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세 가지 선물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0. 11. 1. 13:54

세 가지 선물

요한복음 1:9-13

 

오늘은 하나님이 예수를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선물이란 무엇입니까? 선물은 내가 상대방에게,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아무 이유도 조건도 달지 않고 호의로 거저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선물에는 반드시 선물 주는 사람의 호의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선물은 주는 사람도 즐겁고, 받는 사람도 즐겁습니다.

 

선물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뇌물과는 다릅니다.

선물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선물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은 다릅니다.

뇌물은 그 주는 물건이 가치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 단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뇌물을 통해 받고자 기대하는 반대급부 또한 큰 것입니다. 이렇게 뇌물은 내가 받을 그 무엇을 기대하며 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아주 많은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은, 그 어떤 반대급부도 바라지 않고, 오직 호의로 주신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런 선물들 중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세 가지 선물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어떤 선물을 주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시고 주시는 선물이 있는데, 그 선물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이 자녀가 되는 이 권세가 선물임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 권세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반대급부로 요구하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보시고 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이 믿음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사와 선물들이 다 이 믿음을 통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실 때, 하나님 제게 큰 믿음을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믿음을 받아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들을 다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리에 나가보면 중요한 요지 요지마다 교통순경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중에는 10톤이나 20톤이 되는 물건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대형 덤프트럭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교통순경이 더 힘이 셉니까?

아니면 10톤이나 20톤의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대형 덤프트럭의 힘이 더 셉니까? 물론 힘으로 보면 대형덤프트럭이 훨씬 더 셉니다. 그래서 교통순경이 그 힘으로는 덤프트럭을 막을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힘이 약한 교통순경이 어떻게 교통 통제를 할 수 있습니까?

교통순경에게는 국가가 부여해 준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통순경은 비록 힘은 약하지만 교통신호를 어긴 큰 덤프트럭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권세입니다.

 

그러면 이 권세를 누가 교통순경에게 부여해 준 것입니까?

이 사람을 교통순경으로 임명한 국가입니다. 국가는 법으로 이 권세를 교통순경에게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통순경은 국가가 자신에게 부여해 준 이 권세를 가지고 자신보다 힘이 더 강한 덤프트럭도 멈춰 세울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교통순경이 외국에 여행을 갔다고 해 봅시다.

이 사람이 외국에 여행을 갔다가 교통신호를 어기면서 달리는 차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에 우리나라에서 하던 식으로 호각을 불면서 교통신호를 어긴 차를 향해 멈춰서라고 한다면 그 차가 멈춰 설까요?

 

아니지요. 신호를 어기고 달리고 있는 그 차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교통순경이 여행간 그 나라에서는 이 권세를 위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교통순경이 가지고 있는 권세는 자신을 교통순경으로 임명한 나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를 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창조된 세상을 주권적인 섭리로 지금도 다스리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장차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다스리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사용이 가능한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뿐 아니라, 장차 우리가 죽어서 우리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때, 육체에서 분리된 우리 영이 낙원이나 음부에 들어갈 그 때에도 사용가능한 권세입니다. 그리고 낙원에 있던 우리의 영이 부활체를 입고 부활하여 인생의 종착지인 천국에 들어가서 살게 될 그날까지도 유용한 권세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마치 자녀가 그 부모님의 모든 것을 자기 것 인양 누리면서 살듯이, 우리 하나님께서 가지신 그 모든 것들을 마치 나 자신의 것인 양 누리며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자녀는 학비가 필요하면 부모에게 학비를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옷이 필요하면 옷을 사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돈이 필요하면 용돈을 더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녀들이 누리며 살 수 있는 권세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다릅니다.

자녀가 아닌 사람이 찾아와서 학비로 쓰게 500만원을 달라고 하면 주겠습니까? 꼭 입고 싶은 옷이 있는데 그 옷을 사서 입을 돈을 달라고 하면 주겠습니까? 용돈이 떨어졌다고 하며 용돈을 달라고 하면 주겠습니까?

 

아마 100이면 100사람이 다 그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요구를 하는 그 사람을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세가 있지만, 자녀가 아닌 사람에게는 이런 권세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저것 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이런 사람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겠습니까?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에 서울 시장은 박원순 씨였습니다. 이 박원순 씨가 공석이 된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원순 씨는 서울 시장 공관이 있는 가회동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어떻게 됩니까?

박원순씨의 자녀들은 아버지가 서울 시장이 되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살고 있는 서울시장 공관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습니다. 또 아버지가 살고 있는 그 서울시장 공관에 들어가서 함께 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서울 시장으로 누리며 살게 되는 그 모든 대우를 자녀들도 똑 같이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서울 시장 공관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서울 시장공관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이 일반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장의 공관에는 특별히 초정을 받았거나, 엄격한 절차를 거쳐서 출입을 허락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서울 시장 공관에 들어가는 것을 제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자녀 된 사람들에게 주어진 권세이며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의 경우에도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그 모든 것들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를 누리며 사는 것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마치 내 것인 양 사용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가지신 그 모든 것을, 기도로 구하고, 믿음으로 요구하며, 마치 내 것처럼 사용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을 향해 명령할 수 있습니다. 가난아 물러가라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육체의 질병을 향해 명령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아 떠나가라.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불신 가족들의 그 불신앙이 물러가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불신앙아 물러가라.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에 공자의 후손들이 수만 명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적 고증을 통해 이 사람들이 공자의 후손인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그 유명한 공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공자의 후손인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의 참 의미를 잘 알았던 사도바울은 무엇이라 고백하였습니까?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자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돈이 많은 것, 학문이 높은 것, 잘 생긴 것, 남다른 지혜가 있는 것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이런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내어버리고 주 안에 있는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사람들을 존귀하게 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비록 세상에서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별다른 명예를 가지지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나만보고도 우리는 그 사람을 존귀하게 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가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어떤 부자 앞에서도, 그 어떤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부요보다, 그들이 자랑하는 권세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더 영광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 같이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비록 그 사람이 무식한 성도라도, 가난한 성도라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보는 사람들이 가진 신앙의 건전함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 서 있는 다른 성도들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로 불러주신 성도들과 세상 부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비교합니까? 여러분이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보는 그 평가기준 속에 바로 여러분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보는 평가기준을 보면 그 사람이 세상에 속해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속해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전에 가끔씩 목회자들이 참석하는 세미나에 가게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미나에서 안내나 섬김을 담당하는 성도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개척교회 목회자로 그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을 대할 때, 마치 자기 교회 담임 목회자 대우하듯이 그렇게 대해 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 교회 목사님은 대단한 목사님으로 보고,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 저와 같은 목사님들은 좀 얏잡아보고 무시하였습니다. 이 두 부류의 성도 중에 어떤 성도들의 신앙이 올바른 신앙이겠습니까?

 

이것은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가정들도 같습니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목회자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릅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목회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라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뜨거운 낮 더위를 피하여 쉬고 있을 때, 그 천막 앞을 지나가고 있는 세 명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세상 만민 중에서 구별하고 택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준 사람이 아닙니까? 이런 은혜의 경험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이었기에 그 무더운 오후 시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기 집 앞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 보고 자기 천막에서 먹고 쉬어 가도록 초청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브라함이 사람들을 얼마나 존귀하게 보고 있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브라함이 섬긴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한 사람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이셨고, 두 사람은 예수님을 수행하는 천사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나님과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김정숙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러면 집사님은 우리가 갈 때마다 다른 음식으로 저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적은 생활비로 살아가면서도 담임목사라고 그렇게 대접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를 믿는 내가 얼마나 존귀한 성도인지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진 또 다른 성도들이 얼마나 존귀한 사람들인지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존귀한 사람 대하듯이 대해주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충성하고 헌신하고 있는 직분 자들을 보면 존경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존귀함이 그 사람이 가지고 사는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 안에서 은혜로 그 사람을 불러주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특권들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권세와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가 부모에게 나아가 당당하게 무엇을 요구하듯이, 그렇게 하나님께로 나아가 당당하게 필요한 것을 구하고 받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믿음, 살아 역사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하여 가족을 축복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사용하여 이웃을 축복하고 세상을 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권세를 사용하여 성도들을 축복하고 교회를 축복하십시오. 더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을 축복하고 코로나 19로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온 세계를 축복하십시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주셨음을 믿고 축복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 2020년 하반기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첫 번째 선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이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번째 선물은 무엇입니까?

둘째,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6:47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우리는 영생을 가졌다는 이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영생을 가졌다고 합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영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들은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나중에 너희에게 영생을 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 이미 영생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가졌나니라고 과거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영생은, 현재 우리의 여건과 조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과거에 이루어놓으신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전에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누리고 살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 있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이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소유한 사람, 영생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장차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초대장까지 받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니 그 살아가는 삶이나, 삶을 보는 방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식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을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이런 인식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그 살아가는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도바울은 무슨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주십니다.

이 영생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사망을 이긴 승리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동일한 믿음으로 우리는 질병도 가난도 이겨낸 승리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이나 믿음 후에나 우리는 똑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나는 양식을 먹고, 이 땅의 공기로 숨쉬고,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면서 땅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는 우리들을 그 자녀 삼아 주시고, 또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신의 생명이 다하면 죽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영생을 소유한 우리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통해 육체에서 분리된 우리 영혼은 아브라함의 품으로 알려지고 있는 낙원으로 가서 장차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그 날까지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장래 식은 무엇입니까?

장래 식은 이 세상의 생명이 다하고 죽는 슬픈 날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던 육체적인 생명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러 천국으로 가기 전에 거주하게 될 낙원으로 가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천국으로 가는 환송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비록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도 그 죽음을 과도하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 죽음을 통해 나그네 길의 고생을 끝내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를 믿지 않고 죽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의 길을 알지 못하고 저주 속에 죽어 갑니다. 이렇게 볼 때 친척이라고 다 같은 친척이 아닙니다. 가족이라고 다 같은 가족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비록 육체로는 형제요, 친척이라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영생을 소유한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구분쯤은 쉬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은 저절로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볼 때 예수를 믿고 그 영이 살아난 사람들과, 예수를 믿지 않아서 여전히 그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은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죽어 영안실에 냉동 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시체와 살아있어서 활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구분되듯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두 부류로 구분해서 볼 수 있는 눈을 뜨면, 무슨 수단을 쓰든지, 무슨 방법을 쓰든지, 사랑하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첫 번째 선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세 번째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셋째, 가족 구원의 약속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6:31절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 되면, 이후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아직까지 예수를 알지 못하는 가족,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받아 누리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며 살게 되는 기도생활을 보면 가족의 구원문제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부모님이 연로하신 때는 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믿지 않는 자녀들을 남겨 놓고 가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의 구원문제가 가장 우선적인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서, 부모들은 그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백방으로 수고하고 노력하게 합니다.

 

그러나 가족의 구원 문제는 사람이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자녀나 부모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 16:31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주 예수를 바로 믿기만 하여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 즉 네 부모와 자녀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사랑하는 가족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구원밖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형제자매 그리고 일가친척들을 구원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노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00세 때, 그 아내 사라가 90세 때 약속대로 이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또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살아갑시다. 우리의 환경이 상황이 어떠하든지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굳게 서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는 반드시 믿음의 역사가 따라옵니다. 우리는 결국 믿고 구한대로 우리 가족과 형제와 친척과 이웃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결국에는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에게 주신 세 가지 선물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둘째, 영생 즉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셋째, 가족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사랑하는 부모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내가 달려가야 할 믿음을 길을 달려가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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