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동기가 선한 사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8. 4. 10. 06:36




동기가 선한 사람

빌립보서 1:12-18

 

1.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미국에는 그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는 거대한 산맥이 있는데 그 산맥의 이름은 로키산맥입니다. 이 로키산맥을 중심으로 미국은 동부와 서부가 갈라집니다. 반도국가인 우리나라를 가로지르고 있는 산맥은 태백산맥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태백산맥의 최고 봉우리를 기점으로 1cm만 동쪽에 비가 떨어지면 그 빗물은 동해안으로 흘러가고, 1cm만 서쪽에 비가 떨어지면 그 빗물은 서해안으로 흘러갑니다. 태백산맥의 정상에 비가 내릴 때에는 이 동서쪽에 내린 비의 거리 차이가 불과 몇 cm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적지만, 땅에 떨어진 이후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거리차이는 점점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동쪽에 떨어진 비는 동해 바다로, 서쪽에 떨어진 비는 사해바다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는 그 시작의 차이는 아주 적었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는 생각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인생은 그 사람이 가진 생각에 달려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서 그 살아가는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역시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늘 긍정적인 사고로 되는 방법을 찾지만, 실패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고로 늘 안 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또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게 될까요?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학생들입니다. 이런 학생들의 마음에는 공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친구들과 놀더라도 그 마음 중심에는 공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곧 노는 상황이 끝나면 공부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그 마음 안에 노는 마음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만 나고 여유만 있으면 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이 하고 있을 때도 공부가 그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가 끝나면 놀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너무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 마음 안에 선한 마음이 채우고 있다면, 그 하게 되는 생각 또한 선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에서는 너무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보면 그 가지고 있는 마음에서 그 하며 사는 생각과 사고들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 사고와 생각들이 재료가 되어서 다시 그 마음을 만들어갑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을 겪어 나가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사는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가치관에서 언어와 행동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행동이 나오고, 행동이 모여서 습관이 되고, 습관들이 모여서 운명을 결정한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의 동기는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그 이후 살아가는 전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2. 빌립보서 112-18절 본문강해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을 때 근동지역에 7년간 계속되었던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 큰 기근을 주셨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기근을 주신 아주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표적인 목적은 당시 애굽에서 노예로 죄수로 살아가고 있었던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시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던 야곱과 그 가족들을 애굽으로 내려 보내시기 위해서 기근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쳐갈 즈음에 다시 근동지방에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땅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과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교회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바울은 비록 하나님에 의해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동족 유대인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을 보면, 그 동족 유대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하나님에게서 끊어지게 되더라도 원한다고 할 정도로 동족이었던 유대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에게 기근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유대교회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른 결론이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개척하여 세운 이방인의 교회들에서 구제헌금을 모아서,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이방인들은 하나님 밖에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해 주신 복음을 믿게 된 유대인들의 전도와 헌신을 통해서, 이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이 믿음으로 화답하여 나옴으로 이방인의 교회가 세워졌고, 그 결과 이방인들이 지금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해 주었던 유대인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 성도들에게 복음의 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의 교회에서 구제헌금을 모아 기근을 당하고 있던 유대인 교회에 모아 전해 줌으로 그 진 복음의 빚을 갚을 뿐 아니라, 이 일을 통해 유대인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는 비전을 바울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인 자신이 전도하여 세운 각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기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해준 모 교회인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으니, 너희는 내가 갈 때까지 구제헌금을 모아 두어서 내가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각 교회들에서는 기근으로 어려움을 당한 유대인의 교회를 도와줄 구제헌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모아진 헌금을 받아서,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제헌금을 모으는 일이 지체되면서 소아시아에 있는 에베소를 들린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편지하여서 내가 너희에게 갈 시간이 없으니 너희가 나를 만나러 밀레도 항구까지 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를 마중 나온 만나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였고, 그들은 바울에게 그간 모아둔 구제헌금을 전달했습니다.

 

당시 바울이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모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갔을까요?

사도행전 20:23절 말씀을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나

 

이 말씀은 바울이 구제헌금을 모으러 다닐 때 각 성에서 성령이 바울에게 이번 여행길에는 결박과 환난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증거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바울에게 네가 이방인들에게서 모은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면, 유대인들에게 좋은 일 하였다고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결박과 환난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어떤 마음, 어떤 각오를 가졌다고 합니까? 사도행전 20: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은 바울이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떤 마음과 각오로 섬겼다는 것입니까? 자신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울에게 그 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를 위하고, 주의 복음을 위하고, 주의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내 한 목숨 기꺼이 내어 놓을 각오까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방교회에서 모은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물과 기름과 같이 서로 잘 어울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교회들을 보면 이방인의 교회와 유대인의 교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또 한 교회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담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나누어져 있는 모습을 보며,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유대인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모아 전달해 줌으로, 유대인의 교회가 마음을 열고 이방인의 교회를 하나의 교회로 받아 주게 하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바울이 구제헌금을 통해 그리고 있었던 큰 그림이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던 바울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목숨을 건 것입니다.

 

바울이 긴 여행을 마치고 유대 땅 두로에 상륙하였고, 그곳에 있는 제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두로에서 살고 있었던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울의 결단이 너무나 확실한 것을 알자,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고 바울을 보냅니다.

 

바울이 두로를 떠나 가이사랴로 가서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될 것이며 그 후에는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 때 한 바울의 고백이 사도행전 21:13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고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의 각오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누구도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하기를 포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갔고, 바울이 아시야, 마게도냐, 아가야 등등 이방지역을 다니면서 전도하던 것을 본 유대인들이, 성전에 있는 바울을 보고 그 백성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 때 성전에서 소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한 로마 군인들이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아마 바울은 성전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출동한 로마 천부 장에 의해서 겨우 죽음을 면하고 결박되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잡아 놓고 들어보니 그 충돌은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천부 장은 그 소동이 민감한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제라서 쉽게 결말을 내리지 못하고, 당시 가이사랴에 머무르고 있던 로마 총독에게 바울의 처리를 맡기며 은밀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로마 총독도 그 내용을 들어보니 유대인들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종교적인 문제인지라, 잘못 건드려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바울을 미결수로 2년간 가이사랴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2년이 지난 후, 로마 총독이 교체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총독이 교체되는 틈을 타서 바울을 암살하려는 유대인들이 있다는 첩보가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위협을 느낀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의 권리 중 하나인 황제에게 재판 받기를 요청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어서 황제의 재판을 받기 위해 미결수로 가택연금을 당하게 됩니다. 이 때 바울이 써서 보낸 서신들을 옥중 서신이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빌립보서는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이런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마음의 동기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교회의 하나 되는 일을 위해서라면 자기목숨도 아끼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바울이었기에 로마서 14:7-8절 말씀에서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니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까지 했습니다.

 

이런 신앙의 동기를 가졌던 바울이었기에, 그가 로마 감옥에 갇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1:12절입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바울이 나의 당한 일은 바로 로마에서 미결수로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일을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감옥 생활하고 있는 것이 도리어 복음 전파의 진전을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감옥 생활이 어떻게 복음 전파에 유익을 주었습니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저절로 그는 자신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전도자 바울의 소식을 듣고 로마 관리들과 황제의 친척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다른 때 같으면 전혀 전도할 수 없었던, 로마 군인들과 로마 관리들과 로마 황제의 식솔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매임을 도리어 다양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진보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복음의 진보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되었다는 소문이 났고, 이 소문은 로마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력을 미쳐서, 로마 교회 성도들도 당국자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복음 전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14절입니다.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5절에서는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17절에서는 또 어떤 이들은 감옥에 매여 있는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 하게 하려는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투기는 시기를 말합니다.

시기는 질투심을 뜻하는 말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해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깎아 내리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은 시기심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 중에는, 로마교회 교인도 아닌 바울이, 그것도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여 많은 로마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시기심과 질투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지 못해 하는 마음으로, 바울과 경쟁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떠들썩하게 전하게 되면, 그 일이 로마 관원들을 자극하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러면 바울의 재판사건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기하는 마음으로 경쟁적으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기하고 경쟁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교회의 하나 됨과 화합을 깨는 행동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교회의 화합을 위해서 그 생명까지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이라면 교회의 일치를 깨는 일부 로마교회 사람들의 행동에 분노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우리가 이런 바울의 말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울은 교회의 화합보다 진리의 복음의 전파를 더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가치를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중요시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멘.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런 바울의 삶을 보면, 바울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던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복음 안에서 교회의 화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자신의 목숨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이 우선 순위가 아주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는 자신이 더 중요시했던 교회의 화합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로마감옥에 있는 지금은 또 더 중요시 했던 복음을 위해서 교회의 일치를 깨는 시기와 분쟁과 다툼까지 용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이런 말씀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순수한 동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복음의 가치를 알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복음을 전해주는 전도자가 있고,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다른 목적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둘째, 바울은 그 삶의 우선순위가 확실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나 자신의 이름과 입장과 명예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화합과 일치가 우선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화합과 일치보다는 영혼을 살리는 복음 전파가 더 우선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한국교회와 그 지도자들이 바울이 가졌던 이 신앙의 우선순위를 공유하기만 해도,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분쟁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용역까지 동원하여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또 자기 교회만 위하는 개 교회주의나, 자기가 소속된 교단이나 단체만을 위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복음의 장애가 되는 일을 바울이 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은혜로 새롭게 시작하게 하신 이 2018년 새해 첫 날에, 바울이 가졌던 이 관점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즉 하나님과 그 복음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그 다음이 교회의 화목과 일치를 두고, 그 다음이 우리와 우리의 삶을 두는 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정립을 할 수 있으셨으면 합니다. 아멘.

 

3. 선한 동기로 살았던 사람들

 

끝으로 선한 동기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선한 열매를 맺었던 몇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빌립보 교회 개척 멤버 루디아입니다.(16:14)

 

루디아는 두아디라 성에 살면서 염색 업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루디아는 장사를 하기 위해 빌립보 성에 왔다가, 바울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루디아는 자신을 집을 빌립보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간 즉 교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또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본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고, 또 복음 전도자와 성도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7절에서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참여한 자 라고 할 때, 아마 루디아가 그 중심적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루디아는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또 바울의 전도사역을 위해 수차례 선교헌금을 보내 주며 바울의 선교사역을 도왔습니다. 루디아는 이렇게 바울을 만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후, 정말 선한 동기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협력하고 도운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바울의 동역자이며 주치 의사였던 누가입니다.(딤후 4:9-12)

 

바울이 한창 인기 있는 전도사역을 할 때는, 바울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로마 교회가 알고 있는 바울의 동역자만 약 30여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고, 나중에는 감옥에서 순교할 때가 가까워 오자,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가 다 떠나갔습니다. 바울 곁에 더 있어보았자 이익이 될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고난만 있으며, 상황이 더 악화되면 바울과 함께 순교해야 될 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4:11절의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그 많던 동역 자들이 다 떠나고 오직 누가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된 후, 평생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복음의 동역 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각종 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바울의 주치 의사로 바울의 건강을 지켜주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누가는 단 한번 바울을 떠났다가 끝까지 바울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선한 동기를 가지고 끝까지 충성한 누가에게 주신 하나님의 상급은 무엇입니까?

이방인이었던 누가는 이후 하나님의 말씀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누가의 이름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모든 성도들에 의해서 기억되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가 기록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또 은혜를 받아왔으며, 오늘 우리들도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의 목회 경험이지만 목회를 해 보니 하나님께서 왜 선한 마음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그 크신 은혜와 복을 주시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선한 마음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한 마음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 바라기는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충성하되, 선한 마음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셋째, 이방인이며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입니다.(10)

 

고넬료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다고 합니까?

사도행전 10:1-2절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탈리아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선한 마음으로, 당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넬료는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고넬료가 가졌던 그 신앙이 그에게 영향을 미쳐서 이렇게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었을 것입니다.

 

고넬료가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살자 그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천사를 보내셔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0:4절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사람들에게도 칭송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0:22절입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10:32절입니다.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마음의 동기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보실 때 고넬료와 같이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길 바랍니다.

 

넷째, 복음서에 나오는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입니다.(14:3-9)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는 그 미래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귀한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선한 동기로 유일하게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하였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죽으러 가시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오히려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이기적인 욕심을 드러내며, 메시야 왕국에서 큰 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한 말씀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고난당하는 메시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보물 1, 부모도 없는 자신이 결혼할 때 쓰려고 간직해 두었던 귀한 향유가 담긴 옥합을, 예수님의 죽으심을 위해 깨뜨려서 부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왜 그 귀한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께 드렸습니까?

어떤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까? 어떤 영광을 취하려고 그렇게 했습니까? 나도 이만큼 헌신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마리아는 순수하게 인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을, 자기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있는 가장 귀중한 향유를 깨뜨려 드린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마가복음 14:4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화를 내며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깨뜨려서 예수님께 붓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비싼 향유를 쓸데없이 허비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5절입니다.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한지라 다른 복음서를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사람은 나중에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던 가룟 유다였다고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과 가롯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을 책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사람들은 마리아의 순수한 신앙과 헌신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는 그런 신앙도 없고, 그런 순수한 헌신도 없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고 평가하여서 책망하고 비난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동기와 의도를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마가복음 14:6-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의 순수한 헌신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주어도, 우리의 중심과 마음의 선한 동기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알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동기를 주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또 목회자와 성도들을 섬길 때,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주어도,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선한 동기를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알아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모두 2018년을 시작하는 이날에,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성도들인 사도바울이나, 루디아, 그리고 누가, 고넬료, 마리아와 같이,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한 해 동안 살고자 하는 결단을 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선한 동기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을 인정해 주셨던 하나님, 그런 사람들에게 특별한 은혜와 복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살아가는 삶도 인정해 주시고 하늘의 은혜와 소망과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셔서 2018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가장 은혜로운 삶, 가장 복된 삶이 되게 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0) 2019.03.03
참 명예로운 성도의 삶  (0) 2018.11.11
바울의 감사  (0) 2018.10.24
덮어주는 사랑  (0) 2018.10.13
당신은 작정과 예정을 믿는가?  (0) 2018.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