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복 있는 믿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9. 20. 17:33

복 있는 믿음

마태복음 16:13-18

 

오늘은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되는 믿음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자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이 되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불신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개신교, 로마카톨릭, 기타 종파들을 다 합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마 천 몇 백만 명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전체 중에서 보면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십 억 명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현실과 예수님의 말씀은 큰 차이가 나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요약해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세인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믿음으로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 역사하는 믿음을 인정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요?

내가 가진 믿음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인가. 내가 가진 믿음이 살아 역사하는 믿음인가. 내가 가진 믿음이 기도응답을 믿는 믿음인가.’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16장의 말씀을 통해 이 믿음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이 중심이 되고 있는 인본주의적인 믿음입니다. 이 인본주의적인 믿음은 내가 보고 깨닫고 경험하고 이해해서 가지게 된 믿음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있는 신본주의적인 믿음입니다. 이 신본주의적인 믿음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이 두 믿음 중에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내가 이해하고 깨달아서 가지게 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마태복음 16장의 말씀을 통해 살펴봅니다.

 

이때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유대인의 땅을 떠나 이방인의 땅이었던 거라사인 지방, 두로와 시돈 지방, 그리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다니시면서 제자들만을 집중 교육하시던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후에 그 교육의 성과를 무엇으로 확인합니까?

학기말 시험을 통해 확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에 두 가지 질문으로 제자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14절에 나옵니다.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 대답을 보면 제자들은 당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는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주 많은 악의적인 평가가 있었지요.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견해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 두 번째 질문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모든 제자들을 대표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이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아주 만족해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인정해 주셨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내가 예수님을 만나 경험하고 깨달아서 가진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은혜로 선물로 알려 주신 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참 믿음은 우리의 이해에 좌지우지되는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기초하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제자들은 이전에도 아주 놀라운 신앙고백들을 했었습니다.

예를들어볼까요? 요한복음 1을 보면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후에 그 형제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전해 줍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바로 구약성경이 증거 해 온 바로 그 메시야라고 전해 준 것입니다.

또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을 만났던 빌립도 그 친구 나다나엘을 만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라고 전해 줍니다.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갔던 나다나엘도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고백들입니까.

이 모든 고백들은 예수님을 잠시 만나 뵙고 한 고백입니다. 이런 말씀들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되면 예수님 안에서 흘러나오는 신성의 능력과 권세에 압도 되어서 누구나 다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믿음의 고백들을 들으시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는 아주 기뻐하시고 아주 만족해하시면서 놀라운 축복의 말씀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19절 말씀을 보면 이 교회에 천국열쇠를 주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이 두 가지 신앙고백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볼 때에는 둘 다 놀라운 믿음의 고백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반응은 다른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요한복음 1장에서 한 제자들의 신앙고백들은 예수님이 기대하신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가이샤랴 빌립보 지방에서 베드로가 한 이 신앙고백이 바로 예수님이 바라고 기대하셨던 정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내가 예수님을 만나보고 경험하고 연구하고 깨달아서 믿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저절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나를 자녀 삼아 주신 것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고 계신 것이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 믿음을 가지게 될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그래서 바요나 시몬에 네가 복이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반드시 가르치셔야 할 것이 있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신 하셨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난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아무나 알아들을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가르침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우수한 선생이 와서 가르쳐도 그리스도의 고난, 십자가, 부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성도들 중에는 이것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으심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니 천국도 영생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 제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하신 후에 비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십자가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6:21절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믿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아서 가지게 된 이성적인 믿음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 영으로 깨닫게 해 주신 영적인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서로 다른 믿음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이성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이 두 믿음 중에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은 이성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이해하고 또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내 영에 은혜로 선물로 깨닫게 해주신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믿음을 성령이 주신 은사라고 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만 하신다면 우리는 더 잘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의 대표자격인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까?

 

베드로는 본래 어부였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당시 경제적인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아서 서민들이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가기도 힘든 그런 시대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시대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베드로에게 어떤 소식이 들려왔습니까?

한 선지자가 요단강에 나타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라고 외치며 세례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 친구들과 함께 요단강으로 세례요한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베드로를 보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시 베드로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베드로는 선지자를 만나러 요단강으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는 다 이렇게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진리에 대한 열망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은 이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중심이 어디에 가 있느냐?’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삭의 장남 에서에게도 그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보고 들어서 가지게 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그 마음에 가장 원하고 있었던 것은 세상의 자랑과 성공과 성취와 업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남 야곱은 달랐습니다. 야곱이 가장 원하였던 것은 그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그 아버지 이삭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그 신앙의 유업이었습니다. 야곱은 이것을 위해서라면 그 외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이렇게 믿음을 향한 간절함과 열망이 있었습니다.

이런 야곱이었기에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주시고, 야곱도 얍복강 나루터에서 회개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자아가 완전히 깨어지고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오게 됩니다. 이 때 야곱은 하나님이 그 조상들에게 주신 믿음의 길을 택하였고, 에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가 나의 존중히 여김을 받고 나를 경멸하는 자는 내가 경멸하리라.’

 

이렇게 볼 때 우리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고 있고, 우리 마음이 언제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향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은혜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야곱이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믿음을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만세 전에 그 사람에게 그런 믿음을 주시기로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9장 말씀을 보면 창세기 25장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야곱은 구원 받을 자로, 에서는 구원받지 못할 자로 그들이 나기도 전에 예정하셨다고 하십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시고 또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덜 사랑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다릅니다. 내가 믿기로 선택하고 결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이 예정하셔서 선택하시고, 때가 되어 성령의 은혜의 역사로 우리를 부르시고,’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에 이르기 까지 우리로 하여금 믿음에 열심을 내게 하고, 사모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받기를 간절히 열망하게 한 이 모든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될 성 싶은 나무는 그 떡 입부터 다르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속담과 같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보면 벌써 그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그 심령에 은혜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심령이 매임을 받아 믿음에 몰입합니다. 믿음을 향한 열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심과 그 사모함이 남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이 믿음을 받으려면 우리들에게도 이런 열망이 있고 이런 간절함이 있고 이런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유대교에 있을 때 누구보다 더 열성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를 파괴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판단을 한 후에는 복음의 적극적인 대적 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런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가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종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바울은 그 인생은 180도 바꾸어서 복음의 박해자가 복음의 전파자로 바뀌게 됩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이성적으로 보고 깨닫고 경험해서 가지게 된 인본주의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신본주의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내 이성과 내 의지로 믿는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는 것도 내 의지로 믿었지만 믿음을 떠나는 것도 내 의지로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 주셔서 믿어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이 믿음을 주십니까?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12제자와 같이, 야곱과 같이, 신앙에 열심인 사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이런 간절함과 사모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우리 모두 받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믿음 위에 우리 인생을 세우고 남은 생애를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또 어떤 믿음입니까?

둘째, 믿음으로 살게 하는 믿음입니다.

 

믿음과 행함의 문제는 교회사 내내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도 그 이후의 삶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사람들은 결코 믿음에서 떨어질 수가 없다. 혹 죄를 범하면 고난을 주시고 징계를 하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지 구원에서 떨어지게 버리시지 않으신다. 라고 합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상대방을 이렇게 비난합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주장하며 믿음으로 살지도 않는 거짓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좀 중도적인 사람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받은 구원을 지키는 것은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행위에 구원이 달렸다고 하는 행위 구원론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행위로 지켜야 한다는 또 다른 행위 구원론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증거와 같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받는 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말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믿음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는 내가 이해하고 깨달아서 가지게 된 믿음입니다. 한국교회가 한창 성장되고 있던 70-80년대에 이 믿음을 가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사람들은 결국 믿음에서 떠나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로 가기도 하고, 불신자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안티 기독교인이 되어서 오늘날 기독교를 허무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특징을 로마서 1:17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이 말씀은 믿음으로 믿음을 향하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진 믿음 위에, 믿음으로 향하게 하는 믿음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하고, 또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52어의 기적사건을 통해 이 믿음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날 예수님을 따라 광야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을 믿고 나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적인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아서 메시야 왕국의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과 같은 왕으로 오신 메시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대신해서 고난 받는 메시야로서, 사람들을 위해 생명의 떡이 되고 참 된 음료가 되어주는 메시야로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다.’고하며 다 예수님을 떠나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 남아 있는 소수의 제자들을 보고 너희도 가려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그 남아 있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는 주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떠나 돌아간 사람들과 남아 있었던 사람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떠나 돌아간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능력과 역사와 기적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성부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이들의 마음 안에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또 스스로 선택해서 예수님을 떠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남아 있었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의 말씀에서 보듯이 그 마음 안에 성부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베드로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기는 돌아간 군중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베드로의 마음 안에는 성부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베드로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했고, 언제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향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전에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능력의 역사를 보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는 주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때 가졌던 믿음은, 로마서 1: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 즉 어떤 경우를 만나든지 믿음을 향하게 하는 믿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아직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 마음이 불신으로 향하지 않고 믿음으로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에 대한 말씀이 처음 나오는 곳이 바로 하박국 2:4절입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환경 속에 있었습니다. 이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하였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박국은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을 향해 엄청난 질문을 쏟아 내며 구원을 호소합니다. 이 호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신앙이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외적인 것을 보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믿음을 떠나가지만,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 믿음을 향하게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그 어떤 어려움을 만나게 되든지 관계없이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참 믿음의 사람이었던 다니엘이나 그 세 친구는 바벨론에 전쟁 포로로 끌려가는 그 와중에서도 믿음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모르드개와 황후 에스더도 역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동일한 믿음을 가졌던 하박국 또한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인생이 평탄할 때만 믿은 것이 아닙니다. 폭풍과 같은 고난이 그 인생을 휘몰아쳐 오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믿음을 향하게 하는 그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 서로 다른 믿음의 고백이 예수님의 고난 사건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는 믿음의 길에서 함께 실족하고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결말은 서로 다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드로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 믿음으로 향하게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베드로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비록 스승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고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돌아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다릅니다.

가롯 유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이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해하고 깨달아서 믿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던 유다는 나중에 예수님이 자기 기대대로 하지 않으시자 또 스스로 선택하여 믿음에서 돌아섰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롯 유다는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 믿음으로 살게 하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12명의 정탐 군을 통해 이 믿음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행하신 10재앙을 통해 애굽에서 나왔고, 또 홍해바다를 가르시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향해 찬양과 경배를 드렸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또 광야에서는 얼마나 많은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까?

 

이렇게 볼 때 광야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믿음은 같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12명의 정탐 군 사건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구분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 즉 믿음으로 살게 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 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믿음을 갖지 못하여서, 위기의 때가 오면 곧 바로 믿음이 흔들리고, 마치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적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둘째, 이 믿음 위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줍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 의인이라고 하고, 또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신약성경도 이런 예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과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믿음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 화를 선포하지 않으셨습니까?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 사람들은 수많은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을 경험하고 믿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여서 결국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믿음을 떠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고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도 이 믿음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사람들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지만, 돌밭과 같은 사람들, 가시떨기가 있는 밭과 같은 사람들은 믿음을 가졌고, 또 그 주시는 은혜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믿음으로 살게 하는 믿음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받은 옥토와 같은 사람들만 믿음으로 살아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야고보서가 전해 주고 있는 말씀도 바로 이것입니다.

바른 믿음은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믿음인데, 만약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을 가진 유무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보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라고 하여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해 아주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병이 들 수도 있고,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고, 심각한 삶의 문제가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때도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부정하고 불신으로 나아가는가? 하는 삶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믿음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믿음이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참 믿음이며,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할 복 있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실 믿음과 삶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실 이 둘은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또 어떤 믿음입니까?

셋째,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한 사람의 아기로 태어나서, 사람들과 함께 자라고 성장하여 청년이 되신 후에 때가 이르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고 나왔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치심과 그 행하시는 신적인 능력과 역사를 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그 고향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사렛 사람들 중에는 믿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사람에게 배워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믿음을 주신 사람들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로마에 반역했다는 죄목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정치범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고, 로마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졌던 바울은 달랐습니다.

로마서 1: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복음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 안에는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복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사람이 연구하고 경험하고 깨달아서 가지게 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사람들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서 시작된 믿음은 믿음의 시작을 내가 한 것 같이 믿음을 버리고 떠나는 것도 내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믿음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나 믿음을 향하게 하고 또 믿음으로 살게 해 줍니다. 로마서 1: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을 향하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바로 그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왜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라고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가 다가오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거의 다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보기 어렵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때입니다. 오늘날에는 얼마나 잘못된 믿음이 많이 있습니까?

 

그 실재 예를 들어보면, 오늘날에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장하는 인본주의 신앙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 삶 속에서 받게 되는 복을 구하는 구복신앙이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은사에 목을 매는 은사 열광주의 자들이 기고만장하여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고 있습니다. 기적을 목말라하는 신 사도주의 운동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반 기독교적인 종교다원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적 이해를 신앙이라고 주장하는 지성주의가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 낸 심리학을 신앙으로 포장한 내적치유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 내고, 예배에 빠지지 않고, 교회에서 봉사를 잘 하면, 믿음이 좋다고 하고,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며 오늘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태복음 16장 말씀을 통해 살펴 본 복된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둘째,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향하게 하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그 믿음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 복된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해 주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해 주신 그 모든 은혜와 복들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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