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

절제

하나님은 빛이시다 2019. 5. 2. 12:43


절제

갈라디아서 5:22-23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성령의 열매에는 아홉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서 맺어가야 하는 열매가 아니고, 성령이 사람들에게 맺게 해 주시는 열매입니다. 그리고 또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라고 해서 성령이 이 아홉 가지 열매를 따로 따로 맺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그 열매를 맺게 해 주실 때에는 이 아홉 가지 열매를 동시에 맺게 해 주십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그것은 성령이 맺게 해 주시는 열매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성령이 맺게 해 주시는 열매는 다 있든지 하나도 없든지 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맺게 해 주시는 열매는 두 부류로 구분됩니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8가지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는 매우 진보적이고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열매입니다. 그래서 이 열매들을 맺게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게 되는등등이 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마지막 열매인 절제는 조금 다릅니다. 절제는 매우 보수적이고, 규율 적이고, 제한하고, 또 통제하는 열매입니다. 이 절제의 열매는 앞에 있는 성령의 8가지 열매를 제한하는 통제하고 컨트롤 하는 기능을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 8가지 열매는 마치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자동차는 60킬로, 100킬로, 120 킬로의 속도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자동차는 달리기만 잘 해서는 안 됩니다. 달리다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속도를 줄이고 멈출 수 있게 해 주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9번째 열매인 절제는 마치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8가지 열매들을 통제하고 컨트롤 해 줍니다. 그래서 조화와 균형감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절제입니다.

 

성령의 열매의 관계에 대한 이런 기본적인 이해 속에서 오늘은 절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절제는 조화와 균형을 갖게 해 줍니다.

 

성령의 열매가 사람들에게 주어질 때 사람들은 비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안에서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이 주시는 이 기쁨은 이 세상에 주는 그 어떤 기쁨과도 다릅니다.

이 세상에는 돈이 주는 기쁨도 있고, 성공이 주는 기쁨도 있고, 성취가 주는 기쁨도 있고, 자녀가 주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큰 기쁨은 성령이 내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쁨입니다. 성령에 의해 속사람이 변하게 되면 이 속사람의 변화는 나의 관점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관을 바꾸고, 세계관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그 속사람이 바뀐 사람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이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만약 이 진취적인 성령의 8가지 열매만 있다면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의 열매를 예로 살펴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대상을 초월하고 관계를 초월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아가페 사랑의 열매를 받아 가진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상대방이 누구냐 하는 것과 관계없이 사랑하게 됩니다. 또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선교사님들이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여 아프리카로 가고 아시아로 가고 중동으로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디 선교사님들뿐입니까?

손양원 목사님은 이 사랑을 가지고 소록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이 사랑이 없으면 매달 월급으로 천만 원씩 준다고 해도 소록도로 가지 못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 안에 충만한 사람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나눠 주기를 좋아합니다

능력이 안 되면서도 자꾸 주고 또 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남편이 싫어해도 주고 또 주는 삶을 살다가 가정불화가 일어나고 이것 때문에 결국에는 가정이 깨어지기도 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사랑이 지나치면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사랑이 지나치면 사람들에게 푼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지나치면 사람들에게 헤픈 여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얼마만큼 사랑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어느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를 건축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교회 주차장을 인근 주민들에게 개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사용하는 날인 수요일 오후부터 밤까지 금요일 저녁부터 밤까지 그리고 주일예배를 위해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저녁까지는 교회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말아주도록 했습니다. 이런 교회의 정책은 주차장이 부족한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저녁에 목사님이 금요 철야 예배를 인도하려고 교회에 갔는데, 교회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꽉 차 있었고 목사님이 차를 세워야 할 자리에 처음 보는 트럭이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메모되어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여서 이 자리는 교회 목사님이 차를 대는 자리이니 이 차를 좀 빼 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기다렸으나 예배 시간은 다 되어 가고 있는데도 차주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해서 제가 이 교회 담임목사이고 지금 교회 일로 좀 바빠서 그러니 빨리 와서 차를 좀 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트럭을 새워둔 사람이 와서는, 교회가 뭐 이렇게 사랑이 없냐? 내가 잠깐 차를 세워두고 곧 빼려고 했는데, 하던 일이 좀 늦어져서 빼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니 목사님이라는 분이 뭐 이렇게 어려운 사람 처지도 이해해 주지 못해서야 누가 알아주겠느냐?’ 라고 하면서 막 쌍소리를 하고 욕을 해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과 그 사람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가고 언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그 교회 부목사님이 나서서 그 사람에게 교회가 사랑이 없게 보여서 미안하다고, 다른 날은 차를 세워도 괜찮은데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그렇다고, 우리 교회 목사님도 꽉 막힌 분은 아니시라고 하면서 내가 교회를 대신해서 사과하겠습니다. ‘화가 나시더라도 선생님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시고, 화 푸시고, 저희를 좀 도와 달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달래어 내 보내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보다가 그 부목사님 때문에 더 화가 났다고 합니다

아니 부목사가 담임 목사의 편을 들면서 그 운전수에게 차를 빨리 빼 달라고 해야지, 그 운전수의 무례함을 나무라기는커녕 교회가 사랑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며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있으니, 그러면 담임 목사인 내가 잘못을 했고, 사랑이 없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화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 당회를 열고 당회와 협의 속에 그 부목사를 해임했다고 합니다


절제는 이웃 사람과 교회 담임 목사님을 어떻게 다르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절제는 남편과 이웃 남자를 어떻게 다르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절제는 자기 자녀와 이웃의 자녀를 어떻게 다른 자세로 맞이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절제는 내가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지만 이 이웃 사랑도 때로 절제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2. 희락의 열매 


성령이 주시는 이 기쁨은 신적인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기쁨은 사람들을 아주 행복하게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기쁨이 있을지라도 때로는 이 기쁨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초상이 난 집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가장을 잃고 슬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을 믿는다.’ 라고 하면서, 이 형제가 죽었지만 지금 천국에 가 있는데 왜 슬퍼하냐?’ 라고 하면서, 지금 나의 마음속에는 성령이 주시는 기쁨이 넘치고 있다고 하면서, 여러분도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세요.’ 라고 하면서 초상집에서 아 기쁘다.’ 라고 하면서 웃는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돌아버린 사람 취급, 실성한 사람 취급할 것입니다.

 

빈야드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너무 기뻐서 참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설교하고 있는 중에도 막 큰 소리로 웃습니다. 그러면 예배 하던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따라서 웃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각종 동물의 소리를 내면서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때굴때굴 구르면서 그 기쁨을 표현합니다


절제의 열매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지되 이 상황 속에서는 어느 정도 기뻐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기쁨도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절제를 잘 하지 못하면 진리에 해를 끼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욕을 먹게 됩니다. 절제를 잘하지 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 미쳤다는 소리 듣게 합니다. 그런데 실재로 이런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다 저렇게 미치나 보다’ ‘예수 믿으면 위아래도 없게 되나 보다.’ ‘예수 믿으면 가정도 무시하고, 사람들에게도 무례하게 대하게 되나 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절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잘못 믿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절제의 열매를 통해 그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함께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부부가 한 목표를 가지고 뜻을 같이하며 함께 가는 길은 너무 아름다운 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아름다워 보입니까? 저는 남녀가 함께 다정하게 걸어가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입니다. 때로는 온 가족이 정겹게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함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균형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또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참 아름답게 보일 때가 언제입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거나 그 형편과 처지 속에서는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절제로 침묵하는 것을 볼 때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삶 속에서 사람의 성품 속에서 절제의 빛이 비쳐 나오는 것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이 절제가 바로 성령이 주신 마지막 열매입니다.

이 절제는 성령의 8가지 열매를 언제 써야 하는지 어디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느 정도 써야 하는지를 잘 컨트롤해 주고 잘 통제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의 8가지 역동적인 열매와 함께 절제의 열매를 함께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다 있거나 다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몇 가지는 내게 있는데 몇 가지는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성령의 열매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서 능력이 나타나고 역사가 나타나고 있지만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어떤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능력과 역사는 성령의 역사를 모방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사단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사단의 역사는 그 능력과 그 나타나는 역사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절제를 통해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이 절제가 없으면 성령의 8가지 열매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오히려 그 주어진 능력은 오히려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에 해를 끼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절제의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가장 신앙적인 사람이 가장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절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아도 동일합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신앙이 가장 뛰어난 시대에 또 가장 많은 악이 행해졌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루터와 칼빈의 시대보다 더 신앙적인 시대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 때문에 죽었습니다. 역사 적으로 보면 십자군 전쟁 때보다 더 신앙적인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사의 증거를 보면 이때보다 더 많은 악이 행해진 시대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증거들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절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더 신앙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령 충만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과 삶이 균형을 이룬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 나라를 균형 있게 보게 해 줍니다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 신앙관과 인생관과 직업관과 사회관과 국가관 등등이 균형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거짓입니다. 이런 균형이 깨어지면 따라 오는 것이 가정이 파괴되고 국가를 부정하고 국가에 충성하지 않게 됩니다.

 

3. 이단의 특징


이단은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단의 대표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가진 신앙이 바른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신앙을 위해서 가정을 파괴하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백이면 백 모두가 다 그 가장이 파괴됩니다. 그런데 신천지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그 가정을 파괴하고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고, 자신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신앙이며, 균형을 잃은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인 균형 감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잘못된 신앙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아담을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아담을 보니 홀로 있는 것’ ‘독처 하고 있는 것이 좋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갈비 뼈 하나는 취하셔서 하와를 창조하셨는데, 홀로 있는 아담을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보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게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자가 더 뛰어날까요? 여자가 더 뛰어날까요? 여자가 더 뛰어납니다. 이 세상 속에서도 보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더 뛰어납니까? 도움을 주는 쪽이 더 뛰어납니까?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선생님들이 더 뛰어납니까? 도움을 받고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더 뛰어납니까? 언제나 도움을 받는 쪽 보다 도움을 주는 쪽이 더 뛰어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도움을 받는 남자 보다 돕는 배필로 창조함을 받은 여자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나은 하와로 하여금 아담을 돕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돕는 배필이란? 아담에게 꼭 맞는 조력자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아담은 자신에게 꼭 맞는 조력자인 하와의 도움을 받아 균형을 이룰 때 안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이 균형이 깨어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에게 들어야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들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이 균형이 깨어지자 범죄 하게 되었습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을 때 남자에게 물어보았더라면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이 바로 인류의 범죄사건입니다.

이렇게 해서 범죄하게 된 하와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3:16절입니다. ‘.....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너는 범죄할 때처럼 독단적으로 남편을 좌지우지하기를 원하지만 남편이 너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자에게 저주가 아닙니다. 균형을 잡지 못해서 범죄한 하와에게 다시는 그런 범죄를 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어린 배려의 말씀이십니다.

 

저희 교단에 속한 어느 교회 사모님이 그 남편 목사님이 수천 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가게 되자 자신은 남편을 따라 그 교회로 가지 않고 교단에서 이단적인 교회라고 리스트에 올라 있는 교회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단적인 교회 사람들을 수 십 명 데리고 또 신문기자까지 데리고 남편이 목사님으로 있는 그 교회로 가서 기자회견하기를, 우리 남편은 목사가 되기에도 부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교회 성도님들이 다시 잘 알아보고 더 이상 남편을 목사로 모시지 말고 내 쫒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말리려 나온 그 교회 성도들과 갈등이 일어나면서 교회 유리창을 부스고 난리 법석을 떨었습니다. 성령이 맺게 해 주시는 절제의 열매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둘째, 절제는 성령의 열매의 컨트롤 타워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절제에는 엔트라테이아 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은 어느 영역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크라토스는 통치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절제 즉 엔트라테이아, 통치의 영력 안에 있다. 다스림의 영력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절제가 자기 스스로에게 역사할 때는, 누가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금하고, 자기 스스로 컨트롤 하여서, 치우치지 않도록 해 주는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절제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해 주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절제가 성령의 8가지 열매에게는, 이것은 해라. 이것은 하지 말아라.’ 라고 통제하는 율법이며 계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2:13-14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원망과 시비 속에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교회 세우고자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주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영혼구원하려고 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종말의 때가 임박했다는 것을 일깨우려고 한다고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절제 속에서 해야 합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9:25-26절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의 면류관을 얻고자 (절제)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업적이 아니라 자기성찰과 자기완성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모두 자기 자식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서 학원에도 보냅니다. 그래서 성적이 올라가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사실 성적이 올라간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적은 그 삶 중에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대부분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대학을 가고 그래서 문제가 터지게 되면, 우리 아이는 착한 아이였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해하는 것입니다. 이미 벌써 오래 전에 상처가 곪아서 터지고 있었는데도, 성적만 바라보고 있는 그 부모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도 빨리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빨리 하는 것보다, 바른 방향을 잡아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 있으면 천천히 가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잘못된 길로 빨리 가는 것보다 바른 길로 천천히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에서도 같습니다.

그 지식이 뛰어나고 열정이 뛰어나도, 그 가는 방향이 잘못되면 그런 사람은 더 큰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사람들을 다루실 때는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가는 훈련을 먼저 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사명을 받았던 모세가 생각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사람을 죽이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가 자기 방법을 다 내려놓고 오직 그를 부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훈련을 시키는 장소로 미디안 광야를 택하셨고 하나님은 여기서 40년 동안 모세를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비록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이 인정해 주실 정도로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면 먼저 그가 가진 인간적인 우월감, 아집, 고집, 자존심, 자만심을 다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다윗을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훈련하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더 훈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이 쓰실 만한 일군으로 만들어 가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 속에서 훈련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쁘게 훈련을 받게 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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