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역사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은 빛이시다 2021. 8. 22. 15:42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사도행전 13:21-23

 

구약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세 오경을 기록함으로 율법의 대표자가 된 모세도 있고, 선지자의 대표 격이었던 엘리야도 있고, 왕의 신분을 가졌지만 영적으로 아주 탁월하였던 다윗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율법과 선지자와 왕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사람 중에 다윗 왕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께서 이런 표현을 쓰신 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믿음이 남달랐던 사람들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신 곳은 여러 곳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오직 다윗 한 사람 뿐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의 평가를 듣고 살았던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다윗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3:22절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니라

 

그러면 다윗이 언제 하나님을 만났을까요?

다윗이 언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다윗은 아주 어린 시절에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6:18절입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당시 사울 왕은 악령에 사로잡혀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자신에게 역사하는 악신을 쫒아 줄 수 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을 찾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적임자로 추천된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 앞에 불려갔고, 악령이 역사하여 사울 왕이 고통 할 때마다 다윗은 수금을 타며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러자 악귀가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다윗에게는 그 인생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만남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중요한 만남은 어릴 때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다윗은 그 후 평생 동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다윗의 삶에 함께 해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최고의 만남은 하나님을 만난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삶에서도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믿고, 섬기며 사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것이 이 만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함께 해 주시는 것이 이 만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 중요한 만남은 선지자 사무엘을 만난 것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을 만남으로 다윗은 그 살아갈 인생의 방향이 설정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 살아가는 인생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직업의 종류가 수만 가지가 됩니다. 사람들은 그 중 한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모든 직종에 대해 알아보고 그 중에서 내가 가지고 살아갈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나의 삶이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공무원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아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공장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영향을 받아 자기도 공장을 할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산골에 태어나서 그곳에서 살게 되면 나무꾼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면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도시로 보내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자기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왔으나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으면 막노동이라도 해야 합니다. 여기에 안주하는 사람은 평생을 노동자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노동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노동하며 사는 그 힘으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전기, 기계, 소방, 열관리 등등의 자격증을 따고 그 분야에서 몇 년간 실무 경험을 쌓은 다음에 아파트 소장으로 가거나 빌딩 관리인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신분의 상승을 이루려고 하면 남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와 같이 이런 신분의 상승은 그 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편하고 싶고 오늘 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룰 수 없습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 기꺼이 수고의 땀을 흘리는 사람들만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으면서, 또 오늘 내가 내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청소년들의 삶에도 이런 중요한 만난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 늦지 않은 때 내 인생을 내다보는 안목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내일을 준비해 나가는 지혜 있는 청소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세 번째 중요한 만남은 대적 골리앗을 만난 것입니다.

골리앗을 만난 것은 인생의 위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을 만나서 싸운 그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다윗은 위대한 용사의 이미지를 그 백성들의 마음에 심어주었습니다. 우리 삶 속에도 같습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삶의 어려움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을 찾아오는 위기의 때를 오히려 기회의 때로 삼아나갈 수 있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네 번째 중요한 만남은 평생을 함께 할 용사들을 만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용사들과 함께 근동 지방의 패권국이 되었던 다윗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 외에도 다윗에게는 아주 중요한 만남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청년의 때 하나님을 만났는데, 만약 제가 청년의 때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기에 이 무더운 여름철에, 더위를 피해 산이나 물가로 가지 않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요즘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만났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은 열매로 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슨 열매로 안다는 것입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는 전에 라스베가스에 가서 교회헌금으로 도박을 하다가 많은 돈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목사님은 왜 헌금으로 도박을 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당시 만민 중앙교회는 건축 중이었나 봅니다. 그 대답이 이랬습니다. 성도들이 건축헌금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도박으로 많은 돈을 따서 성도들의 헌금 부담을 줄여주려고 정말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라스베가스로 가서 도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런데 그 교회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이재록 목사가 많이 기도하고 도박을 했다는 그 말을 듣고,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우리를 생각하셨으면 그런 일까지 했겠느냐?’라고 하면서 너무 감격해서 우는 성도들까지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이재록 목사는 전에, 자기 교회는 UFO에 대해서는 아주 전문가들이고, UFO에 대한 자료가 아주 많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이 땅에 보내실 때 UFO를 태워 내려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 성도들은 아멘!’ 하고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이 이재록은 공룡은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의 애완동물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는 공룡을 타고 다녔다고도 했습니다.

 

성경은 하늘에는 3층천까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이재록 목사는 아담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즉, 시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이동을 할 때는 UFO를 타고 이동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4차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4차원의 이동통로를 이용하여서 지금도 하늘의 잠자리 때나 하늘의 구름 등등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아멘!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을 듣고 그 교회 성도들은, 자기 교회의 이재록 목사님은 다른 교회의 목사님들과는 차원이 다른 목사님,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능력을 가지신 목사님이라고 하면서, 그런 목사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감격스러워했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성도가 약 20,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한국에는 약 40여개의 지 교회를, 세계에는 7,000개의 지 교회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이런 이재록 목사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4차원의 이동통로를 통해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생각됩니까?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 마음이 늘 그 만난 하나님을 향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살아가는 모든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우리는 이렇게 찬송하지 않습니까?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또 사도바울은 무슨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이 세상 보다 더 큰 신 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바울의 눈에 늘 하나님이 보였겠습니까? 이 세상이 보였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눈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배설물처럼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또 우리의 관점이 아닙니까?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이재록은 그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었습니까?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에 가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알 수 없는 신비에 속한 말을 하며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에 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록 목사와 달리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찬송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또 믿음으로 헌신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또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도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교회의 표지

 

조직신학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편을 말씀과 기도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만난 성도들이라면,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6:2,4)

 

그러면 말씀과 기도가 우리 신앙생활에서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체가 호흡하지 않거나 음식을 먹지 않으면 건강해 질 수 없듯이, 우리 영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기도의 호흡을 하지 않으면 건강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의 필수요소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집중하고 늘 기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둘째, 다윗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3;22절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여기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뜻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까?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 삼고 있는 말씀에서는 분명하게,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신약성경을 보면 바울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졌다.’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라고 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교훈하기를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함으로, 빌립보 교인들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디모데 전서 4:4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에 착념하다가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기도생활이 우리를 점점 거룩하게 하여서, 결국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성도가 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아멘.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부터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습니까? 무엇이 사도바울로 하여금 이 일에 일생을 바치게 했습니까? 그 이유는 범죄한 인류에게 복음이라는 복 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 안에서 성자 예수님이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38-39절에서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에베소서 3:18-19절에서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그 너비가 우주보다 더 넓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길이가 영원에서 영원까지 이르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높이가 하늘보좌에 까지 이르러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깊이가 지옥까지도 미치고 있었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옥 맨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을 가롯 유다까지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산 다윗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시편 23편은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이 시편 23편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다윗이, 그가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았던 그 인생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언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경험하였을까요?

다윗은 어릴 때 목자로 그 아버지 이새의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굶주린 사자와 곰이 나타나서 그 아버지 양을 습격하여 물고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다윗은 자신이 그 아버지 양을 해치는 곰과 사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선한 목자였습니다.

만약 다윗이 삯군 목자였다면 목숨을 걸고 곰과 사자와 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삯군은 양도 자기양이 아니고, 또 양을 돌보고 있는 이유가 품삯을 받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삯군은 양을 위해 자기목숨을 거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 양은 아버지 이새의 양일 뿐 아니라 또 자기 가정의 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달려가서 곰과 사자와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이 곰과 사자를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양의 목자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양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곰과 사자와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목자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양이었던 다윗이 곰과 사자에게 찢겨 죽도록 그냥 놓아두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해 곰과 사자와 싸워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0:1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도 삯군 목자로 살지 말고 선한 목자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목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다윗과 골리앗

 

이 다윗이 어느 날 아버지 심부름을 하러 전쟁터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하는 골리앗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골리앗은 팔척장신이라 사울 왕과 그 군사들이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서 전혀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던 다윗, 하나님이 선한 목자 되심을 믿었던 다윗은 달랐습니다.

골리앗의 말을 듣는 순간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위한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예가 모독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독 받는 것을 참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에게 가서 자신이 그 골리앗과 싸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때 다윗이 보인 분노는 사실 하나님을 위한 분노였습니다.

다윗이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이 더럽힌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나아가는 다윗과 함께 해 주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아멘.

 

사울 왕을 피해 다닐 때

 

이후 다윗은 10년 동안 사울 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 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기도 했습니다. 다윗과 그 부하들이 숨어 있는 굴에 사울 왕이 혼자 들어와 잠을 잤습니다. 이 때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셨다라고 하면서 사울 왕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 이 때 다윗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사울 왕을 내 손으로 죽이지 않겠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으니 그를 왕의 자리에서 폐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전에 우리나라 관광객 박왕자 씨가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래서 남북 관계가 지금까지 경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왜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였습니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은 우리나라 국민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비록 북한의 법을 어겼다고 해도 북한은 그 사람을 잡아서 우리나라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주권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군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우리나라 국민을 총으로 싸 죽였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존재가치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사과도 재발방지 약속도 책임자 처벌도 불가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이 중지 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 간에도 이렇게 상대 국가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세운 사울 왕의 경우는 더하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건방지게 나서서 사울 왕을 죽이고 그의 왕위를 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를 왕의 자리에서 폐하실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가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아멘.

 

금송아지 우상 숭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갈 때,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느라고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 타고 다니시는 짐승이라고 하며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일을 본 모세가 기가 막혀서 너희 중에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는 다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레위 지파가 나왔습니다. 모세는 레위 지파에게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그 우상숭배에 참여한 형제들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레위 자손들은 3,000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죽였겠습니까? 아무리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많았어도 그 우상숭배 하는 것을 보고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그 이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은 우상 숭배하였는지 하지 않았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볼 때 레위 사람들이 죽인 3,000명은 어떤 사람이라는 것입니까?

이 레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그 알고 지내던 친구를 죽이고, 이웃을 죽였던 것입니다. 이 헌신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셔서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지파가 되었습니다.

 

브올의 음행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머물 때, 발람의 꾀에 빠져 모압 여인들과 행음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염병이 번져서 이스라엘 백성 약 24천명이 죽었습니다. 모세는 그 일에 참여한 두령들을 잡아서 죽였습니다. 왜 두려들을 잡아 죽였겠습니까? 모세는 두령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에게 브올의 범죄에 참여한 백성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때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창을 가지고 일어나서 미디안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쫒아가서 창으로 남자와 여자의 배를 함께 꿰뚫어서 죽였습니다. 그러자 염병이 그쳤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였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했다 고 하시면서 비느하스와 그 자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줄 것 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비느하스가 어떻게 이 일을 행하였습니까?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그 형제를 죽였던 것입니다. 레위 지파도 같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그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제사장 지파로 삼아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대 제사장으로 제사장 지파로 삼아 주셨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다윗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또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셋째,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산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3:22절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니라다윗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자,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그 남은 생애를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도 하고 소명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던 다윗은 어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까?

 

아말렉 족속을 멸망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후미에서 괴롭힌 족속이 바로 아말렉입니다. 이 아말렉 족속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혔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겠다.”라고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를 추억 한다.’라고 하시면서 사울 왕에게 너는 가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이긴 후에, 그 주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위하여 그 왕 아각을 사로잡아 오고, 자기와 백성들을 위하여 좋은 짐승들은 취하여 오고, 또 여인들과 아이들을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된 것은 이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아말렉 자손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 진을 불사르고 모두 진멸하였습니다.

 

다윗이 무자비하게 아말렉을 진멸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땅들을 정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강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평생 약속한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평생 전쟁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최고급 자제들을 모았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죄를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범죄를 통해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51:13절에서는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 오리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백성들의 죄가 고백되고 그 죄가 사함을 받게 되는 장소인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은 평화를 주는 장소인데 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에 성전건축자로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이 내 진심도 알아주시지 않는다고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건축을 포기하고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면 그 아들 솔로몬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일생 동안 하나님의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모았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습니다.

 

다윗 시대 삼년 연속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집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억울하게 죽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사울 집 사람 일곱을 내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어 주었더니 흉년이 그쳤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공과 의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다윗만 이렇게 산 것이 아닙니다.

모세도 40세에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임을 깨닫고 결국 그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평생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살지 않았습니까?

 

이 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알게 된 일을 이루며 살고자 하는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 결단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데 우리의 삶을 바치고 일생을 바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어디서 알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보십시오. 그 주인이 이르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충성된 종들을 보는 주인에게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주인의 즐거움에 충성된 종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일군이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에 참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높은 영성에 참여하며 살게 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여 잃었던 한 영혼을 찾게 되었을 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전도하여 죄인인 그 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면, 하늘에서는 잃은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을 가지고 잔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수고하고 헌신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실까요?

전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데 수고한 그 사람에게도 이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예를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보내신 12제자와 70명의 전도대가 큰 역사를 이루고 돌아왔을 때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기쁨을 12제자와 70명의 전도 대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기뻐하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기뻐하되 너희를 통해 일어난 역사 때문에만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쁨, 하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산 다윗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도 다윗과 같이,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복 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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