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
창세기 1:1-31
1. 성경이 하나님을 증명해 주지 않는 이유
우리가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를 읽으면서 가지게 되는 의문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들이 많이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들도 많이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기록해서 주실 때에 인간의 잘못된 사상들이 그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할 때 먼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기록해 주셨더라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창조도 부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아담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는 이미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담과 하와에게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존재하신다는 것을 설명해 줄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난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제게 설명하려고 할때에는 자신이 학교에서 경험한 일만을 설명해 주면 됩니다. 그 설명을 하고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는 말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미 저는 우리 아이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은 그냥 자신이 학교에서 경험한 일들만 저에게 설명해 주게 됩니다.
창세기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이미 선제해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따로 설명해 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또 당시는 아담의 범죄 이전으로 아직 죄가 세상 속에 없었던 때입니다.
그때는 아직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이나 철학도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신론적 이론이나 사상이나 철학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서는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불신앙적인 사상이나 인본주의적인 철학을 바로 잡아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창세기는 하나님의 계심을 증명해 주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해 주는 책도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찾고 또 더듬어 찾아가는 안내책도 아닙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선제해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 사역을 개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창세기는 이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당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담과 하와에게 따로 자신에 대해 설명해 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다만 아담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만 알려주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된 아담의 후손들
그러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미 하나님을 믿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후손들은 죄 가운데 그 영혼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러면 아담의 후손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주가 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섭리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 것입니까?
아담 이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법은?
첫째, ‘믿음으로’ 알게 됩니다.
히브리서 1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진 신앙은 지식에 기초하지 않고, 믿음에 기초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또 믿음으로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성육신이나 동정녀 탄생, 부활이나 영생,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그 행하신 기적 등등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또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사는 믿음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창조도 믿게 됩니다. 또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병도 고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기는 삶도 살게도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57장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 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겨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이기네”
이 찬양의 가사를 보면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심판도 이기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믿음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큰 믿음을 가지고, 능력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믿음의 출처
사실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이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하나님이 주신 은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감정이나 체험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에 믿음의 근거를 두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체험을 강조하고 체험을 절대시합니다. 자신이 체험한 것만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체험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좋은 말로는 경건주의자라고 하지만 또 신비주의자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다고 제가 신앙적인 체험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체험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체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신앙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본을 따라 오직 성경만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원리요 규범이요 질서로 믿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모두 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신앙의 기초를 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반을 둔 신앙
우리의 신앙은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이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대면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너무 강조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 일부는 예배 중에 성령이 역사하고 있다고 하면서, 닭 울음소리를 내고, 각종 짐승들의 소리를 내기도 하며, 때로는 주체 되지 않는 기이한 웃음을 웃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를 너무 강조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로 인한 구원과 구원의 감격과 구원의 확신만을 강조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구원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을 강조하면서도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너무 강조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호와의 증인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앙입니다.
질서가 있는 신앙입니다. 우리 믿음은 성령의 역사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아들을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신 성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구원을 위해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신앙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 신앙을 십자가 위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2세대이며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그 신앙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칼빈은 성령으로 시작해서, 십자가를 거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나아갔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칼빈과 같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십자가를 거쳐,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신앙은 성경의 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루터는 로마서를 보석과 같이 귀한 책으로 보고,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보다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루터는 계시의 명확성에 근거하여 구약보다는 신약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구약에는 그리스도가 희미하게 계시 되고 있지만, 신약에는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이렇게 성경도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그렇지 않습니다.
칼빈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똑 같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 신. 구약 성경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칼빈은 이렇게 균형 잡힌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창세기는 믿음으로 봐야 하는 책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창세기 1:1절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고 어떻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는 말씀을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창조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또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법은?
둘째,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창세기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절을 원문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샤마임, 에레츠
이 말씀에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삼 요소인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나옵니다.
태초는 ‘시간적 요소’를 말하고, 하늘은 ‘공간적인 요소’를 말하고, 땅은 ‘물질적인 요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을 창조하셨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인,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창세기는 이렇게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은?
첫째, 모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에 계시지만 우리는 유한한 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2020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83.5세라고 합니다. 그중 남자의 평균 수명은 80.5세, 여자의 평균수명은 86.4세였습니다. 그러나 건강수명은 66.3세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그것도 건강하게 지내는 기간은 더욱 짧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시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아야겠습니까?
이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며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시간을 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일,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시간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 후에 한 말이 무엇입니까? ‘천하 범사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솔로몬과 같이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일에 시간을 사용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창세기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은?
둘째, 모든 공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공간은 어디 입니까?
삶의 공간은 가정과 직장이며, 신앙의 공간은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는 또 서울이라는 지역 공간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간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공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간입니다.
이 공간들은 우리가 마음대로 하며 살아도 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이 공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공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공간들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고, 받은 주의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가 보여주고 있는 하나님은?
셋째, 모든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물질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아서 사용하는 관리자들입니다. 본래부터 내 것, 내 소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들만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너나 할 것 없이 빈 몸으로 왔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빈 몸으로 떠나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부자로 살기고 하고 가난한 자로 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빈손으로 갑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 내가 활동하는 공간, 내가 소유한 물질들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심지어 나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잠시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충성된 마음으로 청지기 직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성도로 살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법은?
셋째, 말씀 체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체험은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보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든지 단 한 순간에 이해되어 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 그 주신 말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으셔도 그냥 그 말씀은 우리의 영 안에서 이해되어 버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것은 어두운 곳에 빛이 비취게 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밝히 드러나 보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우리 지성을 비취시면 한 순간에 그 말씀이 이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언제나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면 단 한 순간에 그 삶을 이해하게 되고, 단 한 순간에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멘.
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해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말솜씨나 구수한 이야기로 하는 설교로는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그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4: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우리가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용기와 희망이 생겨나는 은혜의 경험은 말씀을 통해 주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깨달아 질 때 일어나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아멘.
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믿음을 주고 말씀을 따라 살게 해 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창조에 관한 말씀 이외에 수많은 약속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말씀들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 신적인 권위가 담겨 있습니다. 그 모든 말씀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동일한 능력을 간직하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속에서 힘을 얻고, 말씀을 붙잡고 죄와 마귀와 세상을 이기며 살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32: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친히 가르쳐 보여주실 뿐 아니라, 우리를 주목하여 보고 계시다가 필요한 말씀으로 훈계하시고 지도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도 붙들고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이든지 그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기에,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지켜 주시지만, 우리들은 그 말씀을 잊어버리고 또는 잘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에 기반을 둔 신앙을 가지고, 말씀을 믿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짐승까지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들어가도 저주를 받게 되고, 나가도 저주를 받게 되고, 그 저주는 아비에게서 자녀에게로 까지 3-4대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제가 아주 오래전에 서울 근교에서 살다가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서 재산을 정리하고 오대산으로 이사한 한 집사님 집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 집은 오대산 중턱 해발 5-600 미터 고지에 있었기에 집 마당에서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 집은 예쁘게 건축되어 있었고, 정원까지 갖추어 놓은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그 정원 아래쪽에는 펜션 한 채가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그 펜션에 머물면서 식사는 그 집사님 집에 가서 했습니다.
그 집에서 처음 대면한 그 집사님의 남편이 저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한 일 년쯤 살았을 때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은 창조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아침에는 언제나 해가 뜨고 저녁에는 언제나 해가 지며, 봄이 오면 반드시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반드시 가을이 오고 있는데, 자신의 마음은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고, 시간과 때와 장소와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하였는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날 아침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정말 마음속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마다 생각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남편 집사님은 처음 오대산에 왔을 때는 ‘나는 왜 건강이 나빠져서 이렇게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며 정신적으로 많이 방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 자기 자신의 불의한 모습을 보고 회개한 후에는 기쁘게 생활하고 있고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집 주변에 분수도 꾸미고, 폭포도 만들고, 또 펜션 한 채 더 지어서 여행을 오는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면서, 그 사람들과 교제하며 자신이 이곳에 와서 깨달은 은혜를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분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전해주고 나누어 주기 위해 우리를 초청한 것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자연을 보고 인간의 참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보면서 동일한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있었습니다. 둘째 날 궁창이 있으라고 하시자 하늘이 생겼습니다. 셋째 날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땅과 바다의 경계선이 생겼습니다. 넷째 날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명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가 있으라 명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섯째 날 동물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때부터 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지금까지 그대로 순종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 창조주 하나님께 대해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입장과 처지가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인간적으로 보면 미련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니 믿고 순종하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창조도, 이적도, 새 창조도 이 말씀의 능력으로 된 것들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자꾸 성경, 성경 하느냐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있음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영혼이 살아나고, 병에서 놓여나고, 인생이 바뀌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순종하는 것이 참된 복인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담긴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들에는 모두 창조주의 뜻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지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우리 모두 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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