 글들이 사람의 기록물이라면 통일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통일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같은 사람이 쓴 글이라도 그 연령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가 달라지고 그 쓴 글의 내용도 달라집니다. 왜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상이 발전하고, 인생과 세상을 보는 안목과 관점이 성숙해져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예를 솔로몬의 경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쓴 글들이 성경 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글들을 보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쓴 아가서, 장년의 나이에 쓴 잠언서, 노년의 나이에 쓴 전도서는 그 주제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고 어휘나 문체까지도 다릅니다.

 

이렇게 동일한 사람이 쓴 글도 연령에 따라 달라지는데, 성경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인데 그 글의 주제가 일치하고 그 글의 내용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성경의 저자가 사람이라면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영감해 주신 말씀이라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통일성을 가지고 증거하고 있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5: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이 전해 주고 있는 중심적인 내용은 바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실 예수님, 오신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경이나 위경들과 다른 점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이런 성경을 사람들에게 주신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첫째,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가장 기본적인 이유입니다.

요한복음 20:31절에서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주의해서 보면 사도 요한은, 내가 이 요한복음을 기록함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고, 내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해 주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성육신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을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시고, 또 인간을 의롭다 해 주시기 위하여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부활의 새 생명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수고하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행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그 모든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고, 3일 후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됩니다. 아멘.

 

이 구원사건을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내면 그 잘려진 가지는 나무의 생명에서 떠나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말라서 죽은 가지가 됩니다. 그러나 이 잘려진 가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 다시 그 본래의 나무에 접붙이게 되면, 이 가지는 다시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나무의 진액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죽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되면, 이 믿음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다시 접붙임을 받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으며 그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실들을 알려주시려고 기록해 주신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임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시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애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성경을 읽는 것이 마치 꿀송이를 먹는 것보다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병이 날 지경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천 천의 금은보다 더 좋아 한다.’라고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의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사랑하여 종일 작은 소리로 그 말씀을 읊조리며 다닌다.’라고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에 대해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내 건 종교개혁의 5대 정신 중 첫 번째가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 중에서 단 한 구절의 말씀만 받아도 그 인생이 변합니다. 루터는 로마서 1:17절 말씀을 받고 그 힘든 종교개혁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방탕한 청년 어거스틴은 로마서 13:11-14절 말씀을 받고 신앙의 방황을 끝내고 성자라 칭송받으며 사는 교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의 단 한 구절의 말씀만 받아도, 우리는 평생동안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 모두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둘째, 우리 신앙생활의 지침서로 삼도록 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디모데 후서 3:16-17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은 주신 이유는 첫째, 우리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지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디모데 후서 3장의 말씀을 보면 네 가지 지침을 주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교훈입니다.

교훈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또 무엇을 행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길에 세워져 있는 천안 30Km, 대전40Km 라고 써 붙인 이정표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얼마를 더 가면 천안이고 얼마를 더 가면 대전인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의정표로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장차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지를 알려 줍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교훈을 주는 것이 첫 번째 역할입니다.

 

둘째는 책망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때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그 길은 잘못되었다.’라고 책망하심으로 그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책망하는 기능입니다.

 

셋째는 바르게 함입니다.

우리는 책망을 받게 될 때 완악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을 기쁘게 듣고 즐겁게 돌이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는 돌이키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의로 교육함입니다.

의로 교육한다.’는 말은 지속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산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통해 의로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성경을 보면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지 못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살았던 시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사시대를 끝내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게 하게 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에 왕을 주셨습니다.

 

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왕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하고 인도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 왕을 섬기며 살아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왕으로 믿고 섬기며 사는 삶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왕이나 백성들을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왕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주신 사울 왕과 다윗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모두 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위는 박탈하시고,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폐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울 왕은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과 그 주신 말씀보다 백성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인도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삶을 살았다면, 다윗 왕은 철저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이 두 사람의 운명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내게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았던 사람 중에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링컨이 있습니다. 링컨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링컨이었기 때문에 그는 인생의 위기의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가장 먼저 성경을 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고, 또 하나님께 도와주시기를 요청하는 도움의 기도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 링컨 대통령에게 가장 힘든 때는 남북 전쟁 때일 것입니다.

한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전쟁을 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이 때 링컨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많이 했든지, 그 무릎 굻고 기도했던 그 자리의 카페트가 아주 너덜너덜하게 되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앙생활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 뿐 아니라, 늘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으며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나의 삶의 왕으로 모시고 그 통치하심에 순응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늘 그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말씀으로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구하며,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또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셋째,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우리는 왜 성경을 읽어야 합니까? 성경은 우리 삶에 참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삽니다.

그 모든 사고나 판단이 이 세상 속에서의 삶에 국한되어 이루어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면 세상에서 더 잘 살고,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하며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이 세상 속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지만, 이 세상의 삶을 넘어서는 이해와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전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려 주고, 그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천지창조죄에서의 구원섭리로 다스리심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그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시작도 알고,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고,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삶의 결말까지 다 알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에 누가 더 지혜로운 사람이겠습니까?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더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든 지혜와 힘을 세상에서의 성공과 성취에 쏟아 붓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 속에서는 더 성공한 사람으로, 더 크고 놀라운 업적을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통치하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훨씬 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하며 사는 어리석은 말을 믿음을 가진 유치원생도 분별해 냅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쓴 책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교회학교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이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 모르세요. 선생님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모르세요. 나는 아는데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 아이가 집에 돌아가서 뭐라고 할까요?

엄마. 우리 선생님은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창조하심도 모르신데. 웃기지.’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 다니는 유치원생들도 다 아는 일을, 세상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박사들도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9:10)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유치원생은 이런 지혜를 어디서 얻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은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우리에게 인생의 참 지혜, 삶의 참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는 어디서 와서, 왜 지금 여기서 살며, 장차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좌충우돌(左衝右突) 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아야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장애인이었지만 천문학 분야에서는 아인슈타인을 넘어서는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인생의 참된 지혜는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호킹 박사는 자신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주의 기원인 빅뱅은 신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라고 하면서, 우주는 신이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볼 때에는 스티브 호킹 박사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겠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믿음이 있는 어린 아이들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2023년도 2월 첫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어디서 왔으며, 왜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장차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지혜를 어디서 얻었습니까? 성경 말씀 속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늘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지켜 행하는 자들이 복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싶으면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성경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개인이 소장할 수 없었고 회당이나 교회에 한 권씩 보관하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릴 때 이 성경을 목회자들이 읽어주었고 성도들은 그 읽어주는 것을 듣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을 읽는 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을 듣는 자는 목회자들이 읽어주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했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목회자들 중에서, 목회자들이 읽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겼던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목회자이든지 성도이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목회자나 목회자가 읽어주는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하는 성도들 중에 복 있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사는 성도들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유무에 따라 복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복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목회자가 되고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이 이런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넷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시편 1:2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하고 있는 아름다운 복음 송이 있습니다. 그 제목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그 가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 누가 누가 이 아름다운 맑은 물이 흘러넘치는, 시냇가에 나를 심었나 고마 와라 그는 여호와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철 따라 열매도 맺어, 잎사귀 한 잎 마름이 없이 온 행사 형통하도다.

여호와의 생명의 말씀을 그 말씀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

2. 누가 누가 바람이 불 때 겨와 같이 나르게 하나, 말씀 떠난 악인의 심판 담당하신 그는 여호와

꽃 피지 않는 나무에 열매를 어이 맺으리, 가지엔 물이 오르지 않아 그 잎사귀가 말랐네

여호와의 생명의 말씀 그 말씀을 왜 멀리하고, 세상으로 빠져 사는 자 날아가는 겨와 같도다.

 

참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복된 삶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있는 태도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주실 때 성령으로 영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경의 기록자들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그 받은 말씀을 기록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성경의 기록자들로 선택하심을 받은 것이 영광이요 특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에게는 이것이 영광이요 특권이 아니었습니다. 그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세상에 전해 주기 위해서 자신의 전 재산과 전 삶을 드려야 했던 희생이요 헌신이었습니다. 성경 기록자들의 이런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이 성경 말씀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성경 기록자들은 단 한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읽어야 할 교회들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한 권의 성경을 많은 교회들이 돌아가며 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에베소교회 마태복음서가 있으면 다른 교회에는 마태복음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성경을 가지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귀한 성경을 돌려보다가 소실되거나 분실될 위험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교회들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서기관을 고용해서 성경 복사본을 필사하게 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할 때에는 언제나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필사했습니다. 이렇게 성경말씀을 옮겨 쓰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펜을 놓고 다시 가서 목욕하고 와서 필사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들은 서기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읽어야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단돈 몇 만원을 주면 성경 한 권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그 정도 가치 밖에 안된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아서 기록한 성경 기록자들과 같은 신앙과 같은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이 성경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성경 필사에 생애를 바쳤던 서기관들의 신앙과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이신 종교개혁자들이 이 성경말씀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 성경 말씀을 우리 신앙과 삶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이 무엇입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의 5대강령(Five Solas) 중에 그 첫 번째 두었던 것이 바로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그 신앙생활에서 성경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은 어떻게 정립된 것입니까?

마틴 루터는 진리를 판단하는 최종 권위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성경이며,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오직 은혜에 근거한 것으로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 받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존 칼빈은 루터의 세 가지 강령에 오직 그리스도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더해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이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우리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성경말씀 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단의 중요한 신앙고백서인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전해 주고 있는 내용이며, 또 우리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교회는 성경말씀에 대해 어떤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참빛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교 (합동)총회에 소속되어 있는 복음적인 교회로서,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원리요 규범이요 질서로 믿는 건강한 교회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성경 말씀을 향한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오늘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경을 주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습니다.

셋째 우리에게 삶의 참 지혜를 주시려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넷째 우리들이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살도록 성경을 주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겠습니까? 우리들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늘 가까이 두고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하루의 삶이 되고 한 주간의 삶이 되고 한 달 그리고 이 한 해의 삶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  (1) 2023.03.05
시대 변화를 읽으며 살아가는 성도  (0) 2023.02.12
십자가 복음  (2) 2023.01.15
은혜 받은 바디매오  (0) 2022.11.13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1) 2022.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