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

성도의 자녀교육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5. 14. 14:26

성도의 자녀교육

11:18-25

 

모든 부모들에게는 자기 자녀를 잘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보면 자녀를 잘 가르치려고 하는 열심이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가 2022년도 한 해 동안 지출한 자녀 교육비40조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자녀 한 명의 학원비로 지출한 돈이 830만원이라고 합니다.

자녀 한 명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드는 돈은 약 9,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자녀 한 명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드는 총액은 약 2억 원 가량이라고 합니다.

저희 집은 자녀가 3명이나 되니 이 세 명의 자녀 교육비로만 6억 원을 지출하여야 대학까지 교육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부모는 자녀교육을 위해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그런 부모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를 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자녀 교육비로 지출되는 이 40조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이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서울시 예산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2022년도 서울시 예산은 44조원 이었습니다. 자녀 교육비는 서울시 예산과 거의 같은 액수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녀교육비 40조 중에서 사교육비23.4조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작년 우리나라 가정들이 지출한 총 교육비 중에서, 절반이 넘는 금액이 사교육비로 지출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녀들의 교육에 드는 비용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교육비는 연간 소득증가율 보다 훨씬 더 높게, 즉 매년 평균 7.8%씩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많이 올라서 서민들이 살아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내년도에는 임금도 많이 올라야 하고, 최저임금도 많이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시급12,000원은 넘어야 월 250만 원정도의 월급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현실이 이렇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사람들은, 자녀 교육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는 듯이, 어릴 때부터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아주 일부 부모들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고액과외와 족집게 과외를 시킨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려고 합니다.

 

신앙을 가진 부모라면, 이런 현실이 옳은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 공부밖에 없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모는 무슨 수를 쓰든지 자녀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갖게 해 주고, 그래서 시험을 잘 보게 해주는 것이 부모가 바라는 교육의 전부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앙을 가진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킬 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부모가 교육해야 하는 것

 

신앙을 가진 부모는 자녀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합니까?

첫째, 지식적인 교육입니다.

 

학교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지식적인 교육입니다.

학교는 우리 자녀들에게 이 지식적인 교육을 가르쳐서, 우리 자녀들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교육, 꼭 알아야 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우리 자녀들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짜고, 또 학교는 그런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여 올바른 결정을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가능한 한 다양한 지식을 가르쳐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얻은 지식과 정보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표현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켜 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지식습득 중심의 교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습득 중심의 교육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녀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인간성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 부모님들이 사셨던 시대보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보다, 오늘 이 시대는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식이 늘어난 만큼 사회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간성은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퇴보되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전에 생각할 수도 없고, 전혀 볼 수도 없었던 각종 지능적인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회가 변화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교육, 지식전달 위주의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또 무슨 교육을 해야 합니까?

둘째 인격적 교육입니다.

 

인격적인 교육의 목적은 바른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인격적인 교육을 우리는 전인교육이라고도 합니다. 이 인격적인 교육에서는 지식전달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식을 전달해 주는 교육과 함께 그 사람의 인격적인 품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병행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교육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부여해 주신 인격적인 잠재력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격적인 대우 받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교회 안에서 인격적인 대우 받기를 좋아합니다. 인격이 무시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황금률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은 7:12절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처럼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자 한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 골로새서 3:21절에서는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이 구절을 새 번역 성경으로 보면 자녀들을 격분하게 마십시오. 그들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자녀들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신앙의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게 될 때 인격적으로 대우하면서 교육해야 할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직 부족함이 많고, 아직 어리더라도 그들도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가진 한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꼭 기억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라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자신도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교육은 부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교육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인격적인 교육만 하면 다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신앙의 부모는 자녀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신앙의 부모는 무엇보다 그 자녀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도록 하는 것이 그 교육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또 무슨 교육을 해야 합니까?

셋째 종교적인 교육입니다.

 

어쩌면 이 종교적인 교육이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지식적인 교육을 해주고, 인격적인 교육을 해 주는 것은 신앙이 없는 부모들도 할 수 있는 교육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를 교육할 때 여기에다가 한 가지를 더 추가해서 교육하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적인 교육입니다. 종교적인 교육은 부모가 가지고 살고 있는 신앙을 자기 자녀들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종교적인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종교적인 교육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 왔던 방법이고, 우리 앞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해 왔던 교육방법입니다. 신명기 6장의 쉐마의 말씀을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적인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종교적인 교육을 가장 잘 해온 민족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주 큰 확신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합니다. 어린 아이를 자기들에게 몇 년 만 맡겨 놓으면 우리는 그 아이를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확신이며 이것은 너무나도 부러운 확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자녀를 교육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신앙교육은 누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까?

주로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는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진 신앙교육을 중요시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어머니가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아버지가 이방 사람일 때는 그 자녀를 이스라엘 사람으로 인정해 줍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이스라엘 사람이고 그 어머니가 이방 사람일 때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을 받았느냐 받지 못하였느냐에 따라서 그 신앙이 달라진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앙교육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교육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그 가정의 안주인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 가정의 어머니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면 분명히 그 가정은 사랑이 풍성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면 그 가정의 자녀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어머니에게 달려 있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바로 디모데후서 1:5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의 가정을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그 어머니가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런 디모데가 나중에 복음 전도함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신앙을 가지게 된 디모데의 신앙을 이야기 하면서 바울은 네가 가진 신앙은 바로 네 할머니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인데 그 신앙이 네 속에도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앙이 어머니를 통해 그 자녀들에게 어떻게 전파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그 자녀들이 믿음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나 사무엘은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까? 그런데 그 자녀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한나는 얼마나 신실한 믿음의 어머니였습니까? 이 한나의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사무엘이 아닙니까? 이런 예들은 가족의 신앙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사랑과 사명감을 가지고 자녀들의 지식교육, 인격교육, 신앙교육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머니 된 사람들의 특권이요 영광입니다. 아멘.

 

2.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그렇다면 신앙을 가진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의 가르침과 신앙을 가진 부모의 가르침은 무엇이 달라야 합니까? 신앙을 가진 부모는 자녀를 교육할 때 언제나 믿음에 기초 위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 믿음의 기초 없이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기초를 든든하게 다져 놓지 않고 그 위에 아름다운 집을 짓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어떤 믿음의 기초 위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스승이 많지만 가장 위대하신 스승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참된 스승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랍비라 선생이라 하니 정말 그 말이 옳도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자녀를 가르치려고 하는 부모들은,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을 가르치신 모범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가르침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산상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설교를 보면 예수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바 너희는 이렇게 들었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면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신 후 주리실 때 시험하는 마귀를 무엇으로 물리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나 우리 자녀들도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유혹하는 마귀를 이기고, 믿음으로 바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모든 시험을 이기고 믿음에 바로 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신명기 11:18절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의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라.” 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부모가 그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그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삶에 적용하며 살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부모가 되어야만, 부모는 자녀들에게 생생한 신앙교육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부모가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라도, 자기에게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고 자라나게 될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 안에 소유하고 살아가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또 부모는 어떤 믿음의 기초 위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까?

둘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11:19절입니다.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이 말씀을 보면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고 있습니까?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가르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이 강론은 말씀은 강의하거나, 설명하거나, 토론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그 부모는 가정에서도 가르쳐야 하고, 가정 밖에서도 가르쳐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누워 잘 때도 가르쳐야 하고, 그리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자녀의 입장과 수준에 따라서, 강의를 하거나, 설명을 하거나, 토론을 하는 등등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이렇게 가르치려고 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 가지고 있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실천적인 삶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지 못한 부모, 또 그 말씀대로 살지도 않는 부모는 참 된 가르침을 줄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말로 이루어지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통해 배우기보다 부모의 믿음과 지혜와 삶의 경험과 영적인 체험들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동안 지식을 가르쳐 주는 학교교육보다, 함께 살면서 배우게 되는 가정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부모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가 나중에 기도의 사람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가 그 삶을 통해 보여주고 가르쳐 주는 신앙교육이 그 어떤 교육보다 더 위대한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교육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학교 같이 학생들을 불러 모아놓고 교육하시지 않으시고 그 제자들을 부르시고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 하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니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늘 기도하셨습니다. 또 무슨 중요한 일을 앞두고 계실 때에는 더 많이 기도하시고 그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곁에서 직접 보고 배운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님께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예수님 요한이 그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 같이 우리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옵소서.’

 

이것은 책을 읽는 것에서도 같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이 책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하려면 친히 책 읽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부모들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들은 늘 핸드폰을 하면서, 자기들은 늘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네 방에 가서 공부해라.’ ‘공부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그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 경험하고 이해한 깨달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가르침들이 자녀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고, 잊혀 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부모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자녀를 가르치면, 하나님은 이런 부모의 믿음의 삶을 사용하셔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자라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신앙을 가진 부모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그 소유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영적 경험과 인격적인 경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경험들을 자녀들과 나누고 가르쳐 주는 신앙교육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이렇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고, 그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고, 구원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에는 한 사람의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렇게 살면 21, 25절에서는 어떤 복이 임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오래 오래 살 것이라고 합니다. 또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희를 당해 낼 사람이 없게 되는 그런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행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이 장구함 같으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 밟는 모든 땅 사람들로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또 부모는 어떤 믿음의 기초 위에서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까?

셋째, 권면과 징계를 병행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요즘에는 법으로 학교에서 채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채벌을 남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채벌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가을이 되면 거리의 나무들의 가지를 칩니다.

그리고 화단에 있는 나무들에게도 가위질을 합니다. 농부도 과목들에게 전지를 합니다. 그러면 왜 아까운 나무를 자릅니까? 그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가지자르기를 한 나무가 건강하게 되고, 열매도 많이 맺는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의 경우도 같습니다.

부모에게 적당한 야단을 맞고 꾸지람을 듣고 자란 아이가 적응력도 더 있고 더 똑 부러지게 행동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8절을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잘못하는 자녀들은 징계를 해야 합니다. 징계를 받고 자란 아이가 바른 가치관을 가진 아이로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징계는 없어지고 과보호만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과보호가 사랑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과보호가 자녀와 그 가족을 패망으로 끌고 갔던 예들이 성경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경우를 보십시오.

제사장이며 사사였던 엘리가 얼마나 자녀를 과보호했습니까? 그는 신앙이 없는 자기 자녀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제사장으로 있으면서 각종 범죄를 행할 때에도 엄하게 책망하거나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여전히 그 자녀를 감싸고 돌았습니다.

 

그러던 그 가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징계 위주의 교육이 더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려고 하면 먼저 자녀가 징계하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징계의 참된 효과가 있습니다. 부모는 제 멋대로 살면서 자녀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하며 징계하게 되면 자녀들은 부모의 불합리한 징계에 반발할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마음대로 살면서 왜 우리에게만 그런 요구를 하느냐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가 효과적이 되려면 부모도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평상시에는 늘 긍정적인 말로 자녀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무조건 자녀에게 강요하려고 하지 말고,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징계를 받는 자녀가 생각하기를 우리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징계하고 있다.’ ‘내가 잘 되라고 징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징계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하고 받는 징계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도 완벽하지 않고, 부모도 실수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녀에게 이해시켜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이런 상호관계 속에서 자녀들은 건강한 인격을 가진 자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부모가 이런 관계는 유지하지 않고 강요만 하게 된다면, 그런 부모 밑에서 억압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반항심이 강한 자녀 문제를 일으키는 자녀가 될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잘 적응 하지 못하게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는 징계를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꾸중할 때 꾸중을 위한 꾸중을 하지 말고, 그 꾸중을 통해 자녀의 판단력이 길러지고 또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눈을 갖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꾸중을 해야 합니다.

 

징계를 통해 이런 분별력을 키워주는 것이 또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잠언 13:24절에서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고 하였으며, 잠언 3:12절에서는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도의 자녀교육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지식이 만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부모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높은 인격을 가진 자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실천적인 삶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때로는 사랑의 매도 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은 바른 신앙과 바른 판단력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지혜 있는 부모가 되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물려주어서, 우리의 자녀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도록 예비시키고 준비시켜 주는 삶을 살아가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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