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같은 인생
야고보서 4:13-17
서론
2019년이 시작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유수 같이 흘러가고, 세월이 화살 같이 빠르게 날아간다더니’ 정말 그렇게 금년 한 해가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을 보아도 똑 같습니다.
우리가 ‘응아!’ 하고 울면서 태어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리고 인생의 종착역이 눈앞에 보이는 데까지 와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이런 우리 인생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4:14절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여러분도 ‘안개’를 잘 아시지요.
안개는 수증기 방울들이 뭉쳐져서 생겨나게 됩니다. 안개는 바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다가도 아침 해가 떠오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것이 안개입니다.
오늘 첫 번째 살펴볼 것은, 우리 생명이 우리 인생이 안개와 같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안개는 어떻게 생깁니까?
낮에는 태양으로 인해서 땅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밤과 낮의 온도 변화가 많이 날 때,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그 지역으로 유입되게 되면 안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그 안개는 언제 사라집니까?
바람이 불거나, 태양이 떠오르면 안개는 곧 사라집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우리 생명이 우리 인생이 이 안개와 같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과 안개의 닮은 점이 무엇입니까? 한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여러분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우리는 단 1시간 후도 아니 10분 후의 일도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내일에 일어날 일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에 충실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산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까?
어떤 도시에 가서 1년 동안 장사를 하여 어느 정도 이익을 남기려는 계획을 세우고, 16절을 보면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일은 어떻게 될 것인지, 내일 무슨 돌발사건이 일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오랜 장사의 경험을 근거로 ‘내일 이만큼의 이익을 남기게 될 것이다.’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장사를 끝내고 손익을 결산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랑하는 것은 ‘허탄한 자랑’ 이고 ‘악한 행동이다.’ 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미래를 자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미래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오직 오늘입니다. 오늘에 성실한 사람들에게 미래가 있고, 오늘에 성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래도 없습니다.
내 생각과 내 상상 속에 꿈꾸고 있는 것은 사실 허상입니다.
아이들과 어른의 다른 점은, 아이들은 마음속의 꿈을 실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네 장래 꿈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그 마음속에 있는 꿈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이 실재가 되려면 내게 주어진 오늘 성실해야 합니다. 오늘 성실히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꿈은 현실이 됩니다.
야고보 사도가 ‘우리 인생이 안개와 같다’라고 말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개는 내일이 보장이 안 됩니다. 우리 인생도 같습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장되지도 않는 내일 일에 집착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만 미래가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또 인생과 안개의 닮은 점이 무엇입니까?
둘째는,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약한 존재입니다. 얼마나 약한 존재입니까?
사람은 독이 든 물을 조금만 마셔도 죽습니다. 외부에서 그 머리에 좀 센 충격만 주어져도 죽습니다. 복어를 잘못 요리해서 먹어도 죽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약한 존재라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도 약하지만 너도 약한 존재이니, 약한 존재인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강한 존재는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잘 살 수 있습니다.
강한 호랑이를 보십시오. 혼자서 살고 혼자서 사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약한 존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함께 모여 협력하면서 살아갑니다. 개미, 원숭이, 들개, 얼룩말 등등을 보십시오. 왜 떼를 이루고 삽니까? 약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았던 베드로가 남편들에게 준 말씀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3:7절입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베드로는 아내와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고 합니다. 어떤 지식입니까?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 아내와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라는 지식을 가지고, 아내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또 아내들에게는 준 말씀은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3:6절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도 남편에게 선을 행하라” 베드로는 아내가 그 남편에게 하며 살아야 하는 선한 행위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남편을 주로 인정하고, 그 남편에게 순종하며 사는 것’이 선한 행위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런 삶을 살았으니 너희도 이런 삶을 살아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약한 존재라면 또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강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내 힘을 믿고 산다.’ ‘나는 내 주먹을 믿고 산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안개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고, 안개가 진하면 얼마나 진하고, 안개가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우리 인생이 안개와 같이 약한 존재라는 말씀은, 나는 약하지만 강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되며, 또 나와 같이 약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인생과 안개의 닮은 점이 무엇입니까?
셋째는, 그 수명이 짧다는 것입니다.
안개가 아무리 짓게 끼었어도 해가 뜨면 안개는 곧 사라집니다.
모세는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이 짧다고 합니다. 시편 90:4-6절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 같이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이 시를 쓴 모세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모세는 120년을 건강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런 모세가 자기 인생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잠깐 지나가는 홍수 같았다고 합니다. 낮에 잠깐 눈을 붙이는 낮잠 같았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말라버리는 들풀과 들꽃 같았다고 합니다.
또 모세는 우리 인생을 날아가는 화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시편 90:10절입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여러분 화살이 얼마나 빨리 날아갑니까? 모세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화살보다 더 빠른 것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모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 인생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속도는 우리 나이와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10대는 그 날들이 10km의 속도로 아주 느리게 지나가지만, 20대는 20km의 속도로, 50대는 50km의 속도로, 80대는 80km의 속도로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으니 그 인생의 속도가 120km로 달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마치 화살과 같이 빨리 날아간다고 한 것입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모세는 12절에서 이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모세는 자기에게 남아 있는 날들을 헤아려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그 남아 있는 날들을 바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얼마의 날이 남아 있습니까?
우리는 가끔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우리처럼 ‘미워하고, 다투고, 갈등하고 싸울’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하며 살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다투고 싸우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며 보내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자기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는 학생들은 열심이 공부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공부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인생과 안개의 닮은 점이 무엇입니까?
넷째는, 끝나는 날이 확실히 온다는 것입니다.
자욱하던 안개가 해가 뜨면 사라지듯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다 죽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 살아온 삶의 결과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 합니다.
이 심판대를 성경은 ‘흰 보좌 심판대’라고 합니다.
이 심판대 앞에서 펼쳐지게 될 상황은 아마 이럴 것입니다. 맨 앞의 흰 보좌에는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그 옆에는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는 예수님이 서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우리 행위를 가지고 참소하는 천사들이 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영 즉 낙원과 음부에 가 있던 사람들의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 그 심판대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이 심판의 날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심판의 날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각 개인에게 주어진 날은 살아 있을 때뿐입니다. 죽으면 그 영이 낙원과 음부에 가 있다가 곧 바로 이 흰 보좌 심판대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모처럼 연휴를 맞이하여서 제주도로 돔 낚시를 갔습니다.
그런데 파도에 배가 뒤집혀서 죽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사람이 태어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 살아 있어도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내 나이가 젊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처녀는 얼굴이 더 예뻐지려고 성형수술 하다가 죽지 않았습니까? 이 처녀가 성형수술을 하다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죽은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흰 보좌 심판대 앞에 설 것을 내다보며 그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첫 번째 살펴본 것은, 인생이 안개와 같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 살펴볼 것은, 안개와 같은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우리보다 앞서 이 노원 땅에서 살았던 옛날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여기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여기서 살았으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2019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도 곧 그렇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해야할 시급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첫째,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참 주인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반대로 내 인생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모르는 것이 저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세상에서 성공하였어도 선한 일을 많이 하였어도 의로운 삶을 살았어도 하나님은 그런 삶을 인정해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시간의 청지기로, 소득으로 얻은 재물의 청지기로, 내 몸의 건강을 지키는 청지기로, 자녀들을 하나님 대신 맡아서 돕는 청지기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도 이런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받아 자기가 그 인생의 주인으로 살려고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13절입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를 하여 이익을 보리라”
이 사람이 살아가는 삶은 어떻습니까?
무슨 잘못이 있어 보입니까? 아니면 아무 잘못도 없어 보입니까?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런 잘못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 사람의 잘못은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이 사람 같이 살지 말고 어떻게 살라고 합니까?
4:15절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삶을 계획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6절 말씀을 보면 자기가 주인이 되어 계획하는 그 모든 계획들은 ‘악한 일’이며, 그 모든 자랑은 ‘허탄한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만유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배재하고 자기가 주인인양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종업원들이 모여서 사장님을 빼고 자기들끼리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웠다고 합시다. 그러면 나중에 이것을 알게 된 사장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희들 잘했다. 너희들이 내 수고를 덜어주었네.’라고 하겠습니까? 아니지요. 사장님이 볼 때 이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장이 이 기업의 오너가 아닙니다. 종업원들이 오너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삶을 인정해 주십니다.
또 안개와 같은 인생길을 무의미하게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죄는 바로 교만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도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거부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 사람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상품을 가지고 이 도시 저 도시로 가서 장사하는 상인이었습니다. 장사를 오래 해온 이 상인은 장사에 대해서는 뭔가를 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장사할 일을 계획하면서 자만심과 교만한 마음으로 허풍을 좀 떨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부자라서 교만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자가 되고, 권력을 잡고, 성공하면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만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도 교만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거지들도 교만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거지는 구걸하고 있는데 동전 500원짜리를 주면 ‘내가 500원짜리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느냐?’라고 하며 받지 않습니다. 교만은 빈부귀천과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악입니다.
우리가 교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이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 몸에 사단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을 기록하고, 또 교회사에 남을 영웅적인 교회개척자가 되었지만 겸손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겸손하였던 바울이 자랑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약할 그때가 가장 강한 때”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할 수 있습니다. 겸손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안개와 같은 인생길을 무의미하게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17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의 삶이 성경에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넘어서서 내 이해와 양심을 따라 자원하여 선을 행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청와대 앞길에서는 이 추운 날씨에도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예배와 기도로 밤을 지새우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습니까?
제가 전에 장애인 교회에서 청년부를 지도하고 있던 어느 겨울날, 장애인 청년들과 일반 성도들과 이들을 섬기며 봉사하기 위해 따라온 봉사자들과 함께 기도원에 간 일이 있습니다. 그 때도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모인 사람들이 적다고 불을 피워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불도 없는 성전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저는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마루 밑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에 뼈 속까지 시려왔기 때문입니다. 함께 간 일행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서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지금 청와대 앞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니 그 때 야속했던 기도원 원장이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적다고 그 추운 날씨에 불을 넣어주지 않은 일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념이 다르다고 추운 날씨에 길 바닥에서 고생하는 성도들을 외면하는 일 또한 선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삶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 마음에 선한 생각이 들면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고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그래서 리더는 힘듭니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까지도 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교회이기 때문에 가끔씩 도우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제가 몸이 약하기 때문에 때로 저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실 더 많았겠지만 실재로 행동으로 돕고자 나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마음의 선한 마음을 막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선한 마음이 그 삶의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이런 소원을 주셔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어떤 소원들이 일어날 때 그 소원을 사장시키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 “주라 줄 것이니 내가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하라’ ‘하지 말라’ 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우리가 볼 때 선이라고 생각되는 일까지도, 혹은 성령이 그 일을 하라고 소원을 주시는 그런 일까지도, 자원하여 적극적으로 행하며 사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이 우리 삶에 임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은혜와 감당할 수 없이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안개와 같다는 말은 우리 인생이 안개와 같이 덧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내일을 알 수 없고, 연약하고, 그 날수가 짧고, 결국에는 죽게 되는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 없이 산 사람들은 그 어떠한 삶을 살았든지 그 모든 삶이 안개와 같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우리 인생의 참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가치 있게 해 주는 첫째 조건입니다.
다음은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며 순종하는 삶을 값비싼 제물을 드려 제사 드리는 것보다 더 낫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야고보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일이 선한 일이라면 그 일을 즐겨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우리 마음에 선한 소원이 생기면 그것이 성령의 인도해 주심임을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일을 하는 것이 선한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일인 줄 알게 된 그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을 의로운 삶이라 인정해 주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들은 우리 모두는, 우리 인생이 하루아침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임을 기억하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그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삶,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사는 삶을 살아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시고,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충만히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2019년 연말이 되고, 2020년 새해가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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