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들은 내쫓으라.(고전 5:9-13절)
들어가는 말:
요즈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들은 “현대교회들은 순수성과 권징이 사라졌다”고들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교회의 권세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권, 치리권, 봉사 권입니다. ‘교리권’이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지키고 가르치며 성례를 시행하고 신조와 신앙고백을 작성하며, 장래 사역자를 위한 교육에 철저해야 하는 의무이며 권한입니다. 반면에 ‘치리권’이란 교회 질서를 유지하고, 그리스도의 법을 시행하며, 교회 헌법을 제정하고 교회 성결의 유지를 위하여 권징 하는 권한을 말합니다. 그리고 ‘봉사권’이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자기희생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준 것을 본받아 병든 자를 위로하며,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권한을 말합니다.
이러한 세 가지 권한 중에서 특히 본장은 교회의 치리권을 언급합니다. 교회의 성결유지를 위하는 ‘권징은 개인의 선을 위하여 필요하며 뿐만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의 성결을 위하여 필수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 본장의 의도에 맞추어 교회의 치리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① 치리권 행사에 있어서,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 성도가 방탕한 생활을 할 때입니다. 본 장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둘째,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거짓된 사상과 가르침을 유포시키는 자에 대한 것입니다(딤전 1:20, 딤후 2:17-18).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치리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사랑의 정신에 입각하여야 할 것이지 원수 대하듯이 하여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고후 2:6-8, 살후 3:5)에 악행을 제거하고 교회를 정결하게 하며, 덕을 세우고, 범죄한 자의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권징조례 2조).범죄한 성도에 대하여 먼저 신앙의 형제들이 훈계할 것이며, 그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교회가 권고할 것이며, 그 말도 듣지 않을 경우에는 치리권을 행사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마 18:15-18). 또한 그 범죄자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7:4). 이제 바울 사도의 권고를 중심으로 교회가 범죄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의 범죄 한 자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9-10절)
본문 고전서 5:9-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볼 때에 세상의 범죄자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바울 사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범죄자를 다스리는 세상의 법 또한 하나님의 영역에 속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저지른 범죄란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윤리)적 규범을 훼손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자연적으로 자기 주위의 삶의 관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범죄 한 자들(불신자들, 이교도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태도)에 있어서 교회는 그들과의 기본적인 관계에 있어서 그들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성도도, 세상 속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교회의 법대로 이방인이나 불신자들을 심판하고 치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범죄를 다스릴 세상법이 따로 있습니다. 다만 교회는 그들의 잘못을 잘못으로 판단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잘못이나 범죄를 돕거나 모르는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양심에 비추어 분명한 판단을 하되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견해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교회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통이 주는 지혜: 링컨이 어느 한가한 날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링컨은 농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링컨은 말 엉덩이에 파리가 붙어 있는걸 보았습니다. 파리가 말을 귀찮게 하는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링컨이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농부가 링컨을 말리며 말했습니다. “그만 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답니다.” 이 파리처럼 쫓아내거나 털어내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편과 고통이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는 자극제가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곧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분별력입니다.(284장)
2. 교회 내의 범죄 한 자와는 단절하라 하였습니다.(11절)
본문 고전5:11절에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교인이 음행 죄, 탐욕 죄, 우상숭배 죄, 중상모략 죄, 술 취함 죄, 착취 죄 등 범죄가 발생하였을 경우 다른 교인들은 그와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는 단지 바울 사도에게서 나온 교회의 법이 아니라 이미 구약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교회의 법이었습니다. 신명기 21:20-21절을 보면 “우리의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범죄자에 대한 교회의 치리는 그 죄악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게 함이며 보다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많은 출교와 화형들이 다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대의 교회는 교회의 법적 치리, 즉 성경적인 의미에서 교회정신을 그대로 살린 치리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올바른 처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지켜야 할 교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법은 뒷전으로 하고 지나치게 현대적 조류에 의존해서 추측 해석 내지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돌이켜 다시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선포: 어느 목사님이 죄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설교하였습니다. 다음날 성도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교회에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 우리 애들이 어제 설교를 듣고는 아예 교회에 발걸음도 하기 싫어합니다. 앞으로는 가급적 죄에 대해서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그러자 목사님은 약장으로가 ‘극약’ 이라고 쓰인 약병을 들고 와 말했습니다. “성도님의 말씀은 이 약병에서 ‘극약’ 이라고 쓴 딱지를 떼라는 말씀이시죠?
그러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죄’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약이 든 병에서 극약이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우리의 인생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주범이며 우리가 주의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를 커다란 고통 속으로 몰고 갈 무서운 힘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비극적인 결말을 파하고 싶다면 반드시 ‘죄’에 대한 선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3. 범죄자들을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하였습니다.(13절)
본문 고전서 5:13절에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악행 자들은 음행, 탐욕, 우상숭배, 중상모략, 술취함, 착취 등의 범죄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는 이 모든 범죄자들이 교회 공동체로부터 쫓겨나야할 것을 다시 경고합니다. 교회는 그들 속에 있는 적은 누룩 같은 죄악을 제거하지 못할 때에 결국 그 순결성을 잃게 되어 악의무리들이 권세를 잡는 타락한 모습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5:6절). 그러나 교회가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행하는 권징의 의미를 본문에 기록한 대로 모든 시대의 교회에 적용한다는 것이 용이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 시대의 교회마다 다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의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내의 악의 존재가 묵인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어느 행태로든지 악에 대한 권징은 정당하게 시행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본문의 ‘내어 쫓으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엑사라테’는 동사의 주체가 구약의 여러 곳에서는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 지니라”(신 19:19,22:21,24,24:7). 단수로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절에서는 복수로 기록함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판단이 교회에 의하여 행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5:2절에서 음행한 자를 쫓아내지 않았다고 책망하였고 5:5절에서는 범죄한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출교시키는 벌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법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으므로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으로 허락한 세상의 법으로 그를 치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자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치명적인 죄악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는 더 이상 교회의 일원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다른 형제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의 영혼을 위하여 그는 교회와의 모든 관계에서 단절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죄에 대한 벌칙이라는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교회 내의 악의 요소를 근본적으로 근절시키고자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순전하고 거룩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롬 6:23절 말씀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가는 말 :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거룩 성과 순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권징을 해야 합니다. 하여금 범죄자는 거룩한 공동체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참으로 말씀에 굳게 선 권징이 있는 교회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정당한 권징이 살아있는 한국교회가 되기 위하여 온 성도께서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023년 2월 26일 (참빛교회)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