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7:1-10
미가엘 찬송가 1095장에는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복음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사가 참 은혜롭습니다. 〈1절만 같이 불러 볼까요.〉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이 복음 송 가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서 8:26절 말씀을 보면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기도해 주고 계시는 대상은 전체 인류가 아니라고 합니다. 9절입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고 계신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소유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택하시고, 때가 되자 부르셔서, 3년 반 동안 예수님이 친히 동거동락(同居同樂) 하시면서 양육해 오신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제자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이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택하신 제자들은 12명이었습니다.
이 제자들은 대부분이 별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갈릴리 시골 마을에서 살았으며, 세상에 대한 견문도 그리 넓지 않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정말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제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특별한 사람 취급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인정해 줍니까? 유능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업체에서 직원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습니까? 재능도 있고, 능력도 있는, 유능한 인재를 뽑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뽑으실 때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대단한 사람들을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난 것이라고는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뽑아 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9)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들을 그 일군으로 부르지 아니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자기자랑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청소를 대행하고 있는 용역회사의 운전기사로 구청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구청 청소과 정규직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 사람은 자신이 구청 직원이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신학을 하고 교회를 개척하려고 정년이 안되었는데 퇴직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 설교하러 갔을 때 이 목사님은 ‘자신이 구청직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목회를 시작 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 했습니다.
참빛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지금 직업의 귀천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구청에서 운전 직원으로 있던 이 사람도 주의 일을 위해 그 직업을 내려놓았던 일을 자랑하고 싶어 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랑하기를 참 좋아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뽑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로 뽑혔다고 하면서 제자로 뽑힌 것을 자랑하고 다니지 않았겠습니까?
또 이런 사람들은 능력도 있어서 자신이 가진 수완을 발휘하여 목회에서 남다른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자신이 이루어 낸 그 성공과 성취를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들도 이런 사람들을 칭송하며 그 분은 정말 대단한 목회자라고 인정해 주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 못하도록 그 제자들을 뽑으실 때 잘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뽑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 자랑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고 천박한 죄인인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성공과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를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 자신의 절망적인 실체를 보지 못하고, 거드름을 피우고 건방을 떠는 교만한 사람들을 혐오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혐오해 온 사람들의 대표가 바로 바리새인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화를 선포한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이런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신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인간의 죄악과 추악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일군으로 부르실 때,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성공과 성취에 취하여 자기 실상을 보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겸손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일군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고린도전서 1:27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에 천한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을 택하사 있는 사람들을 폐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잘나가는 똑똑한 사람들은 일군으로 부르지 아니하시고, 잘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 일군으로 삼으시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아무리 큰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써주신 하나님께 감사할지언정, 그 일을 자기 자랑의 제목으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의 참모습을 늘 깊이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겸손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물론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 중에는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령 요한복음 3장에 나오고 있는 ‘니고데모’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고기잡으며 살고 있던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뽑아 세운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를 통해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너희를 배척하는 것은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려면 누구나 이 시시해 보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제자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아주 특별한 사람 취급해 주시고, 자신이 성취하신 복음을 그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을 통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라한 사람들을 택하신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보면 거의 다 초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75세가 되기까지 아들 하나 없었던 아주 초라한 늙은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찾아가셔서 부르시고 ‘내가 너에게 아들을 줄 것이고, 결국 큰 민족을 만들어 줄 것이며, 그 아들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겠다.’ 라고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차근차근히 이루어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었을 때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셨고, 그 이삭은 40세에 장가를 가서 약 20년 후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열두 명이나 되는 아들을 낳고 번성해 가더니, 그 식솔들이 약 70명쯤 되었을 때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당시 가장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였던 애굽으로 보내셔서 4대 만에 큰 민족으로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세계 강대국 중 하나이던 애굽 왕을 부르셔서 일하시지 않으시고,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살아가던 아주 초라한 한 노인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에는,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다 죽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 오던 애굽의 정예부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시고 그 백성들은 보호하고 지켜 주셨습니다. 광야에 들어가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시원하게 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지만 한 끼도 굶기시지 않으셨고, 또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온 대적들은 누구도 무사히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 취급해 주신 증거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를 지었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자녀로 삼아주시고 특별한 사랑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열두 아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들어갈 때는 70명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보행하는 장정만 약 6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애굽에 데리고 들어가셔서 특별히 보호하고 양육하셨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구별해 주신 데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잘 섬기는 삶을 살아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되면, 그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과 같이 척박한 그런 땅에서 살면서, 어떻게 지금과 같은 복을 누리면서 사는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에 복을 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해주면서, ‘세상의 모든 우상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 신이지만, 우리가 섬기며 사는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전해주면서, 당신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려고 하면, 우리가 믿고 섬기며 살고 있는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았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더니 어떻게 살았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망각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며 사는 바알 신을 따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너희가 그럴 수 있느냐?’ 라고 책망도 하시고, 또 사탕과자를 주면서 달래기도 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자기들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관심을 쏟으시고 있는 이방인들의 구원 문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받도록 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전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 생각하고 자기들만 살찌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폐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폐기선언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4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 대신에 12명의 제자를 새로 세우시고, 이들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세워나갈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름받은 사람들이 낮고 천한 신분의 제자들이었고, 또 보잘 것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12명의 제자들만을 위해 특별 기도를 해 주신 것입니까?
첫 번째 이유는, 제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을 그냥 놓아두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너무나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3년 이상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깨달은 것은 별로 없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조금 깨달은 것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금 후에는 예수님이 관원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걸음아, 살려라.’ 라고 하며 도망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루어진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자들은 무너지지도 않았고, 그 받은 사명에서도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을 찾아가서 ‘너희가 죽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그 일의 증인이다.’라고 외치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성취된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은 동족에게만 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온 세상을 다니며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가 순교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적고 의지도 유약하였던 제자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특별한 기도를 해 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을 통해 그들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함께 해 주시는 한 제자들은 실패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그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그들과 함께 해 주신 예수님의 능력이 그 일들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과거의 12 제자들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세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이 사람을 보면 이 문제로 흔들리고, 저 사람을 보면 저 문제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우리들 중에 그 누구라도 홀로 버려두면 끝까지 넘어지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은 고사하고, 내 자신의 신앙 하나 지켜나가기도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은 베드로가 대면했던 상황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밀 까불 듯 까불면서 실족시키려고 했던 사단은, 오늘 우리들도 실족시키려고 우는 사자의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나의 삶에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신 것 같이, 지금 나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이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는 한, 우리는 그 어떤 상황 속에 놓이게 되더라도 담대한 마음과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도 기도하고 있지만’ ‘너희도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도 하셨고 또 베드로에게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왜 기도해야 합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부처 앞에 가서 빌거나 기도하는 이유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채움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들은 건강이나, 돈이나, 자식이 잘 되는 것이나, 사업의 어려움을 해결받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문제를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세상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일을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이 있습니다. 이 방해꾼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공격하는, 가장 교활하고, 지능도 뛰어나고, 거기에다가 능력까지 갖추고 있는 사단 마귀입니다.
사단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넘어뜨리려고 합니까?
먼저는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혈기를 충동질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혈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 안에 있는 혈기를 충동질하여 형제를 미워하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듭니다.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내 상황이 어려워서만은 아닙니다. 사단이 내 혈기를 충동질하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렵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사람은 바로 욥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욥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욥은 왜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까?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대의 말은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이런 고백들을 보면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 가운데 살고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으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힘든 일을 만나게 될 때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우리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은혜의 손을 거두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믿음으로 이기고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에게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 재난이 아닙니다.
재난의 날에 낙담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손을 붙잡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던 믿음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좀 해보면, 만일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베드로는 신앙을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게 내버려 두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신앙을 버리고 갈릴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 생활의 가장 큰 위기는 이렇게 마음에 원망이 생겨서 믿음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또 직접 제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그날 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
예수님의 이 기도가 그날 밤 베드로를 지켜 준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단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별의 별 공작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도 넘어뜨리고,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려고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단을 의식하고 살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사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찾아온 영적인 위기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런 문제를 가지고는 기도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주로 걱정하며 사는 것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흉폭하고 어수선하기 때문에 집을 떠난 자녀가 늦게 돌아오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봐 걱정합니다. 직장에서 남편과 아내가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왜 늦을까 하고 하며 걱정합니다.
요즘 성도들은 그 누구도 베드로처럼 자기 앞에 다가오고 있는 영적위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 누구도 가롯 유다처럼 내가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 안에 갑자기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서, 신앙에서 떠나게 되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며 조심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미리 아셨고, 그 일 때문에 베드로가 믿음에서 떠나 실족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위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해 주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왜 이 12명의 제자들만을 위해 특별 기도를 해 주신 것입니까?
두 번째 이유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믿고 나아오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받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은 없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10절 하반 절에서는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왕 되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제자들은 이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의 왕은 로마 황제가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제자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교회가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교회는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시라는 것’을 온 세상에 전하고 증거 하기 위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고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우리들은 이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여,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께 모든 영광 돌려드리기 위해 부으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전에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자기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세도 있고 살릴 권세도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런 빌라도에게 “모든 권세는 위에서 주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권세를 가진 너 위에 더 높은 권세가 있기 때문에 너는 네게 주어진 권세를 남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하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하나님께 받은 그 권세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남용하지 않아야 하듯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 즉 젊음을 남용하고, 인생을 남용하고, 시간을 남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위대하신 이름과 그 가지신 왕의 권세를 온 세상에 전하여서, 온 천하가 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 복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왕 되신 예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만왕의 왕이 되시고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이 세상의 참 왕이신 예수님께 반역하고 있는 세상입니다.
온 세상은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덕을 누리고 살면서도, 그 누구 하나 그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가 왕이나 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높이고 왕 되신 예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예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전하면 그 누가 우리가 전하는 그 말을 믿겠습니까? 그 누가 우리가 전해 주는 그 말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거역하는 삶을 산다면 세상의 구원은 고사하고 그렇게 사는 우리 자신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왕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세상에 선포해서, 온 세상이 우리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복종하며 구원을 받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통해 결국 우리들의 구원도 함께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위해 두 번이나 특별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기도해 주신 내용은, 제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실패하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기도해 주신 내용은, 고난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이 세상의왕이 되셨다는 것을 믿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나타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라는 말씀입니까?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도 신앙생활에서, 그 살아가는 삶에서 실패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 일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특별 기도를 해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하고 듣는 우리 모두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영광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며 살아가는 성도, 겸손히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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