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환 목사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4. 8. 25. 22:02

네 소원대로 되리라 (본문 마 15:21-28)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불렀던 노래 가운데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일본의 36년 동안 압제에서 해방되고 독립된 지 5년 만에 또다시 육이오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고통과 상처를 남긴 채 남북이 갈라졌던 것입니다. 참으로 같은 동족이 얼마나 한이 맺히고 원통한 일입니까? 그리하여 꿈에도 소원이 온 민족의 숙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도 누구나가 다 이루길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수능시험을 앞두고 학부모들과 수험생들은 좋은 점수를 받아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기도를 드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대상에게 소원을 빌곤 합니다. 반면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이 잘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평생에 아담한 집 한 채 마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건강이 회복되어 무병장수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원은 개인과 가정을 비롯한 사회와 국가에도 있습니다. 이 시간 함께 봉독한 말씀에도 한 여인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주님께 찾아온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 15:21-28절의 내용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소리 질러 간구할 때 냉담하셨고 신통치 않은 반응을 통하여 그 여인에게 모독을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 여인이 신앙은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 예수님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참 신자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둘째는 약한 자에게 실패의 경험을 주어서 깨닫고 그 약한 신앙을 고쳐서 견실한 자리에 들어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는 시험을 이기는 성도를 보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능력을 보고 깨달아 신앙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주실 때에 쉽게 주시지 않고 본이 되는 사람에게 먼저 고난을 겪어야 할 것을 알게 하시려는 목적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가나안 여인의 신앙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응답을 받아서 사랑하는 딸이 완쾌되는 놀라운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소원을 인간적인 경험과 방법으로 해결하느냐?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의 중대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가나안 여자와 같이 이러한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가나안 여인에게는 긴박한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소원은 사랑하는 딸이 흉악한 귀신에게서부터 풀려나서 온전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이었습니다. (15:22).

 

1) 여인은 딱하고 어려울 지경에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나이다 소리를 지른 것을 볼 때 얼마나 긴박한 사정이었겠습니까? 이것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자기 부정의 소리였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을 고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속수무책이니 실망 속에서 능력 많으신 예수님께 소원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한편 히스기야는 사형선고를 받고 성전 벽을 향하여 통회 자복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하셨습니다.

2) 다윗의 자손 예수님에게 문제를 가져왔습니다.

이 여인이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긴박한 소원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믿음은 첫째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메시 야임을 고백하였습니다. 둘째 주의 능력이 귀신 들린 딸을 고쳐줄 것을 믿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긴박한 문제가 무엇입니까?(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말씀하십니다. (369)

 

2. 가나안 여인에게 시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본문 22절에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가나안 여인은 자신의 운명과 처지를 인식하고 예수님의 사랑에 호소한 간구였습니다. 25절에는 주여 나를 도우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전능하심에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냉담하게 대하셨습니다.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셨으니, 이 여인이 처음에는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쁜 일은 인격적 모욕을 당했을 때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이러한 모욕을 당하면 저항감이 생기고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당한 일은 예수님의 침묵으로 더욱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때로 침묵은 말보다 강한 의사를 표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예수님의 제자는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야단스럽게 하니까, 귀찮게 구는 이 여자를 빨리 보내버립시다. 라고 제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2가지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첫째 단순하고 무관심한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친히 밝히셨습니다.

 

둘째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목자입니다. 10: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는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배척함으로 복음이 이방인에게 미친 것입니다. 그렇게도 가나안 여인이 간구하는데 아무 대답도 없으시다가 제자들이 독촉에 대답한다는 것이 여인에게는 실망과 낙담밖에 되지 않는 대답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아니니 예수님과 상관없냐고 하며 할 수 없다고 물러설 줄 알았는데, 멀리서 소리를 지르던 그 여인은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절하면서 애원하였습니다. 여인의 결심은 제자들의 냉답도 예수님의 무관심도 여인의 열심을 겪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고 합니다. 참으로 포기할 줄 모르고 예수님께서 찾아 나와서 목적성취의 꿈을 안고 시련을 인내로 대처하는 가나안 여인의 자세는,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놀라운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가나안 여인은 끝까지 인내로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응답은 겸손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라고 애원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셨습니까?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리라유대인은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개는 언제나 불견, 비천, 비양심, 탐욕스러운 것을 표시합니다. 고대 시인 호머는 수리를 모르는 남녀를 개라고 하였습

 

니다. 그러나 여인은 27절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니 이 말은 신앙과 겸손의 기지와 인내의 미덕이 조화를 보이는 말대꾸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 주님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겸손은 신앙의 기본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는 의가 없다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에게는 불의만이 있다는 하나님의 판단에 승복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이 입으로 말하기를 자기는 부족하다 하며 죄인이라고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서부터 그런 판단을 받을 때에는 남을 원망하기 쉬운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겸손과 복종으로서 주님께 칭찬받는 가나안 여인 그는 소원 성취한 최후 승리자였던 것입니다. 여인의 겸손은 첫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최대의 겸손이요 둘째 개라고 저주해도 감수하는 겸손이요 셋째 부스러기 은혜라도 간구하는 겸손이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가나안 여인이 소원을 이루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가나안 여인에게는 긴박한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가나안 여인에게 소원은 시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셋째로 가나안 여인은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믿음을 본받기를 소원 원합니다.

 

2024825(참 빛 교회) 주일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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