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에 복 있는 성도
요한계시록 1:3
요즘은 세상이 참 어수선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세가 가까웠다는 중요한 징조 중에 가장 첫 번째 징조가 미혹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대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미혹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은 올바른 사람들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그런 시대가 아니고, 권모술수와 속임이 능한 사람들이 더 큰소리를 치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들으며 사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이 시대는 말세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과학적 증거들을 가지고 종말을 이야기하고, 기상학자들은 기상 이변 현상을 가지고 종말을 이야기하고,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지각 변동을 이야기하면서 종말을 이야기하고, 사회학자들은 사회적인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종말을 이야기하고, 혹은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임박한 종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문화계에도 영향력을 미쳐서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들도 앞다투어 인류 종말의 날에 대한 영화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다릅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도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종말 이야기와 우리들이 하고 있는 종말 이야기의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에 근거한 종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면으로 보나 종말의 때를 살고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 시대가 종말의 때라면, 우리들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까? 오늘은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을 통해 말세를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은 과연 어떤 성도들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세에는 어떤 성도가 복이 있다고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성도들입니다.
성경이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해 명확하게 전해 주고 있는 여러 말씀들 중에서 시편 1편의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그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신명기 28장의 말씀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른다.”라고 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무엇을 통해 온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모든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 주신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면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사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약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회복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던 몇 년 전 통계에 의하면,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 중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15,000명 정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아졌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는 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중요한 종말의 징조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과정을 보면 우리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들과 같이 성경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과정을 보면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하심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또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전해 주고 있는 신약성경의 말씀을 전혀 모르면서도,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하심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인 우리들은 다릅니다.
우리들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 믿음은 거의 대부분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신앙을 가질 때에도 중요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바른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 놀라운 사랑을 알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역사하심 등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와 은사들은 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말씀을 통해 오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말씀 중심의 신앙에 대해 디모데후서 3:15 절에서는 이렇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리고 이어지는 16-17절 말씀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말씀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중에 혹 성령의 놀라운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있을지라도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받은 은사가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또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되었더라도 그 받은 계시와 그 본 환상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구원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회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계시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종말관 등등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바른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또 말세에는 어떤 성도가 복이 있다고 합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사는 성도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하는 자가 말세에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예언의 말씀은 좁은 의미로 보면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 주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신구약 성경 전체가 다 이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먼저 신구약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신구약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메시야가 왕으로 오셔서 죄악 된 세상은 심판하시고 우리 구원을 완성 시켜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이 예언하고 있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1:19절 말씀을 보면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도 요한이 기록해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전해 준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고 있는 내용으로 이 세상 속에서 역사 하시고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그 행하시는 사역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 당시 지금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고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일곱 교회로 대표된 교회 시대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 교회 시대가 끝나갈 즈음에 천상에서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일곱 인봉 된 두루마리를 받으셔서 그 두루마리 겉에 붙어 있는 인을 하나하나 떼실 것입니다. 그러면 장차 될 일, 즉 종말의 날에 되어 질 일들이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집행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장차 될 일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의 중심적인 내용인 인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으로 이어지는 죄악 된 세상에 대한 심판입니다. 심판을 마치신 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세워질 천년왕국과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예언의 말씀은 세상 속에서 교회와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과 교회를 통해 이루어 가실 구원사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어린 양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일곱 인봉 된 두루마리 책을 받아서 그 인을 떼심으로 이루어 가시게 될 7인, 7나팔, 7대접의 심판의 말씀과 그 후에 도래하게 될 천년왕국과 천국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장차 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는 이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심판에서 인류는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한 부류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로서 지옥 형벌로 그 삶이 결말지어질 것이며, 다른 한 부류는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천국의 복을 누리며 사는 삶으로 결말지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지옥 형벌을 받게 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너희는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지옥에는 가지 말라고 수많은 경고의 말씀들을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을 때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고 계신 이 경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말세에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말세에 복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천년왕국에 들어가 살게 되는 성도들, 천국에 들어가 살게 되는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해서든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라고 합니다. 너희는 다른 것들은 다 버리더라도, 심지어 너희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버리게 되더라도, 천년왕국에는 꼭 들어가는 성도, 천국에는 꼭 들어가는 성도들이 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는 다 말세에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됨으로, 예수님이 믿는 성도들에게 약속해 주신 천년왕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참 복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에는 성경이 아주 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처럼 성경을 개인이 소장하고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오직 성전이나 회당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 안식일마다 회당 장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성경을 읽어주었던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를 뜻합니다. 그러면 어떤 목회자가 복 있는 목회 자라고 합니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성경 말씀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말씀들을 성도들에게 읽어주고, 해석해 주고, 가르쳐 주는 목회자가 복 있는 목회 자라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보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종말 시대에 관한 말씀들을 읽어주고, 해석해 주고, 가르쳐 주는 목회자들이 복 있는 목회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떤 성경은 내가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의욕만 가지고 쉽게 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성경 말씀이 바로 종말 시대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은 목회자에게도 읽기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말세를 복 있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해석해 주고, 가르쳐주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1: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는,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고, 오늘날로 말하면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성도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목회자를 통해 요한이 기록해서 전해 준 이 예언의 말씀 즉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듣는 성도가 복 있는 성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말의 날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이 말씀은 성도들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요. 오늘날에는 이 말씀들을 읽어주는 목회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이 말씀들을 읽어주지 않자 이 예언의 말씀들은 이제 이단들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성도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들려주는 목회자가 복 있는 목회자이고, 또 그런 목회자로부터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전해 들으면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 복이 있는 성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1: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아서 성도들에게 그 말씀을 전해 주는 삶을 살면서도, 그 자신 또한 깨달아서 알게 된 그 말씀들을 지켜 행하며 살고 있는 목회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런 목회자로부터 말씀을 전해 듣고 깨달아서 그 깨달은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말씀을 전하기만 하고 자신은 지켜 행하지 않는 목회자는 복 있는 목회자가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켜 행하지 않는 성도들도 복 있는 성도가 아닌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도, 듣는 성도들도 그 자신이 전하고 그 자신이 들은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이런 목회자와 이런 성도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복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 읽어주는 목회자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 듣는 성도들입니까? 아닙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어주는 목회자라도,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들이라도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며 살지 아니하면 복 있는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복 있는 성도들은 그 신분이 어떻든지 관계 없이 이 예언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면서도, 정녕 나 자신은 그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내가 하나님의 구원에서 떨어질까? 염려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목회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으면서, 그 들은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그 들은 많은 말씀들이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는 확실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복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세상을 물로 심판하는 데서 구원함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들을 다 지켜 행하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 사람 갈렙이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믿음으로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의 다 광야에서 죽고 멸망을 당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의 증거는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사람들이 그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면 복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권세 자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면 평안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거역하는 삶을 살고, 권세 자를 거스리는 삶을 살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하고 있습니까?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에서는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 곧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주신 예언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또 말세에는 어떤 성도가 복이 있다고 합니까?
셋째, 때를 알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면 왜 때를 알고 준비하는 성도들이 복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지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모든 약속들이 성취되는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사람들은 때를 아는 사람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때에 맞게,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수고하고, 가을에는 추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추운 겨울에 씨를 뿌려서는 안 되지요.
유대인들이 실수한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번 오시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오실 때에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고난의 주로 이 땅에 오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오실 때에는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시고 인류 역사를 마무리하실 왕으로 오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고난의 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영광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까지 미치도록 하시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눈을 가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 감람나무였던 유대인들은 버림을 당하고,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방 교회도 결국 이런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역사하시는 시대입니다. 이 교회 시대는 2,000년 넘게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세상을 구원해 가시는 교회 시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예수님의 재림이 아주 임박한 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슨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까? 교회는 재림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재림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때에 맞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재림신앙을 가지고 사는 교회가 흔치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초림 때 재림신앙을 가지고 메시야를 잘못 기다렸듯이,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교회는 초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복음 중심의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가까이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재림의 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한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교회 시대를 마치시고 약속하신 대로 유대인에게 남은 한 이래가 오도록 섭리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 속에서 보면 어떤 이유들이 있겠습니까?
교회사를 보면 잘못된 재림신앙을 가진 이단들이 먼저 와서 잘못된 종말 신앙으로 성도들을 미혹해 왔습니다. 이런 이단들의 준동이 교회가 가지고 있던 재림신앙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쳐서, 교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재림에 무관심한 교회가 되도록 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3절 말씀에서는 이 예언으로 전해진 말씀, 즉 재림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아주 가까이 이른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아주 가까이 이른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종말 시대를 살아가는 복 있는 사람들은 재림신앙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지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에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심지어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이 시대가 종말 시대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마태복음 24:42, 44절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나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확신하는 재림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깨어 재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주 임박하였다는 것을 믿고, 재림의 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성도, 다시 말씀드리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 신앙을 가지고, 깨어 재림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가는 ‘말세에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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