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

복(福)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3. 5. 21. 14:40

()을 주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1:20-30

 

오늘 우리는 ()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봅니다.

()’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복 받는 삶 살기를 원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복에 대한 집착이 강하여서, 이불이나 베개, 발이나 대문 등등에 자를 새겨두고 살아왔습니다.

 

()에 집착하며 사는 우리 민족의 모습은 성경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알려 주고 있는 하나님은 바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라는 단어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있는 동사 바라크입니다. 또 하나는, 시편 1편에 기록되어있는 형용사 아쉬레이입니다.

 

창세기 1:22, 28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福,바라크)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福,바라크)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시편 1:1-2절입니다.

(福,아쉬레이)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두 단어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라크의 복은 사람들의 동작과 행동과 연관 되어 주어지는 복이라면, 아쉬레이의 복은 이미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바라크의 복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예배를 통해서,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이 바라크의 복이 어떤 복인지 바로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바라크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바라크의 복입니다.

 

바라크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나타나는 곳은 창세기 1:22절 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바라크)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고기들과 새들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들에게 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바라크복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려고 하는 동작과 연관 되어 있는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라크라는 단어가 두 번째 나타나는 곳은 창세기 1:28절 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바라크)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제5일에는 고기와 새들에게 이 복을 주시고, 6일에는 땅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각종 생물들과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이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이 복에 더하여 땅을 정복하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권세까지 위임해 주셨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 창조하신 피조물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바라크의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바라크의 복은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려고 할 때주어지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하나님으로부터 이 () 받으며 살아가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이 바라크의 복이 폐하여졌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하신 세계에 주신 이 바라크의 복은 아담의 범죄에도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이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까?

창세기 8:15-1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는 바라크의 복노아에게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는바라크의 복을 땅이 존재하는 그날까지 폐하시지 않고 계속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노아에게 주셨습니다.

 

고기들의 번성함

 

하나님이 바다의 고기들에게 이 복()을 주셔서 지금 그 넓은 바다에 고기들이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들을 잡아 올리는 모습을 보면, 그물 안에 산더미같이 많은 고기들이 잡혀 올라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바다가 얼마나 깊고 얼마나 넓습니까?

지구 면적의 70%가 바다라고 합니다. 이 넓은 바다에 고기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1:22절에서 ()을 주신 결과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이 복()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서 고기 잡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부들은 마치 우리가 보물찾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고기 한 마리 잡으려고 헤매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고기들이 그 생존본능에 의해 생육하고 번성하려고 함으로 고기들은 지금 그 넓은 바다를 가득 채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잡아 온 고기들을 사서 먹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결과입니다.

 

새들의 번성함

 

공중의 새들을 보십시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새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장소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정말 많습니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얼마 있지 않으면 곧 차 위는 새들이 싼 똥으로 얼룩이 집니다. 새들이 얼마나 많은지 매일 새 똥과 전쟁을 합니다.

 

상계역에는 비둘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이곳은 비둘기 배설물이 자주 낙하하는 장소입니다. 주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어느 날 지하철을 타러 갔다가 비둘기가 어떤 사람의 머리 위에 똥을 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지하철을 타러 가면 먼저 머리 위에 비둘기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비둘기가 그 위에 모여있으면 그 자리를 피해서 지하철을 탑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새들이 많은 곳은 바다 가운데 있는 섬들입니다.

새들이 무인도에 그 둥지를 틀고 앉아있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새들이 많습니다. 바다에 있는 섬들은 가히 새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들이 보호받고 있는 철새도래지를 보십시오. 을숙도 같은 곳에는 수백 종의 새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들의 지상낙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결과입니다.

 

사람들의 번성함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이 이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도 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 한 사람으로 시작된 인류가, 이후 노아의 여덟 명의 가족으로 새롭게 시작된 인류가, 20221115일 기준으로 80억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을 주신 결과입니다.

 

바라크의 복()아담의 범죄에도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을 그 창조하신 세계 속에 지금도 계속 주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전쟁과 기근, 지진과 질병, 각종 사고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또 전념 병의 일종인 코로나 19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라크의 복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창조의 복()을 막는 행위는 범죄입니다.

전에 독일이 유대인들을 미워해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또 gas실에서 죽였던 그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문명의 발달이 불러온 난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 희귀동물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겠다고 불법적으로 이런 동물들까지 사냥합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복을 거스르는 범죄행위들입니다.

 

전에 우리나라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한 자녀 열 자녀 부럽지 않다.’라며 산아제한 정책을 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산아제한 정책은 하나님이 주신 바라크의 복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주심을 막는 잘못된 정책입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이를 묵인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왔으며 2023년에는 출산율이 0.73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이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단은가의 잘못된 정책을 묵인해 주어서 국가를 소멸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게 된 책임을 절감하고, 2023521일 주일을 생명존중주일 혹은 출산사명주일로 정하고 대대적인 출산 장려 켐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총회 차원에서 특별한 혜택과 지원을 해 주는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교단의 이런 돌이킴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로 다시 한번 우리나라가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복 바라크의 복을 누리며 사는 나라가 될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하신 세상에 ()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을 창조의 복 혹은 바라크의 복이라고 하는데, 그 특징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복입니다.

 

이 복()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는 복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동물들과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살 뿐 아니라,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삶이 바른 믿음의 삶입니다. 아멘.

 

이 복()을 누리며 사는 방법

 

신명기 28:2절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베라카)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명기 28장에 나오는 베라카의 복바라크의 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베라카의 복은 어떤 복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고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이이 모든 복을 받으며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 1장에서 주신 바라크의 복은 어떤 사람들이 누리며 사는 복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복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그 말씀대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리며 살게 되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기들과 새들이 그 생존본능에 따라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지려고 하는 동작을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복() 고기들과 새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어도 고기들과 새들이 생육하려고 하고 번성하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 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라크의 복()주심이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우리나라는 36년 동안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지배를 받다가 1945815일에 해방 됩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북한 공산당의 남침으로 3년 동안 뺏고 뺏기는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전쟁으로 거의 모든 건물들은 파괴되고 나라는 폐허가 됩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랬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해방 시대를 살고, 6.25 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면서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고 하며, 잘살게 될 내일을 꿈꾸며 적은 임금을 받고, 많은 시간 일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가난하니까. 잘살고자 하는 꿈을 이루어 갈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아픈 마음을 삭이며 눈물을 머금고, 36년 동안 우리나라를 괴롭힌 일본과 한일청구권협정을 맺고 그 배상금으로 5억 달러를 받게 됩니다. 이 받은 돈으로 산업의 혈관과 같은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산업의 쌀과 같은 포항제철소를 지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독일에 가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고국으로 부쳐왔고, 광부들은 광산에서 힘들게 중노동을 하면서 번 돈을 송금해 왔습니다. 또 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의 사막에 있는 건설 현장으로 가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더위를 이겨가며 일해서 번 돈을 송금해 왔고, 심지어 우리나라의 젊은 군인 수십만 명이 전쟁 중인 월남으로 파병을 가서 그 생명을 담보로 해서 번 돈을 송금해왔습니다. 이런 돈을 종자 돈으로 삼아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수고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살아보겠다고 노력하던 우리나라에 창세기 1장에서 약속하신 바라크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오늘날 선진국 문턱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많은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를 특별히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사랑하셔서 특별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볼 수 없을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은 듣기는 좋지만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과 같이 잘살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특별히 사랑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들 중에는 북한이나 방글라데시가 있습니다. 만약 이 나라들도 전에 우리 부모님 세대와 같이 어떻게 해서든지 잘살아보려고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전에 우리나라에 주셨던 것과 똑같은 복()을 지금도 북한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세계 속에 주신 바라크의 복()입니다.

이 복은 인간의 범죄에도 폐하시지 않으시고, 그 창조하신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 주시는 복입니다. 그 누구라도, 그 어떤 나라라도, 복을 주신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려고 하면 주시는 복입니다. 아멘.

 

만약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사람이나, 그 사랑하시는 나라들에만 이 복을 주신다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들은 다 부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부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루어 낸 성공신화들을 보십시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읽어 보십시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를 보십시오.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인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나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보십시오. 이 모든 사람들의 성공은 믿음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성공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려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고, 누구보다 더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 온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이 복은 지혜롭게 그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 꿈과 비전을 이루고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아멘.

 

창조의 복은 사람들의 신. 불신을 구별하지 않고 주시는 복이고,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주시는 복이며, 그 누구든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생육하고 번성하려고 지혜롭게 계획하고 수고하고 노력할 때 주어지는 복()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전에 또 어떤 사람들은 월세 살던 사람이 전세를 살게 되고, 전세를 살게 되던 사람이 내 집을 마련하게 되면, 그런 사람들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또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그 가정을 특별히 사랑해서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 또한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살고 못살게 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복 주신대로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했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려고 수고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창세기 1에서 약속하신 바라크의 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크의 복 주심을 아는 사람들은 성실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하나님이 이 복() 주셨음을 알게 되면 성실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에 투자한 수고와 노력만큼의 열매를 하나님이 거두게 해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지금 좋은 대학에 가 있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지금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바라크의 복 주신 것을 아는 사람들은 겸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돈을 잘 벌어 부자가 되어도, 내가 하는 사업이 잘되어서 날로 사업이 번창하게 되어도, 내가 개척하여 세운 교회가 부흥에 부흥을 거듭해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만하거나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약속하신 그 ()을 지금 내게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아멘.

 

바라크의 복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주신 복입니다.

이 바라크의 복과 연관 되어 있는 말씀이 바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중요한 원리는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나는 것입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은 나지 않습니다. 팥을 심었는데 콩은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창조 세계 속에 주신 이 복()을 받아 누리며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먼저는 생육하고 번성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수고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내 장래가 보장되는 삶을 살게 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알고 있는 대로 수고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는 학생들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지금 즐기고, 지금 노는 삶을 선택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런 자신과 그 살아가는 삶을 개선하고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대로 계속 살면 내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하여 그 삶을 바꾸고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창조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힘겹게 살아야 하는 삶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온 자기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신 바라크의 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랑의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어떤 복을 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그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내가 살아온 그 삶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 아닐지 모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복 주신 삶과는 정반대의 아주 게으른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 가치도 없는 삶을 살아왔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인생을 낭비하고 허비한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부터라도 그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의 삶에, 나의 장래에, 나의 인생길에,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일에 빠져서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하루라도 빨리 철이 들어서,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주일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이런 각오 이런 결단을 하게 되는 복된 주일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바라크의 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의 구별이 없이 햇볕과 비를 주시며, 선인과 악인의 구별이 없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해 주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바라크의 복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생육하려고 하고 번성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예외적으로 바라크의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 사기꾼을 만나서 사기를 당하게도 되고, 도둑이 집에 들어와서 모든 것을 다 훔쳐 가기도 하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서 삶의 터전을 다 잃어버리고 떠돌며 살게 되기도 하고, 농부가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갑자기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와서 그 농사를 망치게 되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폭발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이런 예외적인 일들은 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사단 마귀가 세상에 뿌린 죄의 씨가 사람들을 죄인이 되게 했고, 자연현상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자연현상은 외곡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라크의 복을 받지 못하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일어 났습니다 .

 

구약성경을 보면 그 신앙이 대단했던 욥이 바로 이런 경우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든지 욥의 신앙을 자랑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단을 만나 욥의 신앙을 자랑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은 하나님을 향해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바라크의 복을 주셔서 그 소유가 온 땅에 널리게 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만약 하나님이 그 주신 바라크의 복을 빼앗으시면 그 즉시 욥은 대면하여 욕할 것입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시험했고, 욥은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재산건강을 다 잃게 됩니다. 욥의 고난은 사단의 참소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때 욥이 어떤 신앙고백을 했습니까?

욥기 1:20-21절입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다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욥기 2:10절입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하니하니라.’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바라크의 복을 주시고, 바라크의 복을 빼앗아 가심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신앙이며 이 얼마나 차원 높은 신앙입니까?

 

이런 신앙을 가졌던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입니다.

하박국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밟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욥과 하박국이 가지고 살았던 신앙은 어떤신앙입니까?

사단은 사람들이 바라크의 복을 주면 그 복을 주신 하나님을 잘 섬기지만, 하나님이 바라크의 복을 빼앗아 가면 대면하여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과 하박국은 어떤 신앙을 고백하였습니까? 하나님이 바라크의 복을 주시든지 주지 않으시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삶을 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두 번째 복인 아쉬레이의 복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욥과 하박국이 받고 살았던 복은 바로 아쉬레이의 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쉬레이의 복에 대해서는 다음에 시간을 내서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하신 세상 속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계획을 세워서, 성실하게 수고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노라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바라크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바라크의 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삶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업의 비밀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이나 코인, 가상화폐에 투자하여 1001,000배의 수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복 주심과 관계없는 부() 이며, 인간의 죄가 가져다준 외곡 된 부()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부자가 되고 그런 복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부와 명예와 성공은 인정해 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기초 위에 자기 인생을 세워나가는 이런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그 창조하신 세계 속에 지금까지 계속 복을 주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의 여건들 속에서 비전과 꿈을 가지고,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서, 이렇게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바라크의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복 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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