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人生(인생)
창세기 1:26-28
여러분들은 가수 심수봉을 아시지요.
청년들과 학생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드신 분들은 심수봉이 누구인지 잘 압니다. 심수봉의 본 이름은 심민경입니다. 그는 명지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서울 대표로 참석을 해서 자신의 자작곡인 ‘그때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대학가요제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불렀던 인기 있는 노래였습니다. 심수봉은 그 다음해에 이 노래를 가지고 정식가수로 데뷔하여서 인기신인가수가 되었습니다.
그 가사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가수 심수봉에게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 저는 가끔씩 길거리에서 팔았던 붕어빵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붕어빵을 파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붕어빵은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간식이었습니다.
전에는 1,000원만 주면 붕어빵을 다섯 개 주었습니다. 이 붕어빵 다섯 개는 한 끼 간식으로 충분했습니다. 붕어빵 다섯 개는 저희 다섯 식구가 하나씩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기후현상으로 재료값이 많이 오르면서 붕어빵을 파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원역 주변에 붕어빵을 파는 곳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1,000원을 주고 붕어빵을 샀는데 2개를 주더라고요. 이제는 우리 집의 다섯 식구가 하나씩만 나눠 먹으려고 해도 3,000원은 들어야 합니다. 물가가 오르기는 참 많이 오른 것 같습니다.
붕어빵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붕어빵 가족이야기입니다. 붕어빵 가족이란? 붕어빵 기계로 똑 같은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그렇게 서로 꼭 닮은 가족을 붕어빵 가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창세기의 말씀은 이 붕어빵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이 세상 만물들을 다 창조하신 이후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마치 붕어빵 기계로 똑 같은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꼭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는 붕어빵과 같은 사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과 하나님의 형상을 꼭 닮게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고 하면 우리의 원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함을 받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고 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함을 받은 우리자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면 알수록 우리를 그의 형상과 그의 모양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칼빈은 그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가진 모든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요. 또 하나는 사람에 관한 지식이다. 이 두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산출하는가를 알기는 쉽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특성만 가지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만을 바라보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고 하면 오해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오해들이 생겼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단지 육체로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과 동물은 거의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을 거의 같은 존재로 취급합니다. 동물보호단체 사람들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물질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육체를 물질로 분해하여서 그 가치를 따져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르게 된 결론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물질적인 가치는 겨우 비누 몇 장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가치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을 물질로 바꾸게 되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견해는 공산주의자들의 견해이며 유물론자들의 견해입니다.
정말 인간의 가치가 동물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비누 몇 장 정도의 가치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일 뿐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닮게 창조된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을 단지 육체를 가진 동물과 같이 보거나 물질적인 성분으로 그 가치를 따지고 평가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이 세상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또 자연과 하나로 봅니다. 이것은 불교와 같은 범신론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래서 범신론적인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는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또 다시 태어날 때는 어떤 짐승으로 태어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살생을 금하게 하고, 고기를 먹지 않으며, 물고기를 방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인간을 동물 중의 하나로 보지 않으며, 물질적인 존재로도 보지 않고, 또 자연의 일부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인 존재로 봅니다. 우리가 인간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게 창조함을 받은 영적이고 인격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해를 가졌던 종교개혁자이며 우리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바로 알려고 하며 우리는 먼저 우리의 원본 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로 알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려고 하면 먼저 우리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된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우리 인간들과 그 원형이 되시는 하나님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바로 알려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하며,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마치 붕어빵과 같은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고 있는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먼저 앞으로 창조하실 세상에 대해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하신 대로 궁창을 만드시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6-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런 창조의 과정들은 모든 창조 사역에 다 같이 적용됩니다.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실 때에도 먼저 그 마음속에 빛을 만들어 어둠과 빛을 구분하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하시고 계획하신대로 빛을 만드셨습니다.
둘째 날 하늘을 만드실 때도 세상에 존재하는 물을 하늘 아래의 물과 하늘 위에 물을 구분하실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하시고 계획하신대로 하늘 곧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셋째 날 궁창 아래의 물인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시는 창조사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마음속에 생각하고 계획하신 대로 바다에서 육지를 구분해 내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먼저는 그 마음속에 창조할 세상에 대해 생각하시고 구체적인 창조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는 그 계획하신대로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해 가시는 방법이셨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살펴볼 것은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 일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말씀이 시사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도 무슨 일을 할 때 먼저는 하나님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아무 계획도 없이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원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셨기 때문에 복사본이 되는 우리들도 그렇게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고 공부할 학과를 선택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학생들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인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생각에 근거하여 계략적인 인생 계획을 세워놓고 내가 갈 학교를 선택하고 학과를 선택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생각도 계획도 없이 그냥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같은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의 다른 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지혜가 완전하시고 그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하시고자 하는 일들 중에서 못하시는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릅니다.
비록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기는 하였지만 그 지혜와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생각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워 가지고 일을 하여도 그 일이 언제나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한대로 이루어 질 때도 있지만 때로는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전에 나로 호 발사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우주선의 발사는 아주 정교한 계획과 준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우주선 발사 분야에서 앞서 있는 러시아의 기술적인 도움을 받아서 나로 호를 발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발사한 나로 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많은 시험과 점검을 거쳐 나로 호 우주선이 만들었지만 통신위성을 보호하려고 씌웠던 윗덮개가 재대로 분리되지 않아서 우주선 발사에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주선 발사에서는 그 어떤 나라도 100% 성공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전능하지 못한 우리가 가져야 될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한 일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서 실패할 것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집 밖을 나가면 무서운 호랑이라도 있는 것처럼 집 밖을 나가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꾸 일을 벌려 만 놓고 그 뒷수습은 거의 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강남구 로데오 거리에 가게를 번듯하게 차려 놓고서는 그 가게 운영을 아내에게 맡겨 놓고 직원에게 맡겨 놓고 자기는 스쿠다이버 동우회, 오토바이 동우회에 가입하여서 거의 매일 밖으로 나돌며 살았습니다. 아주 무책임한 가장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닮은 것입니까? 이런 사람을 우리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까? 이 가정이 결국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가정파탄으로 끝을 맺더라고요.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우 그룹의 전 회장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수고하고 힘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더니 결국에는 우리나라 5대 그룹에 들었던 대우 그룹을 이루어내지 않았습니까?
현대 그룹의 전 회장이었던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새겨진 우리나라의 500원짜리 지폐와 울산만의 백사장 사진 한 장을 들고 가서, 한국은 이미 500년 전에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사용하였을 정도로 조선 능력이 있는 나라라고 설명하면서 차관을 도입하고 선박수주까지 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세운 조선소가 오늘날 울산의 현대중공업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먼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TV를 바보상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TV는 사람들이 생각하며 사는 것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생각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것에 빠져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의 영적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처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면 우리의 10년 후의 삶이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10년 후에 가보지 않아도 그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세운 계획대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내일은 오늘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 직장에서 10년 동안 승진을 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아했습니다. 자신은 10년 동안 한 직장에서 경험을 쌓아오면서 그 누구보다 그 직장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언제나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다른 사람이 승진을 하고 진급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회사 간부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회사에서 10년이나 근무했고 내게는 10년이라는 기간 동한 경험한 값진 경험들이 있는데 왜 회사는 나의 이런 경험을 인정해 주지 않고 승진시켜주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간부는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똑 같은 경험을 10년이나 반복하면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창의성 없는 당신에게 무슨 장래성이 있겠습니까? 우리 회사는 회사 일을 단 1년만 경험을 하고서도 창의성을 보이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장래성이 있다고 보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진급시켜 주고 그런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들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 창조하실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창조의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우신 계획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해 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직장을 다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따라 먼저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다른 창의성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원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계획한 일을 이루어나가는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게 창조함을 받은 우리들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배워서 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바른 삶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해 오셨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해 오셨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일하기 전에 먼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먼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계획도 세우지 않고 무엇을 이루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좋은 계획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좋은 계획은 언제나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일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왜요. 우리가 세운 계획은 우리에게 사명감을 일깨워주고, 사명감은 우리에게 창의성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그래서 성공을 일구어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교회 장소를 정할 때부터 철저히 생각하고 연구를 한 후에 정합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졌으면 그 지역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합니다. 이런 기초적인 조사가 철저할수록 더 나은 성과를 이루어 내게 하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특화된 교회를 세워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장을 다니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철저한 준비와 계획 속에 사업을 시작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저한 준비가 사업주에게 새로운 생각,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일깨워주어서 남보다 앞선 사업체를 이루어가게 해 줍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해 오셨습니까?
둘째, 하나님은 계획을 세운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지혜를 가지셨기 때문에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그 일하는 방향을 개선하거나 변경할 필요가 전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완전한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은 실패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지혜가 완전하지 못하고 또 계획한대로 이루어나갈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획한 일을 진행시켜 나가면서 계속해서 잘된 일은 장려하고 잘못된 일은 수정해 나가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이런 순발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발력 있게 적응해 나가려면 우선 그 일에 몰두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창의적인 생각이 창조적인 생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은 그 일에 몰두하는 사람, 사명감을 가지고 천직으로 알고 자신의 모든 힘과 역량을 다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이, 이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 나갈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일해 오셨습니까?
셋째, 하나님은 그 수고한 일의 결과를 보고 만족해 하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그 창조하신 만물을 보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아주 만족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사명감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은 사업체가 일치월장 발전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그 공부한 일의 성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하고, 사업체를 운영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보낸 후에도 그 얻게 되는 결과가 신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저절로 생기지 않았듯이 이 세상에서는 저절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같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또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한다면 이런 태도로 10년을 신앙생활해도 우리는 아무런 발전도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발전되어 나가고, 믿음 안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해 나가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도 철저히 하나님을 따라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한대로 구체적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우리의 부족한 지혜와 능력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일하는 도중에 발견되는 시행착오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들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우리가 계획하고 시작했던 일의 결과들을 열매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 하나님은 ‘세상적인 것에 충성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 일에도 충성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는 자는 큰일에도 충성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왜 작은 일에 충성합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그 사람이 충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이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거의가 다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주어진 일이 적다고 하면서 충성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충성된 자는 어떤 일을 맡겨도 충성되고, 게으른 자는 어떤 일을 맡겨도 게으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맡겨진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맡기신 일이라고 생각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충성된 자로 인정하시고 더 큰 일도 맡겨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개척교회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 헌신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있는 우리들을 보시면서 충성된 자라고 인정해 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작은 것 때문에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2022년 4월 첫 주일인 오늘도 충성스러운 종들처럼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주의 일에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일하기 전에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계획을 세운대로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셋째,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수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성입니다. 그러면 생각이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계획적인 삶을 살게 되고, 계획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만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하되 살되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서 의롭고 거룩한 선한 열매들을 많이 맺으며 살아가는 2022년도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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